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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때에(렘33:14-16) 20241201 대강절 첫째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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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12-01 21:00 조회 412 댓글 0
 

                          그 날 그 때에(렘33:14-16)           2024. 12. 1  대강절 첫째 주일

                                                     

 

 

오늘 읽은 본문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왕국(The Kingdom of Messiah)에 대한 예언의 말씀 중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주전 600여년 전에 예레미야를 통해서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탄생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예레미야 30-33장은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는 소위 ‘위로의 책’(The Book of Consolation)이라고 불리는 말씀을 담고 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던 때에 주신 말씀이다. 예레미야 33장 1절의 말씀은 그 당시의 상황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에 있었음을 알게 하는 장면이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의 가장 극악했던 왕 므낫세 때에 태어났다. 그의 고향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5km정도 거리였다. 그의 아버지 힐기야는 제사장 출신이었다. 예레미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높이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반대로 ‘여호와께서 던지신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앞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회복이라면 뒤의 이름이 뜻하는 바는 심판이다. 

 

그가 20여세의 청년기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에는 므낫세의 아들 요시야 왕의 때였다. 요시야 왕은 아버지 므낫세와는 다르게 하나님을 잘 경외하였다. 요시야 임금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중심으로 신앙개혁 운동에 앞장섰다. 역대하 35장 25절에 보면, 요시야 왕이 애굽 왕 느고와 싸우던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했을 때에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예레미야는 애가를 불러서 극도의 슬픔을 표현하였다. 이는 그 당시에 하나님을 경배하던 왕 요시야와 선지자 예레미야의 관계가 얼마나 가깝고 친근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장면 중의 하나이다. 왕 요시야의 죽음은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가는 유다 민족 앞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감에 더욱 더 불붙게 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남 유다의 왕들은 요시야를 끝으로 그 후대의 왕들인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에 이르도록 한결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 숭배에 젖어 사는 망국의 길로 내리 달았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남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그 멸망 이전의 긴긴 세월 50여년동안 활동하던 선지자 예레미야는 조롱과 핍박과 수난의 연속 가운데 지내야 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유다도 북 왕국 이스라엘처럼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외침을 경청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특히 왕들이 나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결국 핍박이 이어졌고 매국노라는 오명이 예레미야에게 따라다녔다. 결국 예레미야는 그를 미워하고 대적하고 반목하는 세력에 의해서 애굽으로 끌려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예레미야의 입을 사용하셔서 시대적인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다. 그 중의 일부가 오늘 본문으로 읽은 말씀이다. 

 

지금 유대 백성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고 나라는 무너져 가고 있고 있지만 때가 되면 회복과 번영의 날이 다시 찾아 올 것이라는 희망의 말씀을 담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는 회복은 바벨론에 끌려가게 될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 정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장차 이 땅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룩될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일러준 선(善)한 말의 성취(成就).

모든 선지자들의 선지서들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라는 표현이 수 없이 반복된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예레미야 33장 14절에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나 주장을 전하려 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그 때 그 때마다 증거한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시다. 분초를 다루시는 시간의 주인이시다. 하루 하루의 모든 시간과 우리 각 사람이 겪으며 살아가는 모든 일과 사건의 주인이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믿으며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던 믿음의 사람 다윗을 보라. 역대상 14장 8절 이하에 보면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자신의 거취를 여쭙고 하나님의 대답을 구하는 것을 본다. 이스라엘의 그 유명한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블레셋은 다윗 집권 초기에 이스라엘과의 국제 관계에 우위를 차지해 보려고 쳐 들어 왔다. 블레셋의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하였다. 그 때에 다윗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 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그 즉시 응답하셨다.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그 때에 다윗의 군대는 바알브라심으로 올라갔다. 하나님은 물을 내려 치듯이 블레셋의 군대를 치셨다.  블레셋 군대는 전쟁에 모시고 왔던 우상을 버려 두고 퇴각하였다. 다윗의 명령을 들은 이스라엘의 군대는 블레셋 군대가 버려두고 떠난 우상들을 모아서 불살라 버렸다. 다윗은 계속하여 하나님께 전쟁 상황을 여쭈었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셨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블레셋을 기습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처들어 온 블레셋을 물리친 소문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갔다. 역대상 14장 17절에 보면 “다윗의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모든 이방 민족으로 그를 두려워 하게 하셨더라”라고 하였다. 

 

신앙 생활이 무엇인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 때가 되면 성취되리라는 믿음과 소망과 기대 가운데서 기도하며 믿음으로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모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할 때에 홍해가 육지처럼 갈라졌다. 여호수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에 요단강이 홍해처럼 갈라져서 육지로 건너 갈 수 있었다.

 

예레미야서를 차근 차근 읽어 가다가 보면 시제가 과거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현재로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을 관찰하게 된다. 왜 그럴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고 슬픔을 겪고 시련을 당하고 곤고한 일을 겪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라는 점이다. 예레미야 33장 5-6절에 보면 그런 내용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 주고 있다.

 

유다 땅과 예루살렘 성에 쳐 들어 온 갈대아인 즉 블레셋의 침공으로 성은 불타고 무너졌다. 예루살렘 성 안에는 시체가 무더기를 이루었다. 5절에 보면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떨리는 내용인가. 처절한 심판의 말씀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역사의 심판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왜 노여워하시는지, 하나님이 왜 분노하시는지를 깨닫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라는 경고일 뿐이다. 

 

그렇지 않나. 정상적인 아비라면 어느 아비가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을 때리고 싶어서 때리겠나. 주께로 돌아오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고, 부모의 기대하는 삶으로 회복되라는 사랑의 매가 아니겠나. 이처럼 하나님은 예레미야 33장 6절에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라고 하였다. 맞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본심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이 14절이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선한 말을 영어 성경에 보면‘good promise’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약속은 악한 약속이 아니다. 악한 약속이란 전혀 없다. 모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다 선한 약속이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언약은 선한 언약, 선한 약속이었다. 그러므로 그 선한 언약의 말씀을 약속으로 믿고 따르며 살아갈 때에 아브라함은 언약의 선조가 될 수 있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약속, 우리 가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약속, 우리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약속, 이 시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약속이 무엇일까.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의 그 다양한 민족, 다양한 나라, 그 많고 많은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약속이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국가 조찬 기도회라는 제목으로 모인다. 올해도 지난 11월 22일 새벽에 800여명이 신라호텔 컨벤션 센터에 모여서 기도하였다. 벌써 56회째 모이는 국가적인 기도회이다. 대통령과 국가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고 새벽에 모여서 지도자와 국가를 위해서 기도한다. 대통령이 인사 말씀 시간도 있다.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도 갖는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라. 아무리 이 나라의 교회가 모여서 기도하여도 국가의 지도자가 므낫세 왕처럼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과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불행한 일인가. 

 

물론 하나님은 열방의 왕들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선한 왕의 손길도 쓰시고 악한 왕의 손길에도 개입하시고 간섭하신다. 시편 2편 9절에 보면 열방의 왕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을 무시하고 함부로 살아가면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라고 경고하셨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라고 명하였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2:12)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말씀이 주의 선한 약속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국운이 기울어져 가던 남 유다의 반역과 우상 숭배 앞에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경고하셨다. 그리고 반복해서 회개를 촉구하셨다. 한두 번이 아니다 일이 년이 아니다. 반백 년 긴긴 세월 동안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그러는 동안에 왕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남 유다의 멸망 직전의 여러 왕들은 요시야를 끝으로 너나 나나 할 것없이 패역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처럼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신 것이다. 14절의,“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가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good promise)이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며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지금 사랑하는 선민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악행을 계속하고 하나님을 경홀히 여길지라도 때가 되면, 날이 이르면 하나님의 선한 약속의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날이 임할 것이라고 사랑과 용서와 연민의 마음을 담아서 전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선한 약속의 성취를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메시야로, 구세주로 보내 주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끝 없는 사랑과 용서와 긍훌과 자비의 마음이시다. 시작된 대강절, 다가올 성탄절에 하나님의 본심을 잘 깨달아서 주님의 선한 약속의 말씀의 성취를 가슴에 간직하고 하나님이 기

뻐하시는 나날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다윗에게서 날 공의(公義)로운 가지.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인 다윗의 후손을 태어 나셨다. 하나님은 다윗 왕과의 약속을 이루셨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어느 날 다윗 왕이 나단 선지자와 마주 앉아서 대화하고 있었다. 전쟁도 없고 나라가 평안할 때의 일이다. 다윗 왕은 잘 지은 백향목 왕궁에서 지내고 있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7:2)라고 말했다. 선지자 나단은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라고 대답하였다.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선지자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다윗의 마음을 읽으신 하나님은 흐믓하고 만족스러운 심경을 선지자 나단에게 전하셨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어하는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서 영원히 왕권이 끊이지 않게 하시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죄를 범하면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시겠다는 경고도 하셨다. 그러나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왕위가 이어져가게 하시리라고 하셨다. 

 

다음 날 선지자 나단은 지난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다윗 왕에게 전하였다. 다윗 왕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하나님 앞에 들어가서 기도하였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은 참되시니이다...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서서”(삼하7:28-29)

 

우리가 아는대로 하나님은 다윗의 소원을 아들 솔로몬의 때에 성취하게 하셨다. 아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소원을 따라서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을 끝으로 분열된 나라의 남 유다의 왕들인 20명의 왕들 중에는 선한 왕들도 더러 있고 악한 왕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언약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셨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에게서 난 공의로운 가지이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도 그러하고 주님의 부활 승천 하신 이후에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그 시대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이루신다. 온전하게 성취하신다. 하나님의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은 열방과 민족과 방언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수레 바퀴가 계속하여 굴러 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고 거짓을 멸하신다. 하나님은 죄를 향하여 진노하시며 불의를  대하실 때에 분노하신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와 공의의 잣대로 심판하기를 원하신다.

 

받은 것을 땅 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가지고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살아가는 인생을 칭찬하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주어진 건강과 주어진 여건과 주어진 시대 상황과 주어진 인간관계와 주어진 은사와 역량과 재주와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섯 달란트를 받고,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들은 그 받았던 것의 갑절을 남겼기 때문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라고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23)라는 칭찬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똑 같이 받은 칭찬과 상급인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시는 다윗의 가지로 이 땅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요즘 날마다 요한 계시록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칭찬만 받았다.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환난과 긍핍과 고난 중에서도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들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 받았다. 

 

한해가 기울어 가고 있다. 이제 2024년은 꼭 한달 남았다. 겨우 한 달이 아니라 아직 한달이 남았다. 남은 한 달을 유종의 미를 거두자. 집에서, 직장에서, 장사하는 터전에서, 사업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과 대하는 일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말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행동하며 살아가자. 작은 일을 크게 여기고 큰 일 앞에 당황해 하지 말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천재보다 무서운 것은 꾸준히 계속하는 자의 인내와 끈기이다. 발명왕이란 별망이 따라 다니는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8-1931) 도 그 많은 연구의 업적을 하룻 밤에 다 이룩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 주간지 ‘TIME’은 1927년부터 매년 ‘올해의 인물’((Men of the Year))을 정하여 표지 인물로 싣는다. 그런데 2006년의 ‘올해의 인물’ 주인공은 ‘YOU’였다. 그렇다.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이 날마다, 해마다, 평생토록 주안에서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주목과 칭찬을 받는 그런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아간의 범죄, 사울 왕의 타락, 가롯 유다의 불행한 선택,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어리석은 탐심의 결과가 알려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불의와 거짓과 악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의 심판주로 오신 다윗의 가지인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점검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가꾸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안전(安全)히 살아가며 받아 누릴 구원(救援).

오늘 본문에 보면 15절에 ‘그날 그 때에’, 16절에 ‘그 날에’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씀하는 그 날, 그 시간은 세월이 흐르고 하나님의 심판이 멈추고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히 여기시는 회복의 삶을 살아갈 훗날을 예언하여 말씀하신 말씀이다. 

 

그 날이 되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 날이 되면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만한 도성이 될 것이다. 

그 날이 되면 예루살렘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는 성이 될 것이다.

 

라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은 그런 날, 그런 때가 어서 임하기를 소원하며 살아간다. <주여 오소서>라는 찬양이 있다. 

 

“보라 그 날이 곧 다가 오리라 

생명의 주 예수 영광 중에 오실 날 

네가 그것을 곧 보게 되리니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시리라”

 

라는 가사의 찬양이다. 성도의 신앙이란 ‘그 날, 그 때’를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신앙이어야 한다. 세상에 보여지는 그 날과 그 때도 좋지만 주님 안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날과 그 때를 마음에 품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다윗의 가지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그 날과 그 때를 사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은 자신의 시간이 아니라 곧 아버지 하나님의 시간이었다. 주어진 시간, 부여 받은 시간 안에서 하루 하루를 사셨고 매 순간을 사셨다. 예수께서는 그 하루의 날과 매 순간의 때를 보냄을 받은 사명자의 시간과 날들로 살아가셨다. 예수께서는 그 하루 하루와 매 순간의 그 날과 그 때를 기도로 가득 가득 채우셨고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담은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사셨다. 그리고 평소에 말씀하시던 그대로 때가 되어 붙잡히셨다. 그리고 고난과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셨다. 영원한 정의와 공의의 왕으로 오신 구원의 주님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안전하게 살아갈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예비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의의 도성인 그 곳에서 영생하며 성도의 복락을 누리도록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선물해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의 나그네 인생 길을 살아가면서 이미 그 날과 그 때의 구원을 누리며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죽어 천국, 나중 영생이 아니라 현재 지금 이 땅에서부터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선한 약속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미 성취된 그 정의와 공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성탄의 축복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 신앙이어야 하는 것이다. 올해의 마지막 남은 한 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기의 은총과 성탄의 평화가 우리 각 사람의 범사에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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