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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있는 사람(시146:1-10) 20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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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9-29 09:26 조회 4 댓글 0
 

                     복이 있는 사람(시146:1-10)              2025. 9. 28

 

 

어젯 밤에 여의도 한강 공원과 그 일대에서 ‘서울 세계불꽃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거리가 가깝지 않은 은평구에서도 전쟁이 난 것처럼 밤이 깊도록 꽝꽝거리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중국 사람들은 한해 용돈 중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폭죽을 구입하고 폭죽을 쏘아대며 새해 소원을 기원하는 것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요란한 불꽃놀이와 함께 폭죽을 쏘아대면 정말 복이 임하게 되는걸까. 신내에 다나다 보면 어떤 할아버지는 빨강색 바지에 빨강색 구두를 신고 다니는 분을 보게 된다. 아마도 빨강색 옷을 입어야 건강에 좋고 집안에 복이 들어 온다는 신념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은 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상 사람들의 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동양에서는 오복(五福)을 강조하였다.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이 그것이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 물질의 풍요 가운데 가족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질병과 사고 없이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도덕과 윤리적으로 원만하게 살아가며 이웃에게 신뢰를 얻고 존경받는 것 그리고 자손이 번성하며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복 중의 복이라고 여겨왔다. 맞다. 다섯 가지 내용이 다 좋고 다 복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경배하고 찬송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가 복이 있는자 라고 하였다. 신체적으로는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맡는 기능의 건강 뿐만 아니라 치아가 건강하고 소화력이 좋고 팔다리가 건강한 것이 복 중의 복이다. 

 

우리는 시편 1편에서 말씀하는 “복이 있는 사람”에 관한 내용을 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시편 146편 5절에 보면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세상적인 기준으로야 이러저러한 복을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이 추구하는 복은 이러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려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내게 주어진 건강과 능력을 가지고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면 그만이지 무슨 하나님 운운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아마도 대개의 세상사람들이 거의 다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한다. 미신에 사로잡혀서 산다. 무속 신앙에 깊이 빠져 있는 이들도 있다.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의외로 어리석은 하등 종교와 무속 신앙에 얽매여서 살아가는 이들이 지구촌에 넘쳐 난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고 믿고 따르고 경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일인가.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려는 것이라”(요15:16)라고 말씀하셨다. 시편 146편에서 교훈하는 복이 있는 사람의 모습에 대하여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

찬송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송축하는 것이 찬송인데 세상의 그 누가 감히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겠는가. 찬송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이다. 하나님이 내 영혼의 구원주이시며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우리 각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이 창조의 사실을 깨달아 알고 믿는 이들만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지키시고 도우시며 위로하시고 지혜 주시며 용기를 주시고 격려해 주시며 힘을 주시고 은혜 주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따르며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렇게 둘러 앉아 함께 예배할지라도 이러한 찬송의 이유가 자신의 체험적인 고백으로 이어지지 않는 그 누구라면 결국은 입 속으로 우물우물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부르는 찬송의 사람으로 살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시편 146편의 기록자는“내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146:2)라고 하였다. 여기서 ‘생전에’라는 고백은 ‘내가 숨 쉬는 동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이란 뜻이다. 시편 71편에 보면,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71:6)라고 하였다.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시71:8)라는 고백도 하였다. 

 

생각하여 보라. 모태 신앙이란 그런 것이다. 어머니의 복 중에 잉태되어 태교를 받으며 복중에서 성장하는 때로부터 시작해서 이 땅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날마다 순간마다의 삶이 주를 찬송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모태 신앙 다시 시작하기>라는 10월 추천 도서의 내용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교회에 오래 다닌 것, 교회 봉사 많이 한 것, 목사 장로 권사의 자녀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 그런 것을 모태 신앙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는 것이다. 책의 저자는 질문한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 기준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만약 나에게 믿음이 없다면 나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질문과 고민의 대답을 찾아가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못해 신앙이 되어 버렸다고 자기 자신을 자책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묵은김치 반찬을 먹었다. 희한한 맛이다. 세월 지난 묵은김치의 양념을 적당히 씻어 내고 푹 익혔을 뿐인데 생김치 때는 맛 볼 수 없는 전혀 새롭고 희안한 맛을 내는 것이 묵은김치찜의 맛이다. 맞다. 그렇다. 우리들 중에도 난 모태 신앙이긴 하지만 세월만 많이 가고 그냥 그래 그러지 말고 묵은김치의 알싸한 새로운 맛처럼 새 힘을 얻고 새 은혜를 받아서 새롭게 주님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주인공의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신앙생활이란 찬송 생활이다. 신앙생활의 바탕은 찬송과 찬양의 생활이다. 찬송과 찬양의 활력이 떨어졌다면 스스로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 보아야 한다. 내가 과연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증거가 무엇인가 하고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찬송 생활이여야 한다. 오늘 시편 146편의 주인공은 숨을 쉬는 동안, 살아 있는 동안에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확인해 보아라. 나는 과연 하루에 무슨 찬송을 부르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가.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아가기도 이렇게 바쁜데 찬송은 무슨 찬송을 부르며 살아가란 말인가. 그렇게 반문하게 되는가. 찬송의 바탕은 주를 의지하는 것이다. 찬송의 중심을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찬송의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시편 146편의 기록자는 분명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3절에 보니까, 귀인을 의지하고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려 해서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질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나. 성공 못해도 좋고 출세 못해도 좋으니 나 보다 높은 것 같은 권력자의 곁에 다가 가서 손 비비고 나에게 도움을 될 것 같은 권세자의 곁에 다가 가서 굽신거리는 식으로 살아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자,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찬송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없는 법이다.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의 여섯 편을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한다. ‘할렐루야’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인간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칭송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비하게 하는 최고의 표현이 ‘할렐루야’이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바사 제국의 아닥사스다 왕이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길 원하면 유대 민족을 박해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꿈을 방해하고 막으려 할 때에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찬양하는 신앙의 고백을 담은 시편이 바로 시편 146편이다. 호흡이 끊기면 흙으로 돌아갈 연약한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지 않나. 가령 찬양의 사람 다윗이 사울 임금의 비유나 맞추려 하고 사울왕의 측근들의 환심을 사는 방법으로 살아남을 길을 찾으려 했다면 그가 장차 왕이 되기는커녕 창피하고 초라한 운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잊혀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대로 다윗은 달랐다. 시편 21편에 보면 다윗은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시21:13)라고 고백하였다.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시21:1)라고 하였다. 시편 18편 3절에 보면,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하였다. 다윗은 여호와를 힘의 근원으로 삼고 여호와를 사랑하던 찬송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반석, 요새,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라고 고백하였다. 다윗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건지시는 분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다윗은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성전에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셨다”(시18:6)라고 간증하고 있다. 

 

그렇다. 다윗은 그의 부르짖음이 찬송이고 그의 호흡이 곧 찬송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의 기도와 풍성한 찬송의 삶을 평생토록 살아간 믿음의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그러하여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환경 가운데 처할지라도 하나님만을 찬송하고 경배하고 높이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의 장부들이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는 사람.

그냥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마치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표현과 같은 내용이다. 우리는 창세기의 야곱의 누군지를 안다. 우리는 야곱이 우여곡절 많은 생을 살아가면서 점점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점점 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점점 더 하나님을 경배하는 하나님 중심의 인생으로 다듬어져 간 것을 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인 그 땅의 추장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겁간하였다. 사랑하는 외동딸 디나가 부끄러운 일을 당한 이후에 하나님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라.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창35:1)라고 구체적으로 갈 길을 인도하시며 할 일을 명하셨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 가운데 점점 새롭게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과 이끄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믿음의 사람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실수도 있고 실패도 있고 상상할 수 없는 환난도 겪게 된다. 야곱이 그랬다. 야곱은 나중에 바로 왕 앞에서 말한대로 험악한 세월을 살아갔다. 그런 그의 생애 중에 하나님은 그 때 그 때마다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그 뿐만 아니라 그에게 환난 날에 응답하시고 그의 가는 길에 매 순간마다 함께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야곱은 지체 하지 않았다. 가족과 따르는 모든 종들에게 명령하였다. 이방 신상을 버려라. 자신을 정결하게 해라. 의복을 새것으로 바꾸어 입어라. 그리고 말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창35:3) 그곳은 루스였다. 지난 날 고향 땅을 떠나 하룻 길을 달려 가서 밤을 맞았고 돌을 베게 삼고 누웠던 그 곳에었다. 야곱 자신이 그 곳 지명을 벧엘이라고 지어 불렀던 그곳이었다. 야곱은 그의 가족과 따르는 종들과 함께 정성을 다하여 그 곳 벧엘에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엘벧엘’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집에 계신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렇다. 맞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하나님의 집에 임재 하신다. 이 곳, 예배당이 우리 각 사람에게 ‘엘벧엘’이 되길 바란다. 

 

날 만나라 날 만나라 그룹 날개 사이에서 날 만나라

주 경배해 주 경배해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경배해

주 만나리 주 만나리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만나리

 

라고 찬양하지 않나.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경배할 때에 하나님은 그의 발길을 밧단아람으로 인도하셨다. 그 곳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그리고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창35:11-12) 이 말씀을 하신 하나님이 야곱의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 가셨다. 야곱은 다시 그 곳에 돌기둥을 세웠다. 그리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를 만나 말씀하신 그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다. 벧엘신앙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도우시는 하나님 지키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경배 받으시는 하나님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또 예배하며 찬송하고 또  찬송하는 신앙이 벧엘신앙이 아닌가. 

 

벌써 9월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며칠 후면 10월을 맞이하게 된다. 올 해도 석달 밖에 남지 않았다. 10월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추운 날씨가 찾아올 것이다. 긴긴 겨울을 맞으며 새해를 맞을 것이다. 시간과 세월 앞에 부끄럽지 않은 생을 살아가자. 젊은이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젊은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하루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자.

 

그리고 나의 곁에 다가 오셔서 우리 각 사람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아가자. 3절 말씀처럼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우심으로 삼으며 살아가자. 민수기 6장 24절이하에 나오는 아론의 축복 기도 내용이 무엇인가.

 

복을 주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비추셔서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나에게 향하여 드시고 평강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146편 6절 이하에 보면,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는 하나님

억눌린 사람을 정의로 돌보시는 하나님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

앞 못 보는 이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시는 하나님

비굴한 자들을 돌보아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

의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그네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고아와 남편 잃은 여인들을 붙드시는 하나님

악인들의 길을 굽게 하셔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야곱처럼 요셉처럼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다윗처럼 분명하게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승리의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사람.

과연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인가. 그 또 한 가지는 5절의 말씀처럼“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그렇지 않나. 이 땅에 영원한 소망이 있는가. 완전한 소망이 있는가. 만족스러운 소망이 있는가. 이 땅에 그런 소망이란 없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과 온 땅을 영원히 다스리시며 대대로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케데헌 에니메이션을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내용이 뭔지는 살펴 보았다. 케데헌은 케이팝과 데몬 헌터스 즉 악령을 내어 쫓는 ‘퇴마사’인 악령 사냥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독특한 설정으로 결합된 작품이다. 거기에는 단순히 경쾌한 음악이나 액션 넘어에 한국 전통 무속 신앙과 민속적인 요소들을 섞어서 담아낸 독득한 세계관을 보여 준다. 주제가인‘골든’은 끝까지 들어 보았다. 그 가사의 내용도 살펴 보았다.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 맞다. 케데헌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케데헌 덕분에 김이 동나고 김밥이 동나고 라면이 동나고 있다. K-컬쳐와 K- 푸드와 K- 에브리씽의 세상이 펼쳐 지는 듯하다. 그래도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둘 줄 아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각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삶의 근본이요 하나님이 삶의 대답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민족은 불행해 진다. 하나님을 찾는 민족은 융성해진다. 이는 개인도 마찬가지이고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밖에서 잘되는 것은 결코 잘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줄 아는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복이 있는 것이다. 찬송가 1장의 가사를 보라.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온 백성은 하나님만 찬송하여야 한다. 천사라도 하나님만 찬송하여야 한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 영원히 찬송과 영광과 경배를 돌려 보내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상숭배하고 이단과 사이비의 교주에게 넘석 거리면 때가 되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버리는 불행한 순간이 찾아 오고 말 것이다. 이 땅에 영원한 소망이신 분은 오직 한 분 뿐이시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경배와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돌려 보내는 삶을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래야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 그래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호흡이 멈추면 흙으로 돌아갈 인생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웃으신다. 귀인을 의지하려 하고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려고 넘석거리면 하나님이 비웃으신다. 시편 2편 4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라고 하였다. 시편 2편 11-12절에 보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으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

 

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입맞추고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이 복이 있는 인생이다. 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e, 1865-1949)는 1887년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켈리와 결혼하였다. YMCA 후원으로 1890년 9월 한국에 와서 제중원에서 일하기 사작한 의사 선교사였다. 1892년 원산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899년에 개성에 남도병원을 설립하였다. 이후 강원도 지역 선교와 세브란스 병원 의료 선교 현장에서 일하며 감리교 신학교의 모태인 협성신학교 교장으로 여러해를 섬겼다. 한국에서 10살 차이로 태어난 두 딸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로버트 하디는 원산 지역 선교 현장에서 영적 체험을 깊게 하였다. 그곳의 선교 상황은 침체 상태였다. 지역을 돌아 보던 중에 알았다. 교인들은 주일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았고 성적으로 방종했다. 공금을 횡령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심지어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에서 무당굿을 하려고까지 했다. 하디는 이런 이들에게 성찬을 금하고 교적부에서 제명하기도 했다. 그는 앞장 서서 기도하였고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1903년 원산 부흥, 1907년 평양 대 부흥의 불씨가 되었다. 

 

네팔 신학교와 태국 치앙마이 선교 센터의 사역을 후원하는 선교회 후원 교회 모임을 위해서 강릉에 다녀 왔다. 강릉 반석 교회의 부흥의 현장을 보았다. 밤 늦게 까지 선교 현장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포대 호수를 앞에 두고 강릉중앙감리교회가 그 곁의 솔밭 언덕에 웅정하게 자리잡고 있다. 1901년 5월 24일,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강릉 명주동 명주성의 허름한 초가집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124년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복음에는 힘이 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신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법이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이 영원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결실의 계절에 여호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오직 여호와만을 경외하며 섬기며 경배하며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각 사람, 각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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