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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행13:1-1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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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5-15 07:22 조회 21,217 댓글 0
 
국가와 교회와 가정 이 셋을 놓고 볼 때에 항상 국가는 그 시대의 교회와 가정의 영향을 받으며 유지되고 발전되어 왔다. 이것이 그 시대의 문명을 보는 눈이어야 한다. 국가가 교회와 가정을 유지하는 힘이 아니다. 교회가 국가나 가정을 지탱해 주는 것이다. 또한 가정이 그 시대의 국가를 말하는 것이다. 가정이란 몇몇 가족들이 모여 사는 최소한의 공동체이다. 부모 혹은 아버지 없는 어머니만의 가정 혹은 어머니 잃은 아버지만의 가정에서 아들딸이 자라난다. 그런데 지내 놓고 보면 그 가정이란 곳에서 교회와 국가의 지도자들이 자라나는 것이다.

요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국보 제 1호 즉 남대문인 숭례문의 재건 공사에 쓰이는 소나무들은 일반 소나무가 아니라 저 강원도의 울진 지역의 깊은 산 중에서 몇 백 년 동안 사람의 눈길에 숨겨져서 동해 바다의 태평양 바람을 받고 곧게 자란 금강송이다. 지난해 광복절에 첫 공개된 광화문 간판이 균열이 생겨 문제가 되고 다시 제작에 들어간 것처럼 가정이 소중하고 교회가 소중한 것이다. 금강송을 벌목하고 건조하고 제작하는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 간판 하나 다시 제작하려고 해도 시간과 세월과 전문성과 정성이 필요한 것을 본다.

오늘은 국가적으로는 스승의 날이며 가정의 날로 정해진 날인데 주일로 맞았다. 전통적으로는 군사부일체라고 했다. 나라의 임금,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 가정의 가장인 아비를 한격으로 보아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같은 권위나 질서가 무너져 가기 시작하였다.

최근에 나온 성경통독원 조병호 박사의 새 책이 있다. <성경과 5대 제국>이란 책을 쓴 조병호 박사의 글에 보면 앗수르와 바벨론과 바사 즉 페르시아와 헬라와 로마의 흥망성쇠의 배후에는 결국 그 영원할 것 같던 국가들이 무너져 간 이유 중에는 통치자의 교만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타락과 범죄를 지적하고 있다. 한 개인이 왕국에서 시작해서 민족국가 제국주의라 변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는 것이 교만의 늪에 빠져서 무너져 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같은 패망의 늪에서 인생을 건져 내는 힘이 가정과 교회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 장면들을 대하게 된다. 5절과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2절과 4절과 9절에 ‘성령이 이르시되,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성령이 충만하여’라고 했다. 결국은 한 가정에서 한 인생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교회와 시대의 사명자로 살아가는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균형 있는 역사가 있었던 점을 발견하게 된다. 가정의 달이 다 지나가기 전에 이 말씀을 묵상하길 원한다.

사도행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행전이요 성령 행전이었다. 사도행전이 시작되는 1장의 초반부에 보면 이 점을 명확하게 해 준다.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복음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였음을 반복하여 언급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시고 가르치시고 명하신 기록이 복음서이며 누가복음이라는 강조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시작 또한 성령으로 사도들에게 명하신 말씀을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도 사십 일간 늘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다가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하신 사실을 강조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와 성령 받을 것을 분부하는 내용의 반복이었다. 이 같은 말씀과 약속으로부터 교회가 탄생되고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어 온 것이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경적인 시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난 이천년 동안 세계 처처의 선교를 통하여 계속하여 이어져 오고 있다. 다음 주일인 5월 22일은 존 웨슬리 회심 273주년 기념 주일이다. 1738년 5월 24일 평범했던 한 사람의 변화와 성령 안에서의 은혜 체험이 오늘 날 270여년 만에 세계 속에 놀라운 일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교회와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성령 강림절을 기다리는 달이다. 한 사람 존 웨슬리의 변화 체험이 말씀 운동과 기도 운동과 성령 운동과 사회 구석구석의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섬기는 섬김 운동으로 번져 간 것처럼 새롭게 탄생된 예수사랑교회의 성도들 각 사람이 지난 날 존 웨슬리의 은혜 체험과 같은 그런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도행전은 1-7장까지가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내용이다. 8-12장까지는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번져 가던 복음 전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 13장부터는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한 이방 선교의 시작을 알려 주고 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이 ‘안디옥 교회’라는 교회 이름으로 부터이다. 사실 여기서 말씀하는 안디옥 교회란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안디옥에 있는 교회’라고 해야 옳다. 사도행전 8장 1절에 예루살렘 교회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왜 여기서 말하는 ‘안디옥 교회’란 이름이 소중한 것일까. 이제 드디어 예루살렘 교회가 아닌 새로운 지역의 새로운 교회가 탄생되어 성장되어 가는 새로운 선교 지평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인 성도들이다. 사도와 성도들로 구성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신자들의 무리가 교회인 것이다.

성도인 우리가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고 사단의 궤계를 이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각 사람이 몸담고 살아가는 가정이 건강하고 안정되고 행복하여야 하는 만큼 교회 또한 평안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충만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보면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 주는 말씀들을 대하게 된다.
 
다양한 선지자(先知者)와 교사(敎師)로의 부르심
교회에는 그 주요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교회의 성격과 성향이 결정된다. 안디옥 교회에는 다양한 인종과 신분과 계급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 구브로 라는 섬사람 바나바와 피부 색 검은 니게르(nigro)라 하는 시몬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왕족이었던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도 바울인 사울이 저들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그 작은 시작이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는 안디옥 교회로 발전하고 부흥해 가게 된 것이다. 저들을 은사를 따라서 구분하기를 ‘선지자’들과 ‘교사’들이라고 구별하여 언급하였다. 물론 나중 바울로 불려 지게 된 사울은 사도의 칭함을 받은 인물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직분을 따른 부르심은 초대 교회를 이루어 가는 중심적인 인물들이었다. 물론 모든 성도들이 각각 은사와 역량과 신앙의 분량과 정도에 따라서 교회를 섬겨가는 그 내용이나 성향이 서로 다 다르긴 하지만 그 중심에는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들이 주요 구성원들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서 언급하는 선지자란 구약 시대의 예언자와는 좀 다른 역할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도행전 15장 32절에 보면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여기 이 말씀 가운데 보면 선지자란 어떤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나를 알 수 있다. 권면하고 믿음이 굳건하게 잘 세워져 가도록 섬기는 역할을 하던 사람들을 선지자라고 불렀다. 사도행전 21장 9절과 10절에 보면 초대교회 일곱 집사들 중의 한 분이었던 빌립 집사의  네 딸들이 모두 선지자였다. 이처럼 선지자란 성경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풀어 가르치고 전하던 영성이 있던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교사라는 직임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잘 가르치던 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교회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연구하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권면하고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 줄 수 있는 선지자요 교사의 직임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선지자요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의 관계가 명확하여야 한다. 세상 소리하고 제 지식을 말하고 자기 견해나 세상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전하고 가르치고 전파하고 해석하고 강조할 수 있어야 선지자요 교  사인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젖만 받아먹는 유약한 신앙의 상태에 머물러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전하고 권면하고 가르치며 말씀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그런 부르심이 충실한 인물들을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이처럼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들은 서로가 서로와 세상을 잘 섬겨 나갈 뿐만 아니라  금식하며 기도하며 복음 전파에 힘 쓸 때에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증거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에 안디옥 교회는 저들에게 안수하여 선교사의 사명을 갖고 또 새로운 복음의 불모지를 향해서 나아가도록 파송하였던 것이다. 1절에서 언급된 다섯 사람들 중에서 바나바와 사울 즉 바울이 함께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간 곳이 구브로라는 섬이었다.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큰 섬이다. 사도행전 4장 36절에 보면 바나바 즉 요셉이란 이름의 레위 족 한 사람을 언급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구브로 출신이다. 바나바는 자기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던 사도행전의 중심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사울을 발굴하여 예루살렘 교회와 초대 교회 이방 선교의 선봉에 사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요 사도로 세워져 갈 수 있도록 배후에서 도왔던 탁월한 영적 감각을 가졌고 겸손했던 인물이다. 그 바나바가 지금 사울 즉 바울 사도와 함께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구브로로 선교를 떠나고 있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늘 기도하고 금식하고 주를 섬기면서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는 공동체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구브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나바와 바울 곁에 5절에 보면 요한이 있었다. 여기서 언급되는 요한이란 인물은 마가 요한을 말한다. 성령이 임한 마가 다락방의 그 주인 집 아들이며 바나바의 생질 즉 조카이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 마가를 ‘바나바의 생질인 마가’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저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충만해 있던 인물들이었다. 준비되어 있어야 쓰임 받는 것이다. 나는 늘 우리 모두가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일 예배 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 예배와 기도회와 말씀을 듣고 배우고 연구하는 모든 기회에 적극 참여하고 성실하게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 나갈 때에 말씀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한 개인과 주변을 변화 시키는 거룩한 운동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묵상하고 전하는 일을 반복할 때에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와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금주 속회 묵상 자료는 몇 해 전에 주일 설교 시간에 언급한 적이 있는 인물 다하라 요네코에 관한 내용이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버릇없이 자라던 한 소녀가 철도 자살을 기도했다. 그 사고로 오른쪽 손의 손가락 세 개만 남기고 두 다리와 왼쪽 팔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지는 중상을 당했다. 자살 기도의 이유는, 응석을 받아주며 사랑해 주던 어머니가 세상을 뜬 것. 그녀의 나이 열여덟 살의  꽃다운 나이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우울증이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생은 그때부터가 의미 있는 삶의 시작점이었다.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죽지 못하게 살려놓은 의료진과 주변을 향해 저주를 퍼부어대던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이 다가온 것이다. 일본에는 기독교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데 그 얼마 되지 않은 기독교인 청년 순회전도자를 만나게 됐다. 그녀는 그를 통해 생의 의미를 육적인 데서가 아닌 영적인 데서 찾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라, 또 다른 특별한 의미로도 다가와 주었다. 사지가 멀쩡하고 미남인 그는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까지도 안겨주었다. 사랑을 통해 인생관을 새롭게 쓰기 시작한 그녀는 끈질긴 재활 훈련과 성경공부, 기도생활을 하며 또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 평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둘은 그리고 부부가 되었다. 한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은 엄마를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하는 두 딸을 갖게 했으며 실로 수많은 장애인뿐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과연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황홀함을 충분히 가르쳐 주고도 남음이 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다하라 요네코 여사와 아키도시 목사의 러브스토리는 우리네 삶이 얼마나 큰 신비를 갖고 있는가를 웅변하고 있다.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를 쓴 다하라 요네코는 18살에 열차에 뛰어들어 두 다리와 한 팔을 잃었고, 남은 한 손도 손가락 셋만 남았습니다. 그 후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얻었고, 목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체험 하나를 소개했습니다.“오른손에 남은 세 개의 손가락으로 처음 감자 껍질을 벗기려고 했을 때의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바닥에 떨어져 굴러가는 감자를 필사적으로 쫓아다니는 내 마음엔 초조와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아버지! 저 같은 인생도 자녀로 삼아 주셨고 결혼까지 하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남편이 돌아올 것이고, 아이들도 저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감자를 깎을 수 없습니다. 제 약함을 다 아시오니 이 감자를 깎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기도를 끝냈을 때 형용할 수 없는 평안이 넘쳤고, 그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급히 다른 감자를 씻어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반으로 쪼갰습니다. 반쪽을 도마에 엎어 놓고 껍질을 벗겨 나갔는데, 감자가 도마 위에 붙어 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결국 감사로 드린 기도는 평안을, 평안은 축복을 가져온 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다. 다하라 요네코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 아키도시 목사를 만나면서 그의 절망과 좌절의 막장 인생이 변하여 희망과 환희와 찬송과 기쁨과 감격과 사랑과 기적과 감동의 인생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을 전해 듣는 이들마다 가슴이 뛰는 삶의 충격과 도전과 희망을 얻게 하는 새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나바와 바울이 요한과 함께 선교하려고 들어간 섬 구브로에서 바예수라는 유대딘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에 그 섬의 총독이었던 서기오 바울이란 인물이 지혜있는 인물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였다. 그 때에 이 바예수라는 마술사가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대적하고 방해하고 있었다. 이때에 바울 사도가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 마술사 바예수를 책망하였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행13:10-11)

이렇게 꾸지람하였는데 그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 마술사 바 예수의 눈을 덮어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마술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복음 전파를 반대하고 방해하다가 재난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지역에 새롭게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려고 하면 사단의 반대와 대적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럴수록 더욱 더욱 기도하고 금식하고 주를 섬기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 나가야 한다. 결국은 총독 서기오 바울이 이 모든 된 일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를 믿게 되었다. 총독 서기오 바울뿐만 아니라 구브로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치심을 보고 놀랍게 여기며 주께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505장 찬송에 보면 이런 후렴이 있다. 

“전하고 기도해 매일 증인 되리라 세상 모든 사람들 듣고 그 사랑 알도록” 

이 같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계속되기를 기도하고 복음을 전파하자.

성령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의 말씀하심, 성령의 보내심, 성령의 충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예루살렘의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을 향하여 전파되어 가는 그 배후에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다. 2절에 보면 기도하고 금식하고 주를 섬겨 갈 때에 성령이 말씀하셨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4절에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실루기아를 거쳐서 구브로로 가게 된 것은 ‘성령의 보내심’이었다. 구브로 섬에서 활동하던 유대인이며 거짓 선지자이며 이름에 예수의 아들이란 거창한 이름을 가진 마술사 바예수의 대적과 방해를 물리치고 이겨낸 것도 사도 바울의 ‘성령의 충만함’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사명의 현장을 항하여 보내신다. 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사단과 마귀와 귀신의 훼방을 물리치도록 그 때 그 때마다 삶의 현장에서 증거를 나타내 보여 주시는 인격적인 임재를 체험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와 범사에 기도와 금식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이 같은 신앙의 균형 있는 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어른 아이 청소년 청년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성령세례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다. 고든 콘웰 신학교의 총장이며 구약학교수인 월터 카이저 박사를 비롯한 5명의 저명한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500페이지 분량의 두꺼운 책이다. 가톨릭, 개혁주의, 오순절, 은사주의, 웨슬리안 들은 각각 성령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성령을 체험하고, 어떻게 성령을 의지하며 사역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입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성령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다. 사도행전 13장의 2절에 ‘성령이 말씀하시고’, 4절에 ‘성령이 선교사들을 파송하시고’, 9절에 ‘선교 현장의 문제 앞에서 기도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대적자인 거짓 선지자 노릇하며 마술사 노릇하던 바예수를 영적으로 강력하게 제압한 것처럼 교회 현장과 가정과 세상 중에서 사단에게 지고 패하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의 복음 승리, 영의 승리,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의 주인공들이 모두 다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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