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높낮이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1954-)총리가 외국 손님들을 접견할 때에 자신은 상대방보다 더 높고 훨씬 화려한 의자에 앉는 장면이 매스컴을 타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외무장관을 만날 때와 정당 대표의 방문을 맞을 때에도 한 결 같이 그랬다.
아베의 그런 처세는 지극히 의도적인 것이 분명하다. 아베가 누구인가. 그는 4대째 일본의 총리를 맡고 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중의원을 지냈다. 아버지는 농림대신과 내각관방장관과 외무대신직도 역임했다. 그의 고조부인 오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1850~1926)는 육군대장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 당시에 8천 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고 경복궁까지 쳐들어 와서 점령했었다. 외조부는 총리를 두 번이나 지냈다. 외증조인 부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1901~1975)는 총리를 세 번이나 지냈고 노벨평화상도 탔다. 아베의 가문은 조상 때부터 명치유신 이후 오늘 날까지 일본 정치의 중심에 서 있다. 일본인들의 편에서 보면 오늘 날의 일본을 세우고 발전시킨 정치명문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아베 신조의 정치 철학과 신군국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선조들이 꿈꾸던 가치관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가 구한말 쇄국정책을 펼치며 서구 문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아 내려고 씨름하던 그 이전에 일본은 이미 명치유신을 통해서 서구 문명에 눈을 뜨고 적극적으로 시대 변화에 부응하였다. 일본은 막부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국으로 변신하는 명치유신을 이끌어 냈고 근대국가로 도약하는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오늘 날 일본이 한국보다 잘 사는 것이 사실이다. 인구도 갑절이나 많다. 경제적으로 강국이요 군사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이웃 나라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비롯한 오랜 한일 관계를 뒤 돌아 보면 간단하게 해석하고 지나갈 상대가 아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일제 식민지를 거치는 동안에 우리나라는 일본으로 인하여 처절하게 짓밟히고 찢기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수모와 고통을 당하였다.
일본 내 위안부 문제의 가장 권위 있는 연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일본이 동원했던 위안부 수를 최소 8만에서 최대 20만 명으로 보고 있다. 상하이 사범대학 교수인 중국의 쑤즈량(蘇智良) 위안부문제연구센터 소장은 중국인 피해자만 20만이며 조선인까지 합한 전체 위안부 수는 36만~41만 명으로 보고 있다. <실록 여자 정신대>라는 책에 보면 “1939년 7월 8일, 일제는 징용령을 공포했다.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 법률적 절차를 밟아 징용된 숫자만도 67만 여명이나 되었다. 강제 동원된 인원은 모두 700만 명에 가까웠다. 한국현지에서의 강제동원이 480만, 일본으로 끌려간 수가 151만, 거기에 군 노무 징용, 징병, 정신대란 이름으로 끌려간 숫자까지 합치면 680만 명을 넘어선다. 이러한 강제 징용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어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순박한 처녀들을 전선으로 끌고 가 일본 군대의 접대부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정신대'라는 것이다.”는 내용을 대하게 된다. 정신대로 끌려간 여성들의 평균 나이는 16-19살이었다. 앞의 책을 좀 더 인용하면 "그들은 이국땅 움막에서, 전선의 막사에서, 또는 초소의 토치카에서, 아니면 남국의 밀림에서 밤낮없이 짓밟히고 시달리다 쓰러져 갔다. 조국의 이름 한 번 불러 보지 못한 채 기아와 질병에 쓰러졌고 포격 속에 전멸되는 군대의 길동무가 되어 죽거나 아니면 피와 살을 깎아 바친 상전에게 기관총 세례를 받고 수류탄 처분을 받았다. 이렇게 죽어 간 사람이 자그마치 14만 3천여 명이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한민족의 딸로 태어났다는 것뿐이다.”라고 슬프고 치욕스러운 역사를 고발하는 내용이 나온다.
동서고금에 힘의 외교가 아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기에 도산 안창호(安昌浩,1878-1938)는 작은 일에나 큰일에나 성(誠)을 다할 것을 강조하고 표리부동(表裏不同)과 모략중상(謀略中傷)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그는 스스로도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모범을 보이는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이러한 정신은 1909년에 조직된 청년학우회의“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의 4대 정신에서도 나타났다. 안창호는 이 4대 정신 이외도 “자강(自彊) 충실(忠實) 근면(勤勉)”을 더하여 7대 정신을 강조하였다. 이 땅의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약육강식의 원리를 벗어 날 수 없다. 그러므로 힘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주어진 힘으로 남을 지배하지 않고 섬길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승자의 삶이다.
성탄절은 무엇인가. 천지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그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섬기셨다. 그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는 낮고 천한 자의 삶을 사셨다. 그는 베들레헴 마구간에서의 탄생, 나귀타신 예루살렘 입성, 죽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묘를 빌린 장례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모든 것을 빌려 쓰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는 각색병자와 귀신들린 자와 죽은 자와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끝까지 사랑으로 섬기다가 죽임 당하셨다. 그러나 그는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이 앉아계시다.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죄와 사망을 이기는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선물해 주었다. 예수는 언제나 낮아 지셨으나 궁극적으로 높임을 받으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라.”(엡2:22)고 선포했다. 예수는 이 땅에 계신 동안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20:28) 예수는 만물의 주인으로서 인류를 섬기셨다.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최후 승리하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