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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풍성한 그의 은혜(고후8:1-9) 201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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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12-15 20:56 조회 19,616 댓글 0
 
어제 집사님 가정의 모친 장례를 마쳤다. 선친이 육이오 참전 용사이셔서 화장을 마친 후에 한 움큼의 재를 이천호국원에 봉안하였다. 인간이 화장장에 들어가면 1시간 20분 만에 재가 되고 만다. 틀니의 쇠 조각과 고관절 수술에 사용되었던 한 뼘만한 쇠 조각이 재속에 섞여 나왔다. 물론 그것도 더 높은 열을 통과하면 다 녹아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인간에게 구원과 영생이 없다면 육체의 죽음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다.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원소는 산소, 탄소, 수소, 질소다. 산소(O)는 우리 몸의 65.5%를, 탄소(C)는 18.0%를, 수소(H)는 10.0%를, 그리고 질소(N)은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4대 원소 이외에도 칼슘(Ca) 1.5%, 인(P) 1.0%, 칼륨(K) 0.35%, 황(S) 0.25%, 나트륨(Na) 0.15%, 염소(Cl) 15% 등의 원소가 인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미량 원소로는 마그네슘(Mg), 철(FR), 망간(Mn), 구리(Cu), 요오드(I) 등이 있다. 그 재료를 분석하면 비누 한 조각과 성냥개비 몇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 밖에는 안 된다. 그러므로 오히려 인간에게 신비가 있는 것이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육체의 코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으시므로 인간이 된 것이다. 인간은 육체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그 육체 가운데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존귀한 것이다. 질그릇에 담긴 이 보화가 있으므로 질그릇 같은 육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란 말이다.
 
2013년 최저 시간급은 4860원이다. 내년부터는 전년 대비 7.2% 인상된 5210원이 근로자가 생활 안정을 위해 한 시간 동안 일했을 때 최저로 보장 받을 수 있는 한도 금액이다. 올해 초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월 최저 임금 97만 6000원보다도 소득이 적은 국민은 676만 명에 달한다.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한 국민 1887만 명 중 절반인 943만 명은 월 소득 1,406,000원에도 못 미치는 벌이를 했다. 세계적으로는 빌 게이츠 같은 부자도 있고 우리나라로 하면 삼성의 이병철씨 후손인 이건희 씨와 현대의 정주영씨의 후손들 같은 재벌도 있다.
 
교회의 구성원도 마찬가지이다. 부자와 가난한 이, 성공한 이와 실패의 아픔 속에 있는 이, 힘이 넘치도록 건강한 이와 병약한 이, 많이 배운 이와 그렇지 못한 이들이 뒤 섞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가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 안에도 둘러보면 생활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소득 수준도 그 차이가 크다. 그러나 헌금 생활을 보면 오히려 어렵고 가난한 분들이 수입 대비로 하면 더욱 정성스럽게 힘써서 연보 생활을 더 잘하는 경우를 본다. 마가복음 12장 41절부터 44절까지에 보면 어느 날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헌금 함 앞에 앉으셔서 무리가 성전에 들어가면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것을 지켜보셨다. 부자는 많이 넣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렙돈이란 헬라식 동전의 명칭이고 고드란트란 로마식 동전의 명칭이다. 동전 한 개를 달랑 드린 것이다.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12:43-44)
 
본문 말씀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마게도냐 지역 교회 성도들의 연보 생활을 예를 들어 칭찬한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1절에서 언급한 마게도냐 교회들이란 데살로니가 교회나 빌립보 교회 등을 말한다. 당시에 그리스 북쪽의 발칸 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였던 마게도냐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환란과 시련이 많은 지역이었다. 그런 곳에서 신앙 생활하던 마게도냐 교회들의 성도들인데도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 넘치는 기쁨을 갖고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노라고 칭찬하고 있다. 오늘 날은 헌금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연보(捐補)라고 하였다. 그 원 단어인 ‘하플로테토스’란 말의 뜻은 ‘한 마음, 단순한, 순전한’이란 뜻이다. 당시의 헌금 생활이 얼마나 마음을 담아서 순전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힘쓰고 자원하는 마음에서 봉헌하는 생활을 해 왔는가를 교훈한다. 3절에서 5절까지에 보면 당시의 데살로니가 교회나 빌립보 교회나 베뢰아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을 잘 드러내 보여 준다. 3절에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하였다고 했다. 힘대로 라면 이해가 될 텐데 힘에 지나도록 하였다는 내용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마게도냐 지역 교회 성도들의 특징이었다. 압제와 환난이 심하고 극심한 가난을 겪던 성도들인데도 자원하고 힘대로 연보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드리는 역설적인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난 이천년 간 열방 속에 번져간 교회와 선교를 버티는 힘이었다. 그와 같은 연보 생활의 원동력이 무엇일까. 5절 말미에 그 해답이 있다.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린 헌신(獻身).
우리교회가 지난 4년 만에 이런 성전을 건축하고 요즘과 같은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고 사역을 계속할 수 있던 배후에는 이처럼 마게도냐 교회들의 성도들과 같은 숨은 헌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신한 믿음의 성도들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오늘날과 같은 기적을 보게 해 주신 것이다. 그와 같은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신하는 성도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이는 당시의 마게도냐 교회들인 데살로니가 교회나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서 보여 지는 특징과 오늘 날이나 큰 차이가 없다.
마게도냐 교회의 대표적인 교회 중의 한 곳인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받은 칭찬을 보라.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보면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에 대하여 칭찬하고 있다. 이보다 더한 칭찬이 또 있겠는가. 매사를 믿음으로 일하고 섬기며 수고하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을 품고 애쓰고 섬기고 돌보고 나누고 보살피고 소망을 갖고 참고 견디며 인내하는 성도들의 연합이 있는 교회란 얼마나 복되고 바람직하며 건강한 교회의 모습인가 말이다.
 
일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문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봉사를 하느냐 무슨 사역을 하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나를 먼저 주께 드리는 헌신자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고 은혜를 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가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부부라면 남편과 아내가 몸과 마음과 생각과 그 뜻이 하나가 되고 일치된 모습으로 연합해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위하고 돌보고 섬기며 성실하게 노력하고 발전해 나가도 될까 말까한 것이 세상살이인데 남편 따로 아내 따로 이처럼 따로 국밥으로 살아간다면 그 집안 꼴이 무엇이 되겠는가.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하여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고 하였다. 우리의 몸은 마음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강조는 몸과 마음을 묶어서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 인생으로 살아가란 강조가 아닌가.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는 말씀에 그 대답이 있다. 예배자 다운 예배자로 살고 싶은가. 예배 드려도 좋고 안 드려도 그만인 상태로 살아간다면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나는 진정으로 몸과 마음을 주께 산 제물로 드리며 살아가고 있는 영적 예배자인가.”라고 말이다. 교회는 이사야의 말씀처럼 성전의 마당만 밟는 성도들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린 헌신의 서원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누구이냐 혹은 몇이냐가 그 교회의 교회됨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란 반복되는 묵상이지만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들 자체가 교회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에서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고 하였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교회 건축에 자만하지 말고 계속하여 지속적으로 재건축되어 가는 의미에서 "Reconstruction Offering" 혹은 “교회 건축 그 이후(Church Building Build Up and Next)"의 연보 생활에 꾸준히 참여 하는 성숙한 성도들로 넘쳐 나기를 중심으로 소원한다. 이는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의 소원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를 바라다보시는 주님의 소원이시기도 할 것이다.
 
 
나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이 환란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가면서 풍성한 연보를 드릴 수 있었던 힘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5절을 보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그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라는 말씀을 보라.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말이다. 복음성가 “우리에게 향하신”을 함께 찬송하자.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문에도 보면 1, 4, 7, 9절에 반복해서 ‘은혜’를 언급하고 있지 않나. 그러므로 “주신 은혜, 이 은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 1절에 ‘하나님께서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라고 하였고 9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교회나 빌립보 교회나 베뢰아 교회등의 마게도냐 교회들의 성도들은 환란과 시련과 극심한 가난을 겪던 고난기의 성도들이었지만 자신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풍성한 연보를 하나님 앞에 드렸던 성도들이었다.
 
필라델피아가 낳은 잔 와나메이커(John Wanamaker,1838-1922)는 흔히 백화점의 왕이라 불린다. 그는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말을 했고 그런 철학으로 백화점식 경영을 최초로 시도해서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사람을 비누에 비유해서 말했다.
 
"비누는 쓸수록 물에 녹아 없어지는 하찮은 물건이지만 때를 씻어줍니다. 물에 잘 녹지 않는 비누는 좋은 비누가 아닙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사회를 위해 일하려 하지 않고 자기 힘을 아끼는 사람은 나쁜 비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릴 적에 그의 집은 무척 가난했다. 그래서 학교에 계속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해 벽돌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목사님이 교회가 낡아 다시 짓기로 했다는 광고를 했다. 어린 잔 와나메이커도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 바치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가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벽돌 공장의 벽돌을 한 수레 바치기로 하고 아버지와 의논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벽돌 한 수레를 싣고 목사의 사택을 방문했다. 그의 열심에 감동한 목사는 그를 위해 뜨거운 기도를 해 주었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23세 때 그는 조금씩 저축한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였다. 남과는 다르게 고객을 왕으로 받드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정찰제 판매와 판매한 제품의 반품을 허용하는 제도를 실시했다. 왕으로 대접받는 고객들은 만족스러워 했으며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다. 그리고 백화점의 왕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나중에는 미국의 10대 재벌 중 하나가 되었다. 사업이 크게 성공한 어느 날 와나메이커는 100만 달러를 들여서 교회를 지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헌당식에서 그는 어렸을 때 구차한 중에 헌금 대신 벽돌을 드린 나에게 큰돈을 낼 수 있게 된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는 계속하여 많은 돈을 선교비로 헌금하였다. 어느 날 선교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나 알아보려고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 곳에 있는 아름다운 교회를 보고 감격했다. 때마침 한 노인이 소 한 마리와 한 젊은이가 함께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잔 와나메이커는 이상히 생각하여 왜 이렇게 하느냐고 그 뜻을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우리가 저 예배당 건축에 헌금할 돈이 없어 소 한 마리를 팔아 헌금하고 한 마리의 소 대신 우리 아들이 멍에를 멘 것" 이라고 말했다. 잔 와나메이커는 그 자리에서 "주님! 나로 하여금 주님의 멍에를 메게 하시어 저렇듯 희생적인 헌신의 즐거움을 알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다. 이 말을 들은 와나메이커는 크게 감동을 받고 그 청년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신학공부를 시켰는데, 그가 바로 중국 복음화의 기수였던 성문삼 목사다. 잔 와나메커는 백화점 왕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주일 예배는 물론, 수요 예배를 비롯한 모든 교회의 공적 예배에 빠진 적이 없었다. 장관 때도 필라델피아의 그가 다니는 교회학교 교사를 계속했다는 일화는 오늘 날까지 전해져 온다. YMCA의 창설자이고 교회학교 제도에 헌신한 인물이기도 하다. 종로 2가 9번지에 1909년도에 세워진 YMCA 3층 서양식 건물 600평도 그가 보낸 기금으로 건축된 것이다. 그는 “새벽형 인간, 긍정적인 말과 삶, 절약과 저축과 선한 기부로 복리 복지 후생 교회, 도서관 등 건축, 독서와 기도와 메모와 칭찬하고 격려하는 습관이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1921년, 83세 때에 사업 60주년 감사 예배에서 “내 인생 최대의 투자는 10살 때에 직접 벌어들인 돈 2불 75센트로 산 빨간 가죽 성경이 내 인생 최고 최대의 투자였다.”고 말 했다. 그는 어려서 직접 벌어서 1불을 저축하였을 때에 세상 최고의 부자가 된 것 같은 감사와 감격이 있었다고 했다.
 
 
내 안에 시작된 주의 은혜(恩惠)를 더욱 풍성하게 하라.
6절에 보면 바울은 디도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에 교훈한 이 은혜로운 말씀들을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고 권면한다. 사실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몰라서 못하는 것은 거의 없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섬기고 하는 그 모든 것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행해야 한다. 알지만 행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유익이 있나. 6절과 7절을 가장 쉽고 정확한 번역인 <우리 말 성경>으로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디도에게 이미 여러분 가운데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성취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일, 곧 믿음과 말씀과 지식과 모든 열심과 우리에 대한 사랑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로운 일에도 풍성하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여기에 보면 다섯 가지에 하나를 더한 여섯 가지 덕목의 풍성함을 말씀한다. “믿음, 말씀, 지식, 모든 열심, 서로에 대한 사랑, 은혜로운 일에도 풍성하도록 하십시오.”라고 말이다. 사실 이 여섯 가지가 풍성하다면 이에 더 할 것이 무엇인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은사는 풍성했는데 헌신이 약했다. 그런 저들에게 헌신의 풍성을 강조한 것이다. 메게도냐 교회들의 성도들은 헌신적이었다. 이것을 본받자고 편지한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 있는 믿음과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는 말씀의 지식도 높았고 매사에 모든 일에 열심도 있고 사도 바울에 대한 사랑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 부족한 것은 헌신 할 줄을 몰랐다. 자기희생이 없는 성도는 은혜의 더 깊은 강으로 들어 갈 수가 없다. 앞의 다섯 가지가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내용이라면 마지막 ‘은혜로운 일에 대한 풍성’이란 남과 이웃을 위한 헌신을 말씀하는 것이다. 결국 연보 생활로 평가된다는 말씀이다. 헌금 생활이 그 사람의 신앙의 척도가 된단 말이다. 잔 와나메이커는 헌신의 사람이었다.
 
<주와 함께 하라>의 저자인 채의숭 장로가 오늘 날 한국 교회에 잔 와나메이커 같은 인물이다. 충청남도 태안의 산골 마을에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육남매 중에 장남이고 위로 누이가 둘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하교를 나왔고 어머니는 글도 못 읽었다. 한 번도 기도해 본적이 없는 아버지가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 기차가 다니고 자동차를 볼 수 있고 초등학교가 있는데 가서 살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모르지만 살아 계시다면 우리 가족을 인도해 주세요. 이 지팡이 던져 지는 방향으로 가겠어요.” 그리고 산골에서 봇 짐 싸서 지고 산골에서 사흘을 걸어서 도시로 내려가서 살게 된 곳이 대천감리교회 옆이었다. 당시에는 보령군에 대천감리교회가 유일한 교회였다. 당시에는 교회도 초가집이었다. 여섯 남매와 부모까지 여덟 식구가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오늘 날 건국대학을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하고 삼성 입사 후에 오늘 날 ‘대의’ 그룹을 창업한 기업가로 발전한 채의숭 장로가 되었다. 하나님 앞에 100개의 교회 건축을 약속하였는데 95곳의 교회를 건축했다고 한다.
 
바울은 헌신에 대하여 말한다. 8절에 보면 명령이 아니라고 했다. 간절한 마음을 갖고 사랑의 진실함으로 증명하고 싶어서 말한다고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교훈한 말씀이 9절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9)
 
이 오묘하고 신비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진정한 삶의 풍요를 은혜 가운데 자자손손 체험하며 살아가는 축복의 주인공이 모두 다 되기를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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