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에서 며칠을.......
지난주일 예배 후 병원 심방 등을 마치고 밤늦게야 강릉을 향하였다. 목적지는 화진포였으나 길이 멀어서였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려고 횡성 휴게소에 둘러서 잠시 쉰다는 것이 한 시간 쯤 곤히 잠들어 버렸다. 새벽 두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야 강릉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좀 쉰다는 것이 운전하고 다녀야 하는 부담까지를 피할 수는 없으니 어찌하랴.
다음 날 낮에는 동해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 두 가정을 강릉에서 만나 참으로 오랜 만에 점심도 같이 하고 저녁 식사도 함께 하였다. 목사들끼리 둘려 앉으면 화제가 늘 거기서 거기다. 그런 화제 중의 하나는 “왜 그렇게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사람이 변하질 않고 거듭나질 못할까.”라는 주제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대화에는 늘‘오늘 날 우리들의 사역 현장을 주께서 어떻게 보실까.’하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 고성군(高城郡)은 경상남도와 강원도, 두 곳이다. 강원도 고성군은 우리나라 남한의 최동북단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휴전선으로 가로 막혀 있으나 통일전망대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금강산에도 갈 수 있다. 과거에 이승만과 이기붕과 김일성이 그 곳을 별장 지역으로 정하였으니 화진포를 중심으로 한 고성군의 아름다움은 더 설명할 나위가 없다. 김일성의 별장이 그 곳에 있는 이유는 그 곳이 6. 25이전에는 북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별장으로 사용할 건물을 직접 지은 것은 아니다. 1937년, 일본은 중일전쟁을 위해 원산 지역에 비행장 부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하다 보니 그 곳에 정착하여 한국 선교를 맡아 섬기던 선교사들의 휴양처를 사백리 남쪽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화진포에 도착한 셔우드 홀(Sherwood Hall) 선교사는 나치 정권의 히틀러를 피해서 망명해 와서 있던 독일 건축가 베버(H. Weber)에게 의뢰하여 그 곳 해변의 암벽 꼭대기에 예배당을 겸한 작은 별장을 짓도록 의뢰하였다. 베버는 1938년, 둥글둥글한 자연석을 쌓아 올린 원형의 이층 건물을 완공하였다. ‘화진포의 성(城)’이라고 불리는 그 건물은 바다, 암벽, 소나무 숲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일성은 1948년 여름에 아내인 김정숙과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남매와 함께 그 곳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김일성 별장이라고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고성의 화진포는 태백산맥과 동해안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다른 지역보다 덜 춥고 여름에는 덜 더운 곳이다. 과거에 두 어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유적지만 둘러보고 사진 몇 장 찍고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하고 돌아 온 곳이라 늘 여유 있게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지역 중의 한 곳이다. 세계 처처에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우리나라의 자연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의 산과 바다와 강과 들과 야생화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구비 구비 하늘로 치 솟은 높은 산봉우리들도 아름답지만 그 능선과 계곡의 아름다움은 비경(秘境)이다.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또 다른 운치가 있어서 더욱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표현 말고는 더 이상 딱히 설명할 말이 궁한 것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아닐까. 서해안에는 태안 지역과 안면도의 소나무가 아름답고 그 은은한 솔잎 향이 그윽하다. 다른 곳에서 보기 드믄 적송(赤松)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강릉의 소나무가 아름답다지만 고성에 비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말이 있다지만 강원도 고성의 자연은 그 어디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으리만큼 참으로 아름답다.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 강화도도 아름답지만 서해의 아름다움과 동해의 아름다움을 비교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둘레가 16km인 화진포의 석호(潟湖)는 바닷가에 사주(沙柱)가 늘어나게 되면서 만(灣)이 바다에서 분리됨으로써 생긴 호수인데 그 규모나 아름다움이 가히 세계적이다.
그런 아름다운 곳에서 여름휴가를 즐길 줄 알던 김일성의 3대 세습은 자기들의 배만 채우며 지난 70년 동안 북한 땅을 피폐한 산야와 가난을 대 물림하는 백성들로 가득한 세상으로 방치하고 말았다. 잘 사는 것만이 대답은 아니라지만 최소한 사람답게 살아가는 인권이 보장되고 평화와 자유가 주어지는 땅에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늘을 나는 새들도 창공을 마음껏 날고 바다의 물고기들도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오는데 말이다.
지난 날 바사의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 땅에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노인들과 그 후손들 중에 살아남은 자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오는 회복의 날이 있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 온 스룹바벨은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 갈 수 있었던 동족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지었다. 예배의 회복. 이것은 하나님의 기대이다. 부디 남북 회담에 이어지는 미국과 북한 간의 정상회담에 열매가 맺혀서 북녘 땅에도 신앙의 자유가 회복되고 처처에 무너졌던 예배당이 복원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소망이 가득하다.
평화를 누리기는 쉽지만 일단 한번 평화를 빼앗기고 나면 그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다보시며 우신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눅19:42-44)
오늘 날 미국과 세계의 기독교 보수층에서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바사의 고레스에 비유하고는 한다. 그도 하나님이 쓰시는 시대적인 인물이 분명하다면 제발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에스라 6장에 보면, 어느 날 고레스 왕은 입을 열어 유대 백성들의 예루살렘 귀환과 성전 재건축, 하나님 제사 재개, 무한대한 감세 혜택 등을 명령하였다. 꿈만 같은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현실로 다가 온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바뀌는 것이다. 1990년 10월 3일, 동서를 가로 막던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통일의 순간이 왔던 것처럼 이 땅에도 그런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감상적인 성급한 소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