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잘되기를 원하는 부모의 소원은 어느 가정이나 한결 같다. 그런데 어려서 서울 우유 먹고 큰 아이가 가는 학교와 연세 우유 먹고 큰 아이가 나중에 보니까 먹고 큰대로 그 학교에 가더란다. 반면에 저지방우유가 건강에 좋다고 저지방 우유만 주로 먹인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저어지이방대학’으로 진학하더란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SKY대학 일색으로 혈안이 되어 있다. 물론 좋은 대학교에 가면 좋다. 그러나 그것만을 삶의 최고 가치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주님이 원하시는 세상은 천한 만민이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믿고 경배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 중에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복음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성도다운 성도의 모습인 것이다.
미국 남부의 조지아 주에 위치한 도시인 아틀란타에서 3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려가면 플레인스(Plains)라는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대통령의 고향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온 마을 사람들이 713명인 크지 않은 농촌 마을이다. 그 마을에 마라나타침례교회가 있다. 300명쯤 들어가는 크기의 예배당에 주일이면 세계에서 그 곳에서 예배하려고 모여드는 예배자들과 관광객들이 1,000명 이상이 북적댄다. 그 주변은 토지가 비옥해서 땅콩과 호두와 복숭아 농사가 잘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곳 지명을 별명으로 'Three P'(peanut, pecan, peach)라고 한다. 1924년생이니까 올해 90세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요즘도 매 주일마다 직접 방문자들에게 성경 공부도 가르치고 함께 주일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고는 한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그 마을에서 나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 곳에서 땅콩 농사를 하는 농부였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지미 카터는 그 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다녔다. 소위로 임관한 후에는 잠수함에서 근무하며 대위까지 군대 생활을 했다. 나중에 민주당 소속으로 고향 마을이 있는 조지아 주의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지냈다. 1976년, 52살 때에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1977-1981)에 당선 되었다. 미국에는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노벨 평화상을 탄 인물이 네 사람이나 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지미 카터 그리고 재선에 성공한 현직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그 중의 한 사람인 지미 카터 대통령은 현직에 있을 때보다 그 후에 더욱 국민과 세계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그가1982년에 설립한 ‘카터평화재단’은 세계인의 인권과 환경 문제와 국제 분쟁의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그런 공로가 인정되어 그는 200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북한과 니카라과와 아이티 수단 등 세계 곳곳을 날아다니며 국가 간의 분쟁의 해결사 역할을 해 왔다. 지난 2010년 8월에는 북한에서 8년 노동교화형을 받고 6개월 이상 억류되어 있던 곰즈 씨를 직접 북한에 방문해서 외교적으로 석방시켜서 그가 타고 갔던 전세기에 함께 태워 미국으로 돌아가는 외교력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보건 위생활동을 펼쳐서 아프리카의 고질인 풍토병인 ‘메디나 병’을 근절 시켜가는 일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가 앞장서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인 ‘헤비타트 운동’은 벌써 그 역사가 오래고 업적도 대단하다. 지난 해 말에 그가 쓴 <지미카터의 위즈덤>이란 제목의 365일 묵상집이 출간되었다. 평생을 고향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로 주를 섬기면서 복음 전파 사역에도 전념하고 있는 그의 평생의 신앙의 진면모를 만나 보게 하는 묵상의 깊이가 있는 참으로 좋은 책이다. 그는 정치가요 외교가요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늘 앞장서면서도 그 동안 26권의 책을 썼다. 확실히 사람은 육체의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새뮤얼 울만(Samuel Ullman)의 ‘청춘’(Youth)이란 시의 일부처럼,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이다.
본문은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정한 시간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기도생활을 성실하게 하던 중에 어느 날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을 고친 사건 이후에 계속하여 고난과 핍박을 받는 베드로 사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40여 년간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불쌍한 걸인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고쳐 준 사건 말이다. 그 이후로도 성령 충만하게 된 베드로는 가는 곳마다에서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말씀을 전파하였다. 결국은 유대인들에게 미음을 사고 제사장들과 성전 맡아 일하는 레위인들과 사두개인들에 의해서 붙잡혔고 하룻밤을 감옥에 갇혔다. 120명이 성령 받은 이후에 계속하여 기도하고 말씀을 전파하던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열심 있는 복음 전파의 결과로 베드로와 여러 사도들은 감옥에 갇혔으나 예루살렘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남자들의 수만도 오천 명이 넘어섰다.
이튿날 관리와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데 앞장섰던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와 다른 대제사장 요한과 알렉산더를 비롯한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는 종교재판이 열렸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법정의 가운데 세우고 죄를 물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행4:7)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먼저 입을 열어 대답했다.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대제사장들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저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걷지 못하던 이를 걷게 하고 부활의 천국 복음을 전파할 때에 예루살렘 도성의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하여 막을 방도가 없었다. 더 이상 저들을 비난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난처해진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공회원들은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더욱 담대하게 대답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행4:19-20) 점점 난처해진 관리들은 백성들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위협하고 석방해 주었다. 풀려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억지를 쓰며 사도들을 곤혹스럽게 위협하고 박해한 내용을 성도들에게 전달했다. 그때에 온 예루살렘 교회의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은 더욱 더 합심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교회는 점점 더 부흥해 가기 시작하였다. 사도행전 4장 32절 이하에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다. 각자기 자기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서로가 재물을 사도 들이 발 앞에 가져다 놓았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할 때마다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다. 각자가 밭을 팔거나 집을 팔아다가 그 판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그리하므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의 필요를 따라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유무상통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중에 한 사람인 구브로 섬에서 태어난 레위 사람인 요셉도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사도들은 그 요셉에게 별명으로 위로의 아들이란 뜻의 ‘바나바’라고 불렀다. 그러던 중에 아나니아가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자기 소유를 팔아서 바치는데 절반은 숨기고 절반을 거짓말하면서 바치려 하다가 남편과 아내가 차례대로 베드로의 보는 앞에서 죽어서 시체를 처리하는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났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5:3-4)고 책망하였는데 아나니아가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자기의 거짓말한 것이 드러난 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엎드러져서 혼이 떠나고 죽고 말았다. 뒤 늦게 베드로 사도 앞아 나타나서 거짓말을 하던 그의 아내 삽비라도 죽고 말았다. 잘 부흥해 가던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찬 물을 끼얹은 것처럼 침통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은 모두가 다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도록 역사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남녀 신자의 수가 점점 많아져서 큰 무리를 이루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권위를 높여주시려고 역사하시자 베드로가 환자 곁에 지나가기만 하여도 침대나 환자의 요 위에 누워 있던 곁으로 지나갈 때에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환자에게 덮히길 소원할 정도로 기사와 치유의 이적을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다. 병든 사람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오는 이들마다 다 깨끗하게 치료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같은 소문이 예루살렘 성안에 전파되면 될수록 대제사장들과 그 곁의 무리들과 사두개인의 당파는 점점 사도들에 대한 시기심이 가득해졌다. 결국은 다시 저들이 힘을 합쳐 일어났고 사도들을 모조리 붙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밤으로 다시 기적을 보이셨다. 천사가 그 밤중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옥문 밖으로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는 천사가 분부하였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행5:20) 감옥에서 풀려난 사도들은 그 밤중에 천사의 분부대로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복음을 가르쳤다. 날이 새려 하자 대제사장들과 공회와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다 모였다. 저들은 부하들을 보내서 지난밤에 감옥에 가두었던 사도들을 이끌어 내 오라고 명령하였다. 가서 보니 옥문이 잠기고 옥문을 지키는 자들이 문 앞에 서서 지키고 있는데 문을 열고 감옥 안을 들여다보니 사도들이 한 사람도 없이 다 도망가고 없었다. 깜짝 놀란 부하들이 서둘러 되돌아가서 이 사실을 대 제사장들과 공회원들과 원로들에게 알렸다. 성전을 맡은 자들과 대제사장들이 이 소식을 듣고 의심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 때에 사람들이 와서 말했다. “감옥에 갇혔던 자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전을 맡은 자들은 서둘러서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성전에서 무리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있던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다시 또 붙잡아 왔다. 그러나 백성들이 일어나서 돌로 칠까봐 두려워서 함부로 어찌 하지는 못하였다. 본문을 묵상하게 되는 말씀의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본문에 보면 대제사장들은 성전 지키는 자들과 그들의 부하들에 의해서 끌려 나온 사도 베드로와 모든 사도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행5:28)
그 때에 베드로와 사도들이 일제히 대답하였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9)
하나님과 예수님께 순종하는 가르침의 능력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고, 권위자에게 순종해도 내게 유익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천지의 대 주재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한다면 하나님이 그 인생을 주목하지 아니하실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평생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셨다. 마태복음 4장 23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들을 예수님의 곁으로 데리고 왔다.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과 간질하는 자들과 중풍병자들을 데려갔을 때에 예수님은 그들을 일일이 고쳐 주셨다.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퍼져 나갔고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오늘 날 우리들의 교회 현장도 마찬가지다. 우리끼리만 열심을 품는다고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살아 계셔야 한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운행하셔야만 한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새벽에 붙들려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아들이셨다. 예수님은 순종함으로 가시는 곳 마다 천국의 진리를 비유로 전파하고 또 전파하고 복음을 가르치고 또 다시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기회만 있으면 마을이든 회당이든 어디서든지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다. 가르치는 생활로 순종의 모범을 보이셨다.
베드로를 비롯한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옥에 가두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제사장들이 나서서 재판하려하고 위협하고 윽박질러도 소용없었다. 감옥에 가두어 두면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하여 그 밤중으로 감옥 문을 열고 풀어내실 정도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동안 겪은 일들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러하다.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날 지라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가르치다보면 언제나 성령이 역사하시고 언제나 새로운 기사와 이적을 보여 주실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다. 반드시 전파하고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구원의 복음을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만 한다.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 대천(보령시)에 있는 국군휴양소에 선교사 36명이 모였다. 국내 교회 선교 후원회인 미션 연구소 목사님들과 더불어 50여명의 목회자들이 선교사들을 섬기고 선교의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서 예배하고 협의하고 토의하고 발제하고 창의적인 의논을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였다. 이번에 만난 선교사님들마다 서로가 나에게 요청하였다. 자기들이 사역하고 있는 선교지를 방문하여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나라 안에 있든지 나라 밖에서 복음을 전하든지 계속하여 복음이 전파되도록 순종함으로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만 한다.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린이집에도 보내고 유치원에도 보내고 학교에도 보내고 학원에도 열심히 보내야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복음적인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성령님은 어떻게 내 마음에 임재하고 역사하시는지. 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야 하는지를 어려서부터 가르쳐야한다. 아들딸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부지런히 가르쳐야만 한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계속하여 부지런히 강론하고 가르쳐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여야만 한다.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위하여 복음을 가르치는데 거룩한 부담감을 가진 아들딸들로 양육해 나가야 한다. 복음을 가르칠 때 그 때마다 나도 복음을 다시 새롭게 깨닫고 배우게 된다. 복음을 가르치는 일은 복음이 내 속에서 순환하는 새로운 능력이 되는 것이다.
무슨 전공을 하느냐, 직업이 무엇이냐, 수입원이 무엇이냐,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회와 국가에 해와 악을 끼치는 나쁜 일만 아니라면 건전하고 생산적인 분야에서 살아가면서 언제나 항상 복음이 전파되고 복음이 깨달아지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사울 임금의 칼과 창을 피하여 광야와 들판과 동굴로 피하고 숨어 지내야만 했던 청년 다윗처럼 나중이 점점 높여지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왕이라도 사울 임금의 나중처럼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는 욕구대로 판단하고 함부로 행동하면서 살아가면 요셉을 들판에서 미디안 장사군 들에게 팔아 버렸던 열 명의 형제들의 운명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피해를 입었으나 불행해 졌으나 억울하고 답답하고 앞날이 끝이 보이지 않으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를 소원하고 그런 나날을 살아가다가 보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 인생을 존귀하게 써 주실 것이다.
재물을 쓰는 것도 그렇다. 초대 교회에 성령 충만하여 서로의 재물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던 이들이 한 두 가정이었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지난 이천 년 동안 대대로 바나바의 밭을 팔아 헌신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거짓되고 불행한 나중을 기록함으로 대할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타산지석의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순종해야 능력이 나타난다. 불순종하면 있던 능력, 이미 받았던 능력이라도 떠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가르침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을까.
예수 부활의 복음을 가르치는 순종.
부활은 이론이 아니다. 부활은 사실이며 역사이며 실체이다.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앞장서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이 힘을 합쳐서 예수님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에 높이 달아 죽인 아들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 목사는 미국 캔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의 교육목사이다. 그의 책, <거짓신들의 전쟁>(gods at war)에 보면, 우상숭배의 심각성에 대하여 자세하게 묵상한 도전적인 내용들을 살펴보게 된다. 물론 미국과 같은 선진 국가에서 살아가는 다민족 국가의 국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쓴 책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도 별 차이가 없다. 그는 현대인들 중에 섞여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먹는 것, 이성에 대한 태도, 오락, 성공, 돈, 재물, 성취 혹은 가족 그리고 나 자신 속에 감추어져 있는 자기 우상에 짓눌려서 하나님을 종 부리듯 하고 예수님을 형식적으로 따르며 성경적이지도 않고 복음적이지도 않고 주님의 분부하신 제자의 삶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현실 속에서 이름뿐인 기독교인 행세를 하면서 살아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묵상을 눈여겨보고 이런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믿고 예수 부활의 복음을 큰 소리로 전파하고, 믿고 큰 목소리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회개와 죄 사함의 길을 가르치는 순종.
회개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죄 사함을 받지 않고는 천국 백성이 될 수 없다. 지옥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가는 곳이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 문 앞에 “회개하지 않는 자 이 문으로 들어가라.”고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회개와 죄 사함의 은총을 주시려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높이셔서 임금과 구주가 되게 해 주셨다. 오늘 날 우리 주님 예수님은 사도들의 신앙고백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그러므로 이걸 고백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하여 가르쳐야만 한다. 그것이 성도의 사명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 받은 베드로가 이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쳤을 때에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십자가에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때에 듣던 무리들이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마음이 괴로워하였다. 그 때에 베드로 사도가 말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회개를 가르치고 죄 사함을 가르쳐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는 무엇하는 곳인가. 새 성전, 새 예배당은 무엇하는 곳인가. 이 회개와 죄 사함의 복음을 계속하여 선포하고 가르치는 곳이어야 한다.
성령 받아 증인의 삶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순종.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경험한 바를 전파하고 계속하여 가르쳐야만 한다.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이미 성령 충만한 복음 전파의 능력자들이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 같은 성령의 능력과 증인의 삶을 감옥에 가두어도 소용이 없고 위협하고 협박해도 소용이 없었다. 빛을 감출 수 있는 어둠이 이 세상 그 어디에 있는가. 봄이 오는 능력을 막을 수 있는 겨울이 있는가. 꽃 샘 추위도 싹이 잘 나고 꽃이 잘 피는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 그리함으로 증인 되는 능력을 덧입혀 주신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 그대로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늘 날 우리들은 그런 가정, 그런 교회를 이루어 나가야만 할 것이다. 교황이 12명의 발을 씻기고 그 발에 입 맞추었다고 언론마다 대서특필하였다. 세계의 카메라 앞에서 하는 그런 것 말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밤을 새워 가며 아픈 가족을 간호하는 손길 속에 임재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지 않으셨나.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준 것이 곧 예수님께 대하여 한 것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 말고 말이다. 진심을 담아서 행하는 착한 일과 좋은 일이 곧 예수님께 한 일이고 하나님께 대하여 한 일인 것이다.
의사요 선교사였던 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e, 1865-1949)의 한국 이름은 하리영(河鯉泳)이다.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초중고대학을 마쳤다. 그곳에서 2년여 동안 교편을 잡다가 토론토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의사의 꿈을 키웠다. 그가 해외 선교사의 꿈을 키운 시기는 의대 2년 시절 "기독교 외국 선교 학생자원운동"에 가입하면서였다. 의과대학을 졸업하자 곧 캐나다대학 선교회의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1890년에 아내와 함께 어린 남매를 데리고 부산항에 도착하여 게일과 함께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울로 올라와 애비슨 의사와 함께 제중원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다시 부산 선교지로 내려갔다. 2년 후에 함경남도 원산으로 선교지를 옮기고 그 곳에서 미 감리회가 경영하는 시약소에서 일하였다. 캐나다대학생선교회와의 계약이 끝나자 미국 남감리회 선교회에 가입하여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1901년에는 원산 및 동해안의 더욱 넓은 선교지역을 맡아 활동하기 시작했다. 1901년 3월 31일에 김화 지경터에서 장년 15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를 조직하였는데 이것이 강원도의 첫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자신의 선교 역량의 부족과 영적 능력의 결핍에 대하여, “나는 3년 동안 남감리회가 처음 세워진 지경터에서 애써 일을 하였으나 선교사업에 실패하였다.”고 기술하였다. 그 뒤 에 그는 갈급한 심령으로 1903년 8월 원산에서 감리회 선교사 7명과 함께 모여 중국에서 활동하던 남감리회 화이트(M. C. White) 선교사를 강사로 모시고 기도와 성경사경회를 열었다. 이때 하디는 큰 감화와 은혜를 받는 새로운 체험을 하였다. 그는 당시의 체험에 대하여,
“나는 성령이 내 안에 충만하신 증거를 가지고서 나의 부끄러움과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과 믿음의 부족과 모든 죄악을 자복하였다. 그 때에 다른 회중들도 강한 죄의식과 믿음의 부족함을 비로소 깨닫고 모두 다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되었다.” 고 고백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원산 부흥운동의 시작이다. 이는 사 년 후인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1907년 연초부터 시작한 "평양 대부흥운동"은 그곳의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이 하디를 초청하여 연합 사경회를 개최하면서 비롯되었다. 하디는 자신의 깊은 영적 체험을 간증하고 회개운동을 촉구할 때에 큰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로 그는 감리교 협성신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였고 1909년에는 제2대 교장으로 취임해서 1922년까지 13년 동안 재직하면서 학교를 발전 시켜 나갔다. 1916년에는 <신학세계>를 창간하여 본격적인 신학 전문지로서의 문서선교에 일익을 감당했다. 1935년에 45년 동안의 한국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고 귀국해서 미국 미시건 주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4년 후인 1949년에 84살 나이로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그는 남매 중에 아들이 11살에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기도 하였다.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인생인데 먹고 마시고 입고 누리고 육체의 즐거움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다가 갈 것이냐 아니면 복음에 붙들려서 복음에 빚 진자답게 만방에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 순종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갈 것이냐는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사명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성전 건축과 마무리를 앞둔 성전 입당 시대에 성령의 충만함으로 세상을 거슬러서 복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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