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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신앙 고백(시8:1-9) 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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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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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9-29 13:59 조회 5 댓글 0
 

                      다윗의 신앙 고백(시8:1-9)              2024. 9. 29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몇 편의 시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편이 시편 8편이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나고 자라면서 늘 들과 산에서 목동 생활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윗은 깜깜한 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들의 찬란함이 그의 추억에 가득하였을 것이다. 산과 들에 뛰어 노는 각종 들 짐승들과 하늘을 날아 다니는 각종 아름다운 새들을 둘러 보는 재미도 좋았을 것이다. 물 속의 각종 물고기를 들여다 보는 느낌은 어떠했을까.

 

오늘, 시편 8편을 읽다가 보면 창세기 1-2장의 창조의 장면을 몇 줄 안에 모두 다 담아 내는 듯한 아름다움을 공감하게 된다. 시편 8편은 찬양시이며 감사 예배시이다. 유대인들은 공중 예배를 드릴 때나 절기 때에 시편 8편을 낭송하고는 하였다. 초대 교회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기념하는 예수 승천 기념 예배 때에 이 시편 8편을 낭송하였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시편 8편에 곡을 붙인 찬양을 익숙하게 기억한다. 시편 8편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가득한 하나님의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다. 1절에 보면,“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라고 찬양하고 있지 않나. 다윗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을 표현하기를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이라고 하였다. 하늘의 달과 별들은 주께서 만드신 하늘에 주께서 베풀어 두신 것들이라고 하였다. 6절에 보니까 우주 만물의 모든 피조물은 주의 손을 만드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광대 무변한 우주 삼라 만상의 창조를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손 끝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맞다. 아무리 좋고 귀한 물건이라도 그 물건이 귀한 것이 아니라 그런 물건을 만든 사람이 귀한 것처럼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이다. 우주 공간에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이다. 6절 말씀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손수 지으신 그 모든 것들을 인간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인간의 발 아래 두셨다. 소와 양을 비롯한 모든 들짐승들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그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창세기 1장 28절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다. 

 

1-3절은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4-9절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누리게 하시는 영화와 존귀함을 찬양하고 있다. 

 

다윗은 베들레헴 출신의 목동이다. 시편의 73편 분량을 지은 시인이요 비파와 수금을 타던 악기 연주자다. 물매 사용에 능하던 용사요 임금 사울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시대적인 인물이었다. 이미 십대 시절에 물맷돌 한 개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의 그 많던 사울의 군대조차도 상대 하지 못하던 블레셋의 적장 골리앗을 물맷돌 한 개로 해결한 용사요 전략가였다.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이리 피하고 저리 숨어 지내던 긴긴 세월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으로 다듬어가는 하나님의 담금질이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라는 고백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며 마치도 다윗을 염두에 두고 한 고백과도 같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신앙 고백을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한다. 

 

 

생각하시는 하나님.

사람은 연약하다. 사람은 절대로 강하지 못하다. 물론 인류 문명 발전사를 보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서 이룩한 문명의 발전이 결코 적지 않다. 작지도 않다.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이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시편 90편에 보면 모세는“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고백하였다. 그렇지 않나. 아직 젊은이들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음이란 시간과 세월이 쏜 화살과 같이 날아간다. 그래서 전도서의 기록자는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그리하라”(전12:1) 라고 권면하였다.

인간은 연약하나 하나님은 강하시다. 인간은 부족하나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은 무한하시다. 인간은 어리석으나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하시다. 인간은 실수와 실패 속에 살아 가지만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도 않으신다. 인간은 피곤해 하지만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 그러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생각해 주신다는 것은 크나큰 은총이 며 축복이 아닌가.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다윗은 고백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그렇지 않나. 사람이란 존재가 과연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각 사람을 생각해 주신다는 말인가. 나란 존재가 과연 무엇이기에 주께서 나를 시시때때로 생각해 주신다는 말인가. 오늘날 지구촌에 80억이 넘는 인구가 살아간다. 오대양 육대주에 사람이 넘쳐난다. 가난한 사람, 부한 사람, 건강한 사람, 병약한 사람, 대단한 사람, 너무나도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 잘 나가는 사람, 생을 비관하며 세상을 끝내 버릴까 고민하는 사람, 능력이 많은 사람, 한없이 부족한 사람, 지배하려 하는 사람, 지배 받는 사람, 똑똑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존경 받는 사람, 천덕 꾸러기로 지내는 사람, 남들이 부러워 하는 사람, 남들이 깔보고 업신 여기는 사람, 쫓아 가는 사람, 도망가는 사람, 찾아 내려 하는 사람, 숨는 사람,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정직한 사람, 거짓과 술수에 붙잡혀 지내는 사람, 착한 사람, 못된 사람이 얼기설기 뒤엉켜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다양한 별의별 사람들 가운데서 나 한 사람을 생각해 주신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믿음이다. 이러한 사실을 시인하고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는 사람을 생각하신다. 아들딸을 낳은 아버지가 그 자식을 생각하듯이 생각하신다. 날 낳아서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신다. 

 

요즘 주중 예배 시간에 듣기 성경으로 성경 말씀을 듣는다. 과거에 9시 뉴스 어나운서였던 앵커 우먼 신은경은 1958년생이다. 그는 불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한달이 멀다하고 제사상을 차려야 하는 환경에서 자녀들을 키웠다. 신은경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자기 젊은 아빠가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뒤늦게 결혼하고 어떻게 어떻게 해서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사랑하시는 아버지”라는 목사님의 기도 소리를 듣고 그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서 영어 시간에 ‘father’라는 단어가 나오면 발음하기 조차 주저하며 일찍 세상을 떠난 아빠로 인한 허전함을 가슴에 묻고 지내던 그였다. 그리고 긴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이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세상도 살만큼 살아 온 그인데 “하나님 아버지”하는 기도 소리의 ‘아버지’라는 그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방망이질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그는 예배 시간 내내 흘러 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그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아버지로 다가 오셨다. 그의 삶은 하루 하루 순간 순간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날들로 변화되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주님이시다. 그 주께서 나를 생각해 주신다는 사실을 인격적으로 깨닫고 체험하고 주님의 손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믿음 생활인 것이다. 다윗은 고백하였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나이까”라고 말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은 인류 역사에 개척자들이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발견인 것이다. 위대한 깨달음인 것이다. 위대한 체험인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 한 사람을 얼마나 귀하고 존귀하게 여기고 아끼고 위하고 사랑하시며 늘 생각하시는 지를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가 아는 다윗은 하나님을“나의 힘이신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이,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라고 고백하기를 즐겨 하였다. 그런데 이기서는 달랐다. 시편 8편의 고백은 다르다는 말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 지요”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편 8편은 1절과 9절이 똑 같은 고백으로 시작되고 똑 같은 고백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은 천하 만민의 구주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주님이시다. 그 주님의 이름은 온 땅에 가득한 아름다운 이름이시다. 우리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보며 여호와 하나님 우리 주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생각한다. 들의 온갖 짐승들과 공중의 새와 물 속의 각종 물고기들을 바라다 보면 우리 주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한다. 

 

그 주님이 나를 생각하신다니 감격스럽지 않나. 기쁘지 않나. 좋지 않나. 놀랍지 않나. 감사하지 않나. 소망이 넘쳐나지 않나. 살맛이 나지 않나. 고백하여 보라. “하나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나를 생각하십니까”라고 말이다. 

 

나보다 조금만 더 능력이 있고, 조금만 더 지위가 높고, 조금만 더 잘 나가고, 조금만 더 유명한 그 어떤 누가 나를 생각해 주어도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려나 하고 마음이 들뜰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생각해 주신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나를 아실 뿐만 아니라 나를 밤이나 낮이나 언제 어디서나 생각하시는 주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 가운데서 소망 중에 살아가는 각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돌보시는 하나님.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생각하실 뿐만 아니라, 나를 돌보시는 주님이시다. 엄마가 아기를 낳으면 밤낮이 없이 돌본다. 24시간을 곁을 지킨다.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 준다. 품에 안고 눈을 마주친다. 사랑의 교감을 한다. 옹알이를 하는 아기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구분한다. 왜 우는지를 구분하려 한다. 배가 고파서 우는지 졸음이 와서 우는지 어디가 불편해서 우는지 어디가 아파서 우는지를 구분하려 한다. 도우려고 한다.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한다. 이것이 보살피는 것이다. 돌보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주님은 인생을 돌보시는 주님이시다. 그것을 깨달은 다윗이 고백하고 있다.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고 말이다. 임금은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 도지시는 도민을 시장은 시민을 돌보아야 한다. 군수는 군민을 구청장은 구민의 형편을 돌보아야 한다. 이장은 마을 사람을, 가장은 집안 사람을 돌보아야 한다. 어른이 아이를 돌보고 힘이 있는 사람이 그 힘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무엇인가. 제사장이냐 레위 사람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강도 만나 거반 죽게 된 사람을 돌보아 주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천국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을 죽이고 빼앗는 곳이 아니다.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고 영원히 얻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시다. 주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시다. 그러므로 2절의 말씀처럼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시는 주님이시다.”하나님은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시다.” 생각하여 보라.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대적자들을 다스리시며 권능을 세우시는 주님이시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청소하셨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어 쫓으셨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께서는 그날 거기서“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책망하셨다. 그 날 성전 뜰에서 수 많은 맹인들과 저는 자들이 예수께 나왔다. 예수께서는 저들을 모두 다 고쳐 주셨다. 못 보던 자들이 보게 되고 못 걷던 자들이 걷게 되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이상하게 여겼다. 어린이들이 성전에 모여 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를 질렀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린이들의 이와 같은 큰 소리를 들으며 화를 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인용하신 말씀이 바로 시편 8편 2절이다.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21:16)

 

예수는 그날 그들을 떠나서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베다니 마을에 가서 거기서 주무셨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돌아 보시는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앞 못 보는 이들과 걷지 못하는 이들을 일일이 돌아 보아 주셨다. 일일이 고쳐 주셨다. 어린이들이 모여들면서 큰 소리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치는 이 역사적인 장면을 예수께서는 주목하셨다. 그 큰 호산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셨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달랐다. 저들은 화를 버럭 버럭 내면서 예수와 어린이들을 꾸짖으려고만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에 예수는 붙잡히셨다.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여기에 오묘한 복음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생각하고 예수의 부활을 가슴에 품은 자들마다 주님의 돌보심을 받는 인생들로 변화되는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돌보심의 능력이다. 이것이 하늘을 덮은 주의 영광이 나를 덮고 감싸는 위로의 은총이다. 

 

주님은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의 말의 권능으로도 주의 원수와 주의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신다. 그 주님의 돌보시는 손길이 임하면 병자가 치유되고 귀신이 떠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난다. 돌보시는 주님이 내 곁에 다가 오시면 거세게 불던 바람도 잠잠해 진다. 높던 파도도 고요해 진다. 주님이 임자를 돌아 보시면 문제가 해결되고 역사가 바뀐다. 나의 곁에 다가 오셔서 나의 범사를 돌보시는 주님을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돈독한 믿음의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영화(榮華)와 존귀(尊貴)로 관을 씌우시는 하나님.

천지 우주 만물을 지우시고 운행하시며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은 인생을 생각하시며 돌보시는 사랑의 아버지시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가 돌보시는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깨지고 멸망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주님이 생각하시고 주님이 돌보시는 각 사람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영화롭게 되고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시다. 머리에 영화의 관, 존귀한 관을 씌워 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시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시다. 

 

우리는 각계 각 분야에서 우수한 실력과 기량과 업적을 쌓아서 상을 받고 상금을 받고 칭찬을 받고 유명해지고 자랑스러워지고 존귀해 지는 이들의 소식을 접하며 살아간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기 까지 수 없는 고난과 역경과 시련과 별의별 우여곡절들을 그 때마다 참고 견디며 극복한 인간 승리의 이야기들을 접하고는 한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영화와 존귀의 과관을 그 머리에 쓴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안다. 

 

창세기의 요셉이 그랬고, 출애굽기의 모세가 그랬다. 여호수아서의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랬고 사사기의 사사 기드온과 드보라가 그랬다. 사무엘 상하에서 만나는 선지자 사무엘이 그랬고 오늘 시편 8편의 기록자인 다윗이 그랬다. 요즘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 온 느헤미야 서의 느헤미야가 그런 영화와 존귀의 관을 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스룹바벨이 그랬고 학사 에스라가 그랬다.

 

가을은 기도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기도의 열매를 거두는 계절이다. 가을은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인생의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이 가을을 가을답게 보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영화와 존귀의 관을 쓰는 은혜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하신다. 주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온 하늘을 덮듯이 우리 각 사람에게 덮이는 그런 은혜를 체험하길 축원한다. 각 가정이 그런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한다. 그리하므로 날마다 순간마다 각 사람의 입술에 이런 찬송이 끊임이 없이 불려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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