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넝쿨 그늘 아래서
111년 만의 더위라던 폭염이 꺾여 가고 있다. 말복이던 며칠 전 저녁에는 추석 절 즈음의 날씨처럼 시원한 바람이 밤새도록 불었다. 하긴 입추가 지난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다. 계절의 변화는 너무나도 분명한데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것 같다.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 호들갑을 떤다.
요나서의 주인공인 선지자 요나가 그랬다. 하나님은 악독하여 심판하시려던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셨다. 그러나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런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서 몹시 싫어하며 화를 내었다. 선지자들 중에 요나처럼 성격이나 감정 표현이 솔직한 이는 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요나는 차라리 자기를 이 세상에 남겨 두지 말고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자기 눈앞에서 니느웨 성민들이 버젓이 살아가는 모습이 못마땅하였다. 그래서는 하나님께 한다는 말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하고 쏘아 붙였다. 하나님은 그런 요나에게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셨다. 하나님과 요나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마치도 연인 간의 사랑 투정 같다. 니느웨 성 밖으로 나가서 초막을 지은 요나는 그 초막 그늘 아래에서 장차 니느웨 성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고 지켜볼 심산이었다. 하나님은 요나의 행동이 맘에 들지는 않으셨지만 박넝쿨은 그의 초막에 예비하셔서 가려지게 해 주셨다. 요나는 그 박넝쿨로 인해서 크게 기뻐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벌레를 동원하셔서 그 이튿날 새벽에 박 넝쿨을 갉아 먹게 하셨다. 한낮이 되자 뜨거운 동풍이 불고 뙤약볕이 요나의 머리 위로 내려 쪼였다. 그러자 요나는 다시 또 탄식하였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라.”요나의 입에 달고 사는 이런 말을 보면 요나가 한국 사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걸핏하면 “힘들어 죽겠다. 보고 싶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요나를 책망하셨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4:10-11)
처처에 사거리마다 횡단보도 곁에는 커다란 그늘 막을 설치한 곳이 쉽게 눈에 띈다.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는 한 낮에 시민들의 이동이 번잡한 곳에 대형 얼음을 설치해서 지나가던 길에 잠시라도 한기(寒氣)를 느끼게 하려고 배려한 소식도 전해졌다. 여름 볕은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볕이기는 하다지만 올 여름의 햇볕은 너무 뜨겁게 내려 쪼이니 채소가 타들어가고 과일들도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적당하게 하시는 주의 은혜가 자연의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작용하여야만 한다. 그 모든 것들은 밤과 낮의 조화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조화가 신묘막측하게 어우러져서 돌아간다.
미국의 제 9대 대통령은 윌리엄 헨리 해리슨(William Henry Harrison, 1773- 1841)이다. 의학을 공부하던 후에 군인이 되었고 장군까지 지낸 후에 상원 의원이었던 그는 대통령 취임식 날 추운 날씨에 장대비가 내리는데도 재킷을 벗고 취임연설을 하였다. 결국 그는 독한 급성폐렴에 걸렸고 취임한 지 31일 만인 4월 4일에 6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은 추우면 춥고 더우면 덥기는 임금이나 평민이나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짧은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임기를 못 채운 할아버지의 꿈을 이어 가듯이 그의 손자인 벤자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 1883-1901)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48년 뒤에 미국의 2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선지자들 중에서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서 행동한 대표적인 인물이 요나이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 성민들의 회개를 촉구하도록 사명을 주셨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다.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여만 명이었으니 작은 도시가 아니다. 니느웨 성민들의 악독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요나는 욥바 항구에서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도망가고 있었다. 그가 탄 배는 큰 풍랑을 만났다. 뱃사람들의 풍습대로 제비를 뽑았더니 요나가 뽑혔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큰 폭풍으로 배가 거의 깨져 가고 있었다. 배 밑층에서 깊은 잠이 들어 있던 요나는 엉겁결에 바다에 던져져야하는 운명이 되었다. 바다는 점점 흉용해져 가고 있었다. 배에 탄 무리들은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고 물었다. 그 때에 요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은 죽음의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위해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지내며 회개 기도를 드렸다. 삼일 후에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내게 하셨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였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는 하루 종일 니느웨 성 안을 걸어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런데 니느웨 성에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저들인데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었다. 이 소문을 들은 임금도 왕복을 벗고 베옷을 갈아입었다. 왕은 조서를 내려서 사람과 짐승 모두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고 명령하였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다 굵은 베옷을 입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자고 명령하였다. 왕의 뜻은 너무나도 분명하였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시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욘3:8-9) 그 때까지 앗수르의 왕은 하나님을 믿던 왕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분명하고 단호하게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앙관을 온 나라의 백성들에게 피력한 이 조서의 내용은 놀랍기 그지없다. 이런 일들이 오늘 날 나라마다 도시마다 일어난 다면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말씀하신 ‘땅 끝 선교’는 수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임금과 백성과 짐승들까지 동원한 니느웨 성민들의 회개 운동에 감동하셨다. 그래서는 저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시고 은혜를 내려 주셨다. 남은 문제는 선지자 요나였다. 니느웨 성민들을 용서한 하나님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긴 유일한 인물이 요나였다. 요나는 박넝쿨 그늘 아래 앉아서 온갖 불평을 다 쏟아 놓았다.
요나의 삶을 지켜보노라면 우여곡절 많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러한 것만 같다. 고난과 시련과 온갖 질병과 어려움이 많은 이 세상에서의 하루하루가 차라리 요나가 회개(悔改)를 체험한 큰 물고기의 뱃속이길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신앙관 때문일까. 비록 나중에 다시 박넝쿨 그늘 아래 앉아서 투덜대며 불평을 늘어놓을지라도 말이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