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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 바울의 감사(고후2:12-17) 202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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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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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7-13 20:33 조회 4,741 댓글 0
 

                    전도자 바울의 감사(고후2:12-17)          2022. 7. 10

 

 

오늘도 계속하여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선교 일정에 대하여 불신하거나 그의 사도직에 대하여 비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고 또 편지하였다. 특히나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던 여러 가지 심각한 신앙적 문제점을 언급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성경적인 교회, 복음적인 성도들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눈물로 쓴 편지를 디도 편에 보내서 회람하게 하였다. 에베소에서 사역하며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고 또 쓰던 사도 바울은 여전히 그의 사도직이니 사도직 수행에 대한 불신과 오해와 반목에 휩싸인 자기 자신을 변증하는 내용의 편지를 계속하여 쓰고 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내용 가운데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선교 현실에 대하여 무엇을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는 것인지 살펴 보려고 한다.

 

 

주 안에서 문이 열린 것을 감사.

우리가 아는대로 사도 바울의 선교 여정은 사도행전 9장의 다메섹 변화 체험을 시작으로 사도행전 9장 이후의 거의 모든 분량의 주인공이다. 바울은 고난의 사도였다. 가는 곳마다 수 많은 환난과 역격을 감당하고 극복해 나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위기를 극복하고 난관을 돌파하며 복음 전파의 새 길을 열어 나가고는 하였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첫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주 안에서 문이 새롭게 열리고는 했던 체험을 간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 여정이 항상 순풍에 돛 단 듯이 물 흐르듯 언제나 순조롭고 순탄했던 것 만은 아니다. 오히려 13절의 말씀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만나기를 원했던 디도를 만나지 못하게 되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13절의 말씀 배경은 에베소에서 쓴 눈물의 편지를 들고 고린도를 방문했던 디도를 드로아에서 만나기를 약속했었지만 만날 수가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요즘처럼 통신 수단이 발전한 시대에야 서로의 근황을 쉽게 알 수 있고 서로에게 무슨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길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2,000년 전 당시의 연락 순단이란 헤어지기 전에 했던 약속 시간과 약속 장소가 어긋나고 나면 못 만나게 된 사연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길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라는 그 당시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그렇지 않나. 사람은 그 마음이 물과 같아서 고요하면 고요하고 파도가 치면 파도가 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돌처럼 단단한 것이 아니다. 상황과 환경과 사건에 따라서 하루에도 수 없이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이다. 우리 조상들은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는 표현을 하지 않나.

 

이처럼 지금 바울은 마음이 편하지 못한 답답함과 불안과 염려 가운데서도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향할 수 있는 새로운 선교의 문이 주 안에서 열린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 

 

그렇지 않나. 여러분은 어떤가. 오늘날까지 살아오면서 매사에 원하는 모든 인생의 문이 활짝활짝 자동문 열리듯이 열리는 생을 살아왔는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욱여싸임을 당할 때가 있다. 답답한 일을 만날 때가 있다. 박해를받을 때도 있다. 거꾸러트림을 당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욱여 싸임을 당할 때에 싸이지 않게 해 주신다. 답답한 일을 당할때에도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신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되지 않게 해 주신다. 거꾸러트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게 해 주신다. 왜냐하면 예수의 생명이 주를 믿는 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내 인생길에 원하는 이 문이 막히며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의 문을 예비하셔서 그 새로운 열린 문을 통과하게 하신다. 사면초가가 되어도 위를 바라보면 하늘 문이 활짝 열리게 하신다. 

 

창세기의 야곱을 보라. 형을 제치고 아버지 이삭에게 먼저 별미를 대접하고 형보다 먼저 축복 기도를 받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 사실을 뒤 늦게 알게된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도 찾아 나섰다.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급하게 봇짐을 챙겨가지고 멀리에 있는 외갓집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룻 길을 가던 중에 해는 기울고 밤이 찾아 왔다.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브엘세바를 떠난 야곱이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서 해가 졌다. 들판에서 유숙하려고 가까이에 있는 돌 하나를 챙겨서 베개 삼고 그 곳에 누웠다. 생각해 보라. 아버지 집에서 폭신한 양털을 깔고 덥고 지내던 야곱인데 들판에 그것도 한 밤 중에 맨 땅에 눕는 신세가 되었다. 잠이 올 리가 없다. 그런데 잠시 잠이 든 사이에 꿈에 환상을 보았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서 하늘로 연결 되어 있었다.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 그 꼭대기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야곱이 잠이 깨어서 하나님께 대답하였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그리고는 두려운 마음에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그리고는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았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다. 그 성의 옛 이름은 루스였다. 그 새벽에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하였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이러한 체험은 쫓기고 도망쳐야 했던 야곱의 생애에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인생의 새로운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 왔고 인생의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을 체험해 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아. 인생이란 이 문에 닫히면 저문, 저 문이 닫히면 또 새로운 이문을 통과해서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로구나.”라고 말이다. 우리는 창세기의 야곱을 안다.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에서 형 에서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언약 가문의 언약 계승의 중심 인물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야곱이 두 아내와 그 두 아내의 여종들을 통해서 태어난 12아들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야곱이 자신의 삶을 뒤 돌아 보면 그의 복잡다단한 인생살이를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의 앞날을 주 안에서 인도해 가신다. 때로는 내 앞의 인생 문을 닫기도 하신다. 반대로 하나님은 내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인생의 또 새로운 문을 새롭게 여셔서 그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신다. 

 

우리가 인생사를 계획하고 구상하고 설계하고 추진한다고 할지라도 내 앞 날의 인생문을 열기도 하시고 닫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일들을 수 없이 체험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자신의 복음 전파의 앞 길에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 원했던 그의 이 문을 닫으시고 마게도냐로 향하는 새로운 저 문을 열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헐몬산 새벽 기도회를 시작으로 2022년의 후반기에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새롭게 열린 문을 통해서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체험하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복된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이기게 하시는 것을 감사.

생각해 보라. 이 세상이 어떤 분야의 그 누구이든지 백전백승하는 인생이 있겠나. 없다. 인생이란 끝 없는 자기와의 싸움이며 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실패도 수 없이 겪고 실수도 수 없이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수 많은 실패와 실수들을 유익한 체험과 바탕으로 해서 우리는 새롭게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14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라는 고백은 바울 자신이나 그의 곁에서 함께 동역하던 실루아노나 디모데나 디도와 같은 이들이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주인공들이란 말이 절대 아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타율이란 것을 안다. 그렇지 않나. 무슨 홈런을 몇 개를 날렸다는 것은 그런 기록을 세우기까지 수 없는 아웃 볼을 소화해 내야 하는 것 아니다. 우리나라 야구 역사 초기의 인물이 김응용(1941-) 감독이다. 백과사전에 보면 야구 역사의 김응용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김응용은 야구선수로서 1961년 첫 태극 마크를 단 그는 1963년 열린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국제대회 첫 우승과 함께 타율·타점·홈런·최우수상 등 4관왕에 올랐다. 이후 은퇴할 때까지 실업 야구 홈런왕과 국가대표 4번 타자로 명성을 떨치며 통산 타율 3할 7리, 홈런 46개를 기록했다. 1973년 한일은행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한 그는 첫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1977년 니카라과에서 열린 제3회 세계야구대회에서는 미국을 5대 4로 꺾고 한국야구의 첫 세계제패를 이루었다. 1년간 미국에서 야구 유학을 하고 돌아온 뒤에는 1983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아 우승을 이끈 뒤 총 9번을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 팀으로 옮겨 2002년 다시 우승함으로써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기도하며 주의 일을 하지만 항상 기쁘고 항상 힘이 넘치고 항상 만족스럽고 항상 컨디션이 최상이고 항상 최고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김”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성경대로 하나님은 주를 믿는 성도들을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가신다. 

 

이기서 이긴다는 것은 무슨 남들보다 공부를 잘 한다든지 사업을 잘한다든지 장사를 잘해서 억수로 돈을 많이 번다든지 뭐 그런 정도의 것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물론 이 세상이 경쟁 사회이니까 그 어떤 분야에서 이기라면 상대방과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주를 믿는 성도들이 추구하는 ‘이긴다’는 것은 복음이 복음으로 전파되는 데 있어서 나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가느냐는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공부 잘해라, 직장 생활 잘해라, 사업 잘해라, 장사 잘해라” 뭐 그런 부탁을 하신 적이 없으시다. 주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그러니까. 공부도, 직장 생활도, 장사도, 사업도, 가정생활도,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일을 비롯하여 우리 인생의 대소사는 오직 복음이 복음되게 하는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늘 설명을 나누어도 그렇게 동의하는 이들이 적어서 문제이지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그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복음이 복음되게 하는 일에 쓰임받는 사명의 사람들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절두산 선교사 묘역에 가 보면 수 많은 선교 초기의 선교사들의 묘비를 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하여 각계 각 분야의 전문적인 역량을 가진 이들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고, 병원, 학교, 고아원을 세우고 홀로된 여성들을 위한 자모원을 설립하고 여성 운동을 펼치는 등의 왕성한 선교 열매를 거둔 것을 볼 수 있다. 

 

25세에 간호사의 신분으로 조선에 도착한 선교사 루비 켄드릭(Kendrik, Ruby Rachel, 1883-1908)은 1908년 여름, 한국에 온 지 9개월만에 급성맹장염으로 죽음을 맞았다. 그녀는 죽기 전, 부모님께 이런 편지를 보냈다.

 

"… 한쪽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지 일주일도 안된 서너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선교 본부에서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순교할 작정인가 봅니다…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 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곳에 오기 전 뒤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내년이면 꽃으로 활짝 피겠죠?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내겠죠? 저는 이 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씨앗이 되어 이 땅에 묻히고,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아마 조선 땅에 많은 꽃들이 피고, 이곳 사람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이것은 조선을 향한 저의 열정이 아니라,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 합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모교회인 텍사스 청년들에게 <열 명씩, 이십 명씩, 오십 명씩 함께 조선에 복음을 전하러 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또한 <만약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고 그녀의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죽음이 고향 텍사스 모교회에서 전달되면서, 텍사스 교회에서는 선교사를 모집하여 그녀의 사명을 이어가게 하였다. 그녀의 친구, 교회 동료들이 선교사로 지원하여 3년 동안 이십여 명이 한국에 와서 헌신하였다. 하나님은 그녀의 순교를 밀알로 사용하셔서 많은 선교사를 한국에 부르신 것이다. 당시 미국 벤더빌트 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양주삼 목사(한국 감리회 초대 감독)가 1911년 이 아름다운 사연을 <그리스도인 회보>에 게재하여 루비 켄드릭 선교사의 사연을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 주님은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신다. 어리석은 자로 하여금 지혜롭게 하신다. 부족한 자로 하여금 넉넉하게 하신다. 미련한 자로 하여금 지혜롭게 하신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고전15:42-43)

 

이런 은혜를 누리며 늘 주 안에서 승리하는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게 하시니 감사.

로마 시대에는 전쟁에 이기고 나면 승전한 군대가 카피톨리누스 산 꼭대기에 있는 쥬피터 신전에 까지 개선 행진을 하고 거기서 희생 제물을 드리고 향을 피웠다. 그러면 그 향이 산 아래 온 도시에 가득차게 되었다. 시민들은 그 향기를 맡으며 전쟁에 승리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로마의 전쟁 문화를 알던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편지에서 복음 전파자의 영광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하였다. 

 

14절에,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15절에 “그리스도의 향기”16절에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는 설명이 그런 의미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대속의 은총을 입고 살아가는 성도의 사명은 세상에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썩는 냄새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활 생명을 선물로 받고 살아가는 성도는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전파하며 살아가야 한다. 15절에 보면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하였다. 그렇다. 

 

카피톨리누스 산꼭대기에 있는 쥬피터 신전에서 퍼져 나가는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향의 향기가 온 도시를 진동해도 로마의 편에 속한 이들은 승리의 향기이지만 그 반대 편에 선자들에게 있어서는 사망으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고 말 것이다.

 

이는 오늘 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솥밥을 먹고 사는 가족이라도 누구에게는 복음이 생명에 이르는 향기이고 누구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영접하고 복음을 깨달아 복음의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감격이며 축복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17절의 말씀처럼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라는 바울의 마음가짐에서 배워야 한다. 복음 전파란 결코 내 생각, 내 경험, 내 주장, 내 의지, 내 고집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 전파의 바탕은 향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듯이 순전한 복음으로 복음되게 하는 것일 뿐이다. 

 

복음이 오염되고 혼탁해져 가며 이단과 사이비의 미혹에 빠지는 이들이 점점 줄어 들지 않는 이 시대에 깨어 정신을 차리고 복음을 복음되게 하는 일에 앞장 서서 복음 전파의 개선가를 부르며 생명의 향기를 만방에 전파하는 우리 각 사람이 모두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은혜가 늘 충만 하시기를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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