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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누가 복이 있는 자인가(시112:1-10)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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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8-31 20:55 조회 4,994 댓글 0
 

                    누가 복이 있는 자인가(시112:1-10)        2022. 8. 28

 

 

이 세상에 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중국에 가 보면 복자를 거꾸로 매어 달아 둔다. 복이 하늘에서 내려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입춘이 되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고 써서 대문과 기둥과 천장에 붙이기도 한다.“봄이 되니 크게 길한 일이 생기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복이 찾아 온다”는 뜻의‘소지황금’(掃地黃金出)‘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라고 써 붙이기도 했다. “웃으면 많은 복이 찾아온다”는 뜻의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써서 대문 밖에 내어다 붙인다. 

 

그렇지 않나. 길흉화복(吉凶禍福)이 교차되는 세상살이 중에 인생이 형통하고 나날이 복되길 원하지 누가 흉한 일을 보고 화를 당하길 원하겠는가. 그러나 살다 보면 이런 일도 겪고 저런 일도 겪는다. 그야말로 인생살이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 산다는 게 항상 좋지만도 않고 항상 괴롭고 항상 슬프지만도 않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든지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을 안고 태어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불행을 안고 태어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예수 때로 하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이들이 있었다. 날때부터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이들이 있었다. 한번은 베드로가 “저렇게 앞을 못 보는 경우는 자기 죄 때문인가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인가”하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자기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라고 대답하신 적이 있다. 

 

사실 장애 가운데 태어난 이에게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이런 말을 누가 감히 쉽게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깨닫고 믿음이 생겨서 자신의 연약함이나 불운함을 신앙으로 소화하고 극복해 나가면 모를까 말이다.  연약하고 부족한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어떤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찾아 나서기 전까지는 그리 간단히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시편 112편은 지혜시로 구분한다. 시편에는 그 유명한 시편 1편을 비롯해서 20편의 지혜시가 담겨 있다. 성경학자들은 시편 112편은 그 앞의 111편에 연이어진 시편으로 구분한다. 왜냐하면 111편 마지막 절인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란 표현이 112편 1절의 시작에서 연이어 나오기 때문이다. 

 

시편 112편에는 ‘복’이란 단어가 1절과 2절에 두 번 나온다. 1절에 ‘복이 있도다’, 2절에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누가 복이 있는 자인가>라고 정한 것이다. 

 

자, 그러면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누가 과연 복이 있는 자인가.”라고 질문해 보자. 

 

여호와를 경외하며 말씀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

1절에 보니까 두 가지의 경우가 복이 있는 자라고 했다. 

그 첫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며

그 둘째는, 하나님의 계명인 말씀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과거나 오늘 날이나 대개 세상의 기준으로 잘 나가고 잘 되면 복되다고 말한다.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명문 대학 가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승진하고 재물이 늘고 권력과 명예와 인기를 누리면 복 되다고 말한다. “누가 어떻게 되었다더라 혹은 누구네가 어떻게 되었다더라” 라는 데 관심이 많다. 다 좋고 다 필요하다. 다 귀하고 다 부럽고 누구나 대개가 다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성경은 복에 대하여 그런 기준으로 말씀하지 않는다. 그 시작이 무엇인가. “여호와를 경외하며”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지 않고도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이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이런 강조는 별로 비중 있게 들리는 말이 아닐 수 있다. 그렇지 않나. 세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도 잘 사는 나라도 만다. 잘 나가는 기업가도 많다. 잘 나가는 정치인도 많다. 하나님 안 믿어도 유명한 스포츠 스타, 잘 나가는 배우, 잘 나가는 연예인도 많다. 하나님 안 찾고도 명문대학 잘도 간다. 하나님 모르며 살아도 평생 병원 문턱 한 번 넘어 보지 않는다. 

 

그러면 성경은 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할까. 성경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강조할까. 하나님을 모를 때는 모르지만 일단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복 중의 복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큰 즐거움을 얻지도 못하며 지낸다면 그런 상태를 하나님을 믿는 자의 상태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나. 바둑 좋아하는 이들은 자나 깨나 바둑 생각만 한다. 골프 좋아 하는 이들은 밤낮 마음이 골프장에 가서 있다. 낚시에 빠져 사는 이들은 낚시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술 좋아하는 이들은 늘 술을 입에 달고 산다. 주색잡기(酒色雜技)를 즐기며 사는 이들은 그런 일상에 무감각하게 빠져 들어서 살아간다. 

 

최근에 우연히 만난 어떤 이는 건축 자재상으로 큰돈을 번 부자였다. 6. 25 전쟁 중에 태어났는데 6살 때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8살 때에 아빠도 돌아가셨다. 위로 여러 형들과 누이들이 있었지만 엄마 아빠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컸다. 출생 신고도 제때 하지 못해서 시골 마을의 동생들하고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다. 가방끈도 짧았다. 그러나 일찍이 세상 물정을 배우고 이일 저일 하다가 건축 자재 사업을 시작했는데 적지 않게 돈을 벌었다. 지금도 여전히 잘 벌고 있다. 이제는 장성한 둘째 아들이 대를 이어 사업한다. 본인 내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강남에서 널찍한 빌라에서 산다.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 수 천 평의 땅을 구입하고 개발한 후에 주말 주택도 건축했다. 저녁이면 질 좋은 고기 안주와 고급 횟감을 한 접시 차려 놓고 소주 한 병을 비운다. 그것이 날마다의 저녁 식사 대신이다. 저녁마다 일정하게 취하고 잠자리에 든다. 서너 시간 잠자고 활동하는데도 칠십 살이 넘도록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 사업이 안정되고, 두 아들 안정되고, 여러 손주들도 잘 자라고, 집안이 평안하다. 세상 기준으로 하면 복되다. 어려서 일찍 부모를 잃은 허전함 말고는 인생이 평안하고 순탄하다.

 

그러나 시편 112편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것이 복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것이어야 복이 있는 자의 모습이라고 했다. 

 

영국의 왕 윌리엄 4세(William IV, 1765-1837)가 세상을 떠났다. 왕위 계승 서열 제 1인자는 아버지를 두 살 때 잃고 어머니와 유모인 후견인의 손길에서 성장한 알렉산드리나( Alexandrina)였다. 그녀는 우리가 영국 역사에서 기억하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 재위 1837-1901) 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18살에 영국의 왕이 되었다. 역사는 그의 64년 통치 기간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부른다. 그는 왕위 계승권자로 정해진 소식을 듣는 순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나님. 저와 영국을 이끌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 날 영국을 방문한 인도의 어느 왕자가 “여왕 폐하! 나라를 이렇게 안정되게 이끌어 나가는 힘과 지혜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그 때 빅토리아 여왕은“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모든 대답을 찾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려는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오늘 날도 영국 국민들은 역대의 왕과 여왕 중에서 현직 엘리자베스 2세 외에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여왕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의 기준으로 남들만 부러워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즐거워하며 살아갈때에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인생을 복되고 복되게 인도해 주실 줄로 믿는다. 

 

 

정직한 자.

시편 112편에는 ‘정직한 자’라는 표현이 2절과 4절에 두 번 나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자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정직한 인생으로 살아가면 그 후손에게 복이 있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4절에 보니까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서도 빛이 일어나게 하신다” 라고 했다. “정직한 자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고 의로운 자”라고 하였다. 성경이 말씀하는 ‘정직한 자’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일컫는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정직한 태도로 살아가는 자의 인생길을 그 걸음마다 등불이 되어 주시고 빛이 되어 주신다. 시편 119편 105절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한 발자국 앞을 모른다. 이번 큰비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 중에 물바다가 된 도심 한 가운데 아스팔트 도로의 맨홀 뚜껑이 열린 곳으로 빨려 들어가서 불행을 당한 이들이 있다. 그렇지 않나. 평소에는 안전하고 편리해 보이지만 물바다가 되고 나면 범람하는 흙탕물 속에서 한 발자국 앞도 분간할 수가 없다. 서울시는 이번의 물난리 후에 맨홀 뚜껑이 열리더라고 빠져들어가지 않는 안전 설비를 맨홀마다 보강하기로 했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다행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는 얼마나 위험한 순간이 많고 불안한 사고와 사건이 많나. 누가 물과 불이 무서운 것을 몰라서 어려움을 겪나. 아니다. 살다 보면 별의별 사고와 사건을 다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면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길을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시고 동행해 주신다.

 

그렇지 않나. 홍해를 건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날을 누가 인도해 주었다. 사십 년 광야 생활의 주인이 누구인가. 모세인가. 아론인가. 누가 저들을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나. 누가 저들에게 마실 물을 주셨나. 누가 저들에게 날마다 만나를 내려서 배부르게 하셨나. 누가 저들에게 메추라기로 영양 보충하게 해 주셨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와 그의 후손에게 부와 재물이 있게 하시며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세상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부와 재물을 누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권력형 부정 축재, 사기, 횡령, 공금 유용, 공문서 위조, 탈세, 공문서 위조, 다운 계약서 작성, 이중 장부 작성 등의 편법으로 부와 재물을 누리며 사는 어둠의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8절 끝에 보니까 성경은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라고 하였다. 10절에 보니까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며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리지리로다.”라고 하였다. 

 

아이성 전투 때의 아간,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 예수의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유다, 초대 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정직한 자에게 복을 주신다. 세상을 정직하지 못하게 살면 시편 1편의 말씀처럼 “바람에 나는 겨와 같게 된다.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 죄인들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게 된다.”라고 경고하였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해서 그 끝은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로 끝난다. 같은 지혜시로 구분하는 시편 14편은 7절 분량의 경고가 한결같이 악한 자의 나중 받을 심판에 대한 경고문으로 가득 차 있다. “악인들의 마음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다”라고 했다.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다는 경고이다. 

 

빌립보서 2장 15-16절에 보면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하셨다.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한 걸음씩 주님과 동행하는 주인공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라는 찬양이 있다.

 

주께서 내길 예배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 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세상 죄길 버리고 생명길을 찾았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나의 하루 하루를 주를 따라 가리라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이런 찬양의 고백이 우리 각 사람의 신앙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복된 인생이란 주변의 불쌍하고 가난하며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5절의 “은혜를 베풀며”라는 말씀은 4절 하반절의 “자비롭게 살고 긍휼을 베풀며 살고 하나님 안에서 의를 행하며 살아가는 자”를 말씀하는 것이다. 세상을 이기적으로만 살고 탐욕으로만 살지 않고 주변에 은혜를 베풀며 살고, 나누어 주며 살고 손해를 각오하고 꾸어 주면서 살아가는 자는 오히려 하나님이 잘 되게 하시고 그의 나중이 영원히 기억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6절에 보면 하나님은 주께 은혜를 입고 주님의 은혜를 알고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주변에 흘려 보내며 살아가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라고 하셨다. 

 

이런 은혜를 알고 준행하며 살아가는 자의 입술의 고백이 무엇인가. <오직 주만이>라는 찬양의 가사에 담긴 고백이 아닐까.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9절에 보니까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는 인생은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라고 약속해 주셨다. 올바른 방법으로 잘 벌어서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자, 낙심한 자, 좌절해 있는 자, 생을 포기하려 하는 자의 곁에 다가가서 힘이 되어 주고 추수 날의 얼음냉수와 같은 격려자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시편 112편은 구체적인 복을 약속해 주셨다.

 

5절부터 다시 보자.

왜 은혜를 베풀며 살고 왜 주변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며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그런 인생과 가문을 잘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 이들은 일을 불의하게 하지 않고 정의로 행한다고 하셨다.

그들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흉한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 하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받은 은혜를 베풀며 살아가는 자는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베풀며 살아가는 자의 의로운 삶을 영구하게 하시고 그의 인생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은 갈대 상자에서 건져 낸 어린 아기 모세의 생을 80년을 주목하신 후에라도 붙들어 쓰셨다. 하나님은 일찍이 엄마 한나의 품을 떠나서 성막에서 지내던 어린 나이의 사무엘을 택하여 그의 평생을 역사 중에 뿔처럼 그 영광이 높이 들리게 하셔서 쓰셨다. 하나님은 부모 일찍 잃고 고아처럼 자라난 에스더를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다듬어서 역사 앞에 뿔과 같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인생으로 붙들어 쓰셨다.

 

이런 예는 성경에 끝이 없다. 벌써 그 덥던 여름 날씨가 사라지고 새벽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렇게 올해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것이다. 인생의 돌이킬 수 없는 겨울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은혜를 베푸는 자, 주변의 불행과 아픔과 가난과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돌아 보고 섬기는 자로 살아가자. 그리하므로 우리 각 사람의 앞날의 의가 영구히 있고 우리 각 사람의 인생의 뿔을 주께서 영광 중에 높이 들리게 해 주시는 상급 받는 주인공으로 복되고 복되게 살아가길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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