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남녀노유 누구나 계속하여 무엇인가를 찾아 가고, 누군가를 찾아가고 있다. 즉 인간은 그 누구나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를 추구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사람이 신기루를 찾아 나서면 그 인생이 불행해 지고 만다. 또한 인간의 허영심이나 지나친 명예심이나 공허한 출세나 탐욕에 붙잡혀서 재물이나 돈만을 찾아 나서다 보면 그 인생이 결코 행복해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인생이 병들고 타락하고 패망의 늪으로 빠져 들고 말게 된다. 최근에 무슨 책을 읽다가
“인간은 성공하였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다.”
라는 표현에 공감하게 되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잘 지내야 한다. 물론 좋은 대학 가는 것도 필요하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인간이 진리를 찾아 가지 못하고 창조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만나지 못한 채 허망한 이방 종교나 우상 숭배나 헛된 허영심과 공명심에 붙들려 살다 보면 자신도 불행해지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다 불행해 지고 말수도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총수 형제들이 겪는 불행의 원인을 보라. 인간이 어리석기 시작하면 그 어리석음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고 미련하고 부족한 것이 인간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 지혜를 자랑하거나 자기 지식을 내세우면 안 된다.
열두살 날 아들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명절에 올라갔다가 고향 마을인 나사렛으로 되 돌아가던 길에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잃어 버린 적이 있다. 아들 예수를 찾기 위해서 수 많은 귀향 인파를 거슬러서 ‘우리 아들 예수 못 봤소, 누구 우리 아들 예수 본 사람 없소’하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고 만날 길이 없었다. 사흘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만났다. 그 때 예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지 않는가.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나이까”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예수는 그가 하나님이 아들로 이 땅에 와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어떻게 성취하고 어디로 돌아가야 할 것을 아셨던 메시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당신이 평생을 찾고 추구하는 바가 분명하였다. 그는 이 땅에 인류를 자신의 죄로부터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5일에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1926-2013) 장군이 87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월남전의 전쟁 중에 수많은 부하들의 죽음과 부상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다던 그는 자신의 시신을 국립묘지의 장군 묘역에 매장하지 말고 월남에서 전쟁 중에 목숨을 잃은 베트남참전 사병들의 묘역에 장례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정부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사병들의 묘역에 조촐하게 장례하였다.
여러 해 전에 돈암동 웨딩 홀에서 열린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신랑 측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용사였고 고엽제 피해장병배상운동에 앞장서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런 인연으로 해서 채명신 장군을 주례자로 모셨던 것 같다. 그 때 그가 했던 주례사의 내용들이 몇 가지 기억에 생생하다. 그는 국가와 민족과 부하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던 군인이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는 항일 운동가였던 아버지와 돈독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1926년에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났다.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에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그는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교사 생활도 하였으나 1947년에 소련군이 북한 땅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공산화 되어 가는 북한을 피하여 남하했고 그 다음해에 오늘 날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군인의 길을 걸었다. 별 셋을 단 중장으로 예편한 후에는 스웨덴과 그리스와 브라질 대사로도 임명 받아 외교관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 권력을 탐하거나 명예에 혈안이 되어 살며 정치계에 넘석거리던 군인이 아니라 조국과 국민과 부하를 사랑하던 군인다운 군인이었고 기독교의 사랑을 실천하며 진리를 찾아가려고 힘쓰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인간은 이 땅에 와서 살아가면서 각기 직업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고 전공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기호가 다 다를지라도 분명히 찾고 만나고 추구해야 하는 길이 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야 인생의 진정한 길이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이며 영생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 보면 미가서 5장 2절에서 미가 선지자가 예언하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멀고 먼 길을 별의 이동을 따라 찾아 나섰던 동방 박사들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지난 10월에 미국 방문 길에 어느 소품 점에 들렀다가 마침 눈에 띄는 약대를 탄 동방 박사 세 사람의 조형물을 다 합쳐서 7불 50센트에 살 수 있었다. 물론 성경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기 때문에 세 사람의 동방 박사들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당시에 예수의 탄생을 찾아 나섰던 동방 박사들이 몇 사람이었는지에 대하여는 그 숫자를 밝힐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오늘이 12월 첫날이고 이제 삼 주만 지나면 성탄절을 맞게 된다. 대강절 첫 주일인 오늘 묵상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본문을 통해서 다시 말씀의 교훈을 깨닫고 성찬에 참예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길 원한다.
왕(王)이신 그리스도를 찾던 사람들.
동방박사들은 이상한 별의 이동을 따라서 수천 킬로미터의 멀고 먼 길을 가서 도착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찾고 있었다. 성경이 말하는 동방이란 페르시아, 바벨론, 메대, 아라비아 등 그 설이 많다.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 성민들이 듣고 소동하게 되었다. 어디든 왕은 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소동이 일어 날 수밖에. 이때에 헤롯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의 모든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서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이는 헤롯이 물은 질문이다. 여기,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의 탄생에 대하여 질문하였고 헤롯왕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이 두 질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당시의 궁금증이 모두 다 담겨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방 박사들이 언급한 유대인의 왕이란 유대에 제한된 왕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유대 땅에서 태어난 메시아를 찾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예수는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시다. 히브리 말로 메시아가 헬라말로 그리스도이시다. 그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당시의 많은 백성들은 메시아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디서 태어날 것이며 언제쯤 태어날 것인지에 대한 지식조차 없는 무리들이 많았다.
그 때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박사들이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말했다. 동방 박사들은 이상한 그 별을 태어날 왕, 태어날 메시아를 알리는 메시아의 별이라고 말했다. 성탄절이 되면 예배당 안과 밖에 별을 장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이상한 별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실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날도 유명한 인물이 세상을 떠나면 별이 떨어졌다고 하지 않는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별 중의 별이요 왕 중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시다.
당시나 오늘 날이나 그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면 인생은 변하고 달라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땅에 그 어떤 누구이든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예수를 인생의 왕으로 모시고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128년 전에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 와서 천국과 영생의 복음야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학교, 병원, 전쟁 중에는 고아원을 비롯한 복지 기관들이 오늘 날처럼 발전해 온 바탕에는 기독교의 복음이 있다. 우리 고향 마을에도 1908년에 초등학교가 세워졌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네 자손이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의 2천년 후손 중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유다 지파의 혈통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이다. 나라마다 누가 지도자가 되고 누가 통치자가 되느냐에 따라서 외교 능력이 다르고 국제 관계가 달라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열강 속에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찬송가와 같은 애국가를 부르면서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보우하시고 하나님이 보존하시고 하나님이 번성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역사 속에 왕성하게 붙들어 쓰실 복음 민족, 선교 민족의 겸손한 기도를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엊그제 언론에서 비교한 중국과 북한과 남한과 일본과 대만 등 대한민국 주변 열강들의 육해공군 군사력의 비교표를 보았다. 우리나라는 전투기나 전함이나 육군의 군사력의 그 숫자 대비로 하면 싸워 이길 이웃 나라가 없다. 그러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것이 골리앗을 돌멩이 한 개로 쳐서 이기던 소년 다윗의 고백이 아닌가.
목자(牧者)인 다스리는 자를 찾던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본문 5절에서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이 인용된 대로 목자이신 다르시는 자가 태어나신 것이다. 예수는 우리의 목자이시다.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말이다. 다윗의 그 유명한 시편 23편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고백으로 시작되지 않는가. 새 예배당의 담임목사실을 장로교에 가 보면 ‘당회장실’이라고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했다. 이는 평소의 신앙 고백이다. 우리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어른이든 어린 아이이든 우리 모두의 목자는 담임 목사나 부 목사나 담당 전도사나 교사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요 우리의 목자이시다. 양은 단순하고 어리석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양과 같은 인생들의 목자는 인생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셔야만 한다.
바닷가에는 등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 시대에는 우리를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를 따르는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공부 잘하고 사업 잘하고 장사 잘하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도 좋지만 예수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답이 있게 된다. 예수를 찾아 나서되 우리를 다스리고 지배하고 인도하고 지도하시는 영원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고 따르고 순종하여야 한다. 그래야 인생과 가정에 축복의 강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도하던 별이 멈추어 선 베들레헴 마을 어귀에서 동방 박사들은 기뻐하고 기뻐하였다. 마구간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만난 동방 박사들은 큰 기쁨과 감격에 휩싸였다. 예수 만난 기쁨은 그런 것이다. 교회만 다니지 말고 예수를 만나야 한다. 예배드리는 이들 사이에 끼어 앉는 것으로 만족해 하지 말고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예배자의 기쁨과 감격과 그 영혼의 만족을 체험하기 시작하면 예배처럼 귀한 것이 없다.
예물(禮物)과 경배(敬拜)를 받으실 왕을 찾던 사람들.
동방 박사들의 예루살렘 방문 목적은 예물을 아기 예수께 드릴 뿐만 아니라 경배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경배한다는 ‘프르스쿠네오’는 단순한 경배가 아니라 절대 복종한다는 뜻이다. 이 단어의 사용은 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국한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며 살아온 인생과 가정과 민족 치고 잘못된 경우란 없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경배하는 인생이어야 그 장래가 잘되고 번성하게 된다. 우린 대개 왜 황금, 유향, 몰약을 드렸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필요한 관찰이다. 다른 보석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황금 유향 몰약이냐는 것 말이다. 황금은 그리스도의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왕권을 상징하고 유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한다. 구약 성경에 보면 유향은 인간을 위하여 는 쓸 수 없었으며 이방 신에게 드려서도 안 되었다. 하나님은 오직 ‘나의 향’(겔 16:18)이라고 하셨다. 즉 유향은 하나님만이 받으시고 하나님께만 올려 드려야 하는 향이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신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몰약은 침상과 옷 등과 여인들을 향기롭게 하던 것으로서 특별히 시체를 처리할 때 쓰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거룩한 죽으심을 상징하고 예표하는 예물이었다. 이와 같은 예물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평생 그런 생을 사셨고 영원히 그런 예물을 받으실 만한 왕이요 그리스도요 목자요 구세주가 되셨다.
영원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는 절기가 되자. 좀 더 예수 그리스도를 심오하고 깊게 만나고 체험하고 그 분으로 인하여 만족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나의 삶을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전부 드릴만한 그런 존귀하고 가치있는 삶으로 그 분에게 경배하고 그 분의 이름과 그 분의 구원 성취의 그 거룩한 업적을 만방에 증거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나, 그런 가족, 그런 공동체, 그런 교회의 앞날을 가꾸어 가자. 이 땅에 아펜셀러 언더우드, 중국에 허드슨 테일러, 인도에 아도니람 저드슨,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 에콰도르에 다섯 친구와 함께 선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짐 엘리엇 선교사(Jim Eliot, 1927-1956)와 같은 예수를 찾아 가는 삶을 살자. 저들은 살인 부족이었던 아우카 족에게 다음 대의 자녀들까지 미망인인 아내들까지 모두 가서 헌신하여 부족의 삶을 변화시키고 복음이 들어가게 하였다. <창끝>이란 책과 영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나. 하나님은 처처에 선교의 사람들을 보내셔서 거룩한 복음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고 따르고 전하게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부르심과 초청에 응답하는 우리 각자 모두가 되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