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중학교 2학년인 딸과 세 식구가 살아가던 어느 가정의 젊은 엄마가 폐암 판정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하루하루 다르게 건강이 약해지고 수척해져 가는 엄마를 간병하느라 집안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엄마의 장례를 마친 후에 아버지와 딸은 엄마의 장롱 살림살이들과 옷가지들을 정리하다 보니 마음이 더욱 아팠다. 아빠가 택배 일을 하면서 힘겹고 어렵게 겨우 겨우 살아가는 그런 가정이었다. “아빠! 이게 엄마 옷 모두 다야?” “으응 엄마 옷은 모두 불 태워 버리자” 엄마가 없는 빈 집에서 어린 딸이 저녁을 준비하였다. “아빠! 저녁 진지 잡수세요.” 딸이 엄마 대신에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서 아빠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으응 난 피곤해서 그런지 밥맛이 없다. 너 혼자 먼저 먹으렴.” 주섬주섬 냉장고를 뒤지며 이것저것 반찬 통을 꺼내서 식탁 위에 펼쳐 놓았다. 엄마의 옷가지만 불태우면 엄마의 흔적이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냉장고 안에는 엄마가 병들기 전에 담가 놓았던 파김치와 멸치 복음과 깻잎과 무말랭이 등의 남아 있던 반찬 그릇들이 식탁에 올랐다. 그 때 그만 딸아이는 울음이 복 바쳐서 “엄마아........”하면서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어머니 아버지의 자리나 가족의 자리는 그 자리가 비워지고 나면 얼마나 큰 자리요 소중한 자리였나를 실감하게 되지 않나.
어느 회사에서 가정의 달을 맞아 어버이 날 행사로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효도 행사를 하였다.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발 마사지도 해드리고 발도 씻겨 드리고 새 양말도 신겨 드리고 새로 마련한 효도 신발도 신겨 드렸다. 맛있는 음식과 과일도 준비해서 대접하였다. 그 때 한 직원이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쓴 글을 낭독하였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고 허리가 끊어질 듯 고생하며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 앉아 무짠지를 반찬으로 놓고 대충 한 끼를 때우셔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에 냇물에서 얼음을 깨어가면서 맨 손으로 언 빨래를 방망이질 해가며 빨래 하셔도 어머니는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난 배부르다, 난 생각 없다, 난 먼저 먹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허기진 채 저녁도 제대로 못 잡수시고 잠자리에 드셔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뒷꿈치가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손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만 하셨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을 깎기 전에 다 닳아 없어지도록 일만 열심히 하셨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큰소리치며 화를 내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끄덕도 하지 않으시며
가끔씩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씀하실 때에도 그것이 그냥 지나가며 하시는 어머니의 넋두리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한 밤 중에 주무시다 말고 일어나 벽을 바라다보며 훌쩍 훌쩍 우시던 어머니를 바라다보면서 난, 어머니는 울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사랑스러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지금 내 곁에 안 계시니 올해는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습니다.”
효도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효는 상식적인 것이다. 이 세상의 가장 끔찍한 죄는 살인이나 강도질이나 도적질이 아니라 은혜를 모르는 것이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고마움을 생각 못하고 사는 것이 반인륜이요 패륜이요 가장 큰 죄다. 자식이 부모에게 당연히 순종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은 의무요 상식이다. 아무리 많이 못 배운 부모님 혹은 경제력이 없어서 좋은 것 나에게 못 입히고, 좋은 것 못 먹이고, 좋은 것 척척 사주지 못한 부모님일지라도 나의 생명이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역할을 해 주신 것만으로 고맙고 감사하고 소중하고 공경 받을 만한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에 중국의 사천성에 사는 어느 여학생이 엄마 없이 반신불수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서 학교 까지 모시고 다니며 학교 수업을 계속하는 소식이 국제 뉴스를 타고 우리나라에까지 전해 진 적이 있다. 왕레이(王玲)란 이름의 이 여학생으로 인해서 주변의 수많은 여학생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기 운동을 벌이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계명 중의 첫째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는 의미가 그런 것이다. 십계명 중에서 인간에 대한 여섯 가지 계명 중에서 첫째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가 아닌가. 그런 면에서 첫 계명이라는 뜻도 있고 으뜸이 되는 계명이란 강조도 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간명하고 명쾌하게 부모 공경의 의무를 강조하여 교훈하고 있다. 무슨 말씀인가.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당시나 오늘 날이나 신앙생활의 위기와 일상생활의 위기는 주님을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므로 에덴동산의 하와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타락하고 만 것 아닌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첫 증거는 ‘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생각, 느낌, 감정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을 지키고, 생각을 다스리고, 느낌과 판단과 감정의 변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아 갈 수가 없게 되고 만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다운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란 하나님다워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 긍휼, 자비, 용서, 너그러움 등 그 모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에게 덧입혀 지는 천국의 언어로 나를 다시 빚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이것은 옳은 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부모에게 순종하는 길은 어려서부터 나에게 해 주시던 부모님의 잔소리에 담긴 천금보다 귀한 교훈을 잘 깨달아 알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국의 정치가요 저술가였던 아서 밸푸어(Arthur James Balfour, 1848-1930는 “원수에게는 용서를, 대적하는 자에게는 관용을, 친구에게는 나의 마음을, 아들딸에게는 모범을, 아버지에게는 효도를, 어머니에게는 내가 자랑거리가 될 만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라.”고 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장관을 거쳐 해군성 장관과 외무성 장관을 거쳐 영국의 제 50대 수상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삶과 자연과학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기초해야 한다는 유신론을 강조하던 보수당의 정치가였다. 그가 외무상으로 있던 당시에 세계 제 1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팔레스틴 지역에 유대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소위 ‘벨푸어 선언’을 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유대인들에게 큰 호감을 얻었고 반면에 영국 내의 아랍인들에게는 반감을 샀던 정치인이기도 하다.
내가 잘되면 세상 사람들은 시기하고 경쟁한다. 친구라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부모님은 다르다. 어머니는 특히 다르다. 자식이 잘되면 잘 될수록 기쁘고 감사하고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뿌듯해 하는 것이 어머니이다.
이 세상에 제 자식 잘된다고, 제 자식 잘되었다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어머니를 본 적이 있는가.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자식 된 도리는 나에게 주어진 역량과 재능과 됨됨이를 잘 갈고 닦아서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시고 기뻐하실 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이미 효도가 시작된 것이다.
난 성공하고, 난 출세했는데 모두가 다 제가 잘 나서 그렇게 된 것인 냥 많이 못 배운 부모라고 무시하거나, 가난한 부모라고 남들에게 떳떳하게 소개하지 못하거나 경제력이 약한 부모라고 괄시하는 그런 아들딸이라면 그는 참으로 못 된 아들딸이요 어리석은 아들딸이 되고 말 것이다.
자녀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훌륭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자랑스러운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남들에게 존경받고 지역사회와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직장이나 그 어떤 일터나 단체 안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간다면 이미 그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기쁨이 되는 옳은 삶을 살아가는 시작이 아니겠는가.
조선의 제 9대 임금이었던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70-1494)은 12살에 왕이 된 성종은 7대 임금 세조의 손자다.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는 19살에 요절하였기에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그도 14개월 만에 죽고 말았다. 이리하여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 성종이었다. 성종은 그의 아버지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다. 원래 왕위를 계승하였어야 할 예종의 맏아들인 제안대군이 왕위를 계승하여야 했지만 그는 나이가 두 살 밖에 안 되었다. 왕조가 위기를 겪고 복잡해지자 당연히 세조의 비였던 정희 왕후가 나서서 성종을 후계자로 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를 이어야 할 제안대군은 두 살로 너무 어리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은 질병이 많아 몹시 허약하다보니 그의 동생인 자산군인 성종은 할머니인 세조비에게 늘 주목을 받고 어려서부터 기상과 도량이 뛰어나서 태조에 비교하리 만큼 왕실에서 칭찬을 많이 받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당시에 활동하던 한명회, 신숙주와 같은 주요한 대신들이 세조비의 결정에 모두 뜻을 같이 해서 동조하고 나서자 성종은 8대 임금이 예종이 붕어하던 그날 갑자기 조선의 제 9대 임금이 된 것이다. 한명회는 성종 임금의 장인이다. 그러하다 보니 일이 더욱 속전속결 진행된 것이다. 그는 12살 너무 어린 나이에 왕이 되긴 하였지만 나중 24년간 나라를 통치하면서 태조와 세종대왕 이후 조선의 정치제도의 기틀을 제대로 잘 자리 잡게 한 임금으로 유명하다. 국가 운영의 기틀을 법제화한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완성은 성종 때의 큰 공헌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7년 세월이 지나고 성인이 된 성종은 할머니인 정희 왕후의 수렴청정(垂簾聽政)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원상제를 벗어나 친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렴청정이란 왕의 나이가 어린 경우에 일정 기간 동안 대비가 국사를 관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원상제(院相制)란 어린 나이의 임금이 된 경우에 주요 재상들이 승정원에 출근해서 국사를 돌보는 제도를 말한다.
20살 성인이 되어서 친정(親政)을 시작하게 된 성종 임금이 어느 날 밤중에 변장을 하고 성 내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생활을 돌아보고 있었다.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밤이 깊은데도 불을 끄지 않고 노랫소리가 들리기에 찾아가서 인기척을 하면서 “지나가는 길손인데 하룻밤 쉬었다가 갈수 있겠소.”하고 물었다. 젊은 주인 내외가 안방으로 손님을 모시기에 들어 가 보니 큰 잔치 상이 차려져 있었다. 아니, 이 밤 주에 웬 잔치 상이란 말인가. 사연인즉은 시아버지의 생신날이 되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접할 길이 없자 며느리가 저자거리에 나가서 머리를 삭발하여 판돈으로 온갖 귀한 반찬거리를 사다가 시아버지의 생신 상을 차려 드린 것이다. 그리고 그 생신 상 앞에서 아들은 노래를 불러 드리고 수건을 쓴 며느리는 춤을 추면서 아버지를 즐겁게 해 드리고 있었다. 임금은 건너 방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발하면서 0월 0일에 과거 급제 시험이 있으니 응시하라고 정보를 건넸다. “아니 저 같은 글이 짧은 자가 어찌 과거 시험을 본단 말입니까” 그 때 임금은 “그래도 요행이란 것이 있지 않겠소.”하고는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과거 시험 날이 다가 왔다. 문제는 “노인은 밥상을 받아 들고 수심에 빠져 있고 아들은 기뻐서 노래를 부르고 며느리는 수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덩실 덩실 춤을 추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이냐”는 것이었다. 그 집 아들은 당당히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고 임금이 내리는 좋은 벼슬을 얻어 연세 많은 아버지께 효도하며 온 가족이 부귀영화를 얻고 누리게 되었다. 효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여야만 한다. 그 효도의 시작이 순종(順從)이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은 옳은 일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축복이 시작인 것이다.
주 안에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 공경(恭敬)이라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자녀의 의무요 도리다. 부모 공경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첫 계명이라는 뜻은 으뜸이 되는 계명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두 돌 판에 십계명을 받을 당시에는 제 오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1-4계명인 하나님 계명의 돌 판에 이어서 기록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이 땅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강조였다. 자녀들을 키울 때에 엄마 아빠가 아들딸이 병들세라 잘못될 세라 노심초사하며 잘 키우고 바르게 키우고 사랑으로 키우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키우려고 마음을 쏟고 정성을 다하는 것처럼 나중에 부모님께 아들딸들이나 사위 며느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고 복 받을 일이란 말이다.
미국 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제임스 가필드(James A. Garfield, 1831-1881)는 오하이오 주의 가난한 개척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가난했지만 하나님을 잘 믿는 개척 이민자의 가정이었다. 제임스는 겨우 학교에 들어갔지만 책을 살 형편조차 못 되었다. 남의 책을 빌려서 겨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엄마가 가난해서 책도 못 사주고 정말 미안하구나...” 그럴 때마다 제임스는 “아니에요, 엄마. 저보다 더 가난해서 학교에 못 오는 애들도 있는 걸요.”하면서 성실하게 성장해 나갔다. 나중에는 고학으로 윌리엄스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사 생활과 변호사 생활을 하였고 오하이오 주의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북군의 장교로 입대하여 의용군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군대에서 퇴역한 후에는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18년간의 하원의원 활동을 끝으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취임식장에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는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섰다. 다들 의아해했다. 그는 자신이 앉아야 할 대통령 자리에 어머니를 앉히고 자신은 그 옆에 섰다. 그리고 취임인사 중에 "여러분, 저를 대통령이 되도록 늘 이끌어 주시고 보살펴 주신 분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오늘 이 영광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머님께 바치고자 합니다." 식장에는 박수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제임스 가필드는 가난한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난이 자기 발전과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던 인물 중의 대표가 되었다. 지금도 미국 의회 의사당 앞 잔디밭 한 편에는 웅장한 제임스 가필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신명기 27장 16절에는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니라”고 말씀하였다. 부모님을 경홀히 여기지 말고 소중히 여기며 반드시 공경해야만 한다는 강조의 말씀이 아닌가. 잠언 1장 8절에는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하였다. 잠언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을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는 말씀도 있다. 제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마땅한 일이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자녀의 도리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기시면서 아들 예수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슬픔과 충격 가운에 빠져 있던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로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사십일 후에 승천하셨다. 제자 요한은 그 때부터 자기 집에 예수님의 어머니인 이모 마리아를 정성스럽게 모셨다. 요한복음 19장 26절과 27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효행 편에 보면, 태공이 “나 자신이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할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이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지 않는다면 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겠는가.”(太公 曰 孝於親子 亦孝之 身旣不孝 子何孝焉)라고 말하였다.
효도하면 내가 잘되고 복을 받게 된다.
본문은 분명하게 강조한다.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는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나오는 십계명의 말씀을 다시 인용한 교훈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다. 출애굽기에서 말씀하신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이란 가나안이기도 하지만 오늘 날 이 땅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현세의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할 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하기 까지 주시는 영원한 영생의 축복의 약속인 것이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자신을 결박하여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제사 준비에 저항하지 않고 결박당하여 제단에 올려지는 순종을 보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에게 감동하셨고 예비하신 숫양을 대신 제물로 받으셨다. 이 때 사용된 표현이 여호와 이레가 아닌가. 순종하면 복이 임한다. 공경하면 축복과 간증이 넘쳐나게 된다.
창세기의 요셉은 효자 중의 대표였다. 요셉은 들판에서 양과 소를 치는 형님들에게 별미를 챙겨 들고 찾아 나서며 아버지의 심부름도 잘하던 효자였다. 그런 그를 형 들이 들판에서 애굽의 노예상들에게 팔아 버린 것이다. 그는 자기를 팔아 버린 배 다른 열 명의 형들에게 나중에도 보복하지 않았고 형들과 형수들과 조카들을 다 품고 연세 많으신 아버지 야곱과 함께 고센 땅에서 잘 살도록 배려한 넓고 깊은 마음을 가진 효자요 형제들 간에 의리를 회복한 바다 같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아버지 야곱이 돌아가신 후에 동생 총리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형님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며 선으로 악을 이긴 효자 요셉이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삶을 살아가던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었다. 아브라함의 삼사 대 후손 들 중에 요셉만큼 잘되고 장수하며 하나님의 생생한 축복을 받은 인생이 다른 형제들 중에 그 누가 있는가.
또 룻기의 주인공인 나오미의 며느리 룻을 보라. 불쌍하고 불행해진 모압 땅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버리지 않고 운명을 같이하고 신앙을 같이하려던 그의 효심은 베들레헴에서 보아스를 만나 가정을 다시 이루고 오벳 낳아 기르며 그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가 다윗을 낳으면서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영광을 누리지 않았나. 룻은 베들레헴에 들어가 살면서 보리 이삭을 줍고 밀 이삭을 주어다 시어머니와 가난한 한 끼니를 해결하며 살아갈 때에도 결코 비굴하거나 기가 죽지 않았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란 확신과 분명한 믿음이 이미 그의 마음 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연세 많은 아버지 이새에게 효도하며 들판에서 양을 치는 일에 열심과 성심을 다하던 소년이었다. 전쟁 중에 전선에 싸우러 나간 형들에게 전할 위문품을 싸 들고 천부장에게 건넬 별미를 보따리에 메고 전쟁터로 향하던 다윗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버지의 양떼와 염소 떼를 다른 종들에게 잘 부탁하고 전쟁터로 나서는 성실함과 책임감이 돋보이던 효자였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주목하여 들어 쓰시기 시작한 것이다. 다윗은 사울 임금으로 인하여 고난도 많이 겪었으나 그 나중은 잘되고 복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생으로 복을 누리고 또 누렸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어제도 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앞날에도 영원히 살아서 역사하실 것이다. 부모는 이 땅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보내신 권위이다.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신앙의 시작이다. 주 안에서 너의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으뜸가는 계명이고 네가 잘되고 이 땅에서부터 장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그런 축복을 받아 누리는 효자효녀 인생으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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