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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의 효(요1서5:1-6) 5. 13 부모님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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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5-21 12:12 조회 21,000 댓글 0
 
이웃 나라 일본에 시게마츠 기요시라는 작가가 있다. 일본 문단에 꾀나 알려진 중견 작가이다. 그가 최근에 <아빠는 우주 최강 울보쟁이>라는 책을 냈다.

1960년에 일본의 야스라는 28살 된 청년이 화물 트럭에서 짐을 내리고 싣는 노역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혼자였다. 늘 외롭게 지내던 그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고 결혼하게 되었다. 아내인 미사코와의 사이에서 아들 아키라가 태어났다. 늘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게만 지내던 야스는 아내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들 아키라를 보며 처음으로 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그런 그의 아내와 아들 아키라가 4살 때에 아빠가 일하는 직장에 화물트럭에 수많은 짐을 싣고 내리는 현장에 구경을 갔다. 그런 그날 그만 4살짜리 아들의 실수로 곁에 쌓아 놓았던 짐 더미가 무너져 내리게 되자 엄마 미사코가 무너져 내리는 짐에 깔려 죽게 된 아들을 밀쳐 내고 자신은 덮치는 큰 짐 더미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깔려 죽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불행한 사고였다. 야스는 혼자 지내던 고독을 뒤로하고 결혼하고 아들을 낳아 키우며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가정이란 곳의 따뜻한 사랑을 나누던 4-5년간의 꿈이 일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동료들의 위로 가운데 슬픈 장례식을 마치고 엄마 잃은 아들 아키라를 키우며 아빠와 아들 둘이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가슴이 뭉클해져 오는 장면들이 많다. 마음 씨 고운 가게 집 아주머니의 도움도 받고 여러 이웃들에게 사랑을 받고 끝이 없는 신세를 져 가면서 넉넉하지 못한 돈 벌이의 트럭 화물을 내리고 싣는 일을 계속하며 아들 아키라와 함께 살아간다. 그런 여건 속에서도 아들 아키라는 똘똘하게 잘 자라나고 있었다. 아들 아키라는 어려서 당한 일이라서 그러한지 나중에 커 가면서 엄마가 어떻게 해서 세상을 떠났는지를 자세하게 기억하질 못한다. 엄마의 죽음에 대하여 아들이 물어 올 때마다 아빠 야스는 사고로 위험한 아빠를 구하려다가 엄마가 그만 죽고 말았노라고 거짓말을 한다. 세월은 지났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을 거쳐서 사춘기의 방황을 적지 않게 하던 아들이 커서 도쿄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아빠의 곁을 떠날 날이 왔다.

아빠 야스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청년이 된 아들 아키라는 늠름하게 아빠 곁을 떠나는 것 같지만 아버지나 아들이나 서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외로움과 착잡한 기분이 묘한 슬픔과 작별의 허허로움을 갖게 하는 순간이 왔다. 세월은 지났고 아들이 대학을 마치고 26살이 되었다. 그런 그가 7살 연상의 이혼녀인 유미씨를 만나서 결혼하겠다고 아버지에게 소개하였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이까지 딸린 유미씨를 며느리로 맞아들이기로 허락한 것이다. 얼마 후에 아버지 야스는 유미를 아내로 맞을 아들 아키라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네게 해줄 부탁의 말이 하나 있다. ” “무엇인데요.” “부모가 자녀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은 딱 하나 밖에 없다.” “그게 무엇인데요” “애를 외롭게 하지 마라. 바다가 되라.”

아들은 게스케라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아내가 된 유미씨와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저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 야스는 계속하여 울고 있다. 고향의 바람을 맞으며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다. 야스는 자기 자신이 아빠의 얼굴도 모르며 엄마의 사랑도 받아 보지 못하고 평생을 외롭게 살다가 만나 결혼한 아내 미사코와의 5년 정도의 짧은 가정생활을 회상하며 하염없이 울고 있다. 4살 때에 자기 목숨 구해 주고 죽은 엄마의 사랑을 더 이상 받지 못하고 살아온 아들 아키라가 아빠 곁을 떠나 도쿄에서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면서 만나게 된 유미와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저만치서 바라다보면 하염없이 울고 또 울고 있다. 책의 제목, <아빠는 우주 최강의 울보쟁이>처럼 아버지 야스는 그 동안 살아온 자신의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했던 평생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기억 속에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울고 또 울고 있다. 며느리 자신이 상처 속에 어린 아들 게스케를 데리고 젊은 청년 아키라를 남편으로 맞아 살아가는 오순 도순한 모습을 보며 저 만치 멀리서 아버지 야스는 울고 또 울고 있다.

“애를 외롭게 하지 마라. 바다가 되라.” 이 한 마디를 남긴 채 울고 또 울고 있다.


가정이란 무엇이고 가족이란 무엇인가. 왜 효도하여야 하며 효도란 무엇인가. 성경은 첫 인간으로 지음 받은 아담의 삶을 고독하게 보신 하나님께서 홀로 지내는 고독을 위로하시려고 그의 곁에 잠이 든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셔서 만들어 내신 배필이 하와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남편과 아내 즉 부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부 사이에 아들딸을 낳아 양육하도록 허락하셔서 가정이 되게 하신다. 아들딸을 부부가 낳는 것 같지만 아니다. 하나님이 남편과 아내 즉 부부에게 낳아 기르도록 위탁하시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배하고 존중하고 찬양하고 높여 드릴 줄 아는 인간으로 키워 내고 자라나게 해야 한다. 그것이 효의 근본이다.

십계명 중의 제 5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그러면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으로부터 하나님도 공경하고 경배할 줄 아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진정한 효자효녀인가. 누가 진정으로 제 부모를 공경하고 제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인가. 성경적인 효도관, 성경적인 자녀의 도리가 무엇인가.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3절까지에 보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하셨다.

가나안 농군학교 운동을 창시한 김용기 장로님은 가정의 자녀들에게와 농군학교 수련생들에게 평소에 부모 공경 10계명을 정리하여 교훈 한 것으로 유명하다.

1 계명: 신앙을 갖게 해드리라
2 계명: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드리라
3 계명: 표정을 밝게 가지라
4 계명: 궁금증을 풀어드리라
5 계명: 용돈을 넉넉히 드리라
6 계명: 향토적인 음식을 해 드리라
7 계명: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리라
8 계명: 일거리를 찾아드리라
9 계명: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드리라
10계명: 등을 자주 긁어드리고 손발톱을 깎아 드리라

사실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불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예수님의 이종 사촌이기도 하였던 사도 요한의 편지 중의 첫 편인 본문 말씀 속에서 성경적인 효도에 대하여 교훈을 받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아들딸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육신의 부모님께 삶의 필요를 채워 드리는 것으로만 효도하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을 포함해서 연세 들어가시는 부모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의 여 생을 살아가실 수 있도록 모셔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효도 중의 효도요 부모공경 중의 부모 공경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니고데모의 고민과 영적 번민을 거쳐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런 모든 계명을 잘 지키며 살았던 부자 청년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다 깨닫지 못하여 불안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예수님 곁을 떠나갔던 부자 청년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진 자로 살아가야 진정한 효자 인생이요 효녀 인생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하고 힘과 재력과 명예와 인기를 다 가졌다고 해도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신 것을 믿는 믿음이 없는 인새이라면 효자 인생 아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들딸과 며느리 사위와 손자손녀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자라나도록 가르쳐야 진정으로 공경 받고 효도 받을 부모의 모습으로 살아 온 것이다.

공부 잘해라.
일류대학 가라.
대 기업에 취직해라.
돈 잘 벌어라.
사업 성공해라.
출세해라.

그것이 자녀 교육의 근본이 되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런 것으로만 아들딸을 가르쳐 놓고 나면 나중에 무슨 효도를 받고 어떤 공경을 받을 것인가.

성경 요한 1서 5장 1절을 다시 보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이런 신앙과 믿음에 기초한 가정으로 살아가야 진정으로 효도 받는 가정이요 부모 공경이 살아 있는 가정인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
누가 효자효녀인가. 누가 부모님을 잘 공경하며 살아가는 자인가. 하나님 사랑할 줄 알고 예수님 사랑할 줄 아는 가정, 그런 인생들로 연합하여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효도하는 가정이요 부모 잘 공경하는 가정의 출발인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아들딸도 모두가 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줄 아는 가족으로 살아갈 줄 알아야 성경적인 효와 부모 공경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님께 육신의 필요를 채워 드리는 정도의 부모 공경을 효라고 해서야 되겠는가. 진정한 효도와 부모 공경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부모자녀의 연합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요 주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2절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고 했다. 여기에 논리가 있고 분명한 생활 실천 덕목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계명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들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가. 마태복음22장 37절부터 40절까지 말씀에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와 같은 계명의 말씀을 제대로 잘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요, 예수님 사랑이요, 부모 사랑이요, 부모 공경인 것이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진 자.
성도의 믿음은 나약한 믿음이 아니다. 가정에서 불화하고 세상에서 문젯거리가 되고 삶의 현장에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인생이 아니다. 요한 1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고 하셨다. 여기서 ‘이기느니라’는 ‘니카오’(nikavw)라는 헬라어는 현재 진행형이다. 계속하여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이길 뿐만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에도 자신을 이겨야 한다. 부모 공경  잘 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했다. 결국은 부모 공경 잘하는 일도 부모를 위한 것 같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노아의 아들 셈과 야벳도 아버지 노아에게 공경해서 나중에 축복을 받았다. 셈과 야벳은 세상을 어떻게 이겼는가. 신중함으로 이겼고 침묵함으로 이겼다. 이것이 아버지의 부족과 약점을 보았던 함과 다른 면이 아닌가. 이는 가정  생활, 교회 생활, 사회생활 다 마찬가지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복을 받고 그래야 형통하고 그래야 잘 되게 되어 있다. ‘이기는 승리’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신 십자가의 승리요 사탄과의 영적 싸움의 승리를 선언하는 장면이다. 이 단어는 앞부분에서 말씀하신 ‘이기느니라’의 부정과거형이다. 이미 이긴 이김인 것이다. 영원히 이긴 것이다. 단번에 이긴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이김과 승리는 영원무궁한 승리이시다. 골고다 언덕에서 이루신 십자가의 승리를 대적할 수 있는 힘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의 승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 1서 4장 4절은 너무나 소중한 말씀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생활에도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이 무엇인가. 가정에는 세상의 것들이 스미어 들어오면 안 된다. 가정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하는 보루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말씀처럼 가정의 울타리를 허무는 여우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부부가 사랑하며 살게 되고 자녀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고 부모를 잘 공경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효에 관한 말씀과 사례로 가득하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의 우상 숭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므로 영원한 효자 아들이 되었다. 아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제사에 제물로 드려지는 순종을 다함으로 영원한 효자 이삭이 되었다.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 야곱이 뛰어난 것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통하여 계승되는 언약을 붙들고 살아가는 언약 인생이 되었기에 효자 야곱인 것이다. 왜 성경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반복하는가. 그런 가정, 그런 가문, 그런 효가 살아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계승되는 참 명문 가정을 이루고 효가 계승되는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자.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또한 믿는 자여야 한다. 이런 믿음이 계승되는 가정이요 그런 믿음에 기초해서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의 진리 안에서 물과 피로 거듭난 자.
예수님은 효자셨다. 하늘 아버지께도 효자요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게도 효자요 자신을 낳으신 어머니 마리에게도 효자였다. 어머니가 보시는 앞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효자요 참된 효자의 모범을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증언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깨달아야 한다. 성령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6절 말씀에 너무나 소중한 말씀이 나온다. “성령은 진리니라.”고 했다. 8절에 보면,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했다. 이와 같은 진리를 깨달아 알고 믿으며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살아가는 부모, 형제, 자녀로 연합하며 살아가야 진정으로 가정의 질서를 이루는 가정이요 부모 공경하는 가정인 것이다.

예수님은 효자셨다. 뿐만 아니라 요한 사도도 효자였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이 요한에게 부탁하셨다. 요한복음 19장 27절에 보면, “보라 네 어머니라”고 선언하시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지극정성으로 모신 것은 요한 사도였다. 요한은 사도요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있어서 사랑스러운 조카요 효자 조카였다.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7)고 했다. 요한은 용돈 좀 챙겨다 드리고 어쩌다 돌아보아 드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있어서 아들과 같은 조카요 그는 마리아를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모시는 효자 조카였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심정을 가지고 살았던 위대한 사도요 자랑스러운 제자였다. 그 요한이 편지에서 전한대로 예수님은 물과 피와 성령으로 임하신 영원한 진리이시다.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승리요 이김이다. 진리는 지지 않는다. 진리는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지는 법이 없다. 부모공경이란 그런 것이다. 지나고 나면 후회만 남는 것이다. 송강 정철(1536-1593)이 선조 13년인 1580년에 45살 나이였던 강원도관찰사 시절에 지은 훈민가 16편 중의 일부에 이런 시조가 나온다.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사라실가
하늘가튼 가업슨 은덕을 어디다혀 갑사오리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가 한국을 칭찬한 말 중에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전통은 효”라고 했다. 중국과 일본과 또 다른 한국인의 아름다운 전통이 바로 효인 것이다. 가정이 병들고 무너져가는 오늘 날 부모공경의 도리를 회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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