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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나는 네 하나님이라(사41:8-16)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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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03-24 21:39 조회 23,414 댓글 0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지만 그 중에 부모를 잃고 고아로 살아가는 슬픔과 외로움과 허전함과 쓸쓸함이란 겪은 주인공이 아니고는 말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고아라고 하여도 그 누군가의 손길에 의하여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고 살아가게 되어 있다. 사람은 절대로 세상을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없는 존재이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새 내각의 장관이 된 프랑스 입양아 출신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1973-)을 보라. 그녀의 한국 이름은 김종숙이다. 프랑스에는 주로 1970년대에 한국으로부터 입양된 약 11,000명의 한국계 프랑스인들이 있다. 그 중에 성공한 인물이 올해 39살인 플뢰르 펠르랭이다. 중소기업, 디지털경제부 장관이다. 그녀는 생후 6개월 때 길거리에 버려진 후 프랑스 가정에 입양되었다. 그녀는 원자력 물리학 연구원이었던 양아버지와 교육열과 모성애가 강한 양어머니를 만나 행복한 성장기를 보내면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프랑스 고등고시(ENA)에 합격하였다. 최고 엘리트들이 모이는 프랑스 감사원의 고위 관료를 지냈다. 남편도 ENA 출신 관료다. 그녀는 동양 혈통의 최초 프랑스 각료인 셈이다. 현 프랑스 정부는 34명의 각료 중 꼭 절반인 17명이 여성이다.

또 다른 사람은 프랑스 상원의원인 장-뱅상 플라세 (Jean-Vincent Placé, 1968-)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 프랑스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었다. 그는 노르망디에서 양부모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즐거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경제학과 금융법을 전공한 그는 1992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투신, 2011년 상원의원에 선출되었다. 프랑스 상원의원인 그는 현재 녹색당 상원 원내대표다.

물론 누구나 다 성공하고 다 출세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고아와 남편을 일찍 잃고 홀로된 여인들과 나그네 된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지존하신 창조의 근원이시고 섭리의 주인이시다. 우주역사 삼라만상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움직인다. 하나님이 해와 달과 별을 주관하시고 이 땅의 낮과 밤을 다스리신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과 족속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70억이 넘는 인류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나의 체질을 아시고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들어가고 나오는 출입을 아신다. 나의 생각도 아시고 느낌도 아시고 고민도 아시고 아픔도 아신다.

본문은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되었고 장차 150여년 후에 역사 속에 있었던 예언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이다. 하나님은 어제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래에도 영원히 살아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남한 땅에도 계시고 북한 땅에도 계시다. 서울에도 계시고 평양에도 계시다. 긴긴 역사의 편에서 보면 지금 아니 요즘 일어나는 모든 역사의 사건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동방의 바사 제국 즉 페르시아가 고레스 임금의 때에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고 제패하였다. 바벨론이나 애굽이 연합하여 동맹을 맺고 신흥 세력인 페르시아를 이겨 보려고 하였으나 이길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페르시아를 통해서 당시의 역사 가운데 교훈하시고 말씀하시던 때였다. 그리하여 바사 제국은 근동의 강력한 제국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 국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바사 제국과 고레스 왕을 두려워하면서 고레스가 섬기던 우상을 섬기며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문의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민은 달라야 하고 다른 길을 걷고 다른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을 예언해 주셨다.

금번에 가족들이 모여서 양가에 살아계신 어머님께 세배를 드렸다. 함께 짧지만 시간을 갖고 함께 음식을 먹고 담소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헤어지기 전에 기도를 요청하였다. 양가 어머님들께서 자손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셨다. 장모님은 세배를 받으시면서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아가라고 덕담해 주셨다. 사실은 그래서 금주에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고 증거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 늘 기억하고 즐겨 하고 귀하고 복되게 여기던 말씀이지만 다시 또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이 되었다. 더불어 은혜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본문 그 앞부분인 7절 이전에서 언급하신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의 권력과 정치적인 힘만 의지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8절과 9절에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오늘 날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이시다. 너는 나의 종이라고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라고 말씀하신다. 택한 자라고, 벗이라고, 붙들어 주는 자라고, 땅 끝에서라고 불러 주시고, 절대로 싫어하거나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강조하고 또 다시 강조해 주신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관계를 하나님 자신이 반복해서 강조하시는 말씀이시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유산 받아가지고 다른 나라로 집 떠났던 둘째 아들처럼 내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잠시라도 잊지 아니하신다. 유모가 그 젖 먹이는 아기를 잠시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잊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시지도 아니하신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땅 끝에 가서 거하고 바다 끝에 가서 거할 지라도 하나님은 그 곳에 오히려 나보다 더 먼저 가서 계신 주님이시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전능자이시다. 나의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나의 장래까지도 모르는 것이 없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8절과 9절에 보면 “내가 택한 야곱아, 내가 너를 택하고”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셨다. 또한 요한복음 15장 19절 끝에 보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택하심의 은총을 깨달아 알고 나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모든 것이 신비하고 모든 것이 놀랍고 모든 것이 기대가 되고 모든 것이 새로울 뿐이다.

로마서 8장 30절의 말씀이 바로 그러하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미리 정(定)하신’이란 말씀이 ‘미리 택정(擇定)하셨다. 미리 택(擇)하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나를 창세전에 택정하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 날 우리가 이 길을 더불어 새로운 꿈의 공동체 되어 함께 가면서 사순절을 맞아서 새벽마다 깨어 일어난다. 도시의 저 끝에서 이 끝까지 총알같이 달려와서 새벽 기도회를 드리는 요즘의 우리의 모습도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신 바에 따라 택함 받은 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것이 시대적인 역사의식을 갖는 신자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신앙생활 현장에서 구경꾼이 되면 안 된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지금 우리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일의 현장에서 쓰임 받고 있는 주인공이다. 영화나 연극으로 하면 잠시 무대 위에 등장했다가 살아지는 단역 배우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우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될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벗 삼으시고, 친구 삼으시고 항상 붙들어 주시고 놓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택함 받은 자로 붙들어 영원히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하여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고 하셨다. 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표현인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그런 좋은 관계, 친밀한 관계, 남들이 부러워하는 관계, 복된 관계를 영원히 유지하면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
다 같이 10절을 읽어 보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무슨 말씀인가. 왜 두려움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나. 왜 놀랍고 충격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놀라워하지만 말고 침착하라고 말씀하시나.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요 능력의 주님이요 보호하시고 위로하시고 감싸 주시고 용기와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고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고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고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육신의 아버지라도 아들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이 정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라면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나의 가족과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힘주시고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싸이(Psy)가 세계를 날아다니면서 말 춤을 추면서 “갈 때까지 가 볼까”하고 선동하고 뛰는 동안에 북한은 지하에서 핵실험을 계속해 해면서 세계열강의 그 어느 나라 말도 듣지 않고 지금 갈 때까지 가보려는 막가파의 소행을 벌이고 있지 않는가.

이사야의 예언이 그런 시대의 예언이었다. 세상 그 어디를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허망한 시절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빌려서 이같이 예언해 주신 것이다. 역사를 보라. 애굽, 불레셋, 페르시아 그 어떤 나라 그 어떤 세력도 영원하지 않다. 헬라도 로마도 영원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영원하였는가. 고려, 조선이 영원하였는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시다. 이 세상에 영원한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자라야만 영원함이 있고 천국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이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물건을 갖듯이 소유하는 곳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는가.

신명기 31장에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놓고 이런 교훈을 교훈한 바가 있다.“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31:6-8) 이런 믿음이 매 순간  내 마음 속에서 불붙는 활화산처럼 용솟음쳐야만 할 것이다.


연약하여도 강대하게 사용하시리라는 승리의 약속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사41:14)라고 부르셨다. 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예전 성경에는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영어 성경에 보면 “O worm Jacob O little Israel"라고 했다. 그렇다. 벌레요 지극히 작은 자라고 부르신 것이다. 주변에 그 어느 누군가가 나를 향해서 ‘야 이 버러지 같은 인간아, 야 이 별 볼 일 없는 인간아’라고 말하면 속이 상하고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버러지처럼 약하고 무능하고 더럽고 추할 지라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선언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사41:10, 13, 14)고. 하나님이 나의 오른 손을 붙들어 주실 것이라고, “도와주실 것”이라고 다시 또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다.(사41:10, 13, 14) 그렇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과 민족과 나라와 개인과 가정을 세상 끝 날까지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고 이기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찬송하자. “주님여 이손을”

1. 주님여 이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2.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와 갈렙, 기드온, 드보라, 사무엘, 다윗, 이사야, 엘리야와 엘리사, 예레미야,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라, 학개, 하박국, 세례 요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사도 바울, 바나바,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손을 붙들어 주셨던 주님의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의 주님이시오 나의 주님이신 줄로 믿으라.

토마스 도르세이(Thomas A. Dorsey, 1899-1993)는 12살부터 파티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돈을 벌었다. 1925년 네티 하퍼(Nettie Harper)와 결혼한 후에 교회에 나갔고, 영적체험을 했다. 1932년 시카고 필그림침례교회의 지휘를 맡게 되어 40년간 계속했다. 1932년 가을 도르세이는 만삭된 아내 네티(Nettie)를 집에 남겨두고 이미 초청받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리는 부흥집회에 갔다. 집회 도중에 아내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시카고의 집으로 갔다. 도르세이의 아내는 사내아이를 낳은 후 이미 죽어 있었다. 죽은 아내를 위해 울다가 태어난 아기를 보며 웃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날 밤 갓 태어난 사내 아기마저 죽고 말았다. 아내와 아기를 같은 관에 넣어 장사를 지내고 집에 돌아온 도르세이에게는 감당 못할 슬픔이 밀려 왔다.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되었다. 더 이상 찬송을 부르거나 작곡하지 않고 교회도 다니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때 한 친구가 찾아와 말없이 도르세이를 작곡실 피아노 앞에 앉혀두고 나갔다. 저녁 햇살이 피아노 건반 위를 비쳤다.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 말할 수 없는 평화가 그를 감쌌다. 건반을 두드려 "주님여 이 손을"(Take My Hand, Precious Lord)을 작곡했다. 복음성가 가수인 그의 친구 테오도레 프레(Theodore Frye)와 그가 지휘하는 성가대가 다음 주일에 시카고 에벤에셀 침례교회(Ebenezer Baptist Church)에서 예배시간에 이 찬송을 처음으로 불렀다. 그는 94세까지 살았고 미국 복음성가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Gospel Music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피아노 교사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성이 뛰어났다. 그는 400여곡의 블루스와 재즈 음악을 작곡하였다. 이미 1928년도에 'Tight Like That' 이란 음반은 700만장이라 팔려 나갔다. 그의 피아노 솜씨는 뛰어났고 작곡과 편곡 실력이 탁월하였다. 그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잃은 후에 더욱 더 복음 성가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Gospel Music’이란 용어 자체가 그가 만들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였다.

“주님여 이손을 ”이 찬양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목사도 즐겨 부르던 복음성가였다. 1963년 8월 23일, 워싱턴 D. C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있었던 그의 흑인인권운동 가두시위 때에도 20만 명이 이 복음 성가를 계속하여 불렀다. 1968년 4월 4일, 미국 멤피스 다운 타운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하던 날에도 그는 뜻을 함께 하는 무리들과 함께 이 복음 성가를 불렀고 그의 장례식 장에서도 이 찬송이 울려 퍼졌다. 이 복음 성가는 나중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불러서 더 유명해졌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을 꿈꾸던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1964년 노벨 평화상이 주어졌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침례교의 목사였다. 1986년 미국 의회는 그의 탄생일을 기념해서 매해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그를 기념하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로 정하고 국경일로 지킨다. 그는 15살에 대학에 입학하고 의학과 법학에 관심이 많았으나 아버지의 소원을 따라 신학을 계속하여 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26살에 보스턴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 침례교회의 담임목사였다. 1955년 12월 1일에 시내버스 안에서 노자 파크스라는 흑인 승객이 자리를 비우고 일어나라고 강요한 백인 승객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이것이 인종 차별로 불붙었다. 그는 인종분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이와 같은 억울함을 알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앞장서서 시 의회와 1년을 다투었다. 결국 “흑인이라고 해서 시내버스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는 법안이 몽고메리 시 의회에서 결의되는 열매를 거두어 냈다. 그는 그 후 백인과 흑인의 인권 평등 운동에 앞장섰고 13년 후인 1968년에 39살 나이에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시작되는 그의 명연설과 인권 운동은 오늘 날 유색 인종 출신의 대통령을 재선시킬 만한 미국의 바탕을 이루어 오는 순교의 밑거름이 되었다. 

하나님은 잘 될 때에도 함께 계시고 안 될 때에도 함께 계신다. 기쁠 때에도 함께 게시고 슬플 때에도 함께 계신다. 형통할 때에도 함께 계시고 답답하고 억울하고 되는 일이 없는 것만 같을 때에도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버리지 같이 약하고 작고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과 오늘 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을 통하여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하므로 나의 앞에서 분노하던 이들과 다투려도 달려들던 이들이 오히려 수치를 당하고 욕을 당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사라지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나에게 싸우자고 달려들고 치려고 달려들던 이들을 찾아도 찾을 수 없고 만나길 원해도 다시 만날 수 없도록 대적자들의 앞날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리시겠다고 선언하셨다.(사41:11-12) 뿐만 아니라 대적자들을 바람에 날아가는 겨처럼 날려 버리시고 회오리바람으로 흩어 버리시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들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랑을 삼는 은총과 능력이 항상 샘솟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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