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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사1:10-20) 202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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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8-10 21:43 조회 4 댓글 0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사1:10-20)       2025. 8. 10

 

 

오늘 본문은 영적이고 도덕적인 죄에 대한 책망과 구체적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지 말로만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는 식의 죄의 고백에 멈추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악행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진정한 회개인 것이다. 

 

이사야는 남 유다의 제10대 임금이었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의 때에 이르도록 긴긴 세월 동안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파하였다. ‘예사야후’라는 이름인 ‘이사야’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이름의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남 유다의 예루살렘이 당할 장차의 운명에 대하여 예언하게 하셨다. 마치도 요즘 날마다 대하고 있는 에스겔의 말씀과 같다. 그러나 이사야는 에스겔보다 100년 이상 훨씬 오래 전 시대에 부름을 받았던 선지자이다. 무슨 말인가. 이미 남 유다 조차도 북 왕국 이스라엘과 같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일찍부터 그 부패상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이사야 1장 2절부터 온갖 책망으로 이어진다. 1장 2절을 보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3절에 보니까 짐승만도 못한 백성이라고 책망하였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을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책망은 그 수위를 점점 더하고 있다. 4절에 보니까 “범죄한 나라, 허물진 백성, 행악의 종자,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다고 책망하시고 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내용에 보면 10절에서 15절 까지에서 마치도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이 소돔과 고모라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다. 월삭과 안식일과 절기에 드리는 제물들이 마음이 떠난 거짓 제물이라는 것이다. 12절 끝에 보니까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라고 책망하였다. 하나님은 마음에 없이 드리는 양과 송아지와 염소의 번제와 피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나. 마음이 담긴 예배요 정성이 담긴 예물이 아니라면 그 예배는 실패한 예배이다.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면 형식에 사로잡히고 습관에 매여서 예배당의 마당만 밟는 예배가 되고 만다.

한국인 노인 30명이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호화로운 크루즈 위에서 가이드가 물었다. “누가 보내 주셔서 오셨어요” 28명이 손을 번쩍 들면서 “딸이”라고 대답하였다. 가이드가 다시 물었다.“그러면 나머지 두 분은 누가 보내 주셔서 오셨어요”“사위요”효도 여행이 좋지만 기쁨으로 정성으로 섬기는 섬김이 아니고 마지 못해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라면 누가 그런 효도를 기뻐하겠나. 

 

하나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다. 너희가 월삭과 정한 절기를 지킬지라도 내가 싫어하리라고 하셨다. 15절의 손을 편다는 말은 기도한다는 뜻이다.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이 눈을 가리시겠다고 하셨다.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몹시 화가 나신 상태이다. 손에 피가 가득하다는 말은 온갖 비윤리적인 모든 행태를 총 망라해서 지적하신 경고의 말씀이다. 유다 백성들의 온갖 비도덕적인 행태가 하나님과 나의 사이를 갈라 놓았다는 지적이다. 

 

과거나 오늘날이다 마찬가지이다. 내용이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예배라면 그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 깨끗하게 하라

16절의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성막과 성전에는 물두멍 즉 바다가 있었다. 그 안에는 항상 맑은 물이 가득하였다. 제사와 준비와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물이었다. 물의 사용 목적은 깨끗하게 씻는 것이다. 제사장도 씻고 레위 사람도 씻고 제물도 씻는 것이다. 물로 씻고 불로 태우는 것이 제사의 근본이다. 죄를 씻고 죄를 태우는 상징이 담겨진 제사법이다. 

 

그렇지 않나. 우리의 하루 생활 중에 물이 얼마나 소중한가. 만약에 하루 종일 물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나. 우리가 개인 집에 살든지 아파트나 연립 주택에 살든지 수돗물의 공급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내 생활 공간에 하루 24시간 물 공급이 중단된다고 상상해 보라. 주방을 사용할 수가 있겠는가. 화장실을 사용할 수가 있겠는가. 물 공급이 멈추는 순간 모든 생활이 멈추고 만다. 주방, 세탁기, 화장실 사용 등등 그 모든 것이 중단되고 만다. 물은 씻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는 물로 씻고 불로 태우는 것이 제사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저들의 제사가 마음이 떠난 형식에 그치고 말았다. 하나님은 그런 저들의 마음이 떠나고 형식만 남은 제사에 대하여 신랄하게 책망하고 계신 것이다. 13절에 보니까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라”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남유다 민족과 예루살렘 성민에게 회개와 변화를 촉구하신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라”

 

제사를 위해서 형식적으로 손발을 씻는 행위 말고 생각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라고 도전을 하신 것이다. 출애굽기 29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라고 하였다.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으로서 몸을 먼저 물로 씻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제사장이든 백성이든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생각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라고 분부하셨다. 발을 씻는 행위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가. 우리는 어린이 주일에 어린이들을 앞에 나오게 하고 예배 시간에 저들의 손을 씻어 주는 예식을 여러 차례 행한 바 있다. 그렇게 하는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가. 세상의 죄와 악으로부터 스스로 손을 깨끗하게 지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라는 초청이 아닌가. 

 

우리는 고난 주간에 세족식을 대신해서 서로의 손을 씻어 주는 의식을 행한바 있다. 손을 맑은 물로 씻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나. 이처럼 죄와 악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 각 사람은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주 안에서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는 노력을 계속하여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죄와 악이 점점 심각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광복절 대통령 특사 명단에 들기만을 고대하지 말고 하나님 보시기에 스스로 깨끗한 신앙 양심을 생명처럼 소중히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행을 배우고 정의를 구하라

제사와 예배도 소중하지만 평소에 선한 행실과 정의를 실천하라고 강조하신 것이다. 선행을 배우라고 하셨다. 여기서 배운다는 단어는 “부지런히 훈련을 받는다”라는 뜻이다. 세계에 유명한 축구 선수가 많다. 그 중에 손흥민은 단연 돋 보인다. 손흥민의 아버지는 아들 흥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양발을 모두 다 자유롭게 사용하는 축구 훈련을 받게 하였다고 한다. 훈련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부지런히 훈련하면 위대해 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선한 행실을 훈련하는 것은 복된 것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선행상’이란 것이 있다. 선행은 어려서부터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선행은 어려서만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편법과 요령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않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만 하면 다고 성공만 하면 다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만 하면 다고 돈만 많이 벌면 다라는 식으로 살면 않된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차명 계좌로 주식 투자나 하고 앉아 있는 식으로는 인생이 오래 가지 못한다.

 

8. 15 광복절은 누군가에게 주어진 절대 권력의 힘으로 역사의 분명한 죄인들을 특별 사면하기 위해서 주어진 그런 허접한 국경일이 아니다. 광복절은 모처럼 주어진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자기 편에 속한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감형 시켜 주고 특별 사면시켜 주라고 정한 날이 아니다.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절은 얼마나 많은 순국 선열들이 목숨을 바쳐 가면서 대한 독립과 광복의 날을 꿈 꾸며 생명을 바쳐 가며 바라고 꿈 꾸던 날인가.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조선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3발의 총격으로 저격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의 하얼빈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안중근은 의장대 사열을 마치고 환영 군중에게 향하는 동북아시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다. 그는 거사 후에 현장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다음 해인 1910년 2월 14일 뤼순 감옥으로 옮겨져서 관동도독부 지방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일본제국주의 일본인 판사, 변호인 입회하에 사형선고를 받고 한 달 후인 1910년 3월 26일, 31살에 순국하였다. 아들이 거사를 마치고 붙잡혀 옥에 갇힌 소식을 들은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쓴 편지가 역사에 전해 진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은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아들 안중근이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의 일부도 읽어 보자.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 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편안히 하옵기를 천만번 바라올 뿐입니다. 큰 아들 분도는 장차 신부가 되게 하여 주시길 희망하오며, 후일에도 잊지 마시옵고 천주께 바치도록 키워주십시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마음과 정성이 떠나가 버린 제사를 멈추고 선행을 배우고 정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공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관원들에게 “불의를 버리고 올바르게 판결하라”고 촉구하신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 불법하게 권력 나누어 먹기만 계속하지 말고,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라

고아를 보호하라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라고 명하셨다. 사도 바울은“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6:18)라고 교훈하였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너그러움을 이렇게 말씀하셨다.<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다.“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될 것이며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처럼 될 것이다.”(사1:18)

 

그렇다. 죄를 용서하시고 허물을 가리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선행을 부지런히 훈련하며 정의를 구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기대하신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그 누구나 다 각 사람이 날마다 매순간마다 불의와 악과 거짓을 멀리하고 정의와 선과 진실을 추구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배답게 예배드리고 세상에 나가서 예배자 답게 살아가자. 앞장 서서 선행을 실천하고 앞장서서 공의를 실천하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만한 생각과 말과 행실을 지키며 살아가자. 사회적인 약자들을 보듬고 나보다 약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마음을 담이 선행을 하며 살아가자. 나보다 힘이 있는 자 앞에서 비굴하게 굽신거리지 말고 나보다 연약한 이웃의 불쌍한 삶을 외면하지 말고 다가가서 손 내밀자.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며 살아가자.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떠 주고 떡 한 덩이 건네주고 옷 한 벌 챙겨 주고 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가 주고 병이 들었을 때에 돌보아 준 것이 곧 예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선행과 정의는 생각에 멈추고 말 구호가 아니다. 손과 발로 실천해야 하는 주님의 분부이며 명령이다. 선을 행하고 정의를 실천하자.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신다. 그래야 하나님이 선대하신다. 그러나 이사야 1장 5절에 보니까 이사야 선지자 그 당시의 남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과 관원들과 제사장들의 실상은 그렇지를 못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다”라고 경고하며 책망하셨다. 

 

남들처럼 높이 되고 성공 출세 못할지라도 그 누구라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선한 행실과 정의를 구하는데 앞장서는 하나님의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인생의 저울을 속이지 말고 인생의 잣대를 속이지 말고 진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세상도 알아주고 주님도 기억해 주시는 복된 날이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즐겁게 순종하라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라고 하였다. 1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라고 하였다. 20절 끝에 보니까“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라고 하였다. 

2절에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라고 하였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하는가. 19절에 보니까,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할 것이요”라고 약속해 주셨다. 20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라고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순종이 대답이다. 순종이 복을 받는 길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천명>(天命) 편에서도 말했다. “순천자흥 역천자망”(順天者興 逆天者亡) 이라고 교훈하였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맹자의 정치사상서인 <맹자> 이루 편에 나오는 교훈이다. 맹자의 이 문장은 고려 때 이후 초학자의 입문서였던 <명심보감>에 수록되어 널리 알려졌다.

 

자연의 이치에도 순종해야 매사가 잘된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에 거슬려 살면서 잘되고 흥하고 번성하길 원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이사야 1장 28절에 보면,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라고 경고하였다. 23절에도 보니까,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무를 사랑하며”라고 책망하였다. 21절에 보니까, 신실하던 예루살렘에 창기같이 되었고 정의와 공의가 가득하던 성읍이 이제는 살인자의 소굴이 되었다고 꾸짖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할 때에 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신명기 28장의 말씀을 기억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잘되고 번영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28:1)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신28:15)

 

신명기 30장 19절 이하에 보면,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는 나의 선택의 몫이라고 하셨다. 생명과 복을 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의지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듣고 깨달아 알게 된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평생토록 주를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요 선행과 공의의 실천자가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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