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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외치라(사40:3-8) 20201206 강림절 제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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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13 19:43 조회 5,361 댓글 0
 
                           외치라(사40:3-8)                  2020. 12. 6  강림절 제 2주


‘외치라’는 말씀은 몇 사람이 듣다 말도록 작은 소리로 말하지 말고 누구나 다 듣도록 크게 말하라는 뜻이다. 뿐 만 아니라 못 듣는 사람이 없도록 골고루 전해지게 계속하여 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지 않나. 요즘은 세계가 하나다. 모든 세계의 뉴스가 실시간으로 지구 저편에서 이 편까지 전해진다. 인터넷의 힘이다. 인터넷을 표현하는 ‘WWW’는 ‘world wide web’의 약자이다. 세계가 그물망처럼 퍼져 가는 정보 공유망에 의해서 누구나 손 쉽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이 같은 발전은 인류 역사상 이 전에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www.com은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모든 소식을 공유한다. 

이사야의 예언을 따라 이 땅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보냄을 받은 분이 있었다. 그는 세례 요한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은 한결 같이 각 복음서의 서두에서 세례 요한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장면에 인용된 구약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인 이사야 40장 3절의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맞다. 세례 요한은 신구약 중간기의 침묵을 깨고 ‘외치는 자의 소리’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구약 시대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는 예수보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태어났다. 장성한 그는 광야에서 생활하였다. 유다와 예루살렘과 요단 강 주변의 사방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세례 요한을 찾아 나섰다. 세례 요한은 그 모든 무리들에게 “죄사함을 위한 회개를 선포하고 천국에 대하여”(마3:6) 선포하였다. 세례 요한의 외치는 복음을 들은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복(自服)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소문을 들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광야로 나가서 세례 요한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주목하였다. 그 때 회개하려 하지 않고 구경하려고 나선 저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고 책망하였다.

세례 요한의 외치는 내용은 거침이 없었다. 마태복음 3장 8절부터 12절을 보면 그 내용이 소상하게 전해진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더져질 것이다. 
너는 너희가 회개하게 하려고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다. 
나는 그의 신을 드는 것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거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다.
그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실 것이다. 
그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8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은 외치라고 명령하셨다. 지난 주에 묵상한 이사야 40장 2절에 ‘외치라’고 하셨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이사야 40장 3절에는 장차 ‘외치는 자의 소리’가 전해질 것이라고 하셨다. 6절에는 다시‘외치라’고 강조하셨다. 그러면 무엇을 외치라고 하신 것일까.

    
하나님의 대로를 예비하고 평탄케하라.
광야나 사막은 황량하고 길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광야와 같은 세상과 사막과 같은 세상에 여호와께서 찾아오신다고 외치라고 하셨다.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은 세상에 하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고 여호와의 오실 큰 길을 닦으라고 하셨다. 

광야와 사막이란 골짜기와 산과 언덕이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 황량한 땅이다. 건조하고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땅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은 세상에 하나님이 오실 크고 넓은 길을 곧게 닦으라고 하셨다. 이는 포로 생활의 때가 차서 바벨론 땅에 끌려 갔던 유다 백성들과 그의 후손들이 광야를 거쳐서 유다 땅과 예루살렘 성으로 귀환할 날이 임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그러면 왜 광야와 사막에 길을 내야 하는가. 왕이 그 곳을 통과하여야 하기에 왕이 행차할 큰 길을 준비하고 마련하라는 것이다. 

4절에서 말씀하는 ‘골짜기, 산, 언덕, 험한 곳’이란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상징하는 표현들이다. 골짜기란 모나고 사납고 거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산과 언덕은 교만하고 거만한 인간성을 말한다. 험한 곳이란 죄에 빠져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인간의 죄악상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인간상이란 거칠고 사납고 이기적이고 온갖 탐욕 속에서 배를 신처럼 섬기며 자기 교만 가운데 자기를 자랑하며 살아간다. 

사도바울 로마서 1장에서 그런 인간의 특징을 낱낱이 고발하였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짐을 받은 자들이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들이다.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들이다.
수군수군하는 자들이다. 
비방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은 미워하신다고 하였다.
그들은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들이다.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들이다. 
우매하고 약속을 거스리고 무정하고 무자비한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만 악하게 살뿐 아니라 주변에 그렇게 악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오히려 ‘잘한다’고 부추기는 자들이다. 

그렇지 않나. 세상에는 그런 자들이 득세하고 큰 소리 치며 권력을 장악하고 그 힘을 오래도록 유지하려고 별의 별 편법을 다 동원하려고 한다. 그런 악한 세상과 인간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열어서‘외치라’고 하셨다. 

그 외쳐야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3절부터 5절까지를 <새번역 성경>으로 보니까 이렇게 쉽게 번역되어 있다.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에덴의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하였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려고 하였다.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자를 꾸준히 찾아 나서셨다. 그렇게 만난 인생이 에녹이다. 시집가고 장가가며 인간들이 패역하고 방종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님은 한탄스러워하셨다. 그래서 물의 심판을 결심하셨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의 경고하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려 한 인물이 노아 시대의 노아이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 올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이는 가족이라고 혈육이라고 그러하다. 택함 받지 못하며 회개도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누리지 못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런 언약의 은혜를 입은 주인공들이다. 인간은 연약하고 부족하다. 흠이 많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이삭도 야곱도 허물 투성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 안에서 부름을 받은 언약의 사람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주목하셨다. 그 후손의 삶을 주목하셨다. 그런 언약 민족의 중심에 쓰임 받은 주인공이 창세기의 요셉이다. 왕정시대의 다윗이다. 

모세도 그러하고, 여호수아나 갈렙도 그러하다. 사무엘은 특히나 더 그러하고 다윗은 더욱 더 돋보이도록 그러하다. 구약으로 하면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위대하고 다윗이 대단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통해서도 다 이루실 수 없던 인류 구원의 대업을 위해서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류를 구원하길 원하셨다. 그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큰소리로 외쳐서 전할 자를 하나님은 계획하셨다. 그가 세례요한이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보냄을 받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예비하고 평탄하게 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선지자였다. 마가복음 1장 2-3절을 펼쳐 보자.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말라기 3장 1절과 이사야 40장 3절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마가복음 1장 3절에 보면 오늘 본문인 이사야 40장 3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곧 이어서 광야에서 죄사함에 이르는 회개의 복음을 큰 소리로 외쳐 증거하던 세례 요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의 내용이 무엇이었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이 말씀을 큰 소리를 계속하여 외쳐 전하라고 하였다. 이는 그 당시나 오늘 날이나 마찬가지이다. 복음은 외쳐야 한다. 외친다는 뜻은 꼭 큰 소리를 말해야 한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골고루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꾸준히 전하라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말씀하는 것이다.

디모데 후서 4장 2절에도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다. 그렇다. 올해 또 다시 성탄절을 기다리는 강림절기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외치는 절기이다. 예수가 누구신지를 골고루 알리는 절기이다. 전도하기 가장 좋은 절기이다. 미국이나 서양에는 ‘E.C. Christian’이란 말이 있다. ‘Easter and Christmas Christian’이란 말이다. 즉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교회에 오는 교인을 말한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라. 일 년이 지나도 전혀 교회에 발을 들여 놓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 비해서는 일년에 두 번이라도 교회에 찾아오고 예배를 같이 들이는 것은 기회이다. 그렇게 해서 매주일 예배당에 찾아 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신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면 광야나 사막의 골짜기아 같은 거칠고 사나운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한다. 산과 언덕과 같던 교만하고 잘난 척하고 남을 무시하고 거만 떨던 사람이 겸손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바뀐다. 광야와 사막의 거친 곳과 같던 죄덩어리의 인생이 죄와 악을 용서받은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라는 찬송의 가사를 보라.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그렇지 않나.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 출신인 바이킹은 AD 9~11세기에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습격하였다. 주변 나라들에 쳐들어가서 약탈 행동을 일삼아 식민지로 만들었다. AD 865년 잉글랜드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다. 북유럽 서해에는 바이킹의 침략의 말발굽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바이킹은 아일랜드까지 점령하려고 끊임없이 침략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니까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나라가 신사 나라들이 되지 않았나. 노벨 상을 수여하는 나라가 되지 않았나.

이는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외쳐  전하게 하시는 은혜의 말씀이 받아 들여질 때에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의 역사는 바뀌게 되어 있다. 참으로 은혜로운 강림절기와 성탄절 맞이가 되기를 소원한다.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
5절의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라는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70년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 살아남은 유다 백성들과 그 후손들이 포로의 땅에서 풀려나서 유다 땅과 예루살렘 성으로 되돌아오는 회복의 날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레미야 서를 대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예레미야 서에는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게 되었는지를 자세하게 교훈하고 있다. 예레미야서를 읽다 보면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의 영광이 어떻게 떠났는지를 차근 차근 대하게 한다. 

그런데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 영광을 함께 볼 것이라고 외치라고 하셨다. 이는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이 끝나는 것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일 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보게 될 하나님의 그 찬란하고 영원한 영광을 말씀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1장 14절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말씀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사야 40장 5절 끝에“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반드시 때가 되어 이루신다. 이루실 뿐만 아니라 그 하신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 영광을 받으신다. 사람은 말에 실수가 있다. 야고보서도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3:2)고 하였다. 

우리나라에 수 많은 선교사들이 찾아와서 동서남북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처처마다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큰 겨자나무처럼 자라 났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충만하였다. 그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개인이든 그 어떤 가정이든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영접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3-4대만 살아 보아라. 그 개인과 그 가정의 가족들과 후손들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하게 열매 맺지 않나. 

유계준 장로의 아버지 유덕석씨는 평북 영변의 대 부호인 안동 김씨 가정의 데릴 사위였다. 그러나 풍류를 즐기고 술과 기생을 가까이 하던 아버지는 재산을 다 말아 먹고 가난하게 된채로 병들어 죽어갔다. 유계준 장로가 13살 때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기회 있을 때마다 늘 예를 드는 평양 산정현 교회 유계준 장로와 그의 부인 윤덕준 권사는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다. 6남 2녀와 그의 후손들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되고 있다.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봄 유계준 장로는 부인과 자녀들을 남쪽으로 내려보낸 후 그가 장로로 섬기던 평양 산정현 교회를 지키기 위해 홀로 남았다. 그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다섯째 아들 유기진의 등을 떠밀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유기진은 아버지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아버지를 보는 마지막이었다. 

그 후 유계준 장로는 ‘산정현교회를 가마니공장으로 내놓으라’는 공산정권의 요구에 저항하였다. ‘성도들의 눈물 어린 정성과 헌금으로 세운 교회를 가마니 공장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당당히 맞서다 순교당했다. 당시 재판과정을 기록했던 공산당 서기가 훗날 다섯째 아들 유기진 장로를 찾아와 “당시 장로님의 용기가 놀라웠다”며 “그가 믿는 예수를 믿고 싶어 자신도 남한으로 피신해 와서 크리스천이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계준 장로의 가문은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을 지킨 ‘일사각오의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계준 장로는 부인 윤덕준 권사와 6남 2녀를 신앙으로 낳아 키웠다. 이들 부부는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 자녀들이 민족을 위해 기여하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간구하였다. 

장남 유기원 장로는 생전에 국립의료원장을 역임했다.
2남 유기형 장로는 부산의대 교수를 지냈다. 
역시 의사인 3남 유기선 장로는 부산에서 살았다. 
4남 유기천 장로는 서울대 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사재 30억원을 털어서 모교에 장학기금으로 기부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5남 유기진 장로는 월남 전까지 장기려 박사와 함께 평양기독병원에서 근무했던 당시 몇 안되던 유명한 외과의사였다. 그는 월남후 포로수용소에서 군의관으로 일했다.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가 북미기독의료선교회를 창립했다. 의사였던 부인 고난경 권사와 함께 시카고 한인장로교회를 섬겼다. 
또 장녀 유기옥 권사는 서울 누가의료원 원장을 지냈다. 
둘째  딸인 유기숙 권사는 약사로 미국 뉴욕에 자리 잡았다. 
여섯째 아들 유기묵 장로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산다. 그도 역시 의사이다. 
부총리를 지낸 이한빈 장로는 유계준 장로의 사위이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유계준 장로는 대동강변에서 중국을 드나들며 무역을 했던 청년 상인이었다. 당시 전도하던 새뮤얼 마펫 선교사를 ‘미풍양속을 해치는 양키’라며 핍박했었다. 그러나 새뮤얼 마펫 선교사에 의해서 복음을 받아 들인 후에는 매주 토요일 저녁부터 목욕을 하고 주일 아침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고 준비하였다. 또 주일에는 가게문을 닫고 철저히 온 가족들이 주일성수를 했다. 45살에 주기철 목사가 담임으로 있던 산정현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주기철 목사의 옥바라지를 도 맡아 하였다. 주기철 목사가 순교당하자 정성을 다하여 앞장서서 장례하였다. 교회 재무 살림을 맡아 사재를 톡톡 털어 가며 교회를 섬겼다. 

이 부부는 8남매를 키우면서 아들딸들에게 매를 한 번도 든 일이 없었다. 단지 “죽으면 썩어질 몸, 아끼면 안된다”라고 말하며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부지런한 생활을 가르쳤다. 그 후손들 중에 의사만 26명이 배출되었다. 

또 유계준 장로와 부인 윤덕준 권사는 자녀들에게 큰 꿈을 심어주고 민족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날마다 귀가 따갑도록 강조하였다. 일제시대에 자녀들이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어려움에 처하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기옥 기숙 기천 3남매를 도쿄로 보내서 공부하게 하였다. 3남매는 우수한 성적으로 도쿄의대와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했다. 큰딸 유기옥 권사가 도쿄제국대 부속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유계준 장로는 “너희는 한국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니 고국으로 돌아오라”고 말했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말에 즉각 순종해 귀국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또 유 장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이웃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고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유익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녀들은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부모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신앙의 명문가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부모의 기도와 찬송과 헌신을 보고 신앙의 뿌리가 깊어지는 것이다. 유계준 장로의 큰딸 유기옥 권사는 매주 목요일 오후 서울 원효로 누가병원에서 직장인 성경공부를 인도하였다. 그녀의 아들은 가천의대 교수이고 장로이다. 이처럼 유계준 장로와 윤덕준 권사의 신앙의 맥은 나라 안팎에서 자자 손손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 종교, 의학, 과학, 예술, 사업, 금융 등의 각 분야에서 하나님을 잘 믿는 후손들의 수가 더해 가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면 당대 뿐만 아니라 자자손손 점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인생과 가문이 되게 하실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고난 중에서도 그러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우리는 그 무엇도 자랑하면 안된다. 그렇지 않나.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나. 젊음인가. 건강인가. 재물인가. 실력인가. 세상 지위인가. 권력인가. 명예인가. 인기인가. 상대적인 그 어떤 무엇인가. 뭘 자랑하려고 하나. 뭘 자랑하고 싶은가. 내게 솔로몬의 영광과 같은 그 무엇이 있다고 하여도 자랑하면 안된다. 

그렇지 않나. 모든 육체는 풀이다.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 때가 되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7절에 보면 “이 백성은 실로 풀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렇지 않나. 이 세상에 영원한 풀이 있나. 영원한 꽃이 있나. 아라비아 사막에 불어오는 ‘시록코’(sirocco)라는 동풍은 온 들판에 끝없이 피어있던 그 아름다운 꽃들을 순식간에 시들어 말라 버리고 사라져 버리게 한다. 

시로코와 같은 바람이 불면 바벨론의 영광도 별것이 아니다. 메대나 바사의 영광도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다. 헬라와 로마 시대가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렇지 않나. 동서양의 그 영웅호걸들과 절세가인들이 다 어디로 갔나. 저들이 천년을 살았나 만년을 살았나. 예수께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솔로몬의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6:26-29)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예수께서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고 교훈하셨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그렇지 않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나. 젊음, 건강, 미모,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시계, 명품 가방, 명품 옷, 금 은 보석 그 무얼 자랑할 것이 있나. 

저지난 주중에 묵상한 다니엘서에 보면 메대의 벨사살 왕이 1,000명의 고관대작들과왕비와 후궁들과 술잔치자리를 벌려 놓고 그 밤에 그 잔치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하나님이 벽에 손가락을 큰 글씨를 쓰셨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루신” 무슨 뜻인가 “재어보고 달아 보니 부족하여 나누어 버리셨다”는 뜻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이 있다.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다. 천국의 상급도 있고 지옥의 심판도 있다. 천국도 영원하고 지옥도 영원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이다. 불의 공력 앞에서도 불타지 않는 금, 은, 보석보다 더 귀한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이렇게 믿고 이렇게 찬송할만한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가는 강림절기과 성탄절 맞이가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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