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성령
‘취객은 왕 경찰은 봉’이라는 뉴스와 해설이 있었다. 우리는 “한국 사람들은 과음 혹은 폭음 문화에 젖어 있는 인구가 적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금번에 언론에서 다룬 통계 자료에 의하면 파출소나 지구대의 일선 경찰들의 업무 중에서 26. 6%가 음주 자들을 단속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술에 만취한 시민들이 경찰서나 파출소에 들어오거나 끌려 와서도 욕설이나 폭언이나 난동을 부리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파출소 안에서 소변을 보는 이들도 있을 지경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찰의 멱살을 잡거나 경찰서 안의 집기를 부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2008년 10월에 전남 강진군의 황주홍 군수는 ‘오후 6시 이후가 선진화 돼야 한다.’는 칼럼을 언론에 기고하였다. 학자 출신 군수답게 그가 주장하는 논리는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이웃 나라인 일본과 비교하여 노벨상 수상 경쟁에서 밀리는 이유는 저녁 6시 이후의 밤 문화의 차이라는 것이다. 해만 떨어지면 음주와 성적 타락의 환락가로 변하는 도시의 밤 문화가 변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모임은 친목 모임과 접대 모임의 두 가지로 구별된다. 친목 모임의 특징은 대개가 과거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동향 중심, 동창 중심의 친목 모임이 바로 그러하다. 또 하나는 청탁을 목적으로 하는 접대성 모임이다. 이 모든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다. 황 군수는 “밥 먹고 술 먹고 1차 가고 2차 가고, 노래방 가고 찜질방 가고, 폭탄주 마시고 건배하고…… 공무원이건, 직장인이건, 사업가건, 교수건, 법조인이건, 예술인이건 예외가 없다. 찾아다녀야 할 모임이 너무 많고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진짜 일'을 할 시간이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라고 지적한다.
2007년 법인카드 사용액 중 일반음식점 사용액이 5조 1116억 원이었으며, 그 중에서 1조 5904억 원이 룸살롱 같은 호화 유흥업소에서 사용됐다는 통계 자료가 이 같은 우리나라의 밤 문화를 입증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대학 입학생 환영식에서의 폭주를 강요하는 선배들에 의하여 죽어 나가는 신입생이 생길 정도이니 말이다. 유엔이 통계한 세계 독서 인구 비교 연구에 따르면 192개 대상 국가 중에서 남한은 166위였다. 도대체 책을 더 이상 읽으려 하지 않는다. 대학생이든 사회인이든 연구하고 노력하고 힘을 쏟는 학습량의 비교에서 상대적으로 경쟁에 뒤지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처럼 잘 살게 된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요 돕는 손길에 의한 은혜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오늘 날 잘 사는 것이 상책이 아니라 바르게 살아가는 문화가 정착되고 발전되어 가야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평균 IQ가 가장 높다. 똑똑하고 영리하고 탁월하고 뛰어난 것도 좋지만 건전하고 올바른 시민 문화를 꽃피워가는 선진 문화 국민으로 발전해 갈수 있으면 좋겠다. 가난과 압제 속에서 지난 20 세기를 살아 온 우리나라는 ‘큰 것, 많은 것, 새것은 좋은 것’이라는 식의 비교 우월 문화에 젖어서 서로가 타락하고 피폐한 질병에 걸려 있다. 사람은 무엇에 취하여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장래가 결정된다.
주후 1세기의 대 석학이요 기독교 선교의 획을 그었던 탁월한 인물인 사도 바울은 에베소 도시에 살아가던 이들에게 편지한 글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고 분부하였다. 술에 취하는 경험 때문에 망신을 당한 성경의 인물 중의 대표는 노아이다. 하나님이 이 땅의 인생들을 홍수 심판으로 휩쓸어 가실 때에 그 위기를 뛰어 넘고 여덟 명의 가족 모두가 방수 생활을 통해서 살아남는 시대적인 구원을 경험한 노아였다. 그러나 그는 홍수 시대 이후에 농사하였던 포도로 포도주를 담가 마시고 잔뜩 취한 채 하체조차 가리지 못한 상태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둘째 아들인 ‘함’이 아버지 노아의 부끄럽게 잠이 든 모습을 보았다. 술에 취하면 인생은 그 누구라도 실수하게 되어 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에 두 딸과 함께 산으로 피신하였던 롯은 동굴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가족의 대가 끊긴 것을 안타깝게 여긴 두 딸들은 아버지 롯에게 술을 대접하고 아버지와 동침하여 차례대로 아들을 낳았다. 큰 딸이 낳은 아들이 모압이고 작은 딸이 낳은 아들이 벤암미다. 모압은 오늘 날 모압 족속의 선조가 되었고 벤암미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이 같은 패륜적인 근친상간의 죄가 가능했던 것은 ‘술’이었다. 술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육체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으로 끌려가도록 노예화 하는 절대적인 힘이 있다.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는 발전시켰던 과거의 한 통치자는 서해안 간척지의 지도가 바뀌는 국토개발의 현장을 둘러보고 상경한 그 밤에 술상 앞에서 맞은편에 앉은 부하가 쏜 권총 한 발에 술상에 피를 쏟고 쓰러지고 말았다.
잠언에 보면,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잠23:31-32)라고 했다. 술은 시대적인 타락과 부패의 상징이다. 춘향전에 보면 이몽룡이 당시의 시대 상황과 변 사또의 타락을 고발한 이런 시를 읊는다.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금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고 촉루낙시민루락 가성고처 원성고)
라고 했다. “황금동이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 위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더라.”는 뜻이다.
이천년 기독교 역사에 길이 빛나는 성(聖) 어거스틴(Saint Augustine, 354-430)도 한 때는 타락의 늪에서 헤매던 청년 시절이 있었다. 그를 그 같은 타락의 길에서 건저 낸 것은 말씀의 힘이었다. 그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들을 낳을 때의 나이가 열여덟 살이었다. 그러나 그는 카르타게에서 지내는 동안에 수사학, 문학, 음악, 수학, 희랍과 로마의 철학에 이미 능통해 있었다. 뛰어난 지력을 가졌으나 마니교에 빠져 지내며 탁월한 수사학을 바탕으로 후학들을 가르치던 그를 변화 시킨 것은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였다. 때를 같이하여 그가 친구인 알리피우스와 함께 정원을 걷고 있던 어느 날 “네 옆에 있는 성경을 펼쳐서 읽어라”는 어린애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때에 펼쳐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는 성경 말씀들이 전광석화처럼 그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거스틴이 32살이 되던 주후 386년의 일이다. 이와 같은 경험 이후에 변화의 삶을 살아가던 그의 작품이 <참회록>(The Confessions of Saint Augustine)이다. 술과 성령! 그 중의 무엇에 취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이지만 그 같은 삶의 결과와 열매는 심은 대로 거두는 보상이며 자연의 법칙이다.
(위 칼럼은 2010년 5월 16일에 쓴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