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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 카펫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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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7-12-23 18:01 조회 11,846 댓글 0
 

옐로 카펫

 

초등학교 앞길의 건널목 양편 인도(人道)옐로 카펫이란 부분이 있다. 평소에 차를 타고 다니면서 눈 여겨 보기는 하였으나 그 곁을 걸어서 지나다 보니 안내판의 설명이 눈에 들어 왔다. ‘옐로 카펫이란 인도의 바닥과 벽면에 넓은 삼각형의 노란색 페인트칠을 해 놓은 안전지대를 말한다. 안내판의 내용은 어린이와 노약자를 보호하자는 경고문이었다. 넓은 차도를 건너 다녀야 하는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한옐로 카펫’(yellow carpet) 운동은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고안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그렇다. 어린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옐로 카펫이 펼쳐진 보호 환경에서 자라나야 하는 것이 맞다. 세상이 하도 뒤숭숭하니 말이다. 생각하고, 보고, 듣고, 말하는 그 모든 환경 속에 죄와 악이 가득하다. 시야에 탁하게 보일 뿐인 미세먼지의 폐해가 한 사람의 건강을 심각하게 무너트릴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이의 순수함이 오래도록 보존되고 유지되며 해 맑게 세상을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평생 살아가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세태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최근에 선교회 연말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버스를 탔다. 수능성적 결과를 갖고 서로들 이야기하는 고등학교 졸업반 여학생들 몇이 뒷자리에 앉아서 나누는 이야기가 큰 소리로 들렸다. 차마 입으로 담아 옮길 수 도 없고 글로 써서 옮기기에는 더군다나 난감한 표현의 욕설을 섞어 가며 대화하는 십대 소녀들의 모습 속에 우리 시대의 민낯을 보는듯하여 마음이 불편해졌다. 한창 해 맑아야 할 저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친 단어들이 미국이나 남한을 비난 할 때 사용하는 한복 입은 평양 방송 여성 아나운서의 말솜씨를 능가하니 말이다.

 

언제부터 세상은 성공하고 출세만 하면 그만이고 그 기준은 돈과 재산의 규모에 비례하며 매사를 권력 지향적으로 치달아 가는 세태가 되고 말았나. 명절만 되면 성형외과 예약이 폭주하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듯 깎아 만든 외모를 자랑하듯 하며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분야가 큰 것, 많은 것, 높은 것만이 대답인듯한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시대 언어의 표현도 최근에야 우연히 들어 알게 되었다. 나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며 사는 것 같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얼마나 조급하고 다급하게 돌아가는가. 운전 중에 붉은 색 신호등이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고 앞에 선 운전자의 출발이 0.1초만 늦어져도 뒤에서 기다리던 운전자는 크게 경적을 울리며 출발을 재촉한다. 물론 좋게 해석하면 그런 기질로 뛰고 달려서 이만큼 자리 잡고 사는 나라로 발전시킨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은 점점 이 시대의 풍류에 밀려가고만 있는 듯하다. 사립문과 대문을 열어 놓고 살아도 도둑이 없고 큰 범죄가 없이 이웃 집 숟가락 숫자까지 헤아려 가며 살던 농경문화의 그런 마음 훈훈하고 구수한 이웃 관계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사고(思考)일까.

성경 사무엘상 1장은 사사기 시대 말기의 시대 현상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성막(聖幕)은 실로에 있었다. 그 때의 제사장은 엘리였다. 엘리는 구십 대 후반의 연세였고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로 이미 소문이 파다하였다. 심기가 불편해진 아버지 엘리가 두 아들들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못들은 체 하고 제멋대로 지냈다. 어느 날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 군대 삼만 명을 죽였다. 블레셋 군대는 성막의 법궤를 빼앗아 갔고 그 전쟁 중에 엘리의 두 아들도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 비보를 전해들은 98세의 늙은 제사장 엘리는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운명하고 말았다. 이 같은 자세한 죽음의 묘사는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던 사사 시대 말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고발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사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 무엇이 불행인가. 왕이 없는 것이 불행이다. 각기 자기 자신이 왕 노릇하며 그 누군가의 다스림과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제 멋대로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것이 불행이다. ‘자행자지라는 단어의 사전의 풀이는 이렇다.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그친다는 뜻으로, 자기 마음대로 했다 말았다 함을 이르는 말.”그렇지 않나. 사람들은 거의가 다 그렇다. 내가 내 인생을 알아서 하는데 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느냐고 반문한다. 그것이야말로 사사시대 말기의 현상이다.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현상이야 말로 사사기 시대의 모습이니 말이다. 무너져 간 엘리 제사장의 가정 이야기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마지막을 교훈하는 사건의 기록일 뿐이다. 하나님은 이미 이렇게 경고하셨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삼상2:35)

 

커서 남들의 부러움을 사며 레드 카펫 위를 걷는 하늘로 치솟는 인기나 명예나 권력도 복되지만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처럼 한 인생의 장래와 평생은 옐로 카펫 위에서 건널목을 기다리는 어린이의 마음속에서 자리 잡아 가는 것이 아닐까. 엘리 제사장의 시대에 실로의 성막에서 자라나던 어린 사무엘의 나중처럼 말이다. 성경은 사무엘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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