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지나간 현재이다. 또한 미래라는 시간은 다가오고 있는 현재이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를 통해서 과거를 해석하고 교훈삼고, 현재를 통해서 장래를 꿈꾸며 미래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나라나 민족이든 역사가 있다. 오늘 본문인 105편은 다음 편인 106편과 또 하나 78편과 함께 역사시라고 한다. 78편은 아삽의 시로 되어 있으나 105편과 106편은 누가 언제 쯤 하나님의 감동으로 썼는지 시대와 저자를 알 수 없는 시편 중의 하나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이 있다. 역사 속에 섭리하셨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드러냄으로 주께 감사드리고 예배드리는 형식이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예배드릴 마음이 우러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특히 시편 78편을 읽어 보면 그런 교훈이 훨씬 강하게 전해져 온다. 시편 87편 4절에 보면 역사시를 전하는 특징을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라고 했다. 또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시78:7) 조상들이 범했던 완고하고 패역하고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고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되지 않았던 죄를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78편의 마지막 절인 72절에 보면,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라고 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인 105편에 돌아와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까를 교훈한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하신 언약을 때가 되면 다 이루신다. 온전히 이루신다. 중요한 것은 그 언약 안에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105편의 8절부터 10절까지에 그런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천대에 걸쳐서 영원히 기억하는 아버지이시다. 여기서 천대란 단지 30,000년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리하시겠다는 말씀이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행하신 언약과 맹세와 율례는 주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유효한 영원한 언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105편은 그와 같은 하나님께 이렇게 살아가라고 노래한 예배시이며 역사시이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 어떻게 대하면서 살아가라고 했는가.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고” 감사하라고 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한 것뿐이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감사하게 된다. 지금 내 환경과 여건과 주변의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 사는 이들은 다 자기 노력의 열매를 자기가 먹는다고 여긴다. 모든 것의 중심이 나 자신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마음 바탕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 우리가 맥추 감사 헌금의 일부를 네팔의 고아원 어린이들을 위하여 보냈다. 잘 한 일이다. 고아와 홀로된 가난한 여인들과 병든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준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시지 않았나. 우리가 추수 감사 혹은 맥추 감사절기와 같이 특별한 절기 때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 감사를 노래하고 찬양하며 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찬양을 불러보자.
“감사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감사하라.”
장미꽃을 보며 감사하고 그 장미의 가시를 보면서도 감사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찬양도 또 불러 보라.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론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 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 꽃 감사 장미 가시도 감사
따스함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J. A. Hultman 이란 사람이 작사하고 작곡한 세계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감사 찬양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는 것이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시비하고 판단하며 살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란 말이다. 감사하며 그 감사가 배가 되고 감사하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걱정 근심 염려 불안 초조 우울 낙담 두려움 원망 불평 같은 것들은 모두 다 진공청소기를 쑤욱 하고 빨아 들여서 쓰레기통에다가 비닐봉지에 꽁꽁 묶어 내어 다 버리고 오직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요 기대하심이다.
요즘 계속하여 골프계의 정상 신화를 쓰는 주인공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미 지난 해 일이지만 신지애는 2007년 국내 골프 대회 9승 달성하고 2008년 국내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하며 2010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 랭킹 1위에 등극했다.
경기 중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아 '미소 천사'라는 애칭이 따라다녔던 신지애는 16살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1년간 고생하시다가 돌아 가셨다. 같은 차에 타고 있던 동생 둘도 크게 다쳤다. 지난 2003년에 있었든 가정의 그런 불행을 딛고 오늘 날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중상을 입고 목숨이 살아남아 병원에 누워 있는 동생 둘을 밤새 간호하고 새벽부터 골프 연습장으로 향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여 동생 지원이는 서울 대학교의 물리 천문학부에 합격해서 공부하고 있다. 맏이인 신지애가 16살 때부터 소녀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해 온 열매였다. 1988년생이니까 올해 24살인데 이미 골프를 통해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정작 그의 꿈은 ‘인격적으로 존경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애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처음으로 골프 연습장을 찾은 이후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돼 무섭고 빈틈없는 아버지와 함께 매일 19시간씩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만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지애가 엄지발가락 발톱이 파고 들어가서 곪아 수술을 했는데 골프화의 엄지발가락 부분만 구멍을 파서 퍼트 연습을 시킬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에 대하여 딸 신지애는 “골프 하게 해 주신 것 감사하고, 오늘 날까지 붙들고 격려하고 채찍질 해 주신 것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것이 감사한 것이다. 신지애는 "대회 마지막 날을 앞두고 어젯밤 흥분이 돼 잠을 자지 못했고, 너무 떨려서 찬송가를 듣고 성경말씀을 읽었다"고 자신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에 대하여 말했다. 기도와 찬송과 성경말씀 묵상 등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대회 마지막 날 역전 우승을 할 수 있었다는 고백도 했다. 그의 신앙에는 아버지 신재섭(49) 목사가 많은 영향을 줬다. 광주 미문교회 협동목사인 그의 아버지는 운동을 워낙 좋아해 젊은 시절 배드민턴과 볼링 부분의 전라남도 대표를 지낸 적도 있다. 신 목사는 딸을 낳으면 운동을 시키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신 목사는 1999년 지인이 만든 골프 연습장에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지애를 데리고 갔다. 지애가 의외로 공을 잘 맞히는 것을 보고 연습장 쿠폰을 끊어줬다. 지애는 2개월 뒤 경험삼아 나가본 전남 도내 골프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이것이 신지애가 골프를 계속하게 된 계기가 됐다. 신지애 에게도 시련과 역경이 있었지만 모두 신앙으로 이겨냈다. 2003년 전남 목포의 이모 집에 가던 어머니와 두 동생이 교통사고로 1년 동안 병원치료를 받다가 어머니는 끝내 숨졌다. 당시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던 신 목사의 월급 90만원으로는 병원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잃은 신지애는 아버지와 두 동생과 함께 6년 전만 해도 월 15만 원짜리 사글세방에 살면서 골프를 했다. 신 지애 에게 골프는 귀족 스포츠가 아니라 처절한 삶이었다. 그의 브리티시오픈 우승은 이러한 눈물과 기도의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골프는 '멘탈 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심리적인 평안과 담대함, 집중력 등이 요구된다고 한다. 특히 기술적인 차이가 거의 없는 프로선수들 사이에서는 대회 당일의 심리적인 상태는 승부와 직결돼 있다. 사실 신지애의 스윙 기술은 다른 LPGA 선수들보다 나은 수준은 아니고 오히려 보완할 점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승인은 다른 데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역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경기 중에도 찬송가를 부르는 최경주가 PGA 무대에서 선두그룹을 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신앙은 결정적인 승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지애는 한국여자프로골프계에서 3년째 1인자로 군림하면서 매년 1억 원씩을 소년소녀가장들과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섬기고 있다. 불행한 여건과 불운한 환경 중에서도 감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가면 감사할 일이 넘쳐 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불러 아뢰며 자랑하라.
성경대로 묵상하자. 1절과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고 했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 혹은 여호와여 혹은 주여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감사 찬양을 드리는 모습을 말한다. 요즘 새롭게 배워서 자주 부르는 찬송 615장으로 또 불러 보자. 이런 찬송들의 가사가 앞 못 보며 평생을 살아야 했던 F. J. 크로즈비 여사의 가사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 찬송가에도 22곡이나 그의 찬송가사로 되어 있다. 최고로 많은 분량이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279),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540), “나의 갈길 다가도록"(384),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531), “오 놀라운 구세주” (391), “나의 영원하신 기업"(435), “기도하는 이 시간”(361),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288),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큰사랑”(40),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498), "주 예수 넓은 품에“(417),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31), “예수 나를 위하여”(144),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176), “주가 맡긴 모든 역사”(240), “너희 죄 흉악하나”(255), “나의 생명 되신 주”(380), “십자가로 가까이” (439), “주와 같이 되기를”(454), “주께 한 걸음씩”(532), “후일에 생명 그칠 때”(608), “그 큰일을 행하신”(615)과 같은 찬송의 시들이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해서 잘못된 인생이 있는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면 그 누구나 그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복되게 하실 것이다.
어제도 은평 지방 장로 몇 분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데 어느 장로께서 5박 6일간 아내와 함께 모차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찰스브르크를 여행하고 돌아온 최근의 근황을 소개하면서 1070여년에 건축한 중세의 찰스브르크대성당들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찬탄하는 여행담을 들어 보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본거지인 미라벨 정원의 화려함을 소개하는 설명도 들어 보았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고 자랑한 민족들과 나라와 가정 치고 잘못된 나라나 민족이나 가정이 없다. 하나님을 높여 드리면 하나님이 인간의 범사를 존귀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노래와 찬양이다. 감사 찬양하고 경배 찬양하고 계속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는 것이다. 찬송하면 전쟁도 이기게 하신다. 기도하고 찬양하면 빌립보 감옥에 있던 사도 바울과 실라에게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자결하려고까지 불안해하는 것처럼 기적의 옥문이 열리게 하신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선언이 이때에 나온 선언이 아닌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9:27)하고 소리 높여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부르고 의지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두 맹인이 이처럼 소리를 지를 때에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주여 그러하오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저들의 눈을 만지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9:29)고 선언하실 때에 그 두 맹인의 눈이 밝아졌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자랑하고 드높일 때에 L. 월리스의 소설 ‘벤허’와 같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책이 먼저 있었기에 와일러 감독의 ‘벤허’같은 영화 제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할 때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책이 가능한 것이다. 헨델의 ‘메시야’ 같은 작곡이 주어지는 것이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같은 역사적인 미술과 조각의 거장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하고 높이며 살면 하나님도 그 인생을 자랑스럽게 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신 기이한 일을 만민에게 전파하여 알게 하라.
하나님께 이렇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하고 드높여 드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크고 비밀하고 놀라운 기적과 이적들을 천하 만민에게 전하여 알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만민들에게 자꾸 말해서 알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행하신 열 가지 재앙의 사건들을 말하라는 것이다. 홍해를 누가 갈랐는지 광야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누가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고 반석의 생수를 마시게 하고 신발도 해지지 않고 옷도 해지지 않게 해서 살아가게 하셨는지 말하라는 것이다. 누가 그 많은 광야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기리우고 덮어서 인도하셨는지를 말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드높이며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면 어떤 복이 임한다고 했다. 오늘 본문의 성경대로 묵상하자. 크게 네 가지의 축복을 말씀했다.
마음이 즐거워진다.
능력이 임한다.
그 얼굴의 은혜와 평강이 임한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과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다. 마음의 희로애락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이요 은혜요 선물인 것이다. 3절에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라고 했다. 하나님 안에서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더해 가기를 소망하자. 주일날이 바로 그런 날이다. 찬송 43장 1절처럼,
“즐겁게 안식할 날 반갑고 좋은 날 내 맘을 편케하니 즐겁고 기쁜
이 날에 천하 만민 다 보좌 앞에서 참되신 삼위일체 다 찬송부르네”
주 안에서 이런 기쁨과 이런 즐거움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자.
또한 하나님께 구하면 능력이 임한다. 왜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면서 살아가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시편 105편 24절의 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크게 번성하게 하사 그의 대적들보다 강하게 하셨으며”라고 했다. 이런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자.
뿐만 아니라 4절에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다는 뜻이 무엇일까. 민수기 6장 25절과 26절에 보면,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구하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늘 새롭게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 어제 아침의 햇빛이 다르고 오늘 아침의 햇빛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일정한 아침 빛 같이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사무엘과 다윗과 엘리야와 엘리사의 때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들과 사도 바울의 때에 있었던 하나님의 기적과 이적들을 기억해서 자손들에게 계속하여 말하고 만백성들에게 전파하라고 했다. 이것이 복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복이요 능력이요 은혜요 평강이요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회복이요 은총인 것이다. 그가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살아갈 때에 또 새로운 기적과 이적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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