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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비와 큰물의 위력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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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8-09-01 21:14 조회 10,962 댓글 0
 

많은 비와 큰물의 위력

 

 

지난 수요일 밤 11시 경, TV 뉴스에서나 보던 수해 현장의 한 가운데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지난주일 밤부터 시작된 이천중앙지방 27개 교회의 연합 집회 인도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중이었다. 구리시를 지난 지점부터는 하늘에서 물을 쏟아 붓는 것만 같은 많은 양의 비가 계속하여 내렸다. 5미터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와이퍼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작동하여도 속수무책이었다. 모든 차량들이 서행하고 있었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분리하는 흰 선을 희미하게 확인하며 속도를 줄여 조심스럽게 운행하였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탱크처럼 달려드는 대형 덤프트럭들은 승용차 운전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물 폭탄을 뒤집어씌우고는 추월하여 앞서서 달려갔다. 참으로 두려운 운전 상황이었다.

 

10여 년 전 여름에 멕시코 선교 현장에 방문했다가 경험한 그런 폭우의 두려운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선교사가 운전하는 밴의 옆자리에 앉아서 고속도로를 달려가던 주일 오후의 낯선 선교지의 이동은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 밤에 계획된 원주민 교회 연합 성회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이동하던 길이었다. 안전하게 마치고 귀국해서 지금까지 살아 있기는 하지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던 불안한 선교 일정이었다.

 

지난 830, 서울과 경기 그리고 영서 북부에 시간당 최고 100이상의 집중 호우가 쏟아졌다. 기상청은 지난 26일부터 30일 오후 3시까지 수도권 지역 누적 강수량이 500를 넘어섰다고 30일 밝혔다. 경기 고양시와 서울 은평구, 의정부, 김포, 포천, 인천 등지의 일부 지역에는 5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고양시 누적 강수량은 564에 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날 깊은 밤, 일찍 귀가하여 베트남과의 아시아 올림픽 축구 경기를 관람한 시민들은 경기에 우승한 기쁨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울 시간 즈음에 나는 폭우에 갇혀 있어야 했다. 10시 즈음에 서이천 IC를 통과하고 영동 고속도로와 중부 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거쳐서 송추 IC로 진입하는 폭우 가운데에서의 편안치 못한 운전이었다. 수해를 입고 보니 송추 IC를 빠져나오는 구간은 그 주변 지형들 중에서 가장 낮은 도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고속도로이든 국도이든 차량 이동을 통제하는 교통경찰 차량이 한 대도 눈에 띄질 않았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주변상황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순간 물길에 휩싸인 차의 시동이 꺼져 버렸다. 다시 시동을 걸어 보려 하였지만 불가능하였다.

 

운전석 옆 의자 위에 올려놓았던 성경책과 서랍 속의 자동차 등록증과 보험 증서 등을 급하게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순식간에 자동차 바닥으로부터 실내로 물이 차 오르기 시작하였다. 넥타이를 풀어 던지고 탈출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집회 기간 중에 틈틈이 편하게 갈아 신고 걷기 위해서 뒷좌석 바닥에 두었던 운동화 한 켤레가 물에 둥둥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순간 구두를 벗어 운전석 뒤 트렁크 상단으로 던져 놓고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자칫 몇 분만 더 지연해도 수압으로 인해서 자동차 문을 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자동차 안에 여기 저기 수납공간에 넣어 두고 사용하던 이것저것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가방을 어깨에 가로 질러 메고 탈출을 시도하였다. 힘겹게 자동차의 문을 밀고 물바다로 나섰다. 얼마큼 물길을 빠져 나오면서 뒤돌아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9년 가까이 정들게 타던 손때 묻은 자동차가 흙탕물 속에 점점 모습을 감추어 가고 있었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 왔다. 보험사에 재난 상황을 접수하였으나 새벽 3시가 넘도록 견인조차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시간 즈음에 경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서 견인이 되지 않으면 고속도로에서 진출하려던 다른 차량에 의해서 추돌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신속하게 차량을 이동 시켜 달라는 독촉이었다. 밤을 새워 가며 보험사에 독촉하여도 송추 지역 근동의 견인차 기사들은 100여대의 사고 차량을 견인하느라 밤을 새워 수고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밤을 거의 꼬박 새우고 새벽 기도를 인도하기 위해서 나섰다. 정신이 몽롱하고 머리가 핑 도는 것만 같았다.

 

벤살렘 교회의 예배당을 건축할 때 경험한 일이다. 5,000평의 널따란 잔디 밭 한 가운데에 예배당과 교육관과 친교실을 겸한 체육관을 건축하였다. 해당 관청에서는 100년 동안의 최대 강수량에 근거한 토목공사를 하여야 한다며 700평의 집수 처리 시설을 공사하게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경우와 비교해 보면 송추 IC주변의 배수 토목 공사는 미비하기 그지없다.

 

높은 위치의 고속도로에서 저지대의 일반 국도로 진입하는 포장 도로 주변에 공원을 조성한 것은 미관에는 좋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져 내릴 경우에 땅에 흡수되는 빗물 말고 넘쳐흘러서 국도 주변의 아스팔트 위로 범람한 최대 예상 강수량을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보면 송추 IC 주변의 배수 토목 공사는 너무나도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노아 때의 홍수가 생각났다. 노아 홍수 때에는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물에 빠져 죽었다. 우린 그 사건을 홍수 심판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경고하셨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셨다. 그러나 노아 때의 세상 사람들은 노아를 정신 나간 사람 정도로 취급하였다. 노아 때의 그들은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다. 하나님은 땅에 사람을 지어 놓은 것을 한탄하셨고 마음에 근심하셨다. 결국은 물의 심판을 결심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6:7)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노아는 달랐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칭찬이 이어진다. 성경은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6:9)라고 기록하였다.

 

하나님은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6:17)는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 방주를 지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고 노아를 따라 방주에 들어간 이들은 노아의 식구들 뿐이었다. 하나님은 가축과 땅에 기는 것들과 공중의 새를 비롯한 모든 생물을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 안으로 들여서 생명을 보존하게 하셨다.

 

홍수 후에 노아는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드렸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셨다. 그런 크신 은혜 중에서도 포도 농사를 지은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 벌거벗고 잠이 드는 실수를 범하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땅 위에서 제대로 살아 갈 수 있는 인생이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여전히 부족한 노아였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믿음을 이렇게 칭찬하였다.

 

믿음으로 노아는....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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