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인생
세상에는 갈수 있는 길이 있고 갈수 없는 길이 있다. 가야만 하는 길이 있고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다. 가고 싶어 하는 길이 있고 전혀 갈 마음이 없는 길도 있다. 세상에는 마음에 소원하지만 갈 수 없는 길 앞에서 답답해하고 아쉬운 세월만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길은 길이로되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다. 가야 하는 길인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철이 나는 것이요 사리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우리나라는 비무장 지대를 중심으로 남북이 휴전선으로 나뉘어 있어서 그 선을 넘어가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아무리 길이 보여도 그 길을 따라 함부로 걸으면 죽음을 부른다.
최근에 북악스카이웨이 제 2산책로가 개통되었다. 며칠 전에 처음으로 그 길을 걸어 보았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부지런히 걸어서 세 시간 가까이 걸려서 돌아 왔다. 소위 김신조 루트라고 알려졌던 그 길은 폐쇄 된지 41년 만에 개통된 산행 코스이다. 제 1산책로를 포함하면 전체 길이가 11.3킬로미터이니 거의 삼십 리 길이다. 1968년 1월 21일에 북한 무장 공비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파 되었다.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했고 공비들은 흩어졌다. 그 중에 생포된 주인공이 김신조이다. 지금은 남양주시에 있는 삼봉 교회를 맡아 목회하는 목사가 되었다. 저들 무장 공비와의 격전지를 중심으로 출입이 통제 되었던 북악산 한 자락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수려한 경관을 중심으로 능선에 오르는 곳곳마다 서울의 사방이 멀리까지 바라다 보이는 확 트인 장관은 설명으로는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다. 사십년이 넘도록 인적이 뜸해서 더욱 더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된 나무와 숲과 계곡과 바위 등 구석구석에 펼쳐진 자연스러움이 너무나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말 말고 더 특별히 묘사하기가 곤란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성북동 우정의 공원을 출발하여 호경암을 거쳐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서 걷다가 하늘마루와 북악터널 상부와 형제봉과 보현봉을 지나 삼각산 백운대까지 갈 수 있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산길이 열린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길의 역사이다. 역사적으로는 동서의 무역로를 의미하는 실크로드로부터 마을과 마을 그리고 집과 집을 이어 주는 길이 생겨났다. 문명의 발전은 곧 길의 변천사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당시의 로마 문명이 얼마나 창성했었나를 입증하는 말이다. 만리장성도 결국은 적국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길고 긴 성을 중심으로 성곽길이 연결되어 있다. 미국이란 나라에 가서 십여 년을 살면서 느낀 첫 소감은 동서남북으로 시원하게 잘 뚫린 길의 건설이었다. 우리나라도 경인 고속도로와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을 시작으로 해서 이제는 전국을 거미줄처럼 엮는 엄청난 도로망이 잘 발전되어 있다. 과거에는 대관령 아흔 아홉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서야 강릉에 갈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터널과 다리로 관통하는 도로 즉 길의 건설이 놀랍다. 한 나라의 발전이 그러한 것처럼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셨다. 이 외에도 길에 관련된 성경 말씀은 너무나도 많다. 하나님은 인생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이시다.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들의 나아가는 길을 인도해 주셨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추방시키신 하나님은 동산 동쪽에 그룹들 즉 천사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쉬운 타협의 길로 가지 말고 험하고 어려워도 진리의 길로 가라는 교훈이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7:14)고 하셨다. 우리 선조들은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 말라.”고 교훈해 왔다. 예수는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마10:5)라는 말씀으로 절대로 아무 길이나 따라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셨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 40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3:5-6)고 선포하였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진리의 길이 있다.
삼십년 전에 보았던 영화 ‘마이 웨이’(My Way)의 장면과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1915~1998)가 부른 주제가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멀고 험해도 길 다운 길을 가기 위해서 씨름하는 진리의 길벗이 그리운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이 칼럼은 2009년 11월 15일 주일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