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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성탄을 준비한 사람들(마1:18-25) 201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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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12-22 07:49 조회 19,763 댓글 0
 
역사는 준비된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앞날이든 어느 가정의 장래이든 혹은 한 국가의 미래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준비가 없는 개인, 가정, 기업, 국가는 멸망하고 만다. 심지어는 예배나 제사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해마다 유월절이면 성막(聖幕)에 모여 양과 염소와 송아지를 잡아 제사를 드리는 절기 신앙도 그와 같은 짐승이나 혹은 비둘기 한 마리라도 준비되어 있어야 제사할 수 있었다. 이는 솔로몬 성전(聖殿) 시대 이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하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솔로몬의 성전도 사실은 아버지 다윗 때부터 기도로 준비하고 백향목을 비롯한 금과 은을 마련한 오랜 준비가 있음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예수님도 준비하는 신앙에 대하여 교훈하신 바 있다. 누가복음 14장 28절 이하에 보면 망대를 세우는 일과 전쟁하는 일을 주제로 교훈 하신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만일 망대를 쌓다 말고 중단하면 그 바라다보는 이들이 비웃지 않겠느냐. 만일 어느 왕이 일만 명의 군대로 상대편의 왕국 이만명과 싸우려 할 때에 이길 수 없으면 화친하지 않겠느냐고 비유를 들어 준비해야만 하는 믿음에 대하여 교훈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비유의 말씀 바로 후에 하신 교훈이 이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눅14:33-35)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경제관, 물질관, 소유관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망대 건축하는 일과 일만 명의 군사동원 능력을 가진 임금이 이만 명의 군대를 거느린 이웃 왕국의 왕과 전쟁을 벌이려고 할 때에 이길 승산이 없으면 죽고 죽이는 전쟁 대신에 화친하고 말 것이 아니냐고 하셨다. 이 비유에 이어서 하신 교훈이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의식주에 집착하고 세상 물질의 소유에 급급한 생활 태도를 가지고는 거리가 멀다는 교훈이 아닌가.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그 출발이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는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는 법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고 하셨다. 이와 같은 교훈을 가르치신 전체적인 배경은 이렇다.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의 곁을 따라 갈 때에 예수께서 무리들을 돌이켜 보시고 말씀하셨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무슨 말인가. 진정으로 예수님만 사랑하지 못하는 신앙,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못하는 신앙의 주인공은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오늘이 대강절 넷째 주일이다. 이제 삼일 후면 2013년 성탄일이다. 마리아가 없는 성탄, 그녀의 남편 될 요셉이 없는 성탄이란 상상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리아와 그의 남편될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날 순간을 준비하셨기 때문이다.
 
본문 말씀의 시작은 이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1장 앞 부분의 계보에 나타난 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따라서 준비된 42대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사야나 미가와 같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탄생하신 역사적인 탄생이시다. 마태복음 1장 23절은 이사야 7장 14절을 통하여 예언된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증거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인 것을 선포하였다. 또한 마태복음 2장 6절은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선포하였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세 이전에 계획하셨고 섭리하셨고 준비하셔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세주이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성탄을 어떻게 준비하셨는가. 본문 말씀을 통하여 교훈 받기를 원한다.
 
 
성령으로 인한 준비.
예수님의 마리아 잉태는 성령으로 인한 것이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어느 날 나사렛의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가 이 사실을 마리아에게 알렸다. 당황해 하고 무서워하는 마리아에게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고 위로해 주셨다. 마리아의 태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된 사건은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한 사건이라고 위로해 주신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신 역사적인 사건의 열매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란 사실을 알려 준 것이다. 신비하고 놀랍지 아니한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하여야 한다. 누가복음은 성령의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의 탄생으로부터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의 전체가 성령과 깊은 연관이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세밀하게 관찰하고 복음서와 역사서를 기록한 성령의 사람이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중에서 성령에 대하여 가장 자주 가장 많이 기록한 분이 바로 누가이다. 더군다나 사도행전까지를 포함하면 누가는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의 초대 교회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인 것으로 자세하고 관찰하여 기록하고 있다. 잠시 누가복음을 보자. 1장에 보면 장차 태어날 세례 요한은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눅1:15-16)고 하였다. 41절에도 보면 세례 요한을 수태한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67절에도 보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누가복음 2장 25절 이하에 보면 예루살렘에 살면서 늘 성전에 드나들던 의롭고 경건하고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기다리던 시므온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성령(聖靈)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聖靈)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聖靈)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눅2:25-27)
 
는 말씀으로 시므온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그 즈음에 얼마나 성령 충만한 주인공으로 살았던 인물인가를 강조해 주고 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셨다,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다.”는 강조가 무슨 의미인가. 시므온은 매사에, 범사에 성령 중심의 삶을 살았던 성령의 사람이란 증거가 아닌가.
 
이렇게 성령의 사람이었던 시므온의 성탄 찬양의 가사에 보면, 예수님은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라고 경배를 받았다. 그렇다.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하신 주의 구원이시고 만민 앞에 준비되고 예비된 분으로 오셔서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누가복음 3장 21절 이하에도 보면, 예수님은 나중에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강림하셨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3:22)
 
예수님은 모든 삶이 성령의 충만한 삶이셨다. 예수님의 모든 출입에는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다. 누가복음 4장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하신 내용이다. 그 시작도 보면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에게 이끌리시어 마귀의 시험을 넉넉히 이겨 내셨다.(눅4:1) 사십일 간의 금식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다니실 때에 그의 소문이 사방에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눅4:14) 예수님은 가시는 곳 마다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하루는 예수님이 성장하신 고향 마을인 나사렛에서 안식일을 맞으셨고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셨다. 그 때에 읽으신 구약 성경 말씀이 이사야서 61장 1절 이하에서 인용된 말씀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주의 영이신 성령이 임하시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 이사야 61장 3절 이하에 보면, 슬퍼하는 자가 화관 즉 꽃으로 화려하게 만든 화관을 쓸 날을 맞게 된다. 기쁨의 기름을 바르셔서 슬픔을 대신하게 하신다. 찬송의 옷을 입히셔서 그 근심을 대신하게 하신다. 장차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로 그 영광을 나타나게 하신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령(聖靈)을 주신다고 가르쳐 주셨다. 요한복음 20장 22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 하신 말씀도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이셨다.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께서 인생들 가운데 행하시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준비하고 성령 안에서 행하고 성령 안에서 매사를 이루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으로 인한 준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준비하셨을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 마리아의 남편될 요셉의 마음을 다스리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날을 준비하셨다. 마리아의 남편될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마태복음의 본문은 복음서 가운데 유일한 내용이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될 요셉의 심경을 자세하게 전해 준 유일한 복음서의 기록이다. 그 마리아의 남편될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여기서 의롭다는 말은 ‘divkaio"’인데 그 뜻은 마리아의 남편으로서의 행동이 의로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람 자체가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며 정직하고 바른 삶을 살아 왔던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증거하는 표현이다. 여기 의롭다는 ‘디카이오스’는 넓은 의미로 “정직하고, 옳고, 고결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는” 믿음의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라고 하였다. 욥기 17장 9절에 보면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고 하였다. 시편 1편에 보면 의인의 나중은 악인의 나중과 다르다고 하였다. 의인은 흥왕하나 악인은 망한다고 하였다. 시편 5편 12절은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였다. 시편 11편 5절에는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 하는 자를 미워하신다.’고 하였다. 시편 14편 5절에는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신다’고 하였다. 시편 34편 15절에는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여호와는 의인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하였다. 잠언 3장 33절에는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잠언 4장 18절에는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다’고 하였다. 잠언 11장 21절에는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25장 46절에는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하였다. 하박국 3장 2절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고 이를 인용한 히브리서 10장 38절도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다. 야고보서 5장 16절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의를 중요시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순종하고 따르는 의인을 통하여 섭리하시고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중한 사람이요 생각이 깊은 사람이요 세밀하고 섬세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 당시 유대의 율법으로은 정혼한 아내가 간음한 연고 이외에는 파혼 하지 못하도록 정해 있었다.(신22:23-24) 그러므로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였다는 마리아의 말을 전해들은 남편될 요셉의 고민과 당황스러움을 상상하여 보라. 아무리 아내될 마리아의 말을 믿어 준다고 한들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믿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래서 요셉은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뒤숭숭해 하며 이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며 답답한 날들을 지내고 있었다. 요셉의 고민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마리아의 말에 대한 의심의 문제보다도 어떻게 여자가 남자 없이 성령에 의하여 아기를 수태할 수 있느냐는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었던 것이다. 즉 마리아의 성령 잉태 사건은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고 싶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고 믿고 싶으나 쉽게 믿어지지 않는 마리아 수태 사건 앞에 당황해 하고 고민하는 남편 요셉의 심경을 성경은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라고 설명해 준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난 것이다.
 
주의 천사의 현몽(現夢)으로 인한 예수 탄생의 준비.
요셉의 꿈에 주의 사자 즉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0-23)
 
누가복음은 천사 가브리엘이 등장해서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 한 것을 강조하지만 마태는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말씀하였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앙겔로스 퀴리오’ 즉 ‘주의 사자’는 단순히 천사의 차원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인간에게 보내시는 전달자를 의미한다. 가령 창세기 16장에 보면 여주인 사래에 의하여 학대 받던 하갈이 광야 길로 내어 좇긴 후에 광야에서 목 말라하고 고생할 때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녀를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창16:7, 9, 10, 11)
 
이처럼 필요할 때에 주께서 친히 주의 사자를 보내서 말씀하신다.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지금 이 당혹스러운 마리아 수태 사건을 통하여 요셉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연관을 가진 인물임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 하지 말라’는 말씀 또한 지금 요셉의 마음속에 단순한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메시아 탄생의 경건한 두려움을 갖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요셉의 마음을 위로하고 안정시켜 주고 있는 말씀이다.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인한 잉태임을 다시 한 번 확증한 주의 사자는 태어날 아기의 이름까지 언급하였다.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고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셨다. ‘예수’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며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삼일 앞으로 다가온 성탄절은 ‘예수 임마누엘’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즉 성탄절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심을 증거 하는 날이다.
 
마리아는 성령이 임재한 하나님의 여종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남편될 요셉 또한 의롭고 신중할 뿐만 아니라 주의 사자가 친히 그에게 꿈에 나타나 말씀하실 정도의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아내 마리아를 자기 집에 데려다가 정성스럽게 보호하며 아들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까지 동침하지 아니하고 예수 탄생의 순간을 기도하며 기다렸다. 때가 되어 먼길 베들레헴에 호적하려고 올라갔던 길에 그 곳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예수!’ 그 이름을 찬미하고 경배하며 이 땅에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임마누엘의 탄생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축하하는 복된 성탄절기가 모두 다 되기를 기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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