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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고 즐거워하라(신26:1-11) 20221120 추수감사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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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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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25 23:50 조회 4,045 댓글 0
 

                           감사하고 즐거워하라(신26:1-11)                 2022. 11. 20 추수감사주일

 

무교절인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인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년중 삼대 절기이다. 절기는 지켜도 그만이고 안 지켜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2장, 레위기 23장, 신명기 16장 등에 보면 유월절, 맥추절인 칠칠절 그리고 추수감사절인 초막절을 지킬 것에 대하여 자세하게 명하셨다. 

 

우리는 요즘 마무리해 가는 창세기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삭과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들을 통해서 어떻게 번성하며 변천사를 이루어 왔는가를 다시 한번 소상하게 묵상하고 있다. 야곱의 총애 받던 아들 요셉은 열일곱 살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다. 애굽과 주변 국가 들이 겪던 대 기근은 연세 많은 야곱과 그의 칠십명의 후손들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드나들던 야곱의 열 아들들은 자신들이 작당해서 이십 이년 전에 애굽의 노예 시장에 팔아 버렸던 배 다른 동생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그의 연세 많은 아버지 야곱과 그의 형제와 조카들을 포함한 칠십명의 온 가족들을 애굽에 이주시켜서 고센 땅에 정착하게 하는 대단한 역할을 하였다. 

 

하나님은 야곱과 그의 후손들이 애굽에 머무는 동안에 크고 강하고 번성하는 민족으로 그 수가 늘어나게 하셨다. 그리하여 출애굽할 수 있는 강성한 민족이 되게 하셨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면서 그 땅에서 얻는 소득의 첫 열매를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절기 신앙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감사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어디일까? 모세의 광야 시대에는 성막이었다. 성막 중심의 제사 생활은 모세 때에 시작해서 다윗 때까지 이어졌다. 하나님은 다윗의 소원과 준비를 따라서 그 아들 솔로몬의 때에 솔로몬 성전이 건축되게 하셨다. 오늘날은 성전 중심이 아니라 예배당 중심이어야 한다. 하나님께 제사하고 예배드리는 그 곳이 성막이든 성전이든 예배당이든 하나님은 그 곳을 ‘택하신 곳’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택하신 곳’을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는 곳’이라고 하였다. 신명기 16장 7절, 11절, 16절에도 보면 반복해서 ‘택하신 곳’에서 절기를 지키라고 강조하셨다.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신16:11)라고 하였다.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신16:16)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주일 날이면 그냥 가까운 이웃에 있는 아무 예배당에 가지 않고 멀리서 살지라도 부지런히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 왜냐하면 이곳, 예배당은 우리 각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택하여 구별해 주신 나의 예배의 집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가 되면 처처의 각 고을에서 며칠씩 걷고 나귀나 노새의 잔등에 짐을 싣고 가서라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렸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모여 예배드리는 이곳을 택하신 곳으로 여기고 다 같이 모여서 주를 섬기고 예배드리는 것이다. 

 

430년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출애굽한 이후 성막 중심의 제사 생활이 가능해 진 것은 놀라운 변화의 복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나. 노예 생활 430년이란 언약의 조상으로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겪어야 했던 참담한 세월이었다.

 

물론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던 요셉이지만 그는 늘 그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존귀한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애굽의 고센 땅에서 지내야 했던 야곱의 후손을 하나님은 창성하게 하셨고 때가 되어 광야로 인도 해 내셨다. 

 

오늘 말씀을 잘 보면 ‘땅’이야기로부터 말씀이 시작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살아가는 동안의 애굽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저들에게 주어진 땅이 아니었다. 그곳은 노예의 땅이요 고역이 끝나지 않는 고난의 땅이었다. 하나님은 원래 목축하며 방랑 생활을 하던 아람 사람 중에서 한 사람‘아브람’을 택하여 부르셨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애굽에 내려가서 지내던 날들을 주목하셨다. 6절과 7절의 표현처럼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란 학대요 괴로움이요 중노동의 연속이요 고통과 쓰라린 괴로움과 압제 속의 나날이었다. 그런 저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은 들으시고 보시고 출애굽하도록 인도하여 내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만 머물게 하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저들을 이끌고 인도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다. 

 

3절부터 9절까지에 보면 그 해의 토지에서 거두어 들인 첫 열매와 결실과 소산물을 광주리에 담아서 들고 나오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제사하되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3절에 보면 직접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라고 말하며 제사장을 통하여 내 대신 하나님 앞에 제사하도록 부탁하게 되어 있었다. 모세의 때에는 이처럼 제사장을 통하여 대신 제사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해서도 나의 하나님 혹은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못하고‘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셨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교훈하였다. 이와 같은 은혜의 시대에 살아가며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고 경배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며 복인가. 

 

여기서 ‘맏물’이란 첫 소출, 첫 열매를 일컫기도 하지만 제일 좋은 열매와 소출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사하고 제물을 드릴 때에 병들고 상하고 썩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드리겠나. 그 해의 결실된 열매와 소출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지 않겠는가. 2절에서 말씀하는 ‘맏물’이란 그처럼 가장 좋은 것을 드린 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들딸이 장성하여 사회 생활을 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 그 첫 열매를 하나님 앞에 봉헌한다. 옛날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는 첫 봉급을 타면 빨강 내복을 사서 어머니에게 선물하고 살색 내복을 사서 아버지에게 선물하던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부모도 부모이지만 첫 소득을 고스란히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봉헌하고는 한다. 왜냐하면 여기 까지 인도해 주신 건강, 지혜, 집중력을 비롯한 그 모든 성취의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와 인도하심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암 연구 학자로 알려진 원종수 박사와 그의 어머니가 그랬다고 하지 않나. 이처럼 첫 열매 신앙은 귀한 것이다. 하루의 첫 열매, 한 주의 첫 열매, 한 달의 첫 열매, 그 해의 첫 열매, 내 생의 첫 열매 신앙으로부터 시작해서 십일조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귀한 신앙인지 모른다. 

 

오늘 읽은 신명기 26장 11절 이후에 이어지는 12절 이하에는 다시 ‘십일조 생활’에 대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나. 그것으로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먹고 배부르게 하라고 했다. 15절 끝에 보면 그렇게 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경제가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환경에서도 어김없이 올해도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게 하신 하 나님 앞에 범사를 감사하며 진심으로 주께서 택하신 이곳에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예배의 시간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여호와 앞에서 경배하며 감사하라.

10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토지의 소산의 모든 맏물을 택하신 곳에 가지고 와서 제사할 때에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라”라고 명령하셨다. 제사장 앞에 두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하라고 하였다. 

 

신명기 26장은 모세의 두 번째 고별 설교의 마지막 부분이다. 모세는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전에 신명기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살아가는 생활이 어떠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매우 소상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여기서 ‘경배’(敬拜)라는 단어 ‘샤하아’는 ‘엎드린다, 몸을 굽힌다, 복종한다’라는 뜻이다. 즉 헌신과 복종을 다짐하는 공경의 표시가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땅의 모든 소산물의 첫 것을 좋고 틈실한 것들로 구별하여 광주리에 담았다. 그것을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건넸다. 제사장은 그것을 하나님이 택하신 곳 성전에 진설하였다. 그리고 예배하는 제사장과 백성들을 여호와 앞에서 땅에 다 같이 엎드렸다. 이것은 한해만 그렇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때가 되고 절기가 되면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서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다 같이 <날 만나라>라는 찬양을 부르자.

 

날 만나라 날 만나라 그룹 날개 사이에서 날 만나라

날 만나라 날 만나라 그룹 날개 사이에서 날 만나라

주 경배해 주 경배해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주 경배해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경배해

주 만나리 주 만나리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만나리

주 만나리 주 만나리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만나리

 

오늘 추수감사 예배를 드리는 주에 주님을 만나는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이제 다음 주일부터 강림절이 시작된다. 다섯 주만 지나면 성탄절을 맞이할 것이다. 성탄절이 무엇인가. 이상한 별의 이동을 따라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베들레헴의 마굿간에 탄생한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며 경배하였다. 엎드려 절하였다. 이는 베들레헴의 들판과 산 허리에서 밤새도록 자기의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수의 탄생을 목격하게 된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시므온과 안나도 마찬가지였다. 아기 예수께 경배하였다. 이는 곧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구세주로 탄생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경배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성탄절이 되면 <참 반가운 성도여>라는 찬송으로 찬송하지 않나. 그 후렴이 무엇인가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주 나셨네”

 

그렇다. 신앙생활이란 우리의 생명을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엎드려 절하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대속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엎드려 절하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리고 그 드린 모든 것들의 첫 열매를 가지고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다. 병든 자, 소외된 자, 가난한 자, 갇힌 자, 못 먹고 못 마시고 못 입고 헐 벗는 자를 돌아 보는 것이다. 그것이 곧 주 예수를 경배하는 것이다. 

 

이번에 선교 편지를 거의 다 다시 받았다. 아직 선교 편지가 도착되지 않은 선교지도 있기는 하다. 네팔의 임근화 선교사의 선교 편지도 받았다. 우리가 매달 후원하는 후원금으로 그 동안 적지 않은 신학생이 배출되었다. 고아와 과부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제공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몽골, 인도, 태국, 스리랑카,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 처처에서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몇 푼의 선교 헌금을 드리고 속회로 모일 때마다 얼마의 헌금을 모아 보내는 작은 일들이 모이고 쌓여서 세계의 처처에서 누군가에게 빵이 되고 누군가에게 한 벌 옷이 되고 누군가에게 학문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나에게 주신 땅에서 거두어 들인 토지의 모든 소산이 무엇인가. 도심 생활로 하면 나의 직장, 나의 일터, 나의 사업장, 나의 사업의 현장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구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아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 들고 나아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두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 간에 주변의 그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할 때에도 마음이 담기고 진심이 담긴 감사가 있고 그렇지 못한 형식적인 감사가 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린도 후서 9장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6-7)라고 하였다. 

 

 

주신 모든 복을 함께 감사하라.

우리는 우리 각 사람이 살아가는 개인의 생활과 각 가정에 내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안다. 11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이란 말씀을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내려 주신 복이 서로 다 다르다. 각 가정에 내려 주신 복이 서로 다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려 주신 그 복에 대하여 감사하여야 한다. 나의 가정에 나의 가족에게 내려 주신 그 복에 대하여 감사하여야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복을 남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지 않나. 나에게 주어진 그 모든 조건과 환경과 여건과 신체 구조와 건강 상태와 사회생활의 능력이나 신분에 대하여 남과 비교하면 안 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돌보심,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섭리에 절대 감사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생각하여 보라. 가나안의 대 기근이 아니었다면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식량을 구하러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의 대 기근으로 인하여 요셉이 생존해 있는 것을 형제들이 알게 하셨다. 요셉은 아버지와 어머니 라헬이 낳은 동생 베냐민과 형의 가족들을 포함해서 칠십명을 애굽으로 이주하게 한다. 고센 땅에 정착하게 한다. 바로 왕의 배려를 받게 한다. 이미 흉년이 이년 째 계속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오년이나 흉년이 계속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풍요로운 땅 고센에 정착한 야곱과 그의 가족 칠십명의 유축은 점점 번성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식량을 구하러 온 온 나라 백성들의 육축을 곡식과 바꾸게 되었다. 요셉은 그 엄청난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 떼를 형제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으로 몰아 주었다. 나중에는 바로 왕에게 속한 육축까지도 모두 다 고센 땅의 야곱의 아들들이 관리하게 하였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덮쳤던 대 기근으로 말미암아 연세 많던 야곱에게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요셉을 만나게 하셨다. 가나안 생활과 비교할 수 없는 목축의 번성을 애굽의 고센 땅에서 이루게 하셨다. 나중에 지내 놓고 보니 하나님은 번성하고 창대하게 하셔서 출애굽하게 하실 언약 민족의 저변을 준비해 가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낮추시기도 하시고 높이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망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신다. 하나님은 때리시기도 하시고 싸매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넘어지게도 하시고 일으켜 세우시기도 하신다. 돌아 보면 인간의 흥망성쇠와 길흉화복이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11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에 감사하여야만 할 것이다. 건강해도 감사 병들어도 감사, 잘 되도 감사 잘 안되도 감사, 형통해도 감사 매사가 꼬여 가도 감사...이처럼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기를 기대하고 계신 것이다.  

 

12월 16일, 금요 기도회 시간에 간증 집회 시간을 가질 것이다. 가마치 통닭 창업자인 김재곤 장로를 초청하였다. 지난 목요일 밤에 한국국제기드온협회의 은평 지부 예배에 초청 받아 갔었다. 은평캠프 회장인 그가 10분의 짧은 간증을 하였다. 그의 부모는 그가  15살 때에 세명의 동생과 자신을 남겨 두신 채 연탄 가스 중독으로 하룻 밤에 한 자리에서 돌아 가셨다. 소년 가장으로 않해 본 일이 없었다. 이십 대 초반 때에는 교통 사고 가해자가 누명을 씨우는 바람에 억울하게 옥에 갇혀 지내야 했다. 복수심에 불타서 옥에서 나가면 상대방을 찾아 내서 죽이고 자신도 죽을 결심을 하였다. 그런데 교도소 방 안에 있던 손바닥 만한 성경책을 펼쳐 읽는 중에 마태복음 6장 14-15절의 용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에 생각이 달라졌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라는 말씀이다.

 

그는 새 사람이 되었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는 청년으로 변화되었다. 출소 후에 열심히 생활하던 그는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첫 딸이 정신 장애아가 되었다. 부족한 딸을 키우며 하나님의 사랑과 손길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티와이 주식회사의 대표이다. 염광장로교회의 장로이다. 둘째와 셋째 딸은 국제적으로 유능한 인재들로 장성하였다. 그는 CBS 기독교 방송 TV의 <새롭게 하소서>에도 초대를 받아 간증하였다. 그의 간증은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것이다. 

 

지난 늦여름 포항에 폭우가 쏟아졌다. 지하 주차장에 자동차를 옮기려고 내려가는 어머니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던 15살짜리 중학생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지하실에 갑자기 밀려들어 오는 폭우에 휩싸여서 목숨을 잃었다. 엄마는 물이 가득 차오른 지하 주차장 천장의 배관 파이프를 붙잡고 매달려서 14시간을 버티다가 구조되었다. 포항 오천제일교회 김은숙 집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5살인 아들 김주영이를 지난 9월 6일의 힌남노 태풍과 폭우 피해로 잃었다. 그리고 한달 쯤 지난 후인 10월 9일에 그가 섬기는 교회의 예배 시간에 간증하였다.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얼마 전에 김은숙 집사는 35만명이 유튜브로 시청한 오륜교회 다니엘 기도회에 나서서 눈물을 머금고 간증하였다. 잠시 그의 간증을 듣도록하자.  

 

감사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 감사하며 사는가. 나는 무엇에 감사하고 언제 감사하며 살아가는가. 질문하여 보자.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나와 내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라고 명하셨다.

 

여기‘ 모든 복’이란 잘되고 평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형통하고 번성하는 것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복이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상황, 모든 경우, 모든 형편, 모든 성공, 모든 출세 그리고 반면에 모든 사건, 모든 아픔, 모든 괴로움, 모든 실패, 모든 상처, 그 모든 것을 망라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거나 죽거나 흥하거나 망하거나 번성하거나 쇠락하거나 잘되거나 혹은 안 되거나 그 어떤 상황, 그 어떤 형편 속에서라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1절 끝에 ‘즐거워할지니라’라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감사할지니라’라는 말씀이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그렇게 살아가라는 말씀이시다. 서로 다 다른 형편 가운데 맞이한 추수감사주일 아침이다. 범사에 감사하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주일맞이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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