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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한 사도의 마지막 고백(딤후4:5-8) 201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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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1-03 04:18 조회 20,089 댓글 0
 
하루 생활에도 밤이 찾아오고, 한해가 가면 송년의 날을 맞이하듯이, 우리 각 사람의 인생도 어느 때가 되면 마지막 순간이 다가 올 것이다. 그것보다 더 아쉽고 허망한 것은 타락한 인간이 점점 진리에서 멀어져 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후계자요 믿음의 아들처럼 여기던 디모데에게 이 같이 편지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진리에서 멀어진 인간의 타락을 몹시 안타까워하였다. 디모데 후서 3장 7절에서는 ‘항상 배우나 진리(眞理)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고 했고 3장 8절에서는 ‘그들도 진리(眞理)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또한 4장 4절에서는 ‘또 그 귀를 진리(眞理)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하였다. 이 같은 시대적인 사도의 진단을 가지고 이 세상의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예감한 바울이 디모데에게 분부한 고백과 같은 말씀이 오늘의 본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에 복음 전파자로서의 사도 바울은 언제나 항상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진리의 말씀 앞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부담과 책무를 갖고 살았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서도, “너는 진리(眞理)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본문 5절에서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전도자(傳道者)의 직무(職務)를 다하라고 분부하였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였다.
 
미국 선교 역사의 유명한 전도자 빌리 선데이(William Ashley Sunday, 1862-1935)는 24살에 회심한 이후로 49년 동안 매일 하루 15분 성경 읽고, 15분 기도하고 15분 전도하기를 계속 하였더니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100만 명 이상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사용 하였다고 한다. 놀랍지 아니한가. 그 시작은 이렇다. 미국 아이오와(Iowa) 주에서 그가 태어난 지 5주 만에 아버지는 질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재혼했지만 양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빌리가 10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빌리와 형을 고아원(Soldiers’ Orphans’ Home in Glenwood, Iowa)에 보냈다. 빌리는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기초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운동을 잘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빌리는 14살이 되면서 존 스코트 대령의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거기서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스코트 대령의 도움으로 네바다 고등학교(Nevada High School)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빌리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는 못하지만 당시로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다. 그는 18살 때 아이오와 주 마샬타운으로 이전하여 야구 선수가 된다. 2년 후에 빌리가 속한 마샬타운 팀이 주 챔피언 팀을 이긴다. 그 후 빌리는 21살이 되던 1883년에 메이저 리그의 프로야구팀인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Chicago White Stockings)의 선수가 된다. 그가 전성기 때 세운 도루 기록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야구선수였지만 밤이면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던 1886년 어느 주일날, 빌리는 해리 먼로가 인도하는 시카고 퍼시픽 가든 미션 집회에 참석했다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게 된다. 그의 나이 24살 때의 영적 체험이다. 그 후 빌리는 야구선수를 그만 두고 복음전도자가 된다. 그는 어린 시절 교회에 다녔을 때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을 회상하게 된다.
 
“매일 15분씩 말씀을 들으라(성경 읽기). 매일 15분씩 하나님과 이야기 하라(기도). 매일 15분씩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라(전도). 매일 15분씩 희생적인 사랑의 행동을 보이라(사랑 실천). 그러면 너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다.”
 
그는 회심 이후로 평생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다고 한다. 그는 선수 생활을 청산하고 YMCA 전도사로 목회 전선에 뛰어들었다. 3년간 윌버 채프먼과 협력하면서 목회를 배운 그는 회심 후 10년 뒤부터 전국을 누비며 수많은 영혼을 영적으로 일깨웠다. 그의 불을 토하는 설교는 49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다. 그의 설교를 듣는 회중들은 술을 끊고 칼로 그의 마음을 찌르는 것과 같은 도전을 받고 책망으로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들이 넘쳐 났다. 그를 극찬하는 이들은 ‘빌리 선데이는 사도 바울 이후 최고의 복음 전도자’라고 칭찬하기 시작하였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0년대와 1920년대의 미국은 세계 제 1차 대전을 비롯한 경제 공황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시민들은 술을 가까이하였고 뉴욕 시카고 보스턴을 비롯한 도시마다 술집으로 넘쳐 났다. 통계에 의하면 당시 미국 전역에는 218,000여개의 술집이 있었다. 이는 도시에 150미터 간격으로 늘어선 술집 광경이었다고 한다. 날마다 500만 명 이상의 남자여자 젊은이들이 술집을 드나들었다. 그 당시에 태어난 정신장애 아동의 75%가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들에 의해서 태어났다. 범죄 사건의 90%가 술과 관련된 사건들이었다. 매년 53,000건이 넘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1912년에 미국 정부와 주 정부가 술과 관련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인 주세 수입이 1억 3400만 불이었는데 도시 빈민 고아 미망인 범죄사건 등을 돌보기 위하여 국가와 주 정부가 쓰는 돈은 그 네 배에 가까운 6억 달러가 넘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버리고 술로 살아가던 때에 등장한 복음 전도자 빌리 선데이 목사의 부흥 집회와 설교는 도시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였다. 1916-1917년 사이의 그 겨울에 보스턴의 팍 스트릿 교회Park Street Church에서 열린 10주간의 부흥 집회에 모인 연인원만 150만 명이었다. 그 때 회심한 숫자만도 63,484명이었다. 보스턴 시는 빌리 선데이이의 부흥 집회를 위해서 18,000명이 동시에 들어가는 피라미드 모양의 대형 천막을 설치했고 어떤 날 저녁에는 5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빌리 선데이의 부흥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몰려들었다.
 
유명한 프로 야구 선수 출신인 빌리 선데이의 복음 전파와 부흥 집회는 가는 곳마다 도시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났다. 그의 공식적인 부흥 집회는 548번도 넘었다. 그의 복음 운동은 술을 끊고 주께로 돌아 와야 한다는 금주 운동과 함께 벌어졌다.
 
“술집은 지옥이며 술은 악입니다. 술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술은 병과 불행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술은 행복을 약속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가져 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저주가 술집에 임할 것입니다. 기독교와 애국이 동의어이듯이 술집과 지옥이 동어어입니다.”
 
무디 집회 때마다 생키의 찬양 인도와 찬양이 청중을 사로잡듯이 빌리 선데이 곁에는 호머 로디히버(Homer Rodeheaver)라는 찬양 인도자가 있었다. 그가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면 모인 수 천 수만의 청중들은 성령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아 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빌리 선데이의 보스턴 집회는 대단하였다. 1857년 정오 기도회의 부흥과 19세기 후반 무디 집회로 불붙었던 그 곳에 하나님은 빌리 선데이를 통하여 다시 부흥 운동의 불을 붙여 가고 계셨다.
 
오늘 날은 급하게 복음을 전파하여야만 하는 영적 각성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잘 살게 되었지만 죄와 악이 넘쳐나는 시대를 맞았다. 점점 바르게 살아가기가 더 어려운 유혹의 시대이며 미혹의 시대를 맞았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 후서 4장 3절에서 언급하는 시대 진단은 이천 년 전인 그 당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날도 마찬가지이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라고 하였다. 4절의 ‘허탄한 이야기’란 디모데 전서 4장 6절의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에 반대되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은 무익하고 거짓된 이단의 악영향을 경계한 말씀이다.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성도된 우리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 쏟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영적 도전과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는 사도 바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긴박감을 깨닫고 살아가던 전도자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안타깝게 편지한 것이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5)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의 변화 체험 이후에 이 편지를 쓰던 당시까지 아니 순교 당하여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기 까지 평생을 그렇게 살았던 인물이다.
 
바울은 알았다. 자기의 남은 날들이 멀지 않다는 것을. 6절에서 말씀하는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라는 고백은 이미 순교자의 길을 가는 자신을 겸허하게 표현한 말이다. 전제(奠祭)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던 관제(灌祭)를 말한다.(민15:5, 28:7) 즉 쏟아 부어 드리는 것이 전제요 관제이다. 그러므로 전도자의 삶을 되 돌이킬 수 없이 주의 복음 전파를 위하여 희생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는 고백으로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은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 교회의 내로라하는 복음 전파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구설수에 오르는 때에 지난 성탄 절기에 KBS TV가 나서서 한국 교회 128년의 자랑스런 순교자인 사랑의 사도였던 손양원(1902-1950) 목사님의 생애를 조명한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동인과 동신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을 자기의 양자로 맞아 들였던 성자 손양원 목사님의 옥중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불평이 많은 자는 천하를 다 얻어도 오히려 불평할 것이고, 자족을 느끼는 자는 한 줌의 밥과 한 잔의 물에도 자족의 기쁨이 있으니, 그러므로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범사에 기뻐하며 항상 즐거워하사이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삶과 죽음 사이에 끼어 있다고 표현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21)고 하였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방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전도자의 삶을 엄숙하게 마감해 가고 있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무엇인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박해하고 핍박하던 때와 비교하면 다메섹의 부르심과 예수 체험 이후의 바울은 그 이전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전도자 바울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이 아니었다. 그는 본문에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고백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달려온 사도였다.
 
오늘 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요즘 나는 무엇으로 인하여 내 안에서 싸우고 있는가. 인생은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선과 악의 싸움, 거짓과 진실의 싸움, 의와 불의의 싸움,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싸움, 육체의 욕망과 영혼의 싸움이 누구에게나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과 악의 싸움에 대하여 고백한 적이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마음에 선을 원하며 살아갈지라도 그의 육체 가운데 선한 것이 거하지 않아서 원함은 그에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는 자신의 약함과 악함을 탄식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7:21-23)
 
잠언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선한 싸움이란 무엇인가. 오늘 날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선과 악의 싸움에서 선이 악을 이기고 의가 불의를 이기고 자비와 긍휼과 인애와 사랑이 내 마음 속에 불처럼 일어나는 시기나 원망이나 불평이나 악을 이길 때에라야만 선한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 아닌가.
 
토마스 아 켐피스나 감리교의 요한 웨슬리 목사는 이 같은 선한 싸움에서 이긴 분들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1471)는 독일의 나일 강 하류인 켐펜에서 태어났다. 평생을 아그네텐베르크 수도원에서 92살을 살았다. ‘청빈, 정결, 복종’의 삼대 교리를 평생토록 준수하는 수도원 생활에 만족하였고 나중에는 수도원의 부원장을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그의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자신의 묵상과 고백일 뿐만 아니라 후학 양성을 위한 지도서로 쓴 책이기도 하다. 그들은 재산을 공유하였고 자기의 먹을거리를 자기가 일하여 먹고 살았다. 그들의 일이란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사본, 인쇄 제본 등을 일삼아 하였다. 그리고 교육에 힘쓰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영국의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목사도 평생을 청빈한 삶을 실천하였다. 그는 영국 교회의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88살에 런던의 교회 목사관에서 임종하였을 때에 그의 입고 있던 주머니와 옷장 서랍에 굴러다니는 동전 몇 잎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토마스 아 켐피스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지나고 요한 웨슬리가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훨씬 지났어도 저들의 복음 실천으로 인한 선한 싸움의 영향력은 점점 더하지 아니한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하였다. 그렇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은 것이다. 절대 단거리 경주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평생토록 어려서나 젊어서나 장년기에나 노년기에나 나중 하나님 앞에 돌아가기 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도의 달음질을 계속할 줄 알아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5절에서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경고하였다.
 
24살인 최 모 군은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공부를 잘하고 서울대 로우 스쿨에 떨어져서 연세대학교 로우 스쿨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로우스쿨에서도 모든 과목을 A 프러스를 받아 동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교수실에 숨어 들어가서 교수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시험 문제를 미리 알아내려던 범죄현장에서 붙잡혔고 여러 차례의 이와 똑 같은 범죄 사실이 들어나면서 연세대학교로부터 영구제명조치 되는 불행한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남 들 보다 잘하는 것도 좋지만 바르게 해야 한다. 옳은 방법으로 해야 한다. 시편 112편에 보면 하나님은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게 하신다고 하셨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난다’(시112:4고 하셨다.
 
이탈리아의 성 프란스시( San Francesco d'Assisi, 1182-1226) 즉 성 프란치스코는 부자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성공한 무역상이었다. 그가 16살이던 1198년에 서민과 귀족들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도 이 전쟁에 가담해야 했고 포로로 붙들려 1년간 감옥에 갇혀서 지내야 했다. 이 때 잃어버린 건강 악화로 22살 때에는 일년 내내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할 정도였다. 건강을 회복한 프란시스는 십자군 원정의 기사가 되길 원하였다. 교황과 황제의 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교황군에 합류하여 출정할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그런 그에게 환상 체험의 날이 있었다. 방 안 가득히 갑옷과 무기가 보였고 “주인을 섬기겠느냐 종을 섬기겠느냐”는 질문이 들렸다. 그는 그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서 날이면 날마다 연회를 베풀고 먹고 마시고 춤을 추고 노는 데 시간을 다 쏟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이름 모를 낯설은 사람과 동행하며 동굴에 머물기도 하였는데 멍한 체험 가운데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다가 나환자 촌을 지나게 되었고 나병환자 한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깜짝 놀랬지만 그는 말에서 내려서 그에게 자기가 갖고 있던 모든 돈을 다 꺼내 주고 평화의 입맞춤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생은 달라졌다. 죽기 전에 그는 “그 날의 그 체험이 후에 주님은 나를 회개의 삶을 살아오도록 하셨다.”고 회상하였다. 그가 23살 되었을 때에 성 다미아노 성당에 들어갔다. 가난하고 늙은 신부가 성당을 담당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십자가 밑에 불을 밝힐 기름조차 살 형편이 못되었다. 그는 거기서 십자가의 의미에 매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포목점에 가서 포목을 모조리 갖다가 시장에 팔았고 자기가 타고 다니던 말도 팔았다. 그렇게 모은 돈을 성당에 갖다 바쳤다. 그러나 신부는 그의 헌금을 정중히 사양하였고 대신에 성당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성당 수리를 위해 벽돌을 구하러 다니고 가난한 이들과 친구로 지내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는 가난과 결혼하였다’고 선언하고 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과 사업과 부한 유산을 모두 다 포기하고 평생을 가난한 이들의 친구로 지냈다. 그러나 프란시스는 24살 때에 아버지로부터의 유산을 포기하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는 입고 있던 옷조차도 아버지에게 벗어 돌려 드렸다. 이 드라마 같은 행동을 지켜보던 아싯시의 한 주교가 자기의 망토를 프란시스에게 입혀 주었다. 그 날 이후 프란시스는 평생토록 수수한 아마로 만든 베옷을 입고 허리에 띠를 졸라 맨채 살았다. 그는 “가난이라는 여인 The Lady Poverty을 배우자로 맞아 엄숙한 결혼식을 올렸고 그의 앞에 있는 모든 세상적인 소유물과 명예와 특권을 포기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그가 입고 있던 망토 한 벌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는 그는 평생을 경건한 신자의 모범과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살아갔다.
 
명문대도 좋고, 대 기업도 좋고, 성공도 좋고, 출세도 좋고, 사업이 잘되고, 장사가 잘되고, 돈을 많이 벌고 풍요로워지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성공과 출세와 명예와 재물과 힘으로 누군가를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쓰임 받는 성도다운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사도 바울은 그 자랑스럽던 경력과 화려한 유대교 지도자의 명함을 다 내려놓고 배설물을 버리듯이 다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 안에서 예수 만 높이고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복음 전파의 선봉에 서는 이방 사도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갔다. 그는 “환난과 곤고와 박해와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복음의 용사요 복음 전파의 전사였다. 사도 바울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세상의 힘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도 바울은 나무로 하면 큰 나무요 바위로 하면 큰 바위요 물줄기로 하면 큰 바다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따뜻함과 눈물과 성도들을 아끼고 위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애정의 샘물이 마른 적이 없었다. 그는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고린도 후서 11장 28절 말씀대로 교회를 위한 염려를 행복해 하는 사도였다. 그는 태장으로 맞고 돌에 맞고 세 번 씩이나 파선이 돼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일주야를 깜깜한 깊은 바다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유라굴로의 광풍도 그를 삼키지는 못하였다. 그는 언제나 위험 앞에 노출 되어 있었다. 강과 강도와 동족과 이방인과 시내와 광야와 바다와 거짓 형제들의 위험 앞에 맞서야만 하였다.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는 날을 이겨 내야만 하였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나의 믿음을 지켰다.
믿음은 사랑을 동반한다. 믿음은 소망을 잃지 않게 한다. 믿음은 불확실한 미래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긍정으로 소화해 나가는 능력이다. 사도 바울의 평생을 지킨 힘은 그의 믿음이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 믿음이 이기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자신의 욕망을 이기며 살줄 안다. 건강, 재산, 재물, 돈, 명예, 권력, 인기, 젊음 지켜보려 하지만 무엇이 남는가. 믿음을 지켜야 한다. 믿음이 이기는 것이다.
 
357장 찬송을 보라.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겨라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예수님의 복음서 말씀을 보라. 예수님은 계속하여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시지 않는가. “네 믿음이 크도다.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스라엘 중에 이 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도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처럼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의 믿음의 문제에 대하여 관찰하시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라고 격려하시지 않는가.
 
죄를 이기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죄와 악과 유혹과 미혹의 영 앞에서 분별력을 갖고 믿음으로 그 모든 것들을 분별하여 이기는 믿음을 유지하여야 한다.
 
빌리 선데이 목사는 죄에 대하여 이렇게 설교하였다. “나는 죄와 싸우겠다. 발이 있는 한 죄를 차버리겠고, 주먹을 가지고 있는 한 죄를 쳐버리겠고, 머리를 가지고 있는 한 죄를 받아 버리겠고, 치아를 가지고 있는 한 죄를 물어뜯겠다. 내가 늙어서 주먹도 치아도 힘도 없다면 영광의 내 집을 들어갈 때까지 잇몸으로라도 죄를 이기겠다.”
 
그렇다. 겸손하게 성령의 도우심을 매 순간 의지하여 죄와 싸워 이겨야 한다. 그래야 의의 면류관이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으로부터 내게 주어질 것이다. 인생의 선한 싸움, 인생의 달음질, 인생의 믿음을 지키다 말지 말고 끝까지 잘 지켜 싸워 이기는 믿음의 승자가 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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