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아 잘 있느냐
북녘이 고향인 실향민들에게는 평양, 대동강, 모란봉, 부벽루, 을밀대 등에 대한 추억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후가 열악한 사막 지역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나 강을 중심으로 문명이 발전하여 왔다. 한강의 길이가 514km인데 북한의 대동강은 길이가 441.5㎞이다. 대동강은 낭림산맥에서 발원하여 평안남도를 굽이쳐 흘러서 서해로 유입된다. 상류지역에서는 마탄강·금천강·장선강·비류강·남강 등의 지류가 합류하여 큰 강을 이룬다. 주변에 드넓은 평야를 끼고 흐르다가 평양을 가로 질러 흐른다. 대동강은 상류의 산지에서 발원하여서 구릉지를 거치고 하류의 평원지대를 흘러 내려간다. 대동강 유역에는 넓고 기름진 평야가 펼쳐 있어 옛적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활 무대였고 시대마다의 역사의 중심지였다. 강줄기를 중심으로 농업이 발전하고 풍부한 내륙 수운을 이용하여 지하자원과 임산 자원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달해 오던 곳이다.
이렇게 자세한 글을 쓰는 자신도 정작은 북한 땅과 평양에 가 본 적이 없다. 남한 땅의 북한산, 속리산, 지리산, 한라산의 수려함이 대단하지만 백두산의 위용과 천지(天池)의 신비 그리고 금강산의 비경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2003년 여름, 중국 한족 교회 봉헌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선교단 일행과 백두산 천지에 오른 적이 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이라고 하지 않고 장백산이라고 한다. 산 아래 조선족 교회에서 밀전병을 굽고 포도주를 준비해 가지고 갔다. 우리 일행이 천지에 도착한 시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림처럼 맑은 날씨에 드넓은 천지가 한 눈에 들어 왔다. 탄성과 함께 곧 이어 평온을 되찾은 일행들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피하여 한 편에 둘려 서서 천지를 내려다보며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성찬식 순서를 가졌다. 얼마 시간이 흐르지 못하여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 천지가 시야에서 사라져 더 이상 분별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북한에서 살다가 온 이들은 압록강보다는 대동강에 대한 추억을 훨씬 더 많이 말한다. 압록강은 925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추억할 때에는 대동강을 말한다. 아마도 그 주변의 풍광의 아름다움이 대동강에 비교할 수는 없는 가 보다. ‘한 많은 대동강’노래의 가사를 쓴 이는 야인초(野人草)이다. 그의 본명은 김봉철(?-1999)이다. 그는 황해도 박연에서 태어났으나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부산에 귀국하여 선박용 스크루를 제작하는 공장을 경영하였다. 일본에서 배운 음반제작 경험을 가지고 레코드 제작에도 관여하였다. 평생 여러 곡의 유행가 가사를 써서 흥행시킨 주인공이다. 그가 쓴 ‘한 많은 대동강’의 가사는 이렇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아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편지 한 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소냐
아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평양은 고구려의 도읍이었다. 그 평양성의 부벽루(浮碧樓)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정으로 꼽힌다고 한다. 흑백사진으로 봐도 운치가 있다.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을밀대(乙密臺)의 운치 또한 백미이다. 사허정(四虛亭)이라고도 하는 을밀대는 북한문화재 사적 제7호이다. 을밀대라는 이름은 옛날에 을밀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에서 생겼다고도 하고, 고구려 때 이곳을 지킨 을밀장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도 전해진다.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평양성의 내성을 쌓으면서 그 북장대로 세운 것으로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171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모란대와 맞선 석루 위에 있어서 평양시내를 바라볼 수 있다. 동쪽은 낭떠러지로 대동강이 한 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현무문이 내려다보인다. 을밀대의 축대는 고구려의 축성술이 남아있는 대로서 그 높이가 약 11m이다. 축대 위에 건립한 누정은 앞면과 옆면에 두 날개 식의 바깥도리두공을 얹고 겹처마의 합각지붕을 이어서 지은 수려한 건축물이다.
김일성(1912-1994)이 평양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해방이 되던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군중대회였다. 그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내각수상직에 있으면서 군사위원회 위원장과 인민군총사령관으로 전쟁을 주도했다. 6. 25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450만 명에 이른다. 그 동안 김정일(1942-2011) 그리고 김정은(1984-)에 이어지는 북한의 삼대 세습 통치는 세계열강의 초미의 관심을 받아 왔으며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핵무기의 개발로 인한 위협은 미국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려 왔다.
수 십 차례의 무장 공비의 출현을 비롯하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 등 지난 날 북한의 공산 정권에 의한 위협과 인명 피해와 전쟁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불안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삼대 세습의 대를 이어 북한 공산당 권력의 제 1인자로 자리 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세계 뉴스의 중심인물이 되어 가고 있다. 그 동안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 날의 변화가 찾아 왔든지 이와 같은 평화와 자유를 향한 변화의 시작이 열매를 맺기 까지 계속되어 가기를 바란다. 그 동안 남북한의 정상들과 군사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서 서명하고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번번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과거와 다른 앞날이 전개되기를 소망한다.
올해 2018년은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0년이 꽉 차는 해이다. 이스라엘은 BC 586년에 바벨론의 침략으로 망하였다. 예루살렘은 점령되었고 솔로몬 성전은 황폐하게 불타고 무너졌다. 바벨론 침략군들은 성전의 금은 집기들을 모조리 휩쓸어 갔고 성전 낭실의 두 놋 기둥까지 다 뽑아 갔다. 그리고 70년 세월이 흘러갔다. BC 537년, 바벨론을 이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유다 백성들에게 조국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였다. 바벨론의 제 1차 예루살렘 침입이 BC 607년이었던 것으로부터 계산하면 70년째 되던 해이다. 성경, 에스라 1장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은 고레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다. 그래서 온 나라에 공포하고 조서를 내렸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스1:2-3)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신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지도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북한 땅의 동족들에게 참다운 평화와 자유와 예배가 회복되는 날, 온 민족이 그 누구나 부벽루와 을밀대에 올라 대동강을 바라다보며 옛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