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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사55:10-1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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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7-10 01:41 조회 19,943 댓글 0
 
우리나라의 일 년 강수량은 1,300mm에서 1,500mm이다. 그 중에서 장마기간인 하절기가 가장 강수량이 많은 때이다.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도 요즘이 가장 저수량이 많다고 한다. 길이 600m 에 폭이 400 정도인 백록담이 물이 가득하게 고여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일 년 중에 요즘처럼 물이 많이 고인 경치를 보기가 쉽지 않아서 그 광경 보려고 제주도를 찾고 한라산을 찾는 관광객들도 많다고 한다. 요즘은 어디 가나 비도 많이 오고 강마다 하천마다 물이 벙벙하다. 어떤 나라는 건기와 우기가 나뉘어져 있어서 건기 때에는 온 천지가 먼지투성이이고 반대로 우기 철에는 마을과 도시가 물에 잠기기도 한다. 반대로 일 년 내내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곳도 있다. 사막이 되어 가고 많다. 또 어떤 곳은 눈이 일 년 내내 녹지 않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분명하고 계절마다 아름다운 나라도 많지 않다. 봄에는 각종 꽃들이 피고 벌과 나비가 날아다닌다.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매미와 쓰르라미가 운다. 가을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단풍이 아름답게 들고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밤에는 여치 소리가 들린다. 겨울이 오면 천지를 눈으로 덮는다. 깊고 깊은 산 속에 겨울눈이 오면 길이 막히고 통행이 두절되고 산 짐승들 조차도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첩첩 산중인 강원도의 평창에 반만년 역사에 기적이 일어났다. 2018년을 잘 준비하면 강원도와 평창과 강릉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는 경사가 될 것이다. 어떤 미래 학자들은 1988년의 하계 올림픽을 치룬 후에 일만 불 시대를 맞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후에 이만 불 시대를 맞은 우리나라가 88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맞는 동계 올림픽을 통해서 드디어 삼만 불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푸른 청사진을 말하기도 하였다. 동계 올림픽을 잘 못 치러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나라들도 있다지만 우리나라는 잘 준비하고 잘 관리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하튼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성공은 국가적인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랜드 슬램이라고 해서 하계 동계 올림픽과 월드컵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까지를 골고루 개최한 나라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에 이어 우리나라가 여섯 번째라고 한다. 국위가 선양되는 축복의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요 축복이다.

오늘 말씀에 보면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하늘에서 내린 비와 눈은 자연에 골고루 혜택을 주고 인간에게 골고루 유익을 준다. 물론 한꺼번에 너무 많은 비나 눈이 내려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건 어쩌다가 있는 경우다. 비와 눈이 이 땅의 채소와 온갖 곡물과 과일 나무에 열매와 소출이 넘치도록 만들어 준다. 오늘 말씀에 보면 소출과 종자와 양식을 준다고 했다. 그렇다. 비와 눈이 인간과 자연에게 주는 유익이 바로 그러하다. 각종 소출과 종자와 양식이 계절마다 해마다 가능하게 하는 배후에는 언제나 비와 눈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 비와 눈을 골고루 내려 주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 말씀을 기록하면서 11절에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어서 입이 없으시겠으나 하나님이 자신을 의인화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하나님은 우주와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의 말에도 힘과 창조력과 위엄과 권세가 있는 것처럼 더더군다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창조 질서와 섭리가 담겨 있다. 광대무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반면에 얼마나 정밀하고 조밀하신지 이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느낌과 판단과 출입과 범사에까지 말씀으로 간섭하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권세를 깨닫는 것이 믿음이다. 이것이 믿어지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이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는 말씀으로 인한 창조의 능력과 장엄한 권세를 보라. 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는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능력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꾸준히 계속하여 일정한 믿음을 갖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또한 보여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오늘의 본문을 좀 더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유익에 대하여 언급한다. 비와 눈처럼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어떤 복을 받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이루시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신다. 이것이 말씀의 역사다. 그러므로 인간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계속하여 분별해 나가는 순례의 과정이어야 한다. 나의 생애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면 탈선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스토미 오마샨은 기독교 유명 여성 작가이다. 그의 여러 권의 책 중의  하나인 <내 삶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 보면 그녀는 자기 자신이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는 듯 한 우울한 삶을 떨치고 일어나서 하나님 안에서 활력이 넘치는 기도 생활과 순종 생활을 하게 된 자신의 변화의 모습을 간증한다. 그렇게 불안하고 초조하던 자신의 일상이 주님께 맡기는 기도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평안과 안정을 되찾고 기쁨과 감사 가운데 살아가게 된 간증이다. 그녀는 31년 전의 그런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일상을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기도 생활에 대하여 언급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전에는 그렇게 공허하고 불안하던 자신이 하나님의 자신을 향하신 계획과 섭리를 깨달은 다음부터는 모든 삶이 단순해 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 같은 깨달음을 얻은 후에 “하나님 제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세요. 어떤 조치를 보여야 할지 보여 주세요. 제가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해 주세요.”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그녀에게 응답하셨다. “다만 내 안에 거하라. 내가 모든 일을 제대로 되게 해 주마.” 그 후로 그녀는 몇 달 아니 몇 년을 매우 단순하게 살아가는 법을 주님 안에서 배웠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안에서 토대를 쌓고 순종의 기본 원칙을 지켜 나가면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좋은 것들이 비와 눈이 내리듯이 임하게 된다는 간증이요 묵상이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 앞의 말씀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했다. 세 가지 단계를 강조하였다.

그 첫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 둘째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것이다.
그 셋째는,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계속하여 원을 그리듯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갈 때에 영이 살고 혼이 살고 육이 살고 영원이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일까를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자문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원하는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도록 교훈해 주시지 않았는가.

신앙생활은 계속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추구하는 생활이다. 에녹의 때에는 에녹이 그런 사람이었다. 에녹은 하나님과 365년을 동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찾으며 살아 가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셨다. 창세기 5장 24절에 나오는 기록이다. 그런 에녹이 65살에 낳은 아들 무드셀라는 자그마치 969살을 살았던 인류 역사상 최장수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무드셀라는 얼마나 오래 살았냐하면 그가 187살에 라멕을 낳았다. 라멕이 182살에 노아를 낳았다. 노아는 500살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그러니까 노아의 할아버지 무드셀라는 노아의 홍수 시대까지 살다가 하늘  나라로 갔다. 장수하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무드셀라는 장수는 하였으나 에녹이나 노아가 받은 그런 칭찬은 없다. 하나님의 기뻐하실 만한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소중한 것이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권세를 누리고 부귀공명을 누려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며 살지 못한다면 그 생은 헛된 것이다. 전도서 1장 2절의 솔로몬의 고백을 보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하지 않았다. 다윗의 아들이라도, 지혜의 왕 솔로몬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고 언약을 버리고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떠나면 불행해 지고 마는 것이다. 솔로몬의 나중 불행은 아버지 다윗 왕의 유언대로 살아가지 못한 불행이다. 그것은 아버지인 다윗 왕의 유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셨건만 귀하게 여기고 따르지 못한 것이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왕상2:1-4)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 가운데 복된 인생 경영의 승리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면 대형 사고를 부르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려는 신앙과 의지의 삶을 살아가야 복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형통(亨通)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사명을 맡겨 주신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부르심이 있고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깨달아 알고 행할 때에라야 형통케 되는 것이다. 순리대로 살아야 복이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복도 받고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명심보감에서도 ‘순천자흥’(順天者興) ‘역천자망’(逆天者亡)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흥왕하고 번성하고 형통하게 되는 법이다. 하나님께 거슬려서 죄 되게 살면 개인이든 나라든 민족이든 하나님의 벌과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하나님을 모르던 동양 사람들은 과거에 하늘에 순종해야 복을 받고 흥왕하게 된다고 믿어 왔다. 하늘에서 비와 눈이 내려야 하듯이 하나님의 보내신 일을 잘 순종하며 살아가야 형통케 해 주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좋아하는 시편의 표현 중에 147편 15절에 보면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라고 했다.

가령 노아의 홍수가 시작되었을 때에 방주에 들어간 인생은 노아의 내외와 세 아들과 세 며느리와 함께 여덟 식구뿐이었다. 노아의 할아버지인 무드셀라 조차도 손자 노아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였다. 창세기 7장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100년씩 방주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손자 노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뜻을 같이하고 노아의 할아버지 무드셀라가 방주 안에 함께 들어갔다는 내용이 없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홍수 심판이 있기 5년 전에 777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장수도 복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나를 보내신 사명을 다 하면서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이사야는 웃시야 임금이 죽던 해에 그런 소명을 체험한 주인공이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다. 이사야는 어느 날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임재와 부르심을 체험하였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셨다. 주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다.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들이 모시고 서 있었다. 스랍이란 천사를 말한다. 두 날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는 보좌 앞을 날고 있었다. 천사들의 합창 또한 우렁차고 장엄하였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노래하였다. 성전의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고 성전에 연기가 가득하였다. 이사야는 자신의 부정함을 깨닫고 부정한 입술의 사람인 것을 고백하였다. 그 때에 천사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시뻘겋게 불이 붙는 숯을 가지고 이사야 곁으로 날아와서 입술에 대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에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6:7)고 했다. 그리고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실 때에  이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얼마나 역사적인 순간인가. 이와 같은 영적 체험과 부르심이 있음으로 이사야가 이사야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해야 형통해 지는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이런 길을 가려면 오늘 본문이 있는 이사야 55장 6절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그  다음 절에서도 하나님은 반복하여 강조하신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초청이 계속된다. 악한 자의 길과 불의한 자의 길을 벗어나서 새로운 생각을 갖고 하나님께로 돌아 와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리라고 했다. 긍휼히 여김을 받고 용서함을 받는 인생으로 살아가야 하나님이 그 인생을 존귀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나아와 들어야 복이 임하고 형통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도 강조하는 자기 체험에 바탕을 한 강조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매 주일마다 예배당에 나아가서 예배를 드리고 선포되는 설교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라고 했다. 이런 강조는 록펠러(Rockefeller, John Davison, 1839-1937)의 어머니도 그렇게 가르쳤고 평생 록펠러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씨름하지 않았는가.
예배를 강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앞자리에 앉아서 잘 들을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미 33살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43살에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53살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55살에 병들어 뼈만 남아 있고 우유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시고 과자 한 쪽 목에 못 넘기던 그가 병이 회복되었다. 그의 인생관이 변하는 계기가 있었다. 뼈만 남은 상태에서 병원 휠체어를 타고 검사실로 가고 있는데 벽에 걸려 있는 액자의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글이 그의 심장을 울렸다. 그 순간에 마음에 전율이 일어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상한 더운 기운이 온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시끄럽게 다투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입원실 입구에서 입원비가 없는 어머니가 딸을 입원시켜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병원 측에서는 선불을 내지 않으면 입원이 안 된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서 몰래 그 모녀의 입원비를 해결해 주었다. 그 날 이후로 돕는 자의 만족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찼다. 자기는 그 순간이 56년의 생애 중에 가장 기쁜 순간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43년을 남들을 돕고 섬기는 일에만 앞장서면서 회복된 건강으로 98년을 살았다. 수천 곳의 예배당을 짓고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고 도서관을 짓고 대학교를 세우고 의학 연구소를 세웠다. 미국 뉴욕 맨해튼 북부의 허드슨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리버 사이드 교회는 오늘 날도 뉴욕 최고의 교회 중의 하나로 우뚝 서 있다. 시카고 대학교나 록펠러 대학교도 그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록펠러는 1950년대에 아들이 대를 이어 좋은 일을 계속한 것까지를 기준으로 당시 25억 불 상당을 사회에 환원하는 선한 복지 사업의 선봉에 서 있었다. 오늘 날로 환산해도 2조 6000억 원에 육박하는 거금이다. 빈털터리 소년 출신이요 철저한 십일조의 사람이었던 록펠러의 간증은 언제 대하여도 신선하다.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기쁨으로 행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행하여 형통한 복을 받는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산들과 언덕들이 노래하고 들의 모든 나무들이 손뼉을 칠 것이라고 했다.

여호와의 기념(記念)과 영영한 표징(表徵)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가시나무 인생이요 찔레 인생으로 끝나기를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잣나무(pine tree) 인생이요 화석류 나무 인생으로 창궐해지기를 원하신다. 화석류란 ‘myrtle'이란 팔레스틴 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의 관목으로 평화를 상징한다. 잎이 반짝거리고 분홍색과 흰 색의 꽃이 핀다.

지난겨울에 지방 연합 집회를 인도한 가평 지방은 우리나라 전국 잣 생산량의 80% 정도를 생산한다고 한다. 청정지역이고 수도권 상수도의 수원 보존 지역이라서 공장과 생산 시설이 전혀 없는 경기도의 강원도 같은 맑고 푸르고 아름다운 산과 숲으로 가득 차 있다. 소나무도 아름답지만 잣나무의 군락을 멀리서 바라보면 참으로 솔향기가 향긋하고 싱그럽다. 하나님은 가사 나무와 같고 찔레 덩굴과 같던 인생을 변화시켜서 잣나무 인생이요 화석류 인생으로 기념이 되게 하시고 영영한 표징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개화기에 복음을 받아 들여서 이 같은 인생을 살다간 신앙의 선배들을 보라. 주기철, 손양원, 시인(詩人) 윤동주, 도산 안창호, 월남 이상재, 남강 이승훈, 서재필, 백범 김구, 김활란, 임영신, 박인덕, 유관순 등을 보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가시나무 인생에서 잣나무 인생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나님 떠나면 교회와 가문과 나라와 역사의 불행한 인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을 벗어나 잘 못 살면 이완용처럼 되고 김일성처럼 되는 것이다. 히틀러처럼 되고 레닌처럼 스탈린처럼 되는 것이다. 기념할 것이 없어지고 표징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왜 여호수아 때에 요단 강 건너 길갈에 열두 돌을 세웠을까.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념하고 표징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여호수아 4장을 읽어 보면 그것은 여호수아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셨다. 열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여 열두 돌을 요단강에서 갖다가 강 건너 길갈에 세우라고 했다. 여호수아 4장 6절에 “이것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 열 두 개의 기념 돌이 표징이 라는 것이다. 후일에 자손들이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고 물을 때에 표징과 기념이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하셨다. 여호수아 4장 7절에 보면,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고 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대하신 표징과 기념이란 무엇일까. 여호수아 4장 24절에 보면 열두 돌을 세우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훗날 자손들이 열두 돌의 의미를 묻거든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기적들을 설명해 주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가르쳐 주라는 것이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4:24)고 하셨다.

예수님의 때에는 옥합을 깨어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었던 마리아가 기념인생이요 표징 인생인 것이다. 예수님의 장례를 정중한 예절로 섬긴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기념 인생이요 영영한 표징 인생인 것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와 글로바와 막달라 마리아가 그런 여인이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을 통하여 낳은 유다나 야고보 같은 동생들도 예수님 곁에서 기념 돌과 같고 영영한 표징인 인생을 살아간 훌륭한 신앙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주님 배반하고 불행한 길을 선택한 가롯 유다를 제외한 초대 교회의 성령 받은 열한 제자가 그런 기념돌 인생이요 영영한 표징인생이었다.

사도 바울의 때에는  로마서 16장에 언급되는 뵈뵈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런 주인공이다.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요 루포의 어머니가 바로 기념 인생이요 영영한 표징인생이었던 분이다. 디모데 후서에 보면 디모데와 누가와 두기고와 오네시보로와 같은 인물이 바울 곁의 기념 돌과 같은 동역자들이요 영영한 표징의 인생들이었다.

우리 모두의 나아가는 과정 과정이 그런 하나님의 열두 돌의 기념이요 영영한 표징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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