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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이 옳도다(눅23:1-1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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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11-11 22:17 조회 24,260 댓글 0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라는 제목의 작자 미상의 신앙 시가 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초월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영원히 당신 것이 되었습니다


이 시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 시의 주어는 십자가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을 덧입고 살아가고자 씨름하는 한 신앙인의 진심을 만나 볼 수가 있다.

영화나 연극이나 시나 소설에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예수님은 소설로 비유하면 작품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주인공이셨다. 아니 그는 영원한 주인공이시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 구세주로 보냄을 받았던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작품의 주인공이셨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인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붙잡히셔서 심문을 당하시고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는 판결을 받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시기까지의 장면이 전개되어 있다. 역사의 기록인 누가복음 23장의 서두에 소개된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서 공회인 산헤드린으로 끌리어  가서 백성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든 가운데 심문을 받으시고 유대의 종교 재판 법에 의하여 다 다룰 수 없는 법의 한계를 따라서 빌라도의 법정으로 인계되고 당시에 갈릴리 지역 통치자였던 헤롯에게로 이관되는 재판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을 산헤드린인 공회로 끌고 간 백성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날이 새어 가는 이른 아침 시간에 예수님을 심문하기 시작하였다.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이와 같은 질문 앞에 예수님은 몇 마디의 대답을 하셨다.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처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그 때에 저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예수님은 짧게 대답하셨다.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이즈음에서 유대지도자들이 담합한 예수님 재판은 끝이 났고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버렸다.
본문에는 몇 가지 유형의 인간상이 소개되어 있다.
무리와 백성, 빌라도, 가이사, 대제사장, 헤롯, 서기관, 군인 등이다.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피고의 신분으로 붙잡히셔서 조롱과 핍박과 온갖 수모와 고난을 받기 시작하신 것이다. 무리와 백성들은 누구인가. 언제 어디서나 그 어느 시대에나 무리와 백성 즉 군중들은 있었다. 백성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할 수는 없었다. 당시 유대 나라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권력자가 아니고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로 끌고 가서 고발한 것이다. 고발의 내용은,

예수가 백성을 미혹한다.
예수가 가이사에게 바칠 세금을 금지시키고 있다.
예수는 자기 자신을 자칭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러나 그 고발 내용이 하나 없이 모두 다 거짓 증언이었다. 예수님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천하 만민의 영원한 구원의 왕이요 평화의 왕이요 진리의 왕이시다.


무리들의 거짓된 고발과 유대인의 왕
우선, 예수가 백성들을 미혹한다는 고발 자체가 문제였다.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메시아로 인정하자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지어낸 죄몫이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 마다 천국 복음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비유로 가르치셨다. 뿐만 아니라 항상 진리를 선포하셨다. 단 한 번도 백성들을 미혹하거나 잘못되게 인도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빌라도 앞에 고발한 “백성들을 미혹한다”는 고발의 내용은 거짓된 모함이었다. 또한, 예수가 가이사에게 바칠 세금을 금지시키고 있다는 고발도 거짓말이었다. 예수님은 납세에 대한 논쟁 앞에 언제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눅20:25)고 강조해 오셨다. 그러므로 이 또한 허위로 날조된 고발 내용이었다. 마지막, 예수는 자기 자신을 자칭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고발 내용도 엉터리였다. 물론 빌라도도 이 고발 내용에 대해서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심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한 번도 세상의 왕을  탐 낸 적이 없으시고 세상의 왕권에 관심을 가지신 적이 없으셨다. 예수님은 세상적이거나 국가적인 권력과 왕권에는 관심이 없으셨고 단지 범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권세와 통치에 대하여 기도하고 집중해 오셨다. 그러므로 여기 예수님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다는 고발 내용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거짓된 음모인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마태복음 20장 20절 이하에도 보면 예수님의 이모님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두 아들들이 절을 하도록 시키면서 무엇인가를 특별히 요구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그 때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하고 특별 혜택을 요구하였다. 이 일로 다른 제자들과 야고보와 요한 사이에 다툼이 생기고 서로 분하게 여기는 긴장감이 돈 적이 있었다. 그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의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책망하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의 집권자들이나 고관들에게 있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하셨다. 그렇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권세를 얻고 집권자가 되려는 의도를 가지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왕이 아니었다. 그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무리들과 백성의 장로들의 앞장서서 그 무엇이라고 고발을 할지라도 예수님을 고발당할 죄의 제목이 단 한 가지도 없으신 분이셨다.


빌라도의 비겁한 재판과 유대인의 왕 예수
무리들과 유대 지도자들로부터 고발을 당하신 예수님은 빌라도(Pontius Pilatus, 통치 A. D. 26-36)  앞에서 심문을 받기 시작하셨다. 빌라도는 유대인을 몹시 경멸하던 로마의 총독이었다. 빌라도는 유대의 무리들이 예수님을 끌고 와서 재판을 요구하며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을 뒤집어 씌워서 십자가 처형을 받게 하려는 요구를 쉽게 받아 드린 결정을 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갈릴리의 청년 예수 한 사람쯤을 동족들의 요구대로 십자가에 처형 받도록 방치하는 일은 당시의 빌라도에게는 별로 큰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놀랐다. 그 이유는 끌려 온 예수 그리스도가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심각한 재판 석에서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 질문 앞에 아니라든지 혹은 긴 변명을 하려 하지 않고 매우 짧게 “네 말이 옳도다.”고 대답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영원한 진리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국의 왕이시며 왕 중의 왕이시며 태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 안에서 평강의 왕이요 지혜의 왕이요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에 앉으실 영원한 왕이시다. 같은 사건을 다룬 요한복음의 기록은 훨씬 자세하다.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당시의 대제사장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려가신 예수님이 관정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저들은 유월절을 더럽히지 않겠다며 관정 밖에서 재판에 훈수를 두고 있었다. 결국은 빌라도가 관정 밖에 나가서 저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그 때 유대인들이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이 같은 재판의 과정이 결국은 예수께서 어떠한 죽음으로 죽으실 것을 예언한 말씀을 응하게 하려고 된 사건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관정의 바깥을 들락거리며 재판을 진행하던 빌라도가 관정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물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그 때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빌라도가 대답하기를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다그쳤다. 즉, “네가 무슨 죄를 저질렀느냐”고 심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부터가 중요하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이때에 당황한 빌라도가 되물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다시 잘 묵상해 보자.

네 말이 옳도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나는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고 왔노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때에 점점 당황스러워 진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진리가 무엇이냐”
여기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묻자.

“진리란 무엇인가.”

아이삭 뉴튼(Isaac Newton, A. D. 1643-1727)은 17세기의 영국을 대표하는 물리학자요 수학자였다. 그는 운동의 세 법칙인 관성의 법칙, 힘과 속도의 비례 법칙, 작용과 반작용이 동등하다는 법칙을 입증해 낸 물리학자이다. 그는 “모든 천체의 운동의 최초의 동인은 하나님이다.”라는 말로 하나님의 창조를 선언하는 과학자요 물리학자의 반열에 서 있었다. 1666년에 뉴턴은 “우주 속의 모든 물체들 사이에는 두 물체의 질량 m, M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 사이의 거리 R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한다.”고 하였다. 그는 그 예로서 “달과 지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달과 지구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한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입증해 냈다. 이것이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이다.(F=G Mm/r²) 뉴튼에게는 사과가 나무에서 땅에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이 같은 원리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물리학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한 것이다. <만유인력(F) = GmM ÷ r2 = (두 물체의 질량의 곱) ÷ (두 물체 간의 거리)2 ※ F : 만유인력, G : 만유인력 상수, m : 물체의 질량, M : 물체의 질량, r : 두 물체 사이의 거리>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 C. 287?-212))는 목욕탕에서 목욕하다 말고 진리를 발견한 후에 흥분한 채로 옷도 입지 않은 채 집으로 달려가면서 “알아냈다. 알아냈다.”고 소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진리의 발견이 소위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인 것이다. 하루는 자기가 태어나 살아가던 시칠리아의 섬에 있는 시라쿠사 왕국의 왕이 갓 만든 금관을 구했는데, 그것이 위조물로 순금이 아니고 은이 섞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왕은 아르키메데스에게 명하여 그것을 감정해 내라고 요구하였다. 생각에 골몰한 아르키메데스가 우연히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물 속에서는 자기의 몸의 부피에 해당하는 만큼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을 문득 알아냈다. 흥분한 그는 옷도 입지 않은 채 목욕탕에서 뛰어나와 “알아냈다, 알아냈다(Heur&#275;ka!, Heur&#275;ka!)”라고 외치며 집으로 달려가 그 금관과 똑 같은 분량의 순금덩이를 물속에서 달아 보았다. 저울대는 순금덩이 쪽으로 기울어 금관이 위조품인 것을 알아내었다. 그는 이 원리를 응용하여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즉 위조왕관에는 은이 섞여 있어 같은 무게의 순금보다도 부피가 크고 따라서 그만큼 부력(浮力)도 커진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해 낸 것이다. 이처럼 수학과 화학과 물리학과 우주학의 기본 원리를 진리로 깨달아 알고 발전시켜 나갈 때에 발명도 가능하고 문명의 발전도 가능하고 문명의 이기를 개발하고 고안하고 발명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리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진지한 답을 얻지 못하면 빌라도와 같이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력이 주어져 있어도 그 자신이 비겁하고 무책임한 인생으로 살다가 끝까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리의 발견이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다.
16세기에 폴란드의 천문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나중에 영국에 유학하여 의사와 목사가 되었다. 그의 지동설(地動說)은 그 이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진리의 발견이다.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며 혹성은 모두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지구도 혹성의 하나로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달은 지구의 위성으로서 지구의 주위를 맴돈다.”고 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가톨릭은 천동설을 주장하고 가르치던 때라 이와 같은 주장은 가톨릭으로부터 엄청난 저항을 받고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천체궤도의 회전에 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6권. 1543)라는 그의 책은 발견되는 대로 불태워 졌고 금서(禁書)로 지정되어 여러 해 동안 판매가 금지되기도 하였다.

여기서 발전해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자신이 발명한 망원경을 갖고 지동설을 정확한 관측에 의해서 입증하기에 이르렀다. 갈릴레오가 주장한 지구 구형설(地球 球形說 , doctrine of spherical earth)은 가설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지구의 모양을 제대로 깨달아 알게 된 진리 그 자체의 발견이었다. 자신이 발견하고 깨달은 진리를 고수하면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을지 모르지만 그 깨달은 진리를 속일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어서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고 선언 할 수 있었던 힘은 진리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가톨릭의 신앙적인 압박에 의해서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 주장은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마침내 포르투갈의 탐험가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1521)이 진두지휘하는 탐험대에 의하여 1519년부터 3년간에 걸쳐서 아메리카를 경위하고 태평양을 건너는 데 성공한 세계 일주 항해를 통해서 확실히 증명되었다. 이미 그 이전에 1505년부터 7년간의 시도를 통해 동진하는 방법으로 필리핀까지 당도했던 적이 있었다. 특히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 중의 하나는 항구에 정박하러 들어오는 수평선의 배가 항구에서 먼 거리서 가까이 오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배의 모습 등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오늘 날에야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이 원형인 것을 입증하지만 말이다.

결국은 빌라도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를 죽일 만한 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는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는 죄가 없도다”하고 재판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유월절 시간이 다가 오는 그날 아침 유대인의 무리들은 강도 바라바를 풀어주고 죄도 없고 흠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아수성치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두려워지고 곤혹스러워지던 차에 마침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 빌라도는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이었던 헤롯에게로 예수를 보내 버렸다.


예수를 업신여긴 헤롯과 유대인의 왕 예수
헤롯은 예수를 보자마자 매우 기뻐하였다. 헤롯은 대단히 비윤리적이고 난폭한 통치자였다. 그는 자기 동생의 부인이었던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빼앗아서 살던 인간이었다. 이같인 비인간적인 모습을 세례 요한이 질타하자 그를 감옥에 가두었고 결국은 자기의 생일날 그의 목을 쳐서 쟁반에 담아내어 오게 하는 악정을 일삼던 폭군이었다. 그 후에 계속하여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각종 기사와 이적 사건의 소문을 들으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해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던 헤롯은 “그가 혹시 내가 목을 쳐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자가 아니냐”고 의심하고 생각할 정도였다.(마14:1-2) 그래서 헤롯은 평소에 늘 예수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 예수를 빌라도가 자기 앞으로 보내오니 너무나 반갑고 기쁘고 예수가 행하는 이적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헤롯의 여러 질문 앞에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이미 악명 높고 패역하고 완고하고 간악한 헤롯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예수님은 그 헤롯의 질문 앞에서 전혀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계셨다. 그러나 예수를 뒤쫓아 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둘러서서 힘써 예수를 고발하려 하였다. 결국 헤롯은 군인들과 더불어 여러 말로 예수를 업신여기고 희롱하였다. 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역사적인 심문의 현장을 상상해 보라. 헤롯은 군인들을 앞장 세워서 예수를 희롱하고 조롱하며 은 실로 짠 흰 옷을 입혀 주었다. 이 빛난 옷은 고위 관리들과 집권자들이 입던 눈이 부시도록 희고 화려한 옷이었다. “네가 말하는 대로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면 참으로 꼴 보기 좋다,”는 투의 조롱할 목적으로 이와 같이 한 것이다. 결국 예수님은 강제로 입힌 빛나고 흰 옷이 입혀진 채 조롱을 당하며 다시 빌라도에게로 되돌려 보내졌다.


사탄에게 붙들린 두 권력자의 연합과 진리이신 왕 예수
평소에는 원수로 지내던 빌라도와 헤롯이 그날 예수를 죽이는 문제 앞에서는 친구가 되었다. 빌라도의 헤롯의 마음에 사탄이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진리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일에는 일치를 본 것이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의 질문은 옳았으나 그의 재판은 어리석었다.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노라.”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는 진리에 대하여 궁금해 하였으나 결국은 마지막 순간까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진리이시다.

그는 매를 맞아도 진리였고 무리들이 침을 뱉어도 진리였고 가시관을 씌워도 진리였다. 그는 옷을 벗겨 부끄러운 모습을 다 드러냈어도 진리였다. 진리는 헤롯이 조롱하고 군사들이 희롱하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비웃어도 진리일 뿐이다. 진리는 빌라도가 비겁하게 판결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도록 불의한 재판으로 끝내도 끝낼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진리요 부활의 진리일 뿐이다. 그는 못으로 양손과 발을 박아 나무 십자가 꼭대기에 높이 매어 달아도 진리였다. 진주는 침 뱉어도 진주이고 다이아몬드는 진흙에 던져져도 다이아몬드 인 것처럼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진리일 뿐이다. 저들은 진리이신 예수를 죽였으나 영원한 진리이신 예수님은 삼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 부활하셨다. 진리는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진리 자체로 진리이며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진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를 체험하는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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