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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201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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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8-01-28 14:21 조회 11,440 댓글 0
 

새로운 시작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 모든 역사는 시작한 이들이 있었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도 누군가가 맨 땅 위에 돌 위에 돌 하나를 얹어 놓기 시작하면서 역사적인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첫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성실과 인내를 가르치려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성공은 1%의 영감과 99%이 노력에 의해 주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토마스 에디슨 같은 사람은 인류 역사에 타고난 천재성을 가진 기인이다. 사람이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되는 일이 무엇이 있겠나.

 

밤하늘의 달과 별들을 쳐다만 보고 말았다면 오늘 날과 같은 우주 산업이 발전해 올 수 있었겠나. 오대양 육대주를 향하여 수평선 저 끝의 가본 적이 없는 곳을 향한 중세 시대의 탐험가들의 모험이 아니었다면 인간이 태어나 살던 곳에서 지구 반대편의 대륙에 어떻게 발을 디딜 수가 있었겠나. 오늘 날 호주나 남북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남극과 북극을 향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탐험 길에 나섰던 이들의 모험심과 도전이 오늘 날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닌가.

 

사람이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사람이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오래도록 지낼 수 있을까. 사람이 먼 바다 건너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당도할 수 있는 해상 교통수단이 가능할까. 무진장한 에너지원을 개발해서 사용할 수는 없을까. 사람이 지금보다 좀 더 오래 살 수는 없을까. 사람의 말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기계가 가능할까.”이와 같은 끝이 없는 질문 앞에 반응하고 시간과 세월과 삶을 투신한 이들의 공헌에 의해서 오늘 날의 인류는 그 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인류 역사의 통신, 교통, 에너지, 의학, 건축, 토목 등등 그 모든 분야의 비약적인 과학의 발명과 발전을 통한 그 문명의 혜택이란 누군가 남다른 생각에 골똘하고 무모한 시도를 통해서 이루어낸 업적이 아닌가. 요즘과 같은 IT 산업의 발전이라든지 3D프린터나 인공지능 등의 발전을 보라. 아마 앞으로는 타국어를 어렵게 배우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서로 간에 충분하게 서로의 자기 말로 의사소통을 완벽하게 해 내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현대 의학에서 장기를 이식한다든지, 생체 이식을 한다든지, 윤리적인 논란거리이지만 복제의 문제라든지 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의학의 발전인가. 페니실린의 발명이나 마취제의 발명 등이 인류에게 미친 업적을 생각해 보라. 그 외에도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질병 예방 백신의 발명과 상용은 그 얼마나 크나큰 혜택이며 복인가. 예전에는 마마를 앓아서 얼굴이 상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나. 예전에는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를 앓아서 평생 고통 속에 불편한 걸음을 힘겹게 걸으며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오늘 날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웃들이 없지 않다. 몸 안에서 번식되는 각종 기생충을 해결하는 일이나 결핵균을 다스리는 일도 그렇지 않나. 과학계에서 말하는 제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란 가히 어떤 시대를 말하는지 일일이 다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 가다 보면 이 세상이 천국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이 아무리 발전하고 최첨단 의학과 과학의 혜택을 누리며 총알처럼 빠르게 하늘과 땅과 바다 위를 가로 질러 다니는 하루 생활권의 지구촌에서 살아갈지라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 앞에 답을 찾아 가는 길이다.

 

이번 연말연시에 극장가에 크게 흥행한 영화의 제목이 신과 함께라는 영화라고 한다. ‘죄와 벌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개봉된 지 보름 만에 일천만 이상의 관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왜일까.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다. 저승에 온 망자가 그를 안내하는 저승 삼차사와 함께 49일 동안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이란 일곱 가지의 지옥 심판을 받는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에는 환생이란 주제까지를 다룬다. 이는 기독교의 죽음과 사후 심판에 대한 가르침과 전혀 배치된다.

 

사람들은 대개 새 해가 되면 좀 더 건강할 수 있다면, 좀 더 돈을 잘 벌수 있다면, 좀 더 부자가 된다면, 좀 더 성공하고, 좀 더 진급하고, 좀 더 형통하고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나아지고, 가족과 자녀들이 좀 더 잘 되고, 매사에 좀 더 잘 나가고....”이런 식의 생각을 기도하고 그런 염원 가운데 한 해를 출발하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해가 바뀐다는 게 뭔가. 달력이 새해의 것으로 바뀐 것 밖에는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나. 그래도 사람들은 새 해가 되면 새 해의 염원을 빌고 서로에게 덕담도 하고 각오와 결단도 새롭게 한다.

 

하나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바 있다. 그것이 성탄이다. 양과 염소와 송아지와 비둘기의 피로도 온전히 씻을 수 없는 인간의 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은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이것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이다. 이 깨달음으로부터 죄와 사망을 이긴 부활(復活)의 능력과 지옥의 심판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구원(救援)과 영생(永生)의 삶이 시작된다. 새롭게 시작된 새 해. 이 땅에 우상 숭배와 황금 숭배와 탐욕과 탐심과 미신과 이단과 사이비의 미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마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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