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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가까이 임한 하나님의 나라(눅21:29-38)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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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11-11 22:16 조회 24,373 댓글 0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징조에 대하여는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으나 그 때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말씀하신 바가 없다. 사도행전 1장에도 보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시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행1:7)라고 하셨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때가 되면 예수께서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재림 주로 오실 것이며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이루시리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 하신 후에도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시면서 계속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셨다.(행1:3)

점점 가까워 오는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와 다른 여러 나무들을 통하여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요즘 우리나라도 길거리와 과일 가게에 무화과 열매를 많이 판다. 중동 사람들은 그 무화과나무가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워 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이치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로 알아야 한다고 교훈해 주셨다. 마태나 마가는 복음서에서 단지 무화과나무만을 언급한 반면에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모든 나무로 보라’는 표현을 첨부하고 있다. 또한 마태나 마가는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3, 막13;29)고 했는데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눅21:31)고 달리 표현해 주었다. 누가복음에서 누가가 사용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누가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매우 포괄적이고 자세하게 깨달아 알고 사용한 점을 주의 깊게 관찰 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복음서 마다 이 때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가까이’(눅21:31)라는 말씀이 헬라어로 ‘ejgguv"’(엥귀스)인데 이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이제 얼마 있으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서 심문을 받으시고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죽으실 그 죽음과 더불어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시며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완성이란 말씀이다.

최근에도 세계 처처에서 여러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계속하여 인걸은 오고 가는 것이 아닌가. 오는 때가 있는가 하면 떠나는 때가 있다. 무화과에 싹이 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우리 눈에는 쉽게 안 보이지만 꽃이 피고 무화과 열매가 맺혀 먹음직스럽게 잘 무르익는 계절이 있다. 봄과 여름과 가을이 분명히 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이처럼 무화과나무나 그 무슨 나무들을 보던지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영의 세계의 변화와 풍조도 깨달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이는 개인이든 한 가정이든 나라이든 민족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이 땅 위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만다. 인간의 수명(壽命)도 아침 안개처럼 사라져 간다. 생은 쏜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간다. 흘러가는 물처럼 막을 길이 없다.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가수 최헌(1948-2012) 씨가 64세를 일기로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해 6월에 암 진단을 받고 병원 출입과 치료를 계속해 오던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동잎’,  ‘가을비 우산 속’, ‘당신은 몰라’ 등 정감 넘치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구수한 노래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그였다. 친근감이 가는 외모와 정감이 느껴지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이 세상 나그네 길을 떠나 본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최근에 세계에 그를 따르는 신도가 300만 명이라던 통일교의 문선명도 죽고,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인 크리스 스티븐스 대사를 비롯한 네 사람의 외교관들도 이슬람 무력 시위대의 로켓 공격을 받고 영사관 안에서 죽어서 그의 유해가 미국으로 이송되었다. 워싱턴 D. C의 근교에 있는 앤드류 공군기지에 도착한 그의 유해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여러 각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맞이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신앙을 막연하게 생각하며 살면 안 된다. 누구에게나 끝이 있고 심판이 있고 구원의 기회가 있다. 이 땅 위에는 영원한 것이란 없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그렇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젊음, 미모, 힘, 권력, 명예, 재물, 학식, 인기와 자랑이 다 지나가는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

하나님은 반복해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외치라고 하셨다.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그 때에 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이다.(사40:6-8)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 신앙의 시작이다.

이 세상의 것들이 언제나 봄이고 언제나 초여름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봄이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지나가고 여름이 덥다고 느끼기가 무섭게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이 세상에 영원한 권력을 보았는가. 대통령을 새로 뽑겠다고 어수선하던 때가 5년 전이다. 요즘 년 말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겠다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도 2017년쯤 되면 또 옛날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역사는 쉬지 않고 흐르고 흘러서 간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젊음도 영원한 아름다움도 없다. 지난 2011년 3월에 7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는 여덟 번 결혼하고 여덟 번 이혼하였다. 그 중에 배우 리차드 버튼과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하였다. 그런 그녀도 나이가 든 것과 늙는 것과 병드는 것은 막을 길이 없었다. 중년에 들어서면서는 성형수술에 중독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65살 때에는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77살 때에는 심장 판막 수술도 받아야 했다. 그녀는 노년기에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마감하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갔고 마이클 잭슨도 갔고 스티브 잡스도 갔다. 유명해도 가고 대단해도 가고 뛰어나도 가고 굉장해도 다 때가 되면 가야 한다.

에녹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다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저들의 아름다움은 하나님과 동행하던 삶을 살았고 믿음의 선조들이 된 것 아닌가. 이 같은 모습은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 임금도 마찬가지였다.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엘리야와 엘리사도 그랬고 세례 요한도 그랬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을 보라. 우여곡절 많은 신앙의 격동기를 거쳐서 어떤 제자들은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사도요 순교자가 되고 어떤 제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는 예수님의 심각한 책망을 받으며 되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피밭의 주인공이 되고 말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인생은 선택이며 신앙도 선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택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그러면 점점 가까워 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갖고 살아가는 성도의 믿음은 어떠하여야 할까.

항상 스스로 삼가 조심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은 구체적이다. 단순하다. 분명하고 명백하다. 생의 불행은 들짐승에게 놓은 덫에 야생 동물들이 걸리듯이 임하는 것이다. 어려서는 겨울 산에 덫을 놓아서 산 토끼를 잡던 기억이 새롭다. 예수님도 당시에 그런 방법으로 들 노루나 들 사슴을 잡는 덫의 원리를 관찰하셨던 것 같다. 심판이 두려움과 임박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방탕하게 살거나 술에 취해 살거나 생활의 지나친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둔하여 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스스로 삼가 조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는 이천 년 전이나 오늘 날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 어려운 홍수 심판을 이겨 냈던 노아도 홍수 심판 이후에 포도 농사하여 그 포도주를 취하도록 퍼 마시고 둘째 아들 보는 앞에서 창피하고 민망하게 하체를 다 들어 내 놓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방탕한 생활, 술에 취해 사는 일상, 괜한 염려와 근심과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살아가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죄악되고 헛된 것들이다. 하나님 안에서 좋은 출발을 가졌던 가나안의 아이성 전투에서 불행해진 아간이나 사사 시대의 사사 삼손이나 임금 시대의 사울 왕이나 솔로몬 임금의 나중 불행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방탕하게 살거나 술과 세상 연락을 즐기며 살려 하다가 영광스럽게 생을 마감한 인생이 그 어느 시대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제 7대 임금 아합(재위, B. C 874-853)은 22년간 왕이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슬려 함부로 막 살았던 이스라엘 임금들 중의 대표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3대 왕 엘라가 술에 취해 있을 때에 시므리가 왕을 살해하고 자기가 임금이 되었다. 그러나 왕에 오른지 칠일 만에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가 시므리를 쳐 죽이고 왕이 되었다. 12년을 통치하며 사마리아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성을 세웠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악한 왕이었다. 열왕기상 16장 29절 이하에 보면, 그 오므리의 아들 아합 왕은 그 역대 어느 왕보다 더욱 더 악을 행했다. 결혼도 이방 나라인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하였다. 풍요의 신인 우상 바알을 섬기고 예배할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하고 그 곳에서 바알에게 제단을 쌓았다. 또 아세라 상을 만들어 세웠다. 열왕기상 16장 33절에 보면,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고 했다. 열왕기상 22장 29절 이하에 보면, 세월이 지나며 아람 나라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다. 남 왕국 유다의 여호사밧 왕의 세력과 연합 군대를 형성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전쟁의 최 일선에 나서서 군대와 함께 길르앗 라못 지역에서 싸웠다.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전쟁 중에도 왕복을 입었다. 그러나 아합 왕은 변장하고 군대 속에 숨어서 전쟁터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람 왕은 자기 곁에 정예화된 병거를 탄 지휘관 32명을 곁에 두고 싸우고 있었다. 아람 왕의 전략은 분명하였다.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는 전투 임무를 전했다. 전쟁하는 어느 순간에 아람 군대의 지휘관들의 눈에 이스라엘의 왕이 들어왔다. 저들은 일제히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다.”하고 소리쳤다. 여호사밧은 소리를 치면서 자기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고 전했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어는 순간에 누구의 칼과 창과 활에 누가 죽을지 모르는 숨 막히는 전쟁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 때에 아람 군대의 지휘관 한 사람이 무심코 당긴 화살이 아합 왕의 갑옷 솔기에 맞았고 결국 부상을 입고 말았다. 전쟁은 점점 맹렬해져 갔고 임금 아합은 싸움터에서 빠져 나가고 싶었으나 결국은 적군에게 포위되고 붙들리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절에 아합 왕은 활에 맞은 상처에서 너무나 많은 피가 흘러 내려서 병거 바닥에 까지 흥건히 붉은 피가 고였다. 아합 왕은 그 곳, 길르앗 라못의 전쟁터에서 그렇게 죽고 말았다. 전쟁은 그렇게 기울었고 싸우던 군사들은 각기 제 성읍과 제 본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마리아로 옮겨진 아합 왕의 시체는 장사되었다.  그리고 임금 아합이 탔던 병거를 사마리아 연못에서 씻는데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아 먹기에 이르렀다. 성경은 그 당시의 역사를 기록하기를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고 했다. 본문의 성경을 다시 보라. 심한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21:35)고 하셨다. 영적으로 병들고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며 살아가지 아니하면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구원과 심판의 순간을 피할 수가 없다. 심판의 날은 개인이든 가족이든 나라이든 민족이든 예외가 없다.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다. 34절의,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씀은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게 하며 세상 심판과 종말의 때에 대하여 별로 큰 관심을 갖기 않고 세상적으로 집착하여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사단의 세력을 경계하라는 말씀이시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과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분부하였다. 그러므로 방탕한 생활, 술에 취하는 생활, 세상적인 재리에 대한 염려와 근심과 걱정과 불안을 떨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임한 것을 깨닫고 살아가야 한다.

바다가의 갯벌에서 낙지나 조개를 잡기 위하여 여념이 없을 때에 저만치에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망설이다가는 그만  쏜살같이 밀려들어오는 밀물에 잠겨 버리고 말게 된다. 만이나 해협의 지형에 따라서 밀물의 속도가 다르긴 하지만 빠른 경우에는 시속 18키로 미터의 속도로 밀려들어 온다. 생각해 보라. 사람이 아무리 빠른 걸음으로 달린다고 해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밀려들어오는 파도를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는가.

디모데 전서 5장 1절과 2절에 보면,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날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서 잠을 자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한 사람은 버려진다고 했다. 둘이 맷돌을 함께 가는데 한 사람은 데려 감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둠을 받는다고 했다. 심판의 긴박성과 개인적인 구원의 역사를 말씀하신 교훈이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가 재앙과 심판을 원할까. “안전하다, 안전하다” 하는 그 때에 심판과 멸망의 날이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믿음을 가진 신자라며 종말의 때에 환란을 피하고 구원에 이르러 영광스럽게 주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36절의 ‘깨어 있으라’는 ajgrupnevw(아그뤼프네오)란 단어는 단지 잠을 자지 말고 있으라는 분부가 아니다. 이는 시대의 징조를 깨달아 알고 분별하며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매 순간마다 점검할 수 있는 신앙의 통찰력을 갖고 살라는 명령이시다. 이는 에베소서 6장 18절에서는 ‘깨어’ 구하라는 기도의 강조로 쓰였다. 또한 히브리서 13장 17절에서는, ‘경성’(警醒)한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고 하였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도 보면,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말씀하면서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3:11-12)

마태복음 25장에 소개되는 세 가지 천국 비유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와 같이 항상 기도하고 깨어 신랑이 오기를 기다릴 때에 한 밤중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날 때에 둥불과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가지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준비된 마음으로 잔치자리에 초대 받아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신랑이 더디 오므로  졸며 자다가 그만 낭패를 보고 만 것이다. 기름이 없어 등불은 꺼져가고 부족한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고 하였다. 뒤 늦게 기름을 사 가지고 온  나머지 다섯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하고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으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고 하셨다. 같은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나오는 달란트 비유도 무엇인가.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다섯, 둘 그리고 한 달란트를 맡겼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갑자기 돌아와 보니 다섯을 맡았던 종은 갑절을 남겨서 열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갑절을 남겨서 네 달란트를 남겼다. 주인은 저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23)고 똑 같은 축복을 해주었다. 그러나 반면에 한 달란트를 땅을 파고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다시 파서 가지고 나온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 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른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25:26-30)고 하셨다. 나중의 양과 염소의 비유도 마찬가지다. 막 살다가 상급 받고 훈장 받고 축복 받는 경우란 없다. 평소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떠 주고 먹을 것 나누어 주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혀 주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준 것이 곧 예수님께 그렇게 행한 것이라고 교훈해 주셨다. “너희가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예수님이 이 비유에서 하시려는 교훈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므로 선행을 하며 착하게 살고 준비하고 깨어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영벌과 영생으로 구별될 순간이 다가 오고 있다는 말씀이다.

이번 뉴스 발표를 보았는가. 대기업의 경영주, 강남 유명 성형외과의 원장, 유명 법률 사무소인 로우 펌의 유명 변호사들이 앞장서서 브로커에게 수 천 만원씩 주어가면서 아들딸들을 남미의 과테말라 가짜 시민권이나 여권을 만들거나 아프리카의 우리나라의 재외공관도 없는 내전 국가의 여권을 가짜로 만들어가지고 국적 상실 신고를 하고 가짜 여권을 복사해서 제출하는 방법으로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켰다고 한다. 검찰에 불려 나간 저들 유명 인사 부부들은 “남들도 다 하는 걸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며 오히려 검찰 앞에서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런 부정 입학 방법에 연루된 학생 수가 30-40명은 될 것이라는 발표이다. 세상살이도 이런 식으로 하면 그 불의가 들어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스스로 조심하며 인자(人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는 신앙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방법으로 세상을 살면 안 된다. 롯의 때와 같이 하나님의 천사의 전하는 말과 장인 롯이 전하는 말을 ‘농담’(弄談, 창19:14)으로 들었던 롯의 장차 결혼할 두 사위처럼 처신하면 망한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3)라고 하였다. 이처럼 주야로 밤낮 깨어 항상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며 주 안에서 성도다운 전도자의 삶을 살다가 홀연히 주님 오실 때에 모두 다 상급을 받는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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