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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요단강 가에서(수3:1-6)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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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2-20 00:49 조회 20,654 댓글 0
 
사계절이 명확한 지역에서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질서 있게 가고 온다. 이 같은 자연의 법칙은 어길 수가 없다. 어제가 우수였고 두 주가 지나면 어김없이 경칩이란 절기가 다가온다. 이 24절기는 달을 중심으로 정해진 것으로 대단히 과학적인 계절 구분이다. 인간사도 마찬가지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이에 끼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장수시대가 된 현대인의 신체 나이는 평균적으로 과거에 비하여 자신의 나이에 0.7을 곱해야 한다고 한다. 그럼 나의 나이는 53X0.7이니까 37살인 셈이다. 아직 한창 나이다. 가령 올해 60살인 경우는 과거에 비하면 42살인 셈이다. 우리 모두 소망을 갖고 살자. 그리고 주어진 생을 보람되게 가꾸어 가자.

어느 식당에 갔다가 ‘지철심경’(志鐵心鏡)이란 현액을 보았다. 의지는 철과 같이 강하게 하고 마음은 거울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렇다. 새로운 신앙생활의 변화를 체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철심경의 마음가짐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야 하겠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는 세상을 떠나 하나님 곁으로 갔고 그 동안 광야 40년을  한 결 같이 모세의 옆에서 그림자처럼 그의 곁을 지키던 수종자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시대의 역사적인 과업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여라. 말씀 안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말씀을 다 지켜 행하라. 조상 때에부터 주리라고 약속한 땅을 반드시 주실 것이라고 여리고 점령의 분명한 가능성을 확신시켜 주셨다. 또한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어디로 가든지 늘 함께 해 주시겠다고 임마누엘의 약속을 해 주셨다. 이제 드디어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전달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해오신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그 때에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의 의지와 신앙을 표현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지 모른다.(수1:10-18) “당신이 명령한 모든 것을 우리는 다 지켜 행할 것입니다. 장차 우리더러 가라고 하시는 곳에 어디든 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도 모세에게 순종한 것처럼 여호수아 당신에게도 순종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 계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덕담과 신앙과 의지를 분명하게 고백하였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여호수아 장군에게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수1:18)하고 대단하게 힘을 실어 주는 대국민 단합을 스스로 선언하였다. 이제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여호수아는 두 사람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여리고 성에 정탐을 목적으로 파견하였다. 여호수아 제 2장에 소개된 유명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거기서 두 정탐꾼을 숨겨 주었던 기생 라합은 나중에 자신의 부모 형제 등 일가족을 모두 다 구원하는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었다. 성벽에 붉은 줄을 매어 다는 수신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리고 성 함락 작전 때에 온 가족이 구출 받게 된 것이다. 그 기생 라합은 나중에 두 정탐꾼 중의 한 사람이었던 살몬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하여 기생 라합은 다윗 임금의 고조모가 되는 역사적인 가문의 할머니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역사의 과정이 순간의 신앙고백과 선택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정탐을 마치고 여호수아 앞으로 되돌아 온 두 정탐꾼들은 한 결 같이 그 땅은 여호와께서 우리 손에 주신 땅이라고 확신에 찬 보고를 하였다. 

이미 요단 강 건너 여리고 성 함락 작전으로부터 시작하여 가나안을 함락할 역사적인 전쟁은 시작된 것이다. 오늘 본문은 그와 같은 전운이 감도는 40년 광야 생활의 마지막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오늘 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다 마찬가지다. 개인이든 가족이든 사회생활을 하는 그 누구이든 역사적으로 이런 순간을 누구나 다 경험하게 되어있다. 요즘 우리는 교회적으로 그러한 중차대한 순간을 맞고 있다. 여기까지 함께 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인도해 주시리라고 믿는다.

자, 그러면 이와 같은 역사적인 격변기에 여호수아와 광야 끝에서 며칠 수면 요단 강을 저만치 바라 다 보는 곳까지 도착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태도와 모습으로 하나님을 따랐는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
1절에 보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고 했다. 아침 일찍이 일어난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함께 싯딤에서 출발해서 요단 강 가까이까지 이동을 시도하였다. 12km의 거리이니 30리 길을 이동한 것이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는 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는 주어진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넘치게 감당하는 지도자였다. 오늘 본문에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동이 트기 전에 일찍이 일어난 여호수아가 무슨 일을 먼저 하였겠는가? 물론 기도하지 않았겠나? 마가복음 1장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늘 새벽 일찍이 일어나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신 기록이 있다. 이처럼 여호수아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아침 일찍이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였다.(수3:1, 6:12, 7:16, 8:10) 이미 이때는 사실 긴 잠을 잘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전쟁이 시작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아침 일찍이 일어난다는 개념이나 의미가 별로 없는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교대 근무의 현장도 많고 밤과 낮을 뒤 바꾸어 사업하거나 장사하거나 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적인 순간은 해 뜨기 전 이른 새벽 시간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올 봄을 맞이하면서 우리들도 새벽을 깨우는 기도의 열심을 반드시 가져야만 할 것이다.

요단 강가에 도착한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삼일을 머물면서 역사적인 요단강 도하 작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사십년 전에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게 하시려는지 궁금하고 긴장된 순간이 다가 온 것이다.

삼 일 간 머물면서 하나님의 뜻이요 여호수아를 통한 명령이 백성들 가운데 행정을 책임 진 관리들에 의해서 일일이 백성들에 전달되었다. 이미 그런 맹세를 한 것처럼 모든 백성들이 일사불란하게 지휘체제에 순종하면서 합심하고 단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드디어 명령이 백성들의 진중에 골고루 전달되었다. 그 내용을 차례대로 묵상하는 중에 또 새로운 은혜를 함께 깨달을 수 있기 바란다.

언약궤의 뒤를 따르라.
첫 명령은 이제 장차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이동을 시작하게 되면 그 뒤를 따라서 이동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약궤를 앞 장 세운 것이다. 민수기 4장에 보면 언약궤를 이동할 때에는 아무나 참여하지 말고 고핫 자손이 메도록 규정되어 있다.(민4:4-15) 그러나 오늘의 본문처럼 때때로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어 이동하도록 명령하신 적도 있다. 이처럼 그 모든 규정과 명령은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시고 명령하시고는 했다. 언약궤란 법궤, 증거궤, 하나님의 궤라고 달리 이름 하기도 한다.(출25:22, 삼상3:3) 그 동안 광야 생활 40년을 인도하는 것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었다. 그러나 요단 강 가까이 도착한 이후에는 더 이상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의하여 언약궤를 앞 장 세우고 그 뒤를 따르게 한 것이다. 왜 언약궤인가?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언약궤를 뒤를 따른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늘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인도하시네......”하고 찬송하며 살아간다. 그 찬송이 우리의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증거 되고 체험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 사람의 하루하루를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진지함이 있어야만 한다.

이는 마치도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목자와 양과의 관계와도 같다.
목자가 없는 양들의 삶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땅에 목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동물이 양이다. 마치도 언약궤를 앞 장 세우고 그 뒤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란 목자와 양과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이는 오늘 날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양과 목자의 관계를 체험하고 책을 낸 선교사의 아들이요 8년간이나 양을 치는 목자였던 필립 켈러의 책, <양과 목자>에 보면 그런 생생한 일화가 넘쳐 난다. 양을 치는 목축 법은 아브라함의 때인 4천 년 전이나 다윗의 때인 3천 년 전이나 오늘 날이나 별 차이가 없다. 여기서 주어지는 교훈이 깊은 것이다.

요즘 구제역으로 인하여 겪는 어려움을 보라. 지난 2010년 11월에 경북 안동지역에서 번져가기 시작한 구제역으로 매몰된 소와 돼지의 수가 이미 300만 마리가 넘은지 오래다. 누가 이런 날을 예견이나 했겠는가? 짐승 한 마리의 운명도 사람의 힘으로 마음대로 못한다. 더욱이나 인생의 나아가는 길을 누가 주장하고 인도하는 것인가.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물론 각자가 노력도 하고 수고도 하고 열심히도 살고 성실하게 부지런히 창의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 33장 2절에 보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 생활을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다. 앞의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유명한 성경 말씀이 바로 예레미야 33장 3절의 기도 강조 교훈이 아닌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인간의 생애에는 각 사람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고 순종하고 따를 줄 아는 것이 믿음이다.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의 <하나님의 인도>라는 책에 보면 그런 내용의 교훈으로 가득하다. 제임스 패커는 지난 20세기를 대표하는 3대 복음주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와 함께 제임스 패커 박사를 꼽아 왔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학위를 했고 C. S. 루이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는 30여권의 책을 썼고 지금은 캐나다의 리젠트 칼리지의 명예 교수로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날마다 매 순간마다 4가지 덕목을 중심으로 내 마음과 양심에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직, 순결, 무욕, 사랑”이 그것이다. 그 뿌리는 1920-1930년대에 ‘옥스포드 운동’이라고 이름 붙여진 프랭크 부크먼을 중심으로 했던 영적 부흥 운동에 기초한다. 그는 신자라면 하루에 최소한 30분 정도를 구별해서 위의 네 가지 덕목을 붙들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면한다. 이와 같은 경건 운동에서 시작하여 ‘기도, 묵상, 성경 읽기, 자아 성찰, 고백, 새로운 헌신’과 같은 경건 훈련 운동이 번져 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훈련에 자신을 겸허하게 맡기고 영적 훈련을 계속한 사람들은 시대적으로 쓰임 받는 주인공들이 되었다. 여기에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오순절파 교인들과 같은 은사 중심의 신앙생활에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런 생활을 게을리 한 이들은 단조롭고 냉소적이고 냉랭하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에 그치고 말았다. 제임스 패커는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경이로움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언약궤를 뒤 따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노라면 목자이신 주님께서 양과 같은 우리 인생들을 험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관리해 주시고 언제나 신선하고 좋은 꼴을 먹여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에 너무 가까이 하지는 말라.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언약궤를 뒤 따르되 이천 규빗 즉 900미터쯤의 거리를 두고 뒤 따르라고 했다. 지나치게 가까이 하지는 말라는 명령이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언약궤의 신성함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거룩함을 보고 기억하게 하시려는 것이다.(삼하6:6-7) 우리는 직접 보고 체험함으로 신앙적인 감동과 감격과 확신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이다. 어쩔 수가 없다. 물론 하나님은 죄인된 인간을 가까이 하려 하시지만 죄인인 인간은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더 가까이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둘째, 모든 백성들이 서로 잘 언약궤를 주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4절 중반절에 보면,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라고 하였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가는 길은 예전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이었다. 그러므로 뱡향과 목적지를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시지 않으시면  안 되었다. 오늘 날 우리들의 앞길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저 만치 뒤따라 인도하심에 순종하다가 보면 분명히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행(行)하실 기이(奇異)한 일들을 기대(企待)하며 자신을 성결(聖潔)하게 하라.
이제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순간이 다가 오자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들에게 성결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 성결이란 창세기 35장2절과 출애굽기 19장 10절과 14절과 15절에 근거하면 옷을 세탁하고 갈아입는다든지 남자가 여자를 혹은 여자가 남자를 멀리한다든지 하는 행위의 금지 사항뿐만 아니라 마음가짐의 성결을 강조한 것이다. 이방신을 버린다든지 자신의 영적 성결을 유지하라는 명령이다. 영혼과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신뢰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자세를 말씀하는 것이다. 이제 얼마 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놀랍고 기이한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성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부름 받은 선민(選民)답게 행동하자는 명령이다. 여기서 성결한 삶이란 구원의 방편이 아니라 구원 받은 백성들의 일상생활의 삶의 태도여야만 한다. 에베소서 4장 23-24절에 보면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다.

인도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역사적인 선교사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윌리엄 캐리는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었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큰 비전을 품고 위대한 일을 시도했다. 그리고 위대한 선교사, 언어학자, 원예학자, 대학 교수, 아시아 최고의 대학 설립자가 되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실 놀랍고 기이한 일을 기대하면서 또 다시 새로운 일을 시도해 나가는 용기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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