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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전도자 바울의 감사(딤전1:12-17) 20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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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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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9-11 12:38 조회 4,714 댓글 0
 

                    전도자 바울의 감사(딤전1:12-17)          2022. 9. 11

 

 

추석은 민속적으로 감사하는 절기이다. 한해의 농사한 햇곡식과 햇열매를 손에 받아 들고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를 감사하던 절기 신앙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 중에는 추석을 전후해서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교회도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 요즘 무엇을 감사하나. 올해 이 때에 무슨 감사한 생각이 드나. 

 

바울의 13편의 편지 중에서 마지막에 쓴 두 편이 디모데 전서와 후서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함은”이라고 감사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디모데 후서 1장 3절에서는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라고 고백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감사의 사도이다. 그는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가르쳤다. 그 자신이 스스로 주님 앞에서 감사하는 사도의 삶을 살았다.

 

사도 바울은 주후 63년경에 2년여간의 투옥 생활을 마치고 4년 정도 복음을 전파하다가 주후 67년경에 제2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얼마 후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아마도 디모데 전서와 후서는 그 몇 년 동안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 그런 순교의 순간이 옥죄어 오는 긴박한 선교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디모데에게 이 두 편의 편지를 쓰면서 무엇을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는가.

 

 

직분(職分)을 맡기신 것을 감사.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감사의 이유를“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고백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하게 된다. “사울이 다메섹 체험과 부르심으로 변화 받기 이전에 그가 충성된 자였는가”라고 말이다. 다메섹의 변화를 체험하기 이전의 사울은 13절에 그가 회상하는대로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그런 그를 주님이 충성되이 여기셨다는 것은 12절을 시작하는 말씀인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라는 표현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 전파와 구원의 역사를 몰라서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을 자행하던 핍박자 사울에게 복음을 알게 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충성된 자로 살아가도록 다메섹 체험과 더불어 평생을 붙들어 쓰셨다. 이 모든 일들이 그의 복음 전파 여정을 능하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 것이다. 

 

그렇지 않나. 직분이란 ‘디아코노스’(διακονος )라는 용어는 ‘충성, 헌신’을 뜻하는 단어이다. ‘허드렛 일을 하다’라는 뜻의 ‘디아코’에서 유래하였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온갖 궂은일을 묵묵히 수행하여 이루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가에도 직분이 있다. 소위 공직자라고 한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장관으로부터 동 사무소나 시골 면사무소인 주민센터의 9급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공직자들이다. 저들이 맡겨진 일을 충성되게 감당하면 국가에서 주는 상을 받고 훈장을 받는다. 그러나 충성되지 못하면 대통령을 지낸 후에라도 감옥에 가는 것을 본다. 퇴임 후의 대통령 예우도 박탈당하기도 한다. 

 

기업에도 직분이 있다. 그 기업의 경영철학과 각 분야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구비한 인재를 채용해서 부서와 분야에 직분을 맡긴다. 대기업의 고위직 요직을 맡은 이들의 몸값은 연봉이 대단하다. 그런 몸값을 예우하는 이유는 주어진 직임과 직분을 잘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회장이라도 잘못하면 감옥에 가기도 하고 경영권이 제한되거나 박탈되지 않나. 이처럼 직분은 귀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일꾼을 부르셔서 교회를 중심으로 충성하게 하시는 직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직분을 충성되게 감당하지 못한 자들이 사도 바울 시대에도 있었다. 디모데 전서 1장 20절에 보면 후메네오와 알렉산더가 그런 이들이었다. 저들은 사탄에게 내준 불행한 이름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저들의 불행한 이름을 성경에 실명으로 기록한 이유가 뭘까. 저들처럼 사탄에게 끌려가 복음의 역사를 거슬리며 신성 모독하는 일들이 반복되게 하지 않으려는 주님의 의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영적 권위와 교회의 권위를 세워 가시는 주님의 섭리였다. 

 

사도 바울이 13절에서 회상하는 것처럼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을 반대하고 예수 믿는 이들을 악랄하게 박해하던 자였다. 사도행전 7-8장에서 대하여 아는 대로 사울은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마땅히 여기던 자였다. 그는 사도행전 8장 3절의 내용처럼 교회를 잔멸하던 자였다.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던 자였다. 사도행전 9장 1절에 보면“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라고 했다. 그랬던 자신의 과거를 사도 바울은 오늘 디모데 전서 1장 13절에서 회상하는 것이다. 비방자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독하던 자”란 뜻이다. 박해자란 “예수 믿는 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고 가던 자”라는 뜻이다. 폭행자란 “악의를 품고 남을 경멸하며 인권을 유린하던 자”란 뜻이다. 그런 형편 없이 포악하고 살기 등등하던 핍박자 사울이 변해서 이방 선교의 큰일을 감당하는 이방의 사도가 되었다. 주께서는 그에게 이방 사도의 직분을 맡기시고 충성되게 여기셔서 필요한 성령의 능력을 공급해 주셨다. 

 

지난 주 중에 영등포구에 있는 서울 남연회 <문래동 교회 70년사> 책을 받아 보았다. 1952년 7월 7일, 영등포중앙교회의 박정훈 속장의 집에서 10여명이 모여서 홍종숙 목사를 모시고 첫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70년 세월이 흘렀다. 교회란 그런 곳이다. 500여 페이지 대학노트 크기의 사료집에서는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자세한 자료와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생각하여 보라. 70년의 교회 역사이면 그 교회의 교회학교와 청소년부와 청년부와 청장년부의 성도들 중에서 나라 안팎에서 신앙으로 성장하고 자리 잡은 이들이 한 두 사람이겠는가.

 

디모데 전서에는 바울과 디모데의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이름도 있고 20절에 나오는 사탄에게 넘어가 버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의 안타까운 이름도 있다.

 

이는 2천 년 전의 초대 교회 때에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이다. 목사인가 전도사인가 교사인가 속장인가 부장인가 집사인가 권사인가 장로인가 그 어떤 직임이든 그 어떤 직분이든 충성되게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깨달은 복음을 귀하게 여기며 주어진 직분에 충성된삶을 살다가 간 역사적인 인물이 얼마나 많은가. 남강 이승훈, 월남 이상재, 고당 조만식,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송재 서재필,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인덕 대학교의 설립자 박인덕, 중앙대학교의 설립자 승당 임영신 등등 말이다.

 

중앙대학교 홈페이지에 실린 대학의 역사에 설립자 승당 임영신(1899∼1977)에 대한 이런 내용을 접하게 된다. 승당 임영신은 78년 동안 살면서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로서 영광과 시련과 고난의 일생이었다. 승당은 전북 금산읍(현 충남 금산)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승당 부모는 개신교를 받아들이고 근대적인 사상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딸은 가정적이고 평범한 여성으로 커 주기를 바랐다. 유난히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컸던 승당은 진학문제로 아버지와 자주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승당은 14살 때 금산을 방문해서 금산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있던 전주의 기전 여학교 설립자인 미국인 여자 선교사 미스 골든을 찾아 공부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골든 선교사가 전주 기전여학교 입학원서와 초청장을 보내왔다. 결혼을 강요하며 진학을 극구 반대하는 부모를 설득해서 15살 때에 기전여학교에 입학해서 중·고등 4년 과정을 졸업하게 된다. 승당의 인물됨과 애국정신은 학교생활에서부터 나타난다. 일본어 시간에 입을 열지 않는 등 혼자 항일의식을 다지고 있었던 승당은 같은 반 동무인 김연실의 집을 방문했다. 김연실의 아버지인 김인전 전주 서문교회목사를 만나면서 한국역사에 제대로 눈을 떴다. 김인전 목사는 후에 임시의정원 의장과 학무총장 대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기전여학교사 박현숙선생을 중심으로 승당과 여섯 동기들이 기도회를 조직하였다. 나라를 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매일마다 드렸다. 김인전 목사에게서 <동국역사> 책을 얻어다가 이를 여러 권 베껴서 전교생에게 돌려 읽도록 하다가 골든 교장에게 들통나 책을 서문교회에 모두 파묻는 사건도 있었다.

 

승당을 비롯한 기도회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공주회(公主會)라는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였다. 매일 조회 시간에 부르는 일본국가를 부르지 않고 신사참배도 거부했다. 교실에 붙어있는 일본천황 사진의 눈을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찔러 장님을 만들어놓는 등 반일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짧은 시간에 그의 일대기를 다 언급할 수는 없다. 그는 3. 1 운동 전주 지역 만세 운동을 주동한 혐의로 붙잡혀 6개월간 옥고를 치루었다. 그녀의 나이 20살 때의 일이었다. 일본 히로시마여자전문학교 유학 후에 공주 영명학교 교사로도 있었다. 나중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일본의 관동 대지진 때 학살된 수천 명의 한국 사람 사진첩과 사건자료를 가지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이승만을 만났다. 이승만은 제네바의 국제연맹에서 이 자료를 보이며 일본의 만행을 규탄, 대한민국의 독립을 주장했다.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유학생으로 공부하면서도 미국 한인 사회에 여자전문학교를 설립할 계획으로 학업 외  시간을 쪼개서 청과물장사, 주유소 경영, 불도저 운전까지 돈 버는 일에 열중했다. 한편으로 한인교회를 세워 선교사업을 전개하면서 이승만의 독립운동 업무를 뒷받침했다. 미국 생활 중 이승만의 청혼을 받기도 했던 승당은 남가주대학원까지 졸업하고 고향을 떠난 지 10년 만에 귀국해서 서울YMCA 총무에 취임했다. 그의 호 승당은 이승만의 ‘승’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승당은 서울 흑석동 일대의 토지 20만 평을 매입해서 운영난을 겪고 있던 15년이 된 중앙보육학교를 34살에 인수하였다. 그는‘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교육 이념을 마음껏 펼치게 된다. 승당은 모자라는 학교건립비를 충당하기 위해 또다시 미국으로 건너간다. 프랭크린 루스벨트대통령 부인을 만나는 등 노력 끝에 후원회를 조직하였다. 중앙보육학교 교사와 기숙사와 유치원을 세웠으며 오늘날의 중앙대학교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 당시 그는 과거 감옥에서 고문을 많이 당한 후유증으로 사경을 헤매기도 하였다.

 

미주에서 활동하는 이승만을 지지하던 승당은 광복 후 이승만 중심의 대한민국대표민주의원 의장이었던 이승만의 비서로 일하면서 유엔대표로 유엔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승당은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정치에서 손을 떼고 교육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대한교육연합회장, 상공일보, 경제일보 사장, 한국부인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68년에 아이젠하워상, 1969년에 대한민국 청조근정훈장 등을 수상했다.

  

 

긍휼(矜恤)을 입은 것을 감사.

바울의 13편의 서신을 관찰해 보면 디모데 전후서에서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문안하고 있다. 다른 11편의 편지에서는 “은혜와 평강”을 문안하던 그인데 ‘긍휼’을 더하여 문안하고 있다. 긍휼이 무엇인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쓸 그 당시의 초대 교회는 어디를 가나 이단인 영지주의와 유대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다. 그런 당시에 디모데가 영적으로 담대하고 강건하게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절대적인 긍휼하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긍휼이란 고난과 역경을 겪는 믿음의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한이 없는 사랑과 위로”를 일컫는 말이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영적 도전과 시련과 위협 앞에서 믿음을 지켜 가며 기쁨과 안식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한 극진한 애정과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긍휼하심이 임하기를 문안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을 입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13절과 16절에 보면 “긍휼하심을 입은 것은, 긍휼하심을 입은 까닭은”이라고 간증하고 있지 않나. 그렇지 않나. 주의 긍휼을 입지 못하였다면 감히 어떻게 죄인 중의 괴수와 같던 자신이 이방 복음 전파의 선봉에 세움을 받는 역사적인 사도가 될 수 있었겠는가. 

 

변화 받기 이전의 사울은 율법의 확신에 붙잡혀서 그렇게도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하고 박해하고 비방하고 폭행자 노릇을 하며 지냈다. 그런 어리석고 악했던 자신을 부르셔서 용서하시고 긍휼을 덧입혀 주셔서 이방의 세계를 향한 위대한 사도의 삶을 살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인가. 

 

그렇지 않나. 김익두(金益斗, 1874~ 1950)목사를 보라. 황해도 안악군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김응선 씨는 큰 기와집에 사는 부자였다. 불쌍한 걸인을 구제하고 동네 노인들을 잘 존경하여 신임과 존경을 받는 분이셨다. 그러나 김익두가 13세 되던 해에 어머니는 전염병으로 눈을 감았고 몇 해 후에 아버지도 잃었다. 그는 준비하던 과거 시험도 순조롭지 않았다. 가족 생계를 위하여 장사를 시작했고 점차 가정 생계에 안정을 되찾았다. 18살에 장가들었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서 조상 전래의 땅과 집이 차압으로 몰수되고 김익두는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되었다. 낙심한 김익두는 그만 술타령을 시작했다. 요즘 같으면 어림 없는 행동이지만 술을 마시고 거리에 나가 공연히 사람을 치고 때리고 팼다. 장날이 되면 술에 취해 장마당에 나타나 부녀자들과 심지어는 할머니들이 물건을 팔려고 진열해 놓은 광주리들을 발길로 차고 밟고 던지기가 일수였다.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실정이니 그 광태(狂態)가 극에 달했다. 그래서 장꾼들이 장에 오면서 성황당에 들러 "오늘 김익두 안 만나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리곤 할 지경이었다.

 

어느 날 장터가 나갔다가 서양 선교사가 주는 전도지를 구겨서 주머니에 넣고 집에 돌아와 무심코 그 전도지를 읽어보았다. "인생이란 무엇이냐?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이 꽃과 같으나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세세토록' 있느니라” 익두는‘세세(世世)토록'이란 글자에 관심을 가졌고 이상하게도 마음을 찔렀다. 그러던 참에 며칠 후에 친구 박태환이 찾아왔다. 스왈렌 선교사가 와서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가보자는 권면이였다. 익두는 기꺼이 친구를 따라 나섰다. 부흥회를 통해 김익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회심의 눈물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다짐했다. 그 날부터 미친 듯이 기도하기에 전력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어 매일 처럼 성경 읽고, 기도하는 일로 미친 사람 같아 보였다. 성령 받은 김익두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불신자를 바라볼 때 그들의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도무지 견딜 수 없어 노방전도에 나섰다. <멀리 멀리 갔더니>라는 387장 찬송을 부르고 또 불렀다. 배위량 선교사 부인이 1895년에 작사하여 불리던 찬송가였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와 정처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주여 곧 가까이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초기에는 “쉬 떠나지 마시고 부형같이 됩소서”라고 불리었다. 김익두는 이제는 술망나니 깡패가 아니고 전도자로 변화 받은 모습으로 길거리에 나섰다.  

 

기적의 부흥사로 명성을 떨친 김익두는 한 번은 길가의 앉은뱅이를 보고 베드로의 이적을 연상하며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사실 그때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났고 확신이 없이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결국 일주일간 금식하고 다시 도전하여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그 후 39년간 수십만 명의 병자들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가 지속되었다.

 

그 당시 서울 승동교회를 8년째 담임으로 시무하던 때이다. 종로경찰서에서는 형사를 보내서 그에게 신사참배를 하도록 강요하고 협박하고 강제로 체포 연행하여 극심한 고문을 가했다. 몽둥이로 개 패듯 두드려 때리고 시멘트 바닥에 눕히고 구두발 길로 차고 밟았다. 얼굴에 보자기를 씌우고 물을 붓고 고춧가루 탄 물을 주전자에 넣어 코 구멍에 붓는 등 갖은 잔인한 방법을 계속하기를 한 달간 계속했다. 이제는 김익두목사가 빈사 상태가 되어 아무런 반응도 없자 그를 데려가라고 가족에게 연락했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목회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적을 두고 있던 직전리교회를 담당했다. 그 후 정착해서 목회에 전념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6·25 전쟁이 일어났고 김익두 목사가 거주하는 신천(信川)지구는 북한에서도 반공 세력이 가장 강력한 지역이었다.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해 온다는 정보에 발맞추어 궐기하기로 내정이 되어 있었는데 국군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접하고 10월 13일에 너무 이르게 의거하게 되었다. 13일 하루 종일 의거한 아군과 패주하는 괴뢰 잔당들과의 전투가 종일 벌어졌다.

 

김 목사는 반가운 이 소식을 듣고, 너무 감격하여 1950년 10월 14일 새벽종을 오래 쳤다. 교인들이 모여들어 새벽예배를 마치고 국군이 곧 입성할 것이니 환영회를 하자는 광고까지 했다. 교인들은 일단 돌아가고 김익두 목사와 20여명의 교인들이 계속 남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패잔해 가던 괴뢰군 일단이 교회당 담 밖에 숨어서 김목사의 광고 소리를 모두 듣고 교회로 습격해 들어왔다. 그리고 강단에서 기도하고 있는 김익두 목사를 총으로 쐈다. 함께 기도하던 교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6. 25 중에서도 피난을 거부하며 교회를 지키던 그는 76세의 나이로 새벽 강단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주님의 품에 안겼다. 김익두 그는 평생을 주님의 긍휼을 입고 살아가던 주님의 사람이었다. 

 

사도 바울을 목이 베어져 나가는 순교의 순간까지 붙든 힘이 주의 긍휼하심이었다. 바울 사도는 선포한다.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1:15)

 

바울 사도는 16절에서“주께서 일체 오래 참으심으로 자신에게 긍휼을 입게 하셨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증언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처럼 형편없고 못된 복음의 핍박자를 주의 긍휼로 변화시키셔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나중 편지인 디모데후서 1장 13절에서도 “너는...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 받아 지키고”라고 권면하였다. 

 

은혜(恩惠)가 넘치도록 풍성한 것을 감사.

누가 나더러 “당신은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말하면 쉽게 받아 들이겠나. 그러나 사도 바울은 누가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하기 전이 미리 자기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영적 자기 발견, 영적 자기 수용, 영적 자기 진단은 얼마나 크나큰 은혜인가.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세 가지의 풍성함을 고백한다. 은혜와 믿음과 사랑이다. 은혜란 하나님께로부터 그에게 임한 구원을 말한다. 믿음이란 그런 구원의 은총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인 반응과 응답을 말한다. 사랑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은혜와 믿음과 사랑은 하나이다. 사도 바울은 은혜와 믿음과 사랑이 자신에게서 넘치도록 풍성하였다고 간증하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나. 영화 <사도 바울>에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을 옥에 가두고 심문하고 고문하고 함부로 대하는 로마의 백부장에게 이런 대화를 한다. “그대는 바닷물을 손으로 뜨면 무엇이 남는가.”“그야 물론 다 흘러내리고 젖은 손의 물기 말고는 남는 것이 없지”, “인생이란 그런 것이요. 바닷물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와 같은 것이고 우리는 매 순간 그 안에서 무엇을 붙들려고 하지만 우리 손에는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것과 같은 것이 인생이오.”라고 대화를 이어간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나. 이 세상의 권력, 명예, 재물, 건강, 젊음, 인기 등등 그 무엇 하나 영원한 것이 있는가. 없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영원한 분이 계시다고 선포하고 있다. 17절을 보라. 

 

영원하신 왕

썩지 않으시는 분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

홀로 하나이신 분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시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2022) 여왕이 96세로 생을 마쳤다. 70년 동안 여왕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세상의 왕은 이처럼 영원하지 않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영원한 왕이시다. 그는 썩지 않으시는 분, 불멸하고 불변하시는 왕이시다. 그는 홀로 하나이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바울 사도는 오직 존귀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실 분은 우리를 부르셔서 직분을 맡겨 주시고 긍휼과 은혜를 풍성하게 덧입혀 주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 뿐이시라고 선포하고 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늘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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