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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성전 건축(왕상6:1-10)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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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6-19 03:48 조회 22,765 댓글 0
 
한 나라 혹은 한 도시 혹은 한 지역에 예배당이 건축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또한 어느 한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인 것이다. 국제예수전도단 YWAM의 창설자인 로랜 커닝햄(Loren Cunningham)의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에 보면 스위스와 제네바 이야기가 나온다. 16세기의 스위스 제네바는 세상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곳 중의 하나였다. 성벽은 무너져 있고 온갖 쓰레기와 인분 냄새가 코를 찌르는 폐허의 도시였다. 밤새 술을 마신 이들이 술을 이 곳 저곳에 토해 놓고 포도주 냄새로 가득 찼다. 스위스 제네바는 범죄와 정치 난민과 용병들과  간첩과 창녀와 거지들로 넘쳐 났다. 그런 그곳이 오늘 날은 300년이 지나도록 전쟁이 없고 세계 모든 정치와 금융과 회의와 외교와 학문의 중심도시로 변모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그 주인공이 존 칼뱅(John Calvin)이다. 한 사람 이 믿음의 사람이 스위스 제네바에 들어가게 되면서 도시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종교 개혁가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 받아야 한다고 외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다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설교했다. 그는 마을마다 다니면서 복음을 가르쳤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났는데 오늘 날의 스위스 오늘 날의 제네바가 된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스위스를 말할 때에 해석하는 정통적인 역사 해석이다. 스위스와 제네바는 존 칼뱅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나라요 도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 길을 가는 성도들을 통해서 이런 거룩하고 역사적인 일들이 주변에 일어나길 소망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이 사건이요 성전을 짓고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이 역사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 안에서 일어날 엄청난 일들을 하나님은 예비하시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성전은 인간이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들 각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의 거하시는 집으로 삼기를 원하신다. 또한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 보면,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자. 아무 터에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 터에는 예배당이 건축 되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주는 그리스도 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런 신앙의 고백을 하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게 하신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게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한다.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는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창조주로 믿는 이들의 그 마음과 생각을 성전 삼기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죄 사함과 영생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이들의 마음을 성전 삼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고 하셨다. 이는 사도 바울이 레위기와 예레미야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유명한 선언이요 진리요 신학이요 고백이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26: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렘31:1) 그러므로 누가 성막을 건설하고 누가 성전을 짓고 누가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들 즉 성도들만이 주님의 몸 된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거하시며 두루 행하시는 그런 주인공만이 성전 건축에 참여할 수 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예배당 건축의 참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성막의 건설 혹은 성전의 건축뿐만 아니라 오늘 날 성도들이 예배와 교육과 친교와 섬김을 목적으로 짓는 예배당의 건축에 이르기 까지 그 모든 건축의 목적은 여호와를 위한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여호와를 위하여”(왕상6:1-2)라는 말씀이 두 번 반복하여 나온다. 이 세상의 건물들을 짓는 목적은 대개가 다 사람을 위한 것이다. 가정집이든 상업용 건물이든 공공 기관이든 학교의 건물이든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음악당이든 그 모든 건물들이 지어지는 목적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사람이 쉬고 일하고 취미생활하고 생산 활동을 하고 학문을 연마하고 역사를 보존하고 하는 등의 인간적인 목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성막이나 성전이나 예배당의 건축 목적은 엄격하게 규정하면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제사 즉 예배를 목적으로 건축하는 집이 성막이요 성전이요 예배당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성전을 건축한 후에 드린 솔로몬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각양의 은혜와 은총과 축복과 치유와 응답을 받으며 살아간다. 마치도 교회는 종합 병원과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생명의 탄생을 알리고 축복하며 세례하고 이곳에서 결혼식도 하고 장례식도 하고 온갖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나누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며 성찬을 행하기도 하고 서로를 섬기고 돌보며 성도의 친밀한 교제를 나눈다.

오늘은 새롭게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기공 예배를 드리는 주일이다. 그러한 오늘 과거에 솔로몬 임금이 앞장서서 아버지 임금 다윗 때로부터 기도하며 준비해 왔던 성전을 건축하는 그 시작과 마무리의 내용을 묵상할 때에 은혜가 되길 원한다.
출애굽 한 후에 때가 되매 규격대로 성전이 건축되었다.
오늘 본문인 열왕기상 6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년이요”라고 했다. 이때는 솔로몬이 임금 된지 제 4년째 되는 해라고도 했다. 솔로몬이 임금 된 때는 주전 970년이다. 그러므로 주전 966년에 아버지 다윗의 소원으로 성전 짓기 원하며 기도하며 준비했던 성전이 아들 솔로몬의 때에 와서 시작되고 만 7년 만에 완공되어 봉헌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때가 되어 이루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임금인데 나라의 국고를 열면 성전 백 곳 천 곳 못 짓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다윗이 임금이었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심으로 성전 지어 봉헌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말았다. 때가 되매 출애굽한지 480년 만에 광야의 모세 시대 성막 생활을 다윗 때까지 계속하다가 때가 되매 솔로몬이 임금 된지 제 4년차 때에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시브월’이란 오늘 우리의 달력으로 하면 사오월이다. 한창 꽃이 많이 피고 화창한 계절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시브’ 즉 ‘지브’라는 말은 ‘광채’라는 뜻이다. 꽃이 피고 햇살이 밝고 따뜻한 계절을 의미하는 뜻의 지브월에 성전 짓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이 때가 되어야 시작도 되고 완성도 되는 것이다. 기도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건축하고, 신앙의 고백으로 지어 봉헌하게 되는 것이 성전의 건축이요 예배당의 건축이다. 기드온이 용감했지만 성막을 보며 성전 지을 생각을 못했다. 그 기운 많던 삼손도 성전 지을 생각을 못했다. 사울이 대단한 임금으로 출발해서 40년을 임금으로 있었지만 하나님의 성막을 드나들며 제사해도 성전 잘 지어 봉헌할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다. 이것이 사무엘 하 7장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의 내용이다. 다윗 임금 때에는 그 전대의 임금 사울 왕 때처럼 불레셋의 침공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 시대에 블레셋을 물리치고 나라가 평안해지게 해 주셨다. 모든 원수들을 무찌르고 평안히 살게 하신 그 때에 어느 날 임금 다윗이 나라의 유명한 선지자 나단을 왕궁으로 초청하였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하고 하나님의 성막을 언급하며 성막을 성전으로 잘 지어 봉헌하고 싶은 생각을 말했다. 그 때에 선지자 나단은“아니 임금님이신데 못 하실 것이 무엇이 있으시겠습니까. 마음의 모든 생각을 행하십시오.”하고 대답했다. 그런 그 날 밤에 하나님이 다윗 임금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선지자 나단에게 나타나서 다시 말씀하셨다. 설명이 필요 없는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이 그 날 낮에 다윗 임금의 말을 듣고 엄청나게 기분이 좋으셨던 것이 분명하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5-16)  그 다음 날 선지자 나단이 아침 일찍이 왕궁에  들어가서 임금을 뵙고 지난밤에 하나님이 다윗 임금에 대하여 자신에게 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말을 전해들은 다시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 내용이 사무엘 하 7장 18절부터 29절까지의 긴 기도문으로 성경에 보존되어 있다. 임금 다윗은 자신을 종이라고 반복하여 언급하면서 감격스러운 기도를 계속하여 드리고 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삼하7:20-21)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삼하7:25-26)

이처럼 기도의 때가 가득 차야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은 계속하여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겸손히 고백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7:27-29)

이같은 아버지 임금 다윗의 기도가 씨가 되고 열매로 자라나서 때가 되매 아들 솔로몬 임금 즉위 제 4년이 되던 해에 성전 건축이 시작된 것이다. 개인이든 가정사이든 나라일이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일이든 모든 것이 때가 있다. 그 때가 차야 하나님의 일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전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건물들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성전은 하나님을 위한 집이다. 예배당도 마찬가지다. 예수님도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라고 하셨다. 내 교회라는 말씀은 사실은 보이는 건물로서의 교회를 말씀하시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즉 메시아로 믿고 인정하고 따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순종하며 목숨이라고 바쳐서 헌신적으로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이들을 향하여 ‘내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예배하는 예배당을 지어 봉헌하는 것은 엄격히 생각하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즉 예배당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에 나아가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하나님의 아들딸들을 탄생 시킬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영원한 구원 사역의 본체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건축하는 집이 성막이요 성전이요 예배당인 것이다. 그렇다. 맞다. 예배당을 짓고 교육관을 짓고 친교실을 지어서 그 건물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독교 교육과 거듭난 성도의 사귐과 치유와 회복이 계속하여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집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집인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계속하여 일어날 것이니 말이다. 할렐루야 아멘. 

백화점 건물이 수 만평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값비싸고 화려한 그 모든 물건들이 다 사람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호텔에 들어가 보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임과 식사자리와 방들이 다 사람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비행기라고 들어갈 만한 엄청난 컨벤션 홀들이 여기 저기 지어지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들이 아니다. 수 만 명 들어가는 체육관들이 사람의 육체와 그 기량을 겨루고 자랑하는 곳 이지 하나님을 위한 곳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다윗은 어느 날 그런 생각에 골똘하게 된 것이다. “나는 양을 치던 베들레헴 시골 소년으로서 이렇게 임금이 되어 좋은 백향목 왕궁에서 살아가는데 하나님을 모시는 법궤는 저렇게 초라한 성막 안에 모셔져 있다니 이 어찌된 일인가. 내가 친히 하나님의 성전을 잘 지어 봉헌하고 싶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나님을 너무 귀하게 여기시고 그 마음을 축복하신 것이다. 다윗에게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이루게 하실 장래의 성전 건축을 예언하여 축복해 주셨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13),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

이 같은 성전 건축자의 축복을 자자손손 받아 누리는 은총과 축복의 주인공이 모두 다 되자.
 
규격대로 짓되 연장을 사용하는 소리가 없이 건축되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루살렘 솔로몬의 성전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나와 있다. 길이가 27. 36미터요 너비가 9. 12미터요 높이가 13. 68미터이다. 규빗이란 히브리 장정의 팔꿈치에서 장지 끝까지의 평균 길이를 말한다. 이 솔로몬의 성전은 아무데나 지은 것도 아니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지은 것이 아니었다. 지을 날짜를 사람이 정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섭리였다. 솔로몬 성전이 지어진 터전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던 그 모리아 산언덕이었다.(창22:2) 또한 역대하 3장 1절에 나오는 다윗의 오르난 타작마당이었다. 다윗이 인구 조사하였던 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번제단을 쌓았던 곳도 바로 그 곳이었다.(삼하24:16-25) 그러므로 솔로몬 성전 터는 희생과 헌신과 화해와 긍휼과 자비와 용서의 처소이다. 그 곳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규격과 식양을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축 재료를 사용하여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이다. 성전 공사에 쓰여질 백향목과 대리석을 베고 다듬는 일이 저 먼 이웃 나라 레바논의 현장에서 다 이루어졌다. 단지 먼 길을 조심스럽게 운반 해다가 성전을 짓되 성전 건축 현장에서는 방망이 소리 하나도 나지 않았다. 백향목을 다듬기 위한 도끼 소리 하나도 나지 않았다.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가만 가만히 조용조용히 엄숙하고 경건하게 성전 건축이 이루여 졌던 것이다.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조용조용히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를 준비하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정성을 다해서 장례를 모실 때와 같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삼일 후 새벽에 부활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그런 성도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교회되길 바란다. 그런 예배당 건축 기간이 되길 바란다. 그런 헌신자들과 그런 섬김의 사람들로 주님의 몸 된 성전을 건축하고 예배당이 건축되어 나가길 원한다. 지성소와 성소와 다락과 골방과 창문 하나 달기까지 조용조용히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져 갔다. 이런 은혜롭고 경건하고 아름다운 미담이 넘쳐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그런 발전과 부흥을 이루길 원한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나님의 집을 드나드는 영혼들이 천도 되고 만도 되길 원한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2) 이런 고백이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는 날이 임하길 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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