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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하시는 전도(傳道)(고전1:18-25)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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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3-04 02:20 조회 2,637 댓글 0
 

              하나님께서 하시는 전도(傳道)(고전1:18-25)        2024. 3. 3

 

고린도전서 1장 21절을 여러 가지 번역으로 읽으면 이러하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지혜로는 자기를 알지 못하게 하시고 오히려 그들의 눈이 어리석게 보이는 전도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을 구원하려 하셨습니다.”(고전1:21/ 현대인의 번역 성경)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고전1:21/ 새번역 성경)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고전1:21/ 공동 번역 성경)

 

“For since in the wisdom of God the world through its wisdom did not know him, God was pleased through the foolishness of what was preached to save those who believe.”(I Cor.1:21/ NIV)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교훈은 어리석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조롱하기도 한다.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2천년 전에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끌려가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여 죽은 유대 청년의 죽음이 어떻게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냐”라고 떠벌이며 공박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내가 어떻게 해서 누구의 도움과 권유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신자로 살아가고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그 어떤 계기로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신자가 되었는가.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라고 말씀하셨다.

맞다.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내 결정으로 십자가의 대속의 복음을 깨달아 믿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런 믿음과 그런 지혜를 주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시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라는 고린도전서 1장 21절은 분명하고 역사적인 사실이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이는 전도를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게 된 성도들이 믿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십자가의 도(道).

십자가의 도를 <공동 번역>과 <새 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십자가의 이치, 십자가의 말씀, 십자가의 진리”라고 번역하였다. 맞다. 십자가의 도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그 자체를 말한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마지막 장면을 요한복음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30)라고 기록하고 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절규하시며 마치도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버림 받은 아들인 것처럼 외롭게 십자가 달려 죽임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만인의 구주가 되시는 걸까.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와 철학과 변증으로 아무리 설명하고 대화해도 그 대답을 시원하게 찾을 수 없는 신비이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헬라 영향권 아래서 살던 이들이라 헬라의 철학적인 사고에 익숙한 자들이었다. 그런 저들이 모여든 고린도 교회 안에 분쟁이 생겼다. 어떤 이들은 바울에게, 어떤 이들은 아볼로에게, 어떤 이들은 게바에게, 또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께 속하였다고 주장하며 의견이 나뉘이고 서로 분쟁하게 되었다. 

 

그런 소식을 전해 들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의 서두에서 그런 내용을 문제 삼고 있다. 1장 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라고 질문하고 있다. 17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다.

 

맞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헛되게 되고 만다. 왜냐하면 23절에서 말씀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서의 그리스도”그 분 자신이 곧 ‘십자가의 도’요 ‘십자가의 이치’요 ‘십자가의 말씀’이요 ‘십자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NIV성경에 보니까 “the message of the cross”라고 하였다. 그렇다. 십자가의 사건을 우리는 안다. 본디오 빌라도의 사형 언도를 받은 예수는 로마 병정들에게 끌려가서 온갖 고초를 당하고 십자가에 처형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던 로마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라고 고백하였다. 이것이면 족하다. 이것이 전부다. 이 외에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한 것인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맞이한 죽음을 끝까지 지켜 보았던 로마의 백부장의 고백 그것이면 족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목격자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신앙이란 보고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고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 있다. 요한복음 20장 26절 이하에 보면 예수의 부활을 여드레 만에 목격한 제자가 있다. 도마이다.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에까지 도마는 다른 곳에 가서 지내었다. 그 앞의 내용을 보면 그렇다. 도마는 예수의 부활 소식을 다른 제자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리고“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의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라고 말했다. 

 

부활하신 날 밤 중에 제자들이 문을 닫아걸고 숨어 지내던 방에 찾아가셨던 예수께서 여드레 후에 다시 저들 곁에 방문하셨다. 그날에야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문안하신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신비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부인하던 자였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을 믿지 않던 자였다. 그런 그가 다메섹 체험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런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증언하고 있다. 놀랍지 않나. 그 당시 바울은 유대 사회의 주목 받던 율법학자였다. 대 석학이다. 그런 그가 예수의 십자가의 진리 말씀과 부활 진리 말씀에 매료되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그렇다.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아 알고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면 20절 말씀처럼 “지혜 있는 자나 선비나 변론가”라고 자처할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기사와 이적의 역사이다. 그야말로 표적의 역사이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90세된 아내 사래를 통하여 아들 이삭을 낳은 것부터가 표적이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모세 시대의 출애굽이 표적이다. 사십 년 광야 생활을 하며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의 공급 가운데 생활한 그 모든 것이 표적이다.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를 앞장 세우고 요단강을 육지처럼 건넌 것이 표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탄생한 것이 표적이다. 그 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표적이다. 부활이 표적이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성경의 역사가 표적의 역사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을 끊임이 없이 표적을 구한다. 반면에 철학적 사고와 지식과 언변과 변론에 능했던 헬라 사람들은 끊임이 없이 지혜를 구하였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를 깨닫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십자가의 진리의 말씀은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이었다.

 

어떤가. 오늘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전도 해 보면 저들의 반응이 그러하지 않나. 그러나 염려할 것 없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면 길가와 가시덤불과 돌밭에도 떨어지지만 더러 좋은 땅에 떨어질 때에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기 때문이다. <호주 시드니의 길거리 전도자 프랭크 제너(Frank A. Jenner)>의 전도 열매를 소개하는 영상 하나를 보고 말씀 묵상을 계속하자. 

 

 

하나님의 능력(能力).

24절에 보면,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탄생, 생애,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어떠하신지를 나타내 보여 주신 역사적인 일이다. 25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라고 하였다. 

 

로마서 1장 16-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2장 4-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께서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다. 성도의 영원히 거할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신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라고 약속해 주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축복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라고 하였다. 그 앞 절에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라고 하였다.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갖고 담대하게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파하자. 하나님이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그 누군가를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知慧).

24절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신 자들이요 영생을 얻게 하기로 작정한 자들이다.”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연합해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한 내용이 나온다. 그곳에서도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파를 못 마땅하게 여기며 시기하고 반박하고 비방하는 유대인들이 무리를 지어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를 방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방인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 장면을 사도행전은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라고 하였다. 이러한 장면이 무엇을 말하나. 저들 이방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사람의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저들 가운데서 역사하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서 교훈하는 바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지혜이시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증거하신 각종 천국 비유의 말씀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지혜를 힘입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덧입은 천국 비유의 말씀은 어린 아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말씀들이다. 그렇지 않나. 씨 뿌리는 비유, 집안에서 잃어 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비유, 잃어 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 돌아 온 둘째 아들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공중에 날아 다니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의 비유 등을 못 알아 들을 어린아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 모든 비유의 말씀들은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의 실존을 깨우쳐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천국과 지옥의 실존을 믿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많다. 넘쳐 난다. “예수를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으라”고 떠벌이며 복음을 비방하고 조롱한다. 예수의 비유 말씀 중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내용을 보라. 예수께서는 지옥에 간 부자와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과 지옥의 실존을 설명하셨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표적을 구하고 세상적인 지혜를 찾아 나설 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지혜에 관심이 없다.

 

잠언 4장 6절에 보면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라고 교훈하였다. 여기서 말씀하는 지혜란 여호와를 아는 지혜를 말씀하는 것이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는 말씀은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버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래야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너를 보호하실 것이란 말씀이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면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그의 범사를 지켜 주실 것이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3:18)라고 하였다. 무슨 말씀인가. 지혜이신 하나님을 얻은 자 즉 하나님을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고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지혜를 가진 자 즉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영접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는 복된 자이다.

 

잠언 1장 7절은 분명하게 교훈하고 경고하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린도전서 1장 24절 말씀 그대로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는 말씀이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25절에 보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고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믿고 따르는 지혜자로 살아가자.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한 영혼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을 믿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처럼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변의 그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열매 맺게 하실 것이다.

 

복된 사순절 기간 동안 복음 전파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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