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나 은이나 청동 같은 것도 변하지 않지만 돌은 변하지 않는 것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요단 강 바닥의 돌 열둘을 어깨에 메어다가 기념 돌을 쌓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것이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기념 돌이 되게 하라고 하셨다. 사무엘 상 5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사울 임금 때에 블레셋과 싸우다가 그만 법궤를 빼앗겼던 적이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 갔다고 좋아 하였지만 블레셋 지경에 재앙이 계속되었다. 법궤를 다곤 신전의 다곤 곁에 두었는데 아스돗 사람들이 다음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가보니 다곤 신상이 법궤 곁에 엎드러져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다. 일으켜 세워 두었는데 다음 날 가서 보니까 머리가 잘려 나가고 두 손목이 끊어져서 문지방에 나뒹굴고 다곤 신상의 몸뚱이만 남아 있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손이 재앙을 내리셔서 아스돗 지역의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가 나고 그 지역이 망하게 되었다. 당황한 저들이 블레셋의 모든 방백을 불러 모아서 대책 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가드라는 곳으로 옮겨 가기로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가드 지역에 더 큰 재앙을 내리셨다. 이스돗 보다 더 심한 악한 종기가 나서 온 가드 사람들이 큰 환란을 겪게 되었다. 다시 하나님의 법궤를 에그론으로 보냈는데 그 곳에서도 심한 종기로 사람들이 죽어 가게 되었다. 결국은 블레셋의 복술자들의 의견을 받아 들여서 일곱 달 만에 이스라엘 진영으로 다시 돌려 오게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새 수레를 만들고 젖 떼지 않은 암 소 두 마리에 수레를 메게 해서 벧세메스로 보내었다. 그 때에 블레셋의 복술자들이 “만약에 그 젖 떼지 못한 암소들이 뒤를 돌아다보지 않고 벧세메스로 가면 그 동안의 재앙은 하나님이 내리신 것이고 만약에 뒤를 돌아보고 간다면 우연히 생긴 재앙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방금 송아지를 떼어 놓은 암소 두 마리인데 저들 소가 울거나 좌우로 치우치질 않고 앞만 보고 벧세메스로 향해 올라가는 것이었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돌아가고 앞을 향해 나가던 수레가 여호수아의 밭이라 이름 한 밭의 큰 돌이 있는 곳에서 멈추어 섰다. 그 때에 밀을 베던 벧세메스 사람들이 모여서 수레를 헐어서 그 나무로 제물을 태울 화목을 삼고 그 암소 두 마리를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렸다. 그 법궤 곁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보낸 금으로 만든 독종과 쥐 형상이 있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것을 큰 돌 위에 놓고 증거로 삼았다. 그 후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보다가 70명이 죽는 사건이 생겼다. 이로 인해서 벧세메스 사람들에게 큰 슬픔이 임하고도 또한 법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결국은 벱궤를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옮겨 보내게 되었다. 그 곳의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모시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궤를 잘 지키게 하였는데 무려 그 곳에서 20년을 지내었다. 이와 같은 때에 선지자 사무엘은 백성들에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고 이방 신을 버리고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향하고 하나님만 섬길 것”을 권면하였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길에서 건져 주실 것이라고 전했다. 그 이후에 사무엘 선지자는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라 하여 하나님 앞에서 금식 기도 운동을 벌였다. 착잡한 마음으로 불안하게 지내던 백성들은 선지자 사무엘에게 자신들이 블레셋으로부터 구원을 받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 때에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갖다가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렸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그 때에 블레셋이 또 다시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는데 하나님이 큰 우레를 발하셔서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하지 블레셋 군대가 패하고 말았다. 그 때에 힘을 얻은 이스라엘 군대는 미스바에서 시작해서 벧갈이란 곳 까지 블레셋 군대를 추격해 몰아 냈다. 그 때에 선지자 사무엘에 미스바와 센 사이에다가 돌을 취하여 세워 놓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7:12)는 뜻의 에벤에셀이란 돌비를 세웠다. 성경은 이처럼 돌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신 일을 기념하는 기념 돌로 삼으시고는 하였다. 오늘 본문의 사건처럼 기념과 표징을 삼을 때에 돌을 사용한 것이다. 돌을 기념으로 하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고 영원한 의미와 교훈이 있다. 심지어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돌무덤에 장사되었던 그 무덤이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빈 무덤의 기념 돌무덤이 된 것이 아닌가.
출애굽한 백성들이 모세와 함께 지내던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백성들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밖에는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가 광야 생활 중에 태어난 40살 미만의 후세대들이었다. 12정탐꾼들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의 열 사람의 정탐꾼들은 미리 가나안을 정탐해 보는 축복의 기회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은 나중에 가나안에 입성하는 명단에서 빠지고 말았다. 이처럼 불신앙과 의심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에게는 내일에 대한 보장이 없는 법이다. 광야에서 태어난 후손과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의 모든 출애굽한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 가운데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산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살자와 죽을 자를 나누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6. 25 전쟁 때에 중공군이 인해 전술로 밀고 내려오자 함경남도 흥남 부두에서 동해안을 이용한 철수 작전이 감행 되었다. 진격도 전쟁이지만 때로는 철수하거나 후퇴하는 것도 전쟁이다.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인 성탄절 전날까지 열흘 간 미군 10군단과 대한민국 제 1군단이 협력하여 철수 작전이 진행되었다. 미국 군함과 비행기가 중공군을 폭격해 대는 동안 크고 작은 상선 250여척이 동원되어 철수 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군대 100,000여명과 군 차량 14,000대 그리고 민간 피난민 약 100,000만 명과 35만 톤의 군수품을 동해상을 거쳐서 남쪽으로 철수 시켰다. 그 때에 마지막 철수하는 피난민 14,000명을 싣고 거제도까지 안전하게 철수시키는 철수 작전을 성공시킨 메러디스 빅토리 호(SS Meredith Victory)의 선장이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이다. 그는 미 제 10군단장인 에드먼드 알몬드 장군과 그의 곁에서 돕던 한국인 고문관이었던 현봉학 박사의 주선으로 2,000명을 실을 수 있는 규모의 화물선에다가 14,000명의 피난민을 싣고 거제도까지 이동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철수 기간에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거제도로 이동하는 동안에 오히려 5명의 아기가 태어나서 피난민은 14,005명으로 늘어났다. 세계 전쟁 역사에 기록된 유명한 일화이다. 정원 60명에 화물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이었던 이 배의 선장은 배 안에 실려 있던 무기들을 다 내어 버리고 군인과 피난민을 최대한 실으라고 명령하였다. 28시간의 항해 끝에 부산을 거쳐 거의 삼일 만에 거제도에 도착하였다. 음식은 물론 물도 부족하고 이부자리도 거의 없이 모든 피난 살림살이를 다 버리고 몸만 겨우 실려서 이동시킨 것이다. 선원인 미국 군인들은 자신들의 군복을 벗어서 벌벌 떨고 있는 여인들과 어린이들에게 입혀 주기까지 하였다. 1950년 12월 24일 성탄 이브에 부산항에 도착하였지만 피난민이 너무 많아서 입항을 거부당하자 레너드 라루 선장은 그 밤을 넘기고 거제도의 장승포 항구로 이동하여 크리스마스 날에 피난민들을 내려놓기 시작하였다. 그 전 날 미 10군단장인 에드먼드 알몬드 장군은 흥남 부두에 내려놓은 무기들을 중공군에게 빼앗길까봐 흥남부두를 공격하여 폭파해 버렸다. 22년간 거대한 상선을 진두지휘하며 제 2차 대전과 6. 25를 겪은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의 선장인 레너드 라루는 한국 전쟁의 충격을 안고 휴전된 다음 해인 1954년에 미국의 뉴저지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 생활을 하다가 87세를 일기로 지난 2001년 10월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그는 흥남철수 작전을 회상하면서 “나는 망원경으로 피난민의 행렬을 보았다. 애기를 안고 짐 보따리를 업고 들고 이고 손에는 어린이들과 닭을 엮어서 끌고 나온 수많은 피난 인파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때때로 그 날을 회상한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피난민을 한 사람의 목숨도 잃지 않고 수송할 수 있었는지 신비할 따름이다. 아마도 성탄절이던 그 당시에 하나님의 거대한 손길이 춥고 황량하던 한국의 바다 위에 우리들이 탔던 배의 키를 잡고 계셨던 것만 같다."고 말했다.
오늘 날 거제도에는 흥남철수 작전을 기념하는 기념 공원과 기념비가 세워졌다. 뿐만 아니라 거제시는 당시에 14,005명의 목숨을 안전하게 철수 시킨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모형을 건조하여 영구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당시 이 배에 타고 있던 22살의 일등항해사 로버트 러니는 그 후에 해군 소장까지 지냈다. 코넬 대학 로우 스쿨에서 공부하고 나중에는 변호사가 되어 지금도 노년기에 뉴욕 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앞장서고 한국인인 월드피스 자유연합의 대표인 안재철씨가 자료 수집을 도와서 메러디스 빅토리 호인 그 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 활동”을 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또한 안재철 씨는 그 수집한 자료에 근거해서 <생명의 항해>라는 책도 썼다. 에드먼드 알몬드 장군과 현봉학 박사와 선장 레너드 라루와 로버트 러니와 안재철 씨 같은 분들이 바로 기념 돌과 같은 인생을 살아간 분들이 아닌가.
우리는 모세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간 이후에 그의 대를 이어서 여호수아를 앞장세운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 건너 가나안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기적 사건을 묵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요단 강 도하 작전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여호수아 3장 10절에 보면 그 곳에 이미 살고 있던 일곱 족속을 하나님이 쫓아내시기로 결심하신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요단강도 홍해처럼 갈라지게 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요단강의 한 가운데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다.
40년 전 모세의 때에 홍해를 건너던 날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홍해를 향해 내 밀어서 홍해가 갈라지게 하라고 하셨다. 출애굽기 14장 15절과 16절에 나오는 장면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알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14:21) 고 했다. 그리고 광야 40년 세월이 지났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두 돌 판에 두 번이나 반복하여 계명의 말씀을 받았다. 언약의 말씀을 받아 언약서에 썼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광야 생활 중에 성막을 건설하고 하나님께 언제나 번제를 드리는 예배 민족의 신앙을 세워 나갔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갔다.
이제 하나님 앞으로 먼저 돌아간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앞장서서 요단강을 건넌 것이다. 요단강을 건너는 방법은 모세의 때와 달랐다. 레위 사람 제사장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법궤를 어깨에 메게 하였다. 그리고 저들이 앞장 선 것이다. 그 뒤를 2,000 규빗이니까 900미터쯤 뒤 따르게 하였다. 그 만큼의 거리에서 행할 길을 보고 따르게 하신 것이다. 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하였다.
·레위인 제사장들로 하여금 어깨에 법궤를 메고 앞장서게 하여라.
·백성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 따르도록 하여라.
·모든 백성들은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따르라.
·그리하면 내일 여호와께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모세 때에 함께 하였듯이 내가 너희와 함께 하는 것을 저들로 알게 할 것이다.
여호수아 3장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이리하여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택한 자들을 불러내서 열두 명이 함께 나섰다. 레위인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법궤를 어깨에 메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게 하였다. 신비하게도 요단강이 홍해처럼 양편으로 갈라져 서고 그 많은 백성들이 그 강바닥을 맨 땅처럼 건너갔다. 그 때는 곡식 거두는 때라서 요단 강 물이 가장 많을 때였다. 모든 백성들이 강 저편 언덕에 오르기까지 열두 명의 뽑힌 자들은 그 역사적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지켜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요단 강 바닥으로 되돌아가서 아직까지 그 강바닥에 서서 어깨에 법궤를 메고 있는 제사장들 곁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제사장들이 있는 그 곁의 돌 열두 개를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지금 저희들이 그날 밤에 묵고 있는 그 곳에 두도록 하라고 명령하셨다. 이미 어둠이 깔린 어두운 밤이 시작되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였고 각 지파에서 뽑혀 나온 열두 명에게 가서 어깨에 돌을 하나씩 메고 돌아오라고 명령하였다.
이것이 표징(表徵)이 되리라고 하셨다. 이것이 자자손손 후손들에게 설명해 줄 표징 석이라고 하였다. 이제 곧 양편의 물이 합쳐져서 다시 만나 천년 이천년 아니 삼천년이 지나고 삼천 오백년이 지나도록 다시 도도하게 흐르게 될 그 요단 강 맨 밑바닥의 표징석을 가져 오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가끔 간증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벤살렘교회를 건축한 후에는 한국에서 뱃길로 조각하여 새겨서 수출 해 가지고 간 교회이름을 새긴 기념 돌이 그런 교훈으로 늘 다가 온다. 그 후 건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 올 때에 내 짐 보따리 안에는 이 나무토막 하나뿐이었다. 기도와 땀과 수고와 눈물과 헌신을 드렸을 뿐 내게 지금 간직된 흔적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먹물로 쓴 이 나무토막 하나뿐이다. 섬기고 나면 은혜가 남고, 추억이 남고, 개인적으로 혹은 가정적으로 그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이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다.
본문은 무엇을 말씀하는가.
법궤 중심의 기념 돌이 되게 하라.
왜 우리에게 예배가 소중하고 교회가 소중한 것일까. 교회는 마치도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요단강을 건넜는지를 다시금 확인하고 표징으로 삼는 장소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 강 건너서 가나안에 이르게 하셨는지를 증거 하게 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지난날들과 지난 한 주간의 삶을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를 표징 삼는 시간인 것이다.
이미 다 건넜고 이제 저 요단 강 바닥에 법궤를 어깨에 메고 있는 레위인 제사장들만 이 쪽 언덕으로 올라오면 될 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셔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뽑힌 그 열두 명이 되돌아가서 자신들과 지파의 백성들과 동족들이 안전하게 건너 온 요단 강 바닥 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증거로 다시 확인하고 그 곳 강바닥의 돌을 한 개 씩 어깨에 메고 나오라고 하셨다. 얼마만한 크기의 얼마나 무거운 것으로 가져 오라고 하지 않으셨다. 여기 뽑힌 자의 신앙과 태도와 마음가짐이 표현될 기회가 온 것이다.
법궤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아닌가. 그 법궤가 지금 요단 강 저 깊은 물이 멈추어 선 깊은 바닥에 서 있는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어져 있다. 그 곁에 가서 그 장면을 다시 보고 그 현장의 돌을 취해 갖고 나오라는 명령이시다. 각 지파의 건장한 장정들이 나섰을 터이니 20여 킬로그램 정도의 돌들을 하나씩 어깨에 메고 끙끙거리며 가나안 쪽 언덕으로 오르지 않았겠는가. 역사는 이렇게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성전 건축이 진행되는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할 우리 가운데 어깨에 법궤를 메고 요단 강 바닥에 서 있던 제사장들의 감격과 이미 건너 온 요단강에 되돌아 들어가서 거기에 여전히 서서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제사장들 곁에서 열 두 개의 돌을 택하여 어깨에 메고 강 언덕을 기어오르던 각 지파의 대표들의 행동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은 모든 신앙의 흔적이 법궤 중심이요 하나님 중심이 되기를 원하신다. 오늘 날은 우리들이 모여 예배하는 이 처소가 법궤 중심의 처소요 하나님의 중심의 처소를 삼는 신앙의 고향이요 믿음의 표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차 새롭게 완공되고 입당하게 될 성전, 즉 새로운 예배당도 법궤 중심의 신앙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의 처소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택함 받은 자들로 표징이 되는 기념 돌이 되게 하라.
하나님은 사람도 택하여 쓰시고 돌들도 택하여 기념이 되게 하셨다. 여호수아도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법궤를 어깨에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12지파를 대표하여 뽑혀서 되돌아 요단 강 바닥에 가서 돌을 취하여 어깨에 메어 오도록 선발된 이들도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다.(수3:12, 4:2)뿐만 아니라 여호수아 4장 4절에 보면 저들은 ‘준비한’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준비되고 택함 받은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요단 강 바닥에 얼마나 돌이 많았겠는가. 그러나 여호수아 4장 8절의 말씀처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가져다가 두게 하였다. 광물질에 불과한 돌일지라도 택함을 받을 때에 용도가 달라지고 표징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지난여름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을 때에 쓰다듬었던 ‘독도’ 표지석을 보았는가. 녹번역에서 불광역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그 중간의 길 가에 세워져 있는 우리나라 남한과 북한의 중앙 지점을 표시한 ‘양천리’라는 표지석을 보았는가. 십여 년 전에 중국 동북 삼성 지역에 한족 교회를 봉헌하기 위해서 방문하였다가 광개토대왕비를 본 적이 있다. 기념 돌 즉 표징이 되는 돌은 이처럼 역사 속에 영원한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가 다 택함을 받아 쓰임 받은 인물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과 기드온과 사무엘과 다윗뿐만 아니라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신약의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과 사도 바울과 디모데와 바나바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인물들이 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쓰임을 받은 인물들이다.
에덴의 아담의 가정에 태어난 가인이나 아이성 전투에 참전했던 여호수아 당시의 군인이었던 아간이나 사사 삼손이나 사울 임금이나 엘리사의 종 게하시나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나 초대 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택함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나 중간에 타락하고 범죄하고 사탄에게 꼬임을 받아 불행하게 된 주인공들이 아닌가.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계셔서 택하여 뽑아내시고 지금 이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 함께 이 길을 엄숙하게 가고, 경건하게 가고, 의미 있게 가고, 역사성을 가지고 가고, 내 속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잘 깨달아 알고 믿으며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한다. 인간의 생각으로 혹은 자기 자신의 판단이나 결심으로 이 길을 함께 가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각 사람과 각 가정을 지목하여 택하여 우리를 이렇게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착각에 빠지거나 오해에 빠지거나 자기 교만이나 자기숭배나 자기만족에 빠지면 사도 바울 곁에서 충성하다가 세상을 사랑하여 사명자의 곁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 버린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딤후4:14)나 데마나 그레스게나 디도처럼 불행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딤후4:10)
요한복음 15장 16절에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어서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마치도 요단강을 건넌 백성들에게 표징 돌을 택하여 그것으로 후손들에게 표징의 영원한 돌이 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이 가정과 교회 앞에서 자손들 앞에 기념이 되는 살아 있는 표징 인생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자자손손 영원한 증거로 삼는 표징의 기념 돌이 되게 하라.
인간은 스스로 크게 되려고 하면 교만에 빠지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 하고 하나님이 되게 해 주셔야만 한다. 여호수아는 출애굽 당시부터 40년간 모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인물이었다. 광야 백성들 가운데 모세를 그보다 더 잘 아는 인물은 달리 더 없을 정도였다. 모세의 장단점을 가장 잘 아는 모세의 대를 이을 만한 지도자가 바로 여호수아였다. 백성들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사용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모세의 때에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때에 요단 간을 다시 육지처럼 건너도록 기적을 일으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여호수아 1장의 시작부터가 그렇다.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이 해 주신 말씀이 바로 그러하였다.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반복하여 하신 것이다.(수1:5,9)
하나님은 요단 강 바닥에서 어깨에 메어 오게 한 이 열두 개의 돌들로 하여금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고 표징이 되게 할 영원한 기념 돌이 되게 하신 것이다. 세월이 오래 지난 후에 후손들이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수4:6, 21)고 물으면 그 때 자세히 설명해 줄 만한 증거로 삼으라고 하신 것이다. 여호수아 4장의 9절과 20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열둘 택함 받은 자들과 함께 다시 요단 강 바닥에 내려가서 거기 법궤를 메고 서 있는 제사장들 곁에다가 열두 돌을 세웠다. 그리고 어깨에 메고 나온 열 두 돌을 길갈에 세워 증거를 삼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으라”(수4:22)고 선언하였다.
하나님은 천하 만물의 그 어떤 것보다 크신 하나님이시다. 시편 93편 4절에 보면,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생은 임금이라도 방백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안 된다. 겸손하여야만 한다. 하나님은 세상의 그 어떤 왕이나 관원이라도 어리석게 행동하고 교만하게 행동하면 비웃으신다고 하였다.(시2:4)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은 분을 발하고 진노하셔서 놀라게 하시고 철장으로 깨뜨리고 질그릇같이 부수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야만 한다. 겸손해야 택하시고 겸손해야 쓰시고 겸손해야 영광스럽게 하신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든 이스라엘 목전에서 크게 하셨다.(수4:14) 또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수6:27)고 하였다. 여호수아는 110살에 하나님 앞에 가기까지 평생을 하나님만 잘 섬겼다. 여호수아 24장 15절에 보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전에 백성들의 수령과 재판장과 관리들을 불러 모으고,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 호와를 섬기겠노라.”고 고별 설교를 하였다. ‘나와 내 집은’이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여호수아 자신의 신앙이 후손들에게 자자손손 이어져 가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유언이 아닌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오직 주의 말씀뿐이다. 젊음도 가고, 힘도 아름다움도 다 지나가고 재물도 재산도 건강도 다 지나가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하신 표징만 영원한 것이다. “이 돌들이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그런 믿음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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