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눈은 몇 가지가 있다. 우연론(偶然論)이 그 중의 하나이다. 살아가다가 보면 우연히 그런 일이나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우연론이다. 자연발생론(自然發生論)이란 것도 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민족이든 살아 가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필연론(必然論)이란 것도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이 있지 않나. 모든 일은 매사에 심은 대로 거두는 자연의 원리가 통한다는 것이다. 선을 심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어 악을 거두는 법이다. 또 하나는 섭리론(攝理論)이란 것이다. 인간의 대소사를 뒤 돌아 보면 지난 일이든 앞으로 다가올 일이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 졌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계획하심 가운데 이루어져 갈 것이라는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믿음이 섭리론이다. 그런 이들을 섭리론자라고 말한다. 당신은 어떤 쪽인가. 우연론자인가, 자연발생론자인가, 아니면 필연론자인가, 섭리론자인가.
성경을 보는 역사관은 섭리론에 근거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르셔서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다. 이 땅의 인류 가운데 히브리인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선민(選民)으로 삼으신 것부터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이며 섭리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팔던 우상 장사꾼인 데라의 아들 아브람을 부르셔서 언약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그 아들이 이삭이요 그 손자가 야곱이 아닌가. 야곱의 열 두 아들들 가운데서 유다 지파의 혈통을 따라서 다윗이 나고 그 천년 후손의 혈통을 빌려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인 나사렛의 요셉이 유다 지파의 후손이다. 그러하니 예수께서 유다의 혈통이란 표현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태복음 1장 16절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중에 유다가 있다. 유다는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레아를 통하여 낳은 여섯 아들들 중에서 넷째 아들이요 열두 아들들 중에서도 네 번 째 아들이다.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유다지파의 후손으로 태어나셨느냐고 물으면 안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 유다 지파 이야기가 본문에 나온다. 모세의 대를 이어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을 정복하던 선봉에 서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던 여호수아가 죽었다. 모세가 죽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수종자였던 여호수아의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하시며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선택하셨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110살에 죽은 후에 하나님은 따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세우지 않으셨다. 그 대신에 12지파 중에서 각 지파를 통하여 일하셨다. 본문 말씀에 보면 그런 내용으로부터 말씀이 시작된다. 모세가 죽던 때가 이스라엘의 광야 백성들에게 충격이었듯이 가나안을 거의 다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지도자 여호수아의 죽음은 또 다시 겪는 민족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에, 즉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로 여쭈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그 때에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유다가 올라갈 지니라.” 여기서 말씀하신 유다란 유다 지파를 가리킨다. 8절 말씀에 보면, ‘유다 자손’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맞다. 유다라는 반복되는 본문의 표현은 유다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유다의 후손들인 유다 지파를 말씀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하나님은 어느 개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지 아니하시고 지파별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 이루어 가셨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자.
유다지파를 통하여 남은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로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자리 잡은 한 반도를 중심으로 5,000년을 살아 왔다. 이 땅에 유입되어 살아오기 시작한 이들이 부족으로 혹은 왕국으로 발전되어 오는 긴긴 역사를 이어 온 것이다. 한민족(韓民族)은 퉁구스계의 몽골 종족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우리의 긴긴 역사의 뿌리는 근대사에 와서 미국과 캐나다와 호주와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인 민족이 되었다. 구교에 반하는 기독교는 주후 1885년부터이니 올해로 선교 128년째를 맞이한다. 우리나라는 땅은 좁지만 경제적으로 세계 10대 강국으로 발전했고 선교적으로는 미국 다음가는 세계 제 2위의 선교 대국이 되었다. 25,000여명의 선교사들이 오대양 육대주에서 선교하고 있으니 말이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유다 지파를 지목하셔서 가나안의 남은 땅을 유다 지파에게 쳐들어가서 점령하라고 하셨다.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고 하셨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유다 지파는 이미 강력한 세력으로 가나안을 정복한 지파였다. 여호수아서 15장에 보면 사해 서쪽의 예루살렘 남단과 베들레헴과 헤브론을 중심으로 광활한 지역을 유다 지파가 점령한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인 반면에 갈렙은 유다 지파의 후손들 중에서 가나안 점령 시대에 여호수아의 곁에서 맹활약을 보인 대표적인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와 같은 유다 지파에게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까지도 남아 있던 가나안의 남은 점령지의 점령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5절의 팔복 말씀에 보면 온유한 자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다. 예수님은 예언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서 그 성령의 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주의 복음이 이 땅의 동서남북에 편만해져 가도록 하셨다. 온유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이 땅을 점령해 가시는 천국 확장의 원리인 것이다. 우리는 땅을 이야기하면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등기문서의 땅을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성경적인 땅은 영향력의 영역을 말씀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향력은 국경도 없고 인종과 민족과 모든 인간의 상황을 초월하여 전파되는 강력한 힘이 있다.
하나님은 유다의 후손인 유다지파를 통하여 시므온 지파와 연합 전선을 구축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 전쟁을 통하여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저들의 손에 넘겨주셨다. 저들 연합군은 베섹에서 전쟁하여 상대 족속 만 명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베섹의 왕이었던 아도니 베섹이 도망을 치자 그를 추격하여 가서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라 버렸다. 이 같은 일은 당시의 전쟁법이었다. 상대방의 엄지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칼과 활과 창을 잡을 수 없도록 평생 장애를 입히는 전쟁 수행 방법이었다. 또한 엄지발가락을 절단하는 것은 상대방의 출입을 제한해 버리는 점령군의 상대편 진압 방법이었다. 아도니 베석이란 왕은 그 지역 근동의 왕으로서 지난 날 그의 왕권이 왕성하던 시절에 주변의 크고 작은 왕국을 점령하여 70명의 왕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라 내었던 강력한 왕이었다. 7절에 보면 아도니 베섹이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린 후에 탄식하는 말이 있다.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아도니 베섹 왕에게는 늘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주변 왕국을 파죽지세로 점령하고 악행을 하면 언젠가 나도 이렇게 당할 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었다.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의 무리들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절단당한 아도니 베섹 왕을 끌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다. 아도니 베섹은 그 곳에서 죽고 말았다. 8-10절에 나오는 예루살렘 점령 내용은 다윗의 때에 가서야 완성된다. 유다 자손들은 800미터 고지인 예루살렘 성의 산지 일부와 남쪽 자락의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헤브론 지역에 산재하여 살던 가나안 족속을 쳐서 죽였다. 여기 가나안 족속들은 모두가 다 철저하게 우상을 숭배하던 철기 문명시대의 토착민들이었다. 10절에 나오는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라는 죽임을 당한 자들의 그 이름이 이를 입증한다. ‘세세’란 ‘태양’을 말하고, ‘아히만’은 저들 가나안 족속들의 운명의 신인 ‘메니의 형제’란 뜻이다. 또, ‘달매’란 ‘이랑을 파는 사람’이란 뜻으로 모두가 농사와 관련하여 우상으로 섬기던 태양과 토속 신과 땅에서 농사하며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을 그 이름들이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낮의 해와 밤의 달과 별들과 하늘과 땅과 바다의 온갖 새들과 동물들과 물고기들과 식물들을 모두 다 지으시고 관장하시고 그것들에게 생명력과 번식을 주시는 우주 삼라만상의 창조자요 섭리자요 주관자가 아니신가. 어제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아파트 마당에 수 만 마리쯤 되는 깨알보다도 더 작은 개미 떼의 대 이동을 목격하였다. 신비한 광경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매우 작은 미물 하나로부터 인간의 대소사에 간섭하시고 관여하시고 동행하시고 이끄시고 섭리하시는 주님이시다.
예루살렘에 대한 완전 정복은 다윗 임금 때에 가서 이루어졌다. 사무엘하 5장 6절부터 보면 하나님은 다윗 왕을 통하여 난공불락의 도성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여부스 족속을 진멸하고 그 성 이름을 시온 성이요 다윗성이라고 불리게 해 주셨다. 예루살렘의 땅 주인이었던 여부스 족속들은 처음에 다윗 왕을 조롱하였다.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5:6) 그런 강력한 저들을 공략한 다윗의 예루살렘 점령 내용에 이어서 기록된 사무엘하의 유명한 표현이 사무엘하 5장 10절에 나온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이 다윗이 바로 사사기 1장에서 묵상하고 있는 유다 지파의 후손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유다 지파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적지 않은 면적을 점령하게 하셨고 후에 역시 유다 지파의 후손인 다윗 왕을 통하여 예루살렘 땅의 원주민들이었던 여부스 족속을 쳐서 멸하게 하셨다.
이는 복음적으로 해석하면 처처의 우상 숭배자들을 멸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유다 지파에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한 영향력이 확산 되어 가는 장면을 말씀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이 영국을 비롯한 구라파의 여러 나라가 아프리카나 아시아 여러 나라를 점령해 가던 식민지 시대에 동시에 전파된 기독교의 복음 전파와 함께 해석하면 그 역사 해석이나 인류학적 해석과 접근이 복잡해져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이처럼 1,000년 불교의 고을에 세워진 예수사랑교회가 이 지역에서 시작하여 열방으로 뻗어 나가는 힘찬 복음의 진원지가 되기를 소망한다.
연합(聯合)의 힘.
유다 지파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전쟁 명령을 들은 후에 시므온 지파에게 협력을 요청하였다. 연합군을 형성하고 남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전쟁하자고 한 것이다. 작고 간단한 일은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지만 크고 어려운 일은 여럿이 힘을 합쳐야 한다. 시골에서 보면 삽으로 하는 일보다 가래로 하는 일이 훨씬 힘이 있었다. 요즘이야 크고 작은 포크레인이 나서서 척척 일을 해 대지만 말이다. 싸움도 혼자 하는 싸움보다 기마전이 훨씬 힘이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의 기마전은 연합의 힘을 교훈하는 재미있는 놀이 중의 하나였다. 이처럼 유다지파는 가나안의 7족속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족속들인 가나안 족속이 살고 있던 땅을 점령해 가는 일에 시므온 지파의 도움을 청하였다. 3절 말씀에 ‘함께’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반복하여 나온다. 이는 거룩한 연합의 힘을 말씀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 지금이야 말로 우리는 함께 더불어 힘을 합치고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전도서는 이렇게 교훈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주께 복(福)된 분깃을 구하는 지혜(智慧).
본문의 내용이 분량이 많지만 좀더 묵상해 보자. 11절부터 15절까지의 내용은 여호수아 15장 13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의 반복이다. 유다 지파의 한 사람인 갈렙이 예루살렘 점령 전쟁 이후에 기럇 세벨 즉 드빌의 주민들을 쳐 들어간 장면이다. 갈렙은 참전하는 유다 지파의 젊은이들의 용기를 북돋으려고 기럇 세벨을 쳐서 점령하는 자에게 자기 딸 악사를 아내로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전쟁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갈렙의 아우인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전쟁 공로가 인정되어 갈렙의 딸 악사를 자기의 아내로 맞게 되었다. 그 때에 갈렙의 딸 악사가 아버지에게 유산 분배를 따로 요구하였고 아버지 갈렙은 윗 샘과 아랫 샘을 딸에게 분깃으로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의 분깃이 있다. 그 분깃은 육신의 부모에게서 유산으로 이어 받는 분깃일 수도 있으나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 해와 달을 골고루 비추어 주시고 선인과 악인의 밭에 비를 골고루 내리시듯이 각 인생들에게 허락하시는 분깃이 있다. 예수의 비유 중에 나오는 집 나간 둘째 아들의 일화에도 보면 큰 아들의 몫이 있고 유산을 분배 받아 타국에 나가서 허랑방탕하던 이들에게도 이미 분배되었던 자기만의 분깃이 있었다. 오늘 날 우리 각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나에게만 허락하신 독특한 분깃이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분량의 지혜와 재주와 은사와 역량을 골고루 선물로 부여해 주셨다. 문제는 그 각 사람에게 주어진 각양 좋은 것들을 어떻게 갈고 닦느냐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성북구 월계동에 가면 ‘인덕대학’이란 대학교가 있다. 각종 예능, 기술 관련 학과가 잘 자리 잡은 대학이다. 그 설립자인 박인덕(朴仁德, 1896-1980) 여사는 평남 용강에서 유학자인 박영하(朴榮夏)의 5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1902년 전국을 휩쓴 콜레라로 부친과 형제를 모두 잃고 어머니와 둘만 살아남았다. 실의에 빠진 모녀는 친척의 권유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박인덕은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진남포의 삼성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하였다. 졸업한 그 해 동창인 윤심성(尹心聖)의 권유로 서울에 유학하여 1912년 이화학당 중학과를 졸업하였고, 1916년에는 이화학당 대학과를 제3회로 졸업하였다. 박인덕은 졸업과 함께 모교에서 기하ㆍ체육ㆍ음악을 맡아 가르쳤는데 당시에 그는 이화학당 내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한 인물로 프라이(L.E. Frey)당장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이화학당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박인덕은 3.1운동 때에는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학생들을 선동하였다는 죄목으로 동료교사 신준려(申俊勵)와 더불어 경찰에 연행되어 4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출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 해 11월 초교파적 교회연합운동의 성격을 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조직이 경찰에 탄로나 "이화학당 내 회원 20명 대표자"로 또다시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다. 연이은 두 번의 투옥 후에 그는 이화학당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1921년 아펜젤러(A.R. Appenzeller)의 주선으로 미국 유학의 길이 열렸으나 이를 포기하고 김운호(金雲鎬)라는 부호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파경을 맞게 되자 배화학교 교사(1921~1926)로 다시 교육에 복귀하였다. 그 후 배화학교의 교사였던 루비 리(Ruby Lee)의 협조로 미국 유학의 길이 열려 1926년 조지아 주의 웨슬리안대학에 입학하여 사회학석사 학위를 받고 1928년 졸업하였다. 계속하여 콜롬비아대학 사범대에서 교육학석사 학위를 받고 1930년 졸업하였다. 미국에서도 그는 사회활동을 계속했는데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에 적극 호응하여 각지의 대학에 나가 강연하고 미국은 물론 유럽 각지에 조선을 소개하는 활동을 벌였으며 동남아와 중국을 거쳐 1931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그는 황애덕ㆍ최활란과 함께 여성들을 위한 경제학 강연 등을 열었으며, 농촌여성에 대한 계몽운동에도 참가하여 1935년에는 <농촌교역지침>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41년에는 덴마크의 실업학교를 본 딴 덕화(德和)여숙을 개설하여 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1년 과정의 직업교육을 실시하였다. 그 즈음 박인덕은 "영하인덕"(永河仁德)으로 창씨개명을 강요당하고 같은 해 8월 임전대책협의회의 결성에 참가하여 김활란과 더불어 위원이 되었다.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학병을 동원하기 위한 조선교화단체연합회 부인계몽독려반, 조선언론보국회 이사를 맡는 등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각종 반민족적 단체나 각종 토론회ㆍ강연회의 연사로서 활동하였다. 박인덕은 해방 후인 1946~1947년 미군정 장관 러치와 하지의 요청으로 미국에서 개최된 자유국가 여성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유창한 영어로 강연하였고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를 통하여 한국의 실정을 알리기도 하였다. 6.25 전쟁 이후인 1954년, 미국 순회강연을 하던 중 켄터키에 있는 베리아(Berea)칼리지란 실업학교를 방문하고 이 학교의 교육제도 및 시설에 매료되어 한국에도 이와 같은 유형의 실업학교를 세울 결심을 하였다. 이후 미국에서의 저술활동과 강연을 통해 얻은 인세와 강연료 등을 기금으로 1961년 서울 성북구 월계동에 3만 6천 평에 달하는 대지를 구입하고 오늘 날의 ‘인덕 대학’의 전신인 "인덕실업학교"를 설립하여 인덕학원 이사장이 되었다. 또한 1955년 9월 미국 워싱턴에서 육영사업을 목적으로 재단법인 ‘부려재단’(Berea in Korea Foundation)을 설립하였다. 일제 말기에 친일 관련 논란이 없지는 않았으나 1980년 4월 3일, 84살에 학교 공관에서 별세하기 전까지 학교 발전과 기독교 후학 양성을 위해 헌신하였다. 박인덕 여사는 빼어난 외모와 지성과 탁월한 언변을 구사하던 독립운동가, 여성주의 운동가, 교육자, 사상가, 언론인, 작가이며 사회사업가였다. 박인덕 여사가 쓴 책들 중에는 <9월의 원숭이>(September Monkey), <호랑이의 탈출>(The out of Tiger), <용의 지혜>(The Wisdom of Dragon) 등이 있다.
철병거를 두려워하던 선민(選民)의 불신앙(不信仰).
16절에 나오는 ‘종려나무 성읍’은 예루살렘 북동부 27킬로미터쯤에 있는 여리고 성을 말한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처남 호밥의 후손인 겐 사람들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 올라가서 더불어 다 함께 올라가서 아랏 남방 유다 황무지에 거주했다는 말은 그동안 가나안 점령 전쟁에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의 후손인 겐 사람들이 유다 지파와 함께 전쟁에 더불어 참전하고 그 공로로 더불어 예루살렘 주변의 종려나무 성읍을 중심으로 함께 살아갔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유다 자손들은 연전연승하는 가나안 공략에 큰 공로가 있었다. 19절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와 함께 계신 증거가 날마다 달마다 확연하였다. 그러나 사사기 1장은 아쉽고 석연찮은 내용을 담고 있다. 19절과 21절의 말씀이 그것이다. 19절 하반절에 보면,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좇아내지 못하였으며”라고 했다. 갈렙의 지파인 유다 지파는 험악한 산악 지역을 점령할 정도의 강력한 지파였다. 그러나 정작은 골짜기와 골짜기로 이어지는 널따란 평지를 점령하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평지는 농업과 목축에 가장 적합한 곳임에도 말이다. 그 이유를 성경은 가나안 족속의 ‘철병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철병거란 당시의 가장 강력한 전쟁 무기였다. 큰 나무에다 철을 박거나 철을 둘러싸서 만든 무시무시하게 강력한 전쟁 무기였다. 당시에 애굽과 팔레스틴 주변에 이 철병거란 무기는 소문이 난 전쟁 무기였다. 그러나 본문 19절은 유다 지파의 자손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강력한 철병거의 위협 앞에 마음이 약해지고 만 것이다. 21절에 보면 베냐민 지파는 강력한 가나안 세력 중의 한 족속인 여부스 족속을 완전 섬멸하지 못하여 ‘오늘 날까지 예루살렘에 함께 거주하니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는 모든 하나님이 함께 하시던 선민 이스라엘 백성, 특히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후손들의 불신앙과 연약한 단면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하나님은 모세의 대를 이을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5-8)
그러므로 철병거를 보고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불말과 불병거를 동원하시는 만군의 주 여호와의 전능하신 손길을 바라보는 승리하는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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