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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읍시다. 2016.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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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6-03-09 08:52 조회 13,943 댓글 0
 

책 좀 읽읍시다.

 

 

광화문과 종로 한 귀퉁이에 있는 웅장한 교보빌딩의 지하 공간에 교보문고가 있다. 그 건물 바깥 한 모서리의 정원에는 큰 돌 세 덩이가 나란히 놓여 있다. 옅은 담황색 돌들 위에는 짙고 검은 글씨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벤치 위에 왼쪽 팔을 길게 걸치고 정장 차림으로 오른쪽 다리를 왼편 다리 위에 꼬아 올린채로 오른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앉아서 저 만치 앞을 바라다보며 사색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는 중년 신사의 청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그 주인공은 1920년대의 신문학 운동에 앞장섰던 횡보 염상섭(1897-1963) 선생이다. 그는 장편 20여 편, 단편 150, 평론 100여 편 이외에 수필 등 200여 편의 글을 남겼다. 역사는 그를 그 삶과 문학의 특징은 민족적이었고 전통적이었으며 야인(野人)적이었다. 식민지사회의 악()과 폐해(弊害)를 투철히 인식하면서 당대 사회의 진실을 묘사하였다. 그의 문체는 사실적이었고 보수적이었다. 그는 윤리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두어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 점 등이 높이 평가된다. 더욱이 사실주의 문학을 확립하고 일제 식민지의 현실을 부정하고 전통을 계승하고자 힘쓰며 독립과 해방을 꿈꾸었던 애국청년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그 곳 종로에게 팔 남매 중의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평 군수를 지냈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다가 10살 때에 일제의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반일 학생으로 지목되어 중퇴 하고 말았다. 학구열이 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 건너가서 경도에 있는 중학교를 마치고 게이오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직접 조선독립선언문을 써서 격문을 살포하고 시위를 주동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금고형을 받았다. 결국 다시 학교를 중퇴한 채로 귀국하여 <동아일보> 창간 후에 정치부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한때 기독교 학교인 오산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개는 신문과 잡지의 편집인으로 활동하였고 꾸준히 소설과 평론을 쓰는 일에 전념하였다. 1921년에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면서 그는 한국 근대문학의 기수라고 불려 지게 되었다. 어느 문학 평론가는 이광수가 근대 문학의 개념을 도입했다면, 김동인은 소설 장르의 질서를 주조하였고, 염상섭은 그러한 토대 위에 소설 장르의 피와 살을 부여하였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최근의 뉴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루에 책을 읽는 시간은 평균 6분이라고 한다. 학교 다닐 때는 진학을 위해서 책을 읽고 공부하던 이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책과 멀어진다는 통계이다. 나이가 들면서 책을 멀리하는 정도는 OECD 상위 30개 국가 중에서 최악이라고 한다. 언론은 책을 읽지 않으면서도 노벨 문학상을 꿈꾸는 이상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일갈(一喝)하였다. 우리나라 국민의 30-40%는 일 년에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 보면 그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10명 중에서 8-9명쯤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할 것 없이 핸드폰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어쩌다가 옆 사람의 핸드폰을 우연히 들여다보면 게임을 즐기거나 스포츠 동영상을 보거나 화투장을 넘기거나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는 걸어가면서도 핸드폰의 화면을 들여다보는 이들도 대단히 많다. 온 국민이 핸드폰에 중독된 상태와도 같다. 할 수 있으면 전자 기기를 접하는 시간을 줄이고 종이에 써진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신문이든 잡지이든 단행본이든 전집류이든 말이다. 책이란 종이 위에 글씨나 그림을 이용하여 생각, 사상, 철학, 전문적인 지식, 정보, 주장, 견해, 입장, , 이념, 통계 등을 기록하여 엮어낸 것이다. 그 두께가 얇든 두껍든 상관없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만 해도 책이 귀했다. 시골 초등학교 도서실에 있는 책을 다 갖다 읽어도 그 량이 많지 않았다. 한국 위인 전집, 세계 위인 전집, 국내외 소설 몇 십 권, 그리고 손오공같은 만화 몇 권 정도가 전부였다. 책을 읽고 싶어도 더 읽을 책이 귀하던 때였다. 시골 동네 장로님 댁의 책꽂이에서 눈에 띈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빌려다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은 천진한 시골 소년의 마음에 목사의 꿈을 갖게 하는 영적 충격을 준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요즘이야 성경 책 구하기가 쉽지만 우리가 어려서는 성경책도 귀했다. 시골 교회 예배당 뒤 안내용 책상 위에는 기드온 협회에서 보내온 단권 성경들과 파란 비닐 표지로 되어 있는 신약성경과 시편합본 보급판이 몇 권씩 놓여 있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소에게 풀을 뜯기기 위해서 뒷산에 올라 다닐 때면 주머니 안에 그 기드온 성경책을 넣고 다녔다. 떡갈나무 그늘에 앉아서 성경을 읽다가 그만 소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과거에는 양피지나 파피루스를 사용하여 그것에다가 성경 말씀을 써 넣었다. 구약 성경 한 권을 양피지에 다 써 옮기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양피지가 필요하였다. 그것이 소위 두루마리 성경이 아닌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과 인쇄술이 발전하고, 우리나라도 활자 인쇄술이 자리 잡기 이전에는 동서양의 그 어느 나라, 어느 문명이나 글을 써서 보존하고 전달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고대의 인류들은 돌 벽에다가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서 자신들이 전하고 싶었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요한 구텐베르크(Johann Gutenberg)는 탐험가 컬럼버스와 함께 지난 1,000년을 빛낸 역사적인 인물의 순위 1, 2위를 차지하였다. 실로 구텐베르크의 공헌은 인류 역사에 의 인쇄와 보급의 길을 활짝 열어 놓은 역사적인 업적을 남겼다. 구텐베르크는 성경 180부를 찍었다. 그것도 140부는 종이에 나머지 40부는 양피지를 사용하였다. 그 후 36년이 지난 1492년에 가서야 초판을 1,000부 이상 찍는 책이 나왔다. 1517,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95개조 반박문이 불과 두 주 만에 전 유럽에 확산될 수 있었던 것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이었다. 성경을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한 활자본이 나오면서 나라마다 문맹이 사라지고 종교의 교권 앞에 무조건 복종하던 맹목적인 복종이 변하기 시작했으며 몇몇 사람들이 지식을 독점하던 현상이 바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377년에 직지심체요절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하는 기술을 가졌으면서도 그 보급에 있어서는 구텐베르크를 따라 가지 못하고 말았다.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그가 바라는 책을 구할 수 있는 시대란 인류의 긴긴 역사 중에 그리 오래지 않다. 영어 표현에 “Reader is Leader.”라는 말이 있다. 아브라함 링컨은 책을 한 권 읽은 사람은 책을 두 권 읽은 사람에게 지배당한다. 어린 시절 돈이 없어 학교도 다닐 수 없었던 나에게 새 어머니는 무려 5년 동안 부잣집의 책들을 빌려다가 읽게 해 주었다. 나는 독서광이 되었고 훗날 미국의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책 읽기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율곡 이이, 퇴계 이황, 고운 최치원, 다산 정약용을 비롯하여 심지어 난중일기를 남긴 이순신 장군도 전쟁 중에도 글과 책을 가까이 하던 인물이 아니었나. 허균은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글쓰기와 독서를 추구하라.”고 말했다. <3의 물결>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도 없는 지식과 직업과 상관도 없는 공부를 하느라 하루에 15시간씩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암기 위주의 한국식 입시 공부법을 꼬집은 말이 아닌가.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어렸을 적의 동네 도서관이다.”라고 말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함도 거기에 있다. 2000년 전, 그는 추운 로마의 감옥 안에서 디모데에게 편지하였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 오라.”(딤후4:13) 그가 원한 그 책이 무엇인가. 양피지에 쓴 성경책이 아닌가. 책은 곧 그 사람의 미래(未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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