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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우리의 신앙고백(갈2:20)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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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08-18 06:08 조회 20,601 댓글 0
 
우리는 지난 2009년 11월 29일, 감리교신학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린 후로 1358일, 3년 9개월여 만에 오늘 이곳에 새로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모세 때의 광야 40년이 짧지 않은 날들이었듯이 우리에게 있어서의 지난 3년 9개월도 결코 짧지 않은 불확실의 날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새로운 꿈의 공동체’인 예수사랑교회의 앞날을 예비하고 계셨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호와 이레의 예비하신 길로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을 체험하며 지내오도록 지난날들 동안 인도해 주시고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은총을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 동안도 그리하신 것처럼 앞날에도 점점 선명한 하나님의 축복의 길로 이끌어 주실 줄로 믿는다. 그동안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기도와 눈물과 땀과 봉사와 섬김과 헌신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주의 몸된 전을 섬겨 온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더하여 주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은평 뉴타운의 폭포동 새 성전 시대를 중심으로 기정과 자녀와 직장과 기업과 모든 일터와 생업과 사회생활의 범사에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하는 폭포수와 같은 풍성한 은혜와 간증이 넘쳐 나는 주의 자녀들이 되게 해 주실 줄로 믿는다.

우리는 주일 예배 시간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이는 초대교회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일컫는 것이다. 사도(使徒)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弟子)로 부르신 12명을 말한다. 요한복음 13장과 사도행전 1장에 보면 그 중에 가롯 유다는 마귀에게 붙들려 주님을 배반하고 불행하게 생을 마치고 말았다. 나중에 바울이 부름을 받은 후에 사도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사도(使徒)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지난 2,000년의 교회 역사는 그 첫 사도들의 신앙을 고백해 오고 있다. ‘사도 신경’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 곁에서 온갖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이 떠나가며 때로는 죽은 자라도 살아나는 기사와 이적을 보고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들으며 제자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보고 아는 대로의 믿음을 고백한 신앙고백인 것이다.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과 신앙의 고백을 받고 물로 세례를 베푼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을 거룩한 삶으로 구별하셔서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가기를 소원하신다. 주를 믿는 성도들이 젊은이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그 어느 누구이든지 교회의 일꾼이 되고 국내외 선교지의 사명자가 되는 그 모든 출발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고백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새롭게 건축된 새 성전 시대를 맞이하면서 옛 선조들의 신앙 고백이나 사도들의 신앙 고백이 아닌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이요 ‘나의 신앙고백’을 고백하는 예배의 시간이 되기를 초청한다.
 

나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받는 믿음.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예배당과 성당의 안과 밖에 장식하는 기독교의 상징물은 십자가이다. 물론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성화가 기독교의 상징으로 쓰일 때도 있기는 하지만 역시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이다. 여성들 중에는 십자가를 목걸이로 걸거나 심지어는 귀걸이로 거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십자가는 어디까지나 그런 장식품으로서의 십자가가 아닌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잘 안다. 십자가는 두 나무를 연결하여 사형수를 사형에 처하던 페르시아의 사형틀이었다.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된 우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난을 당하시고 고통 중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에 찔려 돌아가신 십자가의 고통과 그 교훈을 제대로 잘 깨달아 알고 믿는 믿음 가운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도 십자가에 관한 찬송이 적지 않다. 그만큼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찬송가 339장의 가사는 5절인데 특이하게도 한 사람이 작사한 찬송가가 아니라 4사람에 의하여 각 절이 작사되었다. 1절을 작사한 토머스 세퍼드(Thomas Shepherd) 목사는 1665년에 영국에서 태어나서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의 목사가 되었다. 나중에는 독립교회에서 목회하였는데 그의 나이 35살이던 1700년도에는 성도들과 함께 영국 이섹스의 보킹(Bocking)이란 곳에 예배당을 건축하는 동안 헛간에서 예배드리고 교회 건축이 마쳐진 후에는 그 교회에서 평생토록 목회하였다. 여기 소개하는 ‘내 주님 지신 십자가’(Must Jesus bear the cross alone)라는 찬송가의
그 1절의 가사에 보면,
“내 주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라고 찬송한다. 그리고 2절에도 보면,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라는 십자가 중심의 신앙 고백적인 찬송가로 되어 있다.
4절과 5절을 작사한 헨리 비쳐 목사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란 소설을 써서 유명해진 스토우 부인의 친정 오빠이다.

십자가는 고통과 죽음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유독 기독교인들은 ‘+’ 자 모양의 십자가를 몸에 지니거나 자동차나 가정 공간에 걸어 두기를 좋아한다. 십자가는 결코 장식품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 날 성도들에게 있어서의 십자가는 고난과 죽음을 이긴 승리의 십자가요 부활의 십자기 이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증거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고백은 율법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의 신앙고백인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구약 시대에 모세의 율법을 따라서 수 없이 많은 양과 염소와 소와 비둘기를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려 제사하던 모든 제사의 완성으로 단번 제물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오늘날 우리 각 사람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신앙으로 살아간다는 증거는 나의 인격 안에 죄와 악을 가까이 하는 육신의 욕망 가운데 사로잡혀 살아가는 나의 자아를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다스리시는 그 다스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서원(誓願)하는 믿음.

첫째, 이제는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둘째,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CCC의 사영리(四靈理)에 소개되는 그림과 같다. 나는 내 인생의 의자에서 내려앉고 예수님이 내 안에 주인이 되셔서 나를 주장하고 다스리시며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통치와 그 영광을 매 순간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믿는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본문 말씀 그대로의 의미에서 벗어나지 말고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위대한 초대교회의 복음 전파자요 이방 사도였던 사도 바울이 깨닫고 간증하고 권면하는 이와 같은 진리의 해석에 우리 모두의 믿음을 믿음다운 믿음으로 초청하는 초청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 조선일보 ‘Why?’라는 토요일 분량의 삽지 특별 기사의 주인공으로 한국 홀트 아동 복지회의 이사장인 ‘말리 홀트’((Molly Holt,1935-) 여사에 대한 특집이 실렸다. 그는 한국홀트아동복지회의 전신인 홀트씨 해외 양자회를 전쟁 직후인 1956년에 시작한 해리 홀트와 버디 홀트 부부의 둘째 딸이다. 그도 이젠 78살의 연세가 되었다. 그녀의 손길을 통해서 버려진 고아들 10만 명이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가정에 양 자녀로 입양되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따라 다니는 별명이 ‘10만 명 고아들의 어머니’이다.  그는 지금 골수암으로 고생하고 있다. 간호학을 공부한 그녀는 21살 때부터 53년간을 한국에 독신으로 머물면서 버려진 고아들을 해외의 가정에 연결하여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도록 하기를 거의 10만 여명에게 혜택을 주었다.

오늘 말씀 그대로이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사랑이 이제 이곳 폭포동에서 시작하여 이곳의 뉴타운과 서울과 나라와 오대양 육대주에 번져 가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교회들과 선교 단체가 아프리카에 컨테이너의 의약품, 가전제품, 생필품을 가득 담아 배로 보내는데 해운비만 1,700만원 들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랑의 실천은 구체적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다운 믿음.
우리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을 나의 고백 삼을 줄 알아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우리의 믿음 생활은 공허한 것이 아니다. 구체적이고 행동하는 믿음인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서의 저자인 야고보서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배고프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고 찾아가 주고 저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나누어 주며 위로하고 격려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구원을 구체적으로 깨닫도록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아닌가.

우리 모두 그런 삶을 살아가자. 그런 가정을 이루자. 정동제일교회 담임, CBS 이사장등을 역임하신 이재은 목사님의 가정에 옥수동 언덕 자락의 아파트로 심방 간 적이 있다. 사모님이 아들 며느리 간증을 하셨다. 미국에서 치과 의사인 저들이 휴가를 따로 가지 않고 꾸러미, 꾸러미 꾸려가지고 선교지에 가서 수많은 가난한 나라의 이웃들 수백 명 수천 명들의 충치를 치료해 주고 돌봐 주는데 열심을 다하며 몸은 고달프지만 보람을 갖고 돌아오는 간증을 들었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랑의 실천!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예수사랑교회의 이름값 하는 성도들이 되자.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선교 대위임 명령을 준행하는 그런 선교 중심의 예수 공동체로 섬겨 가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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