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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그의 산에 올라 그의 전에 이르자(사2:1-5) 202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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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11-30 23:20 조회 3,956 댓글 0
 

              그의 산에 올라 그의 전에 이르자(사2:1-5)      2022. 11. 27

 

 

이사야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의 기록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6장에 기록된 대로 남 유다의 웃시야 임금이 죽던 해인 주전 739년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인물이다. 무려 60여년 동안 선지자로 쓰임 받은 역사적인 선지자였다.

 

이사야서는 성경이 신구약 66권인 것처럼 66장의 방대한 분량으로 되어 있다. 이사야 1장은 남유다의 타락에 대하여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 물질의 번영만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에서 점점 멀어져 가던 남유다 백성들의 신앙의 변질에 대하여 경고하시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 올 것을 명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 이사야 1장 12절 하반절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고 제물을 드리며 절기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위선되고 어리석은 모습인지를 지적하고 책망하신 말씀 중의 하나이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이사야서 2장 앞부분의 말씀은 세계 만민이 여호와의 산인 시온 산에 오르고 여호와의 전인 예루살렘 전에 이르자고 초청한다. 그 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의 나라, 평화의 왕국을 이루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기대요 뜻인 것을 선포하고 있다.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 백성들은 가까이에 있는 산에 올라 산당을 짓고 우상을 숭배하고는 하였다. 나라마다 백성들마다 산은 위엄과 위용과 장엄함을 상징하는 영원한 상징물이었다. 그래서 종종 산을 신들의 거처로 여기고 숭배하여 왔다. 따라서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 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라는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 산꼭대기가 세계 모든 종교, 모든 신앙의 중심이 될 것을 선포한 말씀이다. 이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셔서 이룩하실 온전하고 영원한 구원의 완성을 예언하신 말씀이시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는 예언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세계 만민이 주 앞에 돌아 올 것임을 일컫는 표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인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 탄생이 그러하였듯이 장차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주로 다시 오시는 그 날 구원 받을 모든 성도들이 주 앞으로 나아 올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로마서 11장 36절에 보면 이를 사도 바울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하였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 첫째 주일 아침에 묵상하는 이사야 2장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해 주고 있는가.

 

 

그가 가르치시는 길로 행하라.

3절에 보면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라고 하였다. 이전에 오래도록 읽던 <개역한글>성경에서는 “그가 그의 도를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라고 번역하였다. 여기서 도란 ‘데레크’는 점점 풍성한 믿음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온갖 비유의 가르치심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세의 오경을 비롯하여 구약의 역사서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와 같은 시가서의 다양하고 풍성한 가르침과 교훈의 말씀들을 안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를 비롯한 수 많은 선지자들의 선지서를 통한 경고의 말씀과 예언의 말씀들의 주옥과 같은 비중과 가치를 안다. 더군다나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방대한 비유의 천국에 관한 말씀과 행적으로 인한 교훈과 가르침을 늘 새롭게 깨닫고 교훈 받으며 살아간다. 

 

도덕과 윤리와 인문학의 바탕 뿐만 아니라 종교심이 깊은 분들은 공자, 맹자, 노자의 글들 뿐만 아니라 유교, 불교 등의 동양 종교와 그 철학에 대하여도 다양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대로 기독교의 진리, 성경의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마치고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 나리니”라는 예언의 말씀처럼 이 세상 그 어느 종교, 그 어느 신앙과 비교할 수 없는 종교 중의 유일한 종교요 깨달음 중의 유일한 깨달음이요 진리 중의 유일한 진리인 것이다. 

 

백범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은 젊은 날에 주역을 연구하는데 심취하기도 하였다. 동학의 최시형을 만나 그를 추종하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공주 마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입산수도를 행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의 진리를 깨달은 후에 지날의 종교 순례를 모두 다 뒤로 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신자의 삶을 살았다. 나라의 독립과 통일된 나라 건국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삶을 살다가 눈을 감았다. 감리교 홈 페이지에 실린 ‘한국감리교 인물 사전’에 보면 백범 김구에 대한 일대기가 잘 요약되어 있는 것을 읽어 볼 수 있다. 우리는 백범 김구의 남긴 말 중에 “이 땅에 경찰서 열개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한 곳 더 세우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은 유명하다. 

 

인천 내리 감리교회 가까운 곳에는 백범 기념 거리도 있다. 인천 대공원에는 백범 김구 동상도 건립되어 있다. 백범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일본의 악행을 보복하기 위해 일본군 중위 스치키를 살해하였다. 21살 때에 사형 선고를 받고 그 혐의로 갇혀 지내던 곳이 인천 감리서이다. 2년 후에 탈옥해서 도주하고 계속하여 독립 운동에 매진하였다. 그 때에 동료들과 모여 예배 드리던 곳이 내리감리교회이다. 1911년, 35살에 신민회 사건으로 15년 형을 받고 다시 인천의 감리서인 같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아들 옥바라지를 하며 독립 열사의 정열을 불태웠다. 지금은 어머니 곽낙원(1859~1939) 여사와 함께 백범 김구를 기리는 거리 조성으로 역사의 교훈을 더한다. 곽낙원 여사는 그를 존경하는 청년 동지들이 생신 상을 차리려 하자 그 돈을 미리 달라 해서 권총 두 자루를 사서 건네면서 “나라를 구해달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김구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독립 운동가 곽낙원으로 대전 현충원에 누워 있다. 

 

이 땅에 존경 받는 스승이 점점 적어 지고 있다. 나라는 이념적으로 극보수와 극 진보로 점점 양분되어 가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외교, 학문 그 어떤 분야에서이든 절대로 존경 받는 스승과 지도자가 희귀한 때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오직 유일하고 영원한 도와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좀 더 가까이 나아오고 또 나아와야 할 것이다. 

 

3절은 “가르치심과 행함”에 대한 규형적인 변화의 삶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아무리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여도 그 깨달아 알고 있는 가르침을 삶에 실행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 속담에 “부뚜막의 소금도 입에 넣어야 짜다”라는 말이 있다. 맞다. 그렇다. 아무리 많은 성경의 말씀을 깨달아 안다고 하여도 그 말씀을 준행하지 못한다면 울리는 꾕과리가 되고 말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라”라고 하였다. 이는 시온 산 꼭대기의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삶이 얼마나 귀한 가를 강조한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열방의 천한 만민 가운데 우뚝 서신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의 생애를 통해서 이룩하신 대속의 은총과 죄 사함의 선물과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영생의 복이 얼마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교훈하는 말씀이시다. 

늘 말씀 드리지만 강화도에는 마을마다 교회가 있다. 마을마다 예배당이 우뚝 우뚝 서 있다. 그 역사도 100년이 넘은 교회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인천 내리교회 아래 언덕자락에서 술 장사 하던 청년이 복음을 받아 들였다. 강화 고향 마을에 사시는 어머니께 이 복음을 전하고 어머니가 먼저 세례 받으실 기회를 원했다. 1893년, 129년 전에 인천 제물포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이승환은 고향인 강화로 돌아와 노모를 전도했다. 그는 인천 내리 교회에 헨리 아펜젤러의 후임으로 제 2대 담임 목사로 부임한 조지 존스(George H. Johns, 1867-1919, 조원시) 선교사에게 어머니의 세례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지역 양반가문이 서양 선교사의 입성을 막았다. 결국 이승환은 밤중에 노모를 업고 바닷가로 나갔다. 이들 모자는 갯벌 위에 세워진 배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조지 존스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 ‘선상(船上)세례’가 강화에 복음의 겨자씨가 떨어진 순간이었다.

 

3절의 ‘율법’이란 모세의 율법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단어 앞에는 관사가 없다. 이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맞다. 구원의 근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전하고 영원한 구원의 진리가 깨달아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라고 하셨다. 맞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가르침은 모든 율법과 모든 선지자의 말씀을 완성하신 것이다. 이를 깨달은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장 22절에서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라고 하였다. 

 

지금 어린 자녀를 키우는가. 지금 사랑하는 아들딸이 청소년인가. 아니면 청년인가.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가르치고 그 말씀 안에 행하게 하여서 복음적인 인재들을 유능하게 양육하고 배출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의 판단과 판결을 따르라.

4절에 보면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아 예언이 이어진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라고 하였다. 여기 사용된 ‘판단, 판결’이란 ‘솨파트’인데 “다스리다, 통치하다, 왕노릇하다”라는 뜻이다. 맞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평화를 열방을 다스리시는 평화의 왕이시다. 우리는 강림절기와 성탄절이 다가 오면 다시 이사야서 9장 6-7절을 펼쳐서 읽고는 한다. 화면을 보고 다 같이 읽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동서양의 역사를 보라.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미신을 믿던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이 들어간 나라들마다 지난 이천년 역사의 우뚝 선 나라, 우뚝 선 민족이 되었다. 이는 개인이나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을 모르면 어리석은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하고 아무리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다고 하여도 기독교의 복음을 모른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아무리 나라 경제와 세계 경제를 욺직이는 기업의 총수라고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아무리 유명해 져도 이 복음을 모르면 어리석은 것이다. 그 분의 판단, 그 분의 판결을 중시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 2장 4절에서 말씀하는 판결 혹은 판단이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내가 내 맘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자 무슨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느냐”그렇게 반응하면 어리석은 것이란 말이다. 시편 2편의 말씀처럼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는 자가 복된 자이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시편 2편을 통해서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의 음모와 꾀를 대적하시며 그 결박을 오히려 끊어 버리신다고 하셨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라고 하였다. 생각하여 보라. 내 생각, 우리 가족의 생각을 주께서 비웃으신다면 내 삶이 뭐가 되겠나. 우리 가족의 앞날이 뭐가 되겠나. 그러므로 시편 2편 10절에 보면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지 말고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라고 하였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라고 하였다. 

 

우리는 종종 미국의 기독교 역사에 주목받는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와 그의 후손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후손들 중에서 300명 이상의 목사와 선교사들이 배출되었다. 120명의 대학 교수들이 배출되었다. 60명의 학자, 30명의 대법관, 14명의 대학 학장, 3명의 국회의원, 1명의 부통령이 나왔다. 저들이 사회적인 지위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자자손손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존중하는 믿음의 명문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임을 고백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판단과 판결을 소중하게 여겼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간절히 구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신앙관으로 살아갔다. 왕이 된 후 다윗은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는 일을 했다. 법궤는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당시 법궤가 아비아달의 집에 있었는데 다윗이 다윗성으로 모셔가길 원했다. 그 임무를 아비아달의 아들 웃사가 맡았다.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중에 웃사가 잘못하여 하나님에 의해 죽임당한다. 다윗은 법궤를 옮겨 오는 것에 대해 두려운 생각을 갖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모셔갔다. 오벧에돔 집안은 제사장 가문이 아닌 평범한 집안이다. 레위인이지만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문지기였다. 그런 그가 여호와의 법궤를 모시므로 복을 받았다. 법궤로 인해서 웃사가 죽임을 받은 사건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궤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오벧에돔의 용기와 믿음과 겸손이 돋보인다.

 

역대상 15장에 보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오벧에돔의 집이 삼 개월 만에 하늘의 복을 받았다. 오벧에돔의 가정은 삼 개월 동안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여호와의 법궤를 모시는 일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 연말연시에 남은 한 해와 맞이할 새해 벽두에 삼 개월을 주님께 집중하여 보라. 주께서 큰 은혜를 부어 주실 것이다. 삼 개월, 백여 일이면 각 사람의 습관이 바뀌기 시작한다. 삼 개월만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해도 공부 습관이 바뀐다. 삼 개월만 무슨 일에 집중해도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삼 개월만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잘 믿어도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삼개월만 집중해서 성경을 탐독하고 삼 개월만 집중해서 기도해도 역사는 바뀐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삼개월만 열심히 예배당 드나들어도 사람이 바뀌기 시작한다. 

 

오벧에돔 가정은 삼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법궤를 모시는 중에 온 집과 모든 소유물에 복을 주셨다. 단순히 법궤를 모셨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법궤는 이스라엘에 항상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을 받은 것보다 심판을 받은 경우가 더 많았다. 왜인가. 하나님의 판단, 하나님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내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이스라엘 안에, 시온 산  꼭 대기에 여호와의 전, 솔로몬의 성전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판단을 따르고 하나님의 판결을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1장에서부터 통열하게 책망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오벧에돔의 집은 법궤를 모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 집에 법궤가 머무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섬겼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오벧에돔의 자녀들은 성전 문지기로서 큰 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집을 섬기면서 하나님이 그의 자손들에게 큰 복을 주셨다. 역대상 26장 8절에 보면 오벧에돔의 자손들이 62명이다. 모두 하나님 안에서 능력이 있고 직무를 잘하는 자들이다. 그 많은 자녀가 골고루 다 복을 받았다.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명이며”(대상26:5, 대상26:8)라고 하였다.

 

그날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평화의 날이 찾아 올 것이다. 주님의 이와 같은 통치와 다스리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므로 이런 복을 받고 간증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한다. 

 

 

그의 빛에 행하라.

5절에 보면 ‘여호와의 빛’이란 표현이 나온다. 그렇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은 “빛이 있으라”였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창조 셋째 날에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명하셔서 땅의 풀과 채소와 각종 과일 나무를 지으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해와 달과 별을 지으셨다. 낮과 밤과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신 것은 넷째날이다. 해와 달과 별을 먼저 지으신 것이 아니다. 이는 해와 달과 별의 창조 이전에 첫째 날 창조하신 빛의 기운 가운데서 온갖 풀과 채소와 과일나무가 생존하고 자라날 수 있도록 창조하신 증거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세상 만물을 지으신 창조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사야서 2장 5절이 말씀하는 “야곱 족속이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라는 말씀은 얼마나 은혜롭고 놀랍고 복된 초청인지 모른다. 여기서 말씀하는 ‘여호와의 빛’이란 “여호와의 은혜, 여호와의 사랑, 여호와의 보호와 인도하심”등을 일컫는 다양한 뜻을 담고 있다. 그렇다. 우리 모든 믿음의 형제자매들은 각 사람이 항상 여호와의 빛 안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크나큰 은혜인가. 이것이 얼마나 크나큰 복인가. 이것이 얼마나 크나큰 자랑이며 기쁨이며 영광인가. 

 

우리가 어렸을 적에도 시골이지만 성탄절이 되면 서랍장에 잘 보관했던 성탄 트리 장식들을 꺼내서 대문 밖에 장식하던 기억이 새롭다. 동네 아이들이 성탄절 새벽송이란 것 다녔다. 집집마다 다녔다. 밤새도록 다니면 큰 자루에 과자, 사탕, 떡, 음료수 등이 가득했다. 둘러앉아서 찬송하고 게임하며 지내다가 성탄절 새벽 예배에 어른들 사이에 끼어 앉아서 성탄절 새벽 예배를 드렸다. 그 시간에 잠이 쏟아지니까 성탄절 새벽 예배 시간에 하신 목사님의 설교는 하나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온 마을 아이들이 예배당에서 밤을 새웠다. 예배당은 성탄절을 보내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맞이하는 온 마을 아이들의 삶의 중심이었다.

 

오늘 성경, 이사야서는 분명하게 말씀한다. 여호와의 산 여호와의 전에 오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결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빛 안에서 어둠을 멀리하고 어둠을 이기는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예수 복음이 들어가니까 각색 병에서 고침을 받고 귀신이 떠나갔다. 갈릴리의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이 새 삶을 살았다. 가나 혼인 잔치 집처럼 새 포도주가 넘쳐 나게 되었다. 게네사렛 호숫가의 38년된 병자처럼 고질병도 나았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 안에 새 삶이 전개되었다. 성령 받은 베드로처럼 역사적인 사도의 삶을 살게 되었다. 사도 바울처럼 혈기 등등하던 이가 사랑의 이방 사도가 되었다. 이런 은혜와 복이 풍성한 개인과 가정과 교회 공동체의 앞날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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