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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게 응답 하소서(시86:1-10) 2014.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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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6-22 06:22 조회 19,970 댓글 0
 
여호와여 내게 응답 하소서(시86:1-10) 2014. 6. 22
 
 
 
TV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뽀빠이 이상용 씨가 전남 곡성의 107세 된 할아버지를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할아버지, 이렇게 오래 사신 비결이 무엇입니까?" "할아버지가 뭐야?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 "아,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 오래 사신 비결이 뭐죠" "비결은 무슨......안 죽으니까 오래 살았지!" 질문마다 웃음을 만들어내는 멋진 우문현답이 계속되었다. 이상용 씨가 웃으면서 계속해서 질문하였다. "형님, 그동안 살아오며 미운 사람도 많으셨을텐데, 스트레스도 없이 어떻게 그런 걸 다 참고 사셨어요?" "응 미운 사람들도 있었지. 하지만 그냥 내버려 뒀어. 그랬더니 지들이 알아서 70-80살이 되니 다 죽던데 뭘. 미운 사람 있어도 그냥 나대로 즐겁게 오래 살면 돼! 절대 화 내지마! 화날 때는 그냥 웃어버려! 하하하........이렇게 말야."
 
우리는 누구나 나름대로 기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건강, 자신의 사회생활, 직장, 사업, 경제적인 안정과 가족들의 범사, 자녀들의 앞날, 자녀의 출산, 자녀들의 성장, 자녀들의 진학, 결혼, 취업 등등 우리가 기도하는 생활의 제목들을 이루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이들은 그 무엇엔가 신적 의미를 무여하고 막연하게나마 소원을 아뢰며 빌며 산다. 오늘 날과 같은 최첨단 과학 시대에도 나무나 돌이나 산과 바다나 피조물을 향하여 비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위 샤머니즘 말이다.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이란 신앙 양태(樣態)도 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시편 86편은 그 표제어의 제목이 “다윗의 기도”라고 되어 있다. 시편 90편이 “모세의 기도”인 것처럼 말이다.
 
다윗이 이 기도는 언제 써졌는지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다윗은 소년기에 국가적인 전쟁의 일선에 나섰다가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매 돌 한 개로 쓰러트린 이후로 일약 이스라엘 전국 백성들에게 알려진 주인공이 되었으나 오래도록 임금인 사울의 미움을 받고 시기와 대적을 받아서 이리 숨고 저리 피하며 들판과 동굴에서 야인 생활을 하던 청년기를 중심으로 긴긴 세월 동안 자신을 핍박하는 세력과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정적들 앞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이 아니면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없는 불안정한 세월을 살아가야 했다. ‘비탄시’로 구별 되는 이 유명한 기도 가운데 우리는 시편 86편에서 다윗 자신의 신앙의 면모를 잘 들여 다 볼 수 있는 구구절절을 대하게 된다.
다윗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여호와여.....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1절)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여호와여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어 주소서”(6절)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7절)
 
다윗은 다급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고 또 부르며 기도하고 또 간구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처지가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환경적으로 가난한 것 그 자체로 이해해도 좋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서 광야와 들판과 동굴로 피신하고 도피하던 십 수 년 세월동안 처절한 가난과 궁핍을 체험하며 살아야 했다. 한 끼 한 끼를 해결하는 일이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예전 성경에 보면 “나는 곤고하고 궁핍하오니”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여하튼 곤고하고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것은 고통과 억압과 핍박 가운데 궁핍한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고백이다. 원어적인 의미는 단순한 가난이나 궁핍이 아니라 누군가 혹은 그 무엇인가에 의하여 타인의 압력이나 그 어떤 외압적인 환경에 의하여 핍박을 받아 곤고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상태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궁핍하다’는 고백은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물질과 환경에 부족함이 없고 차고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음과 심령이 곤고한 상태를 말씀하기도 한다. 실로 다윗은 그를 추격하고 죽이려 하고 그의 생명을 잡아 삼키려고 노리는 자들 앞에서 항상 마음 평안할 날이 없는 나날을 지낸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혹시 내가 바로 그렇지 아니한가. 집과 아파트도 넓고, 호화롭고 값비싼 가구에, 자동차도 좋고, 자녀들도 잘되었고, 직장, 사업, 경제적인 노년기 준비 등등 불안할 것이 없이 다 잘 되어 남들이 부러워 할 만도 한데도 불구하고 왠지 불안하고 왠지 허전하고 왠지 생의 의욕이 없고 왠지 초조하고 착잡하여 생활의 별 기쁨과 만족이 없이 그럭저럭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지금 다윗은 그런 착잡하고 곤고하고 궁핍한 환경과 여건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고 있다.
 
이 길지 않은 기도 가운데 ‘주여’라는 부름이 무려 7번이나 나온다. 히브리말로 ‘아도나이’라는 이 표현은 사실 ‘나의 주여’라는 뜻이다. 3, 4, 5, 8, 9, 12, 15절에 연이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구구 절절이 ‘여호와여’, 혹은 ‘하나님이여’, ‘내 주 하나님이여’(시86:2), ‘주 나의 하나님이여’(시86:12)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라. 그러면 다윗이 기도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내 영혼을 보존하고 구원하소서.
2절에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Guard my life)라는 기도는 육체 따로 영혼 따로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가 아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영혼’ 즉 ‘네페쉬’란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묶은 전인격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그 사람 자체를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 나의 영혼을 보존하소서” 하는 기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위험과 위협과 두려움과 불안과 초조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보존해 달라는 간청인 것이다. 우리가 병약해 지면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나. 우리가 다급해 지면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되지 않나. 우리가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당혹스러운 문제 앞에 봉착할 때에 이런 기도를 드리고 또 드리게 되지 않나.
 
그런데 특이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면서 “나는 경건하오니”(for I am devoted to you)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나. 여기 ‘경건’이라고 번역된 이 말은 ‘친절하다, 자비를 베풀다’는 뜻에서 유래한 ‘인자하다, 선하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이웃에서 선을 베풀며 선행하며 살았다는 자기 고백이다. 즉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한 자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힘써 왔으니 자신의 지난날을 기억하셔서 자기의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의 기도 가운데는 스로 의로우며(시7:8), 손이 깨끗하며(18:20), 여호와의 도를 지키며(18:21),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시18:23) 살아 왔노라고 고백하는 내용들이 있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시18:20-21)라고 했다 그리고 23절에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라는 고백도 감히 하였다. 이는 한 인간으로서의 다윗이 의롭다는 고백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인생들이 결코 의롭지 못하나 자신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자의 상 받을 모습을 생각하며 살아왔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손을 깨끗하게 하려는 삶을 살아 왔다는 고백이다. 나름대로 신앙 양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완전하게 살려고 죄악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지켜 왔으며 악한 의도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살아 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그 다음 편인 시편 19편에 가서 보면 처절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며 뼈저린 회개의 고백을 하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시19:12-13) 이와 같은 영적 고뇌와 처철한 회개의 고백 가운데 이어진 유명한 고백의 시편이 바로 시편 19편 14절의 말씀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May the words of my mouth and the meditation of my heart be pleasing in your sight, O LORD, my Rock and my Redeemer.)
 
다윗의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와 기도와 부르짖음에도 귀를 기울여 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시편 86편 2절의 본문에서 고백하는 다윗의 ‘나는 경건하오니’라는 고백은 경건하다는 말이 아니라 경건한 삶을 살아오려고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떠나지 않고 순종하며 씨름하며 살아 왔던 자신의 신앙의 고백을 나름대로 하는 장면이다. 다윗은 기도한다.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다윗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루 종일 부르짖고 있다.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Have mercy on me)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간구하고 또 간구하고, 부르짖고 또 부르짖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에 이런 표현, 저런 표현의 기도를 드리지만 정작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과 자비와 긍휼하심이 아니고는 내가 내게 주어진 환경의 그 무엇이든 변화시킬 수 없을 때 우리의 기도는 이런 기도 말고 더 이상의 무슨 기도를 드리겠나.
 
지금 다급한 질병 앞에서,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의 막막한 지경에 처하였을 때의 우리의 기도란 어떤 기도이겠는가.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이와 같은 기도 말고 더 이상의 그 무슨 기도가 필요하겠는가 말이다. 사실 우리 각 사람이 노력도 하고 수고도 하고 성실하게도 나름대로 살고 이것도 계획하고 저것도 설계하고 준비하며 살아 보려고 하지만 우리의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신가.
내 노력, 내 수고, 내 설계, 내 계획, 내 준비, 내 그 무엇으로 나의 인생이 술술 풀려 왔고 앞으로도 내 준비와 의도대로 될 것이라면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살겠는가.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사화복(生死禍福), 흥망성쇠(興亡盛衰), 길흉화복(吉凶禍福)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신가.
 
신명기 30장에 보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날이 임박해 진 것을 알게 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내용이 나온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신30:19-20)
 
예수께서 이 땅에 와서 계신 동안에 그를 찾아오는 온갖 백성들에게 전파한 말씀이 무엇이며 각색 병자들에게 행하신 치유의 은총이 무엇인가. 예수를 만나자 못 보던 이가 보고, 말 못하던 이가 말하고, 듣지 못하던 이가 듣고, 걷지 못하던 이가 걷고 뛰고, 손 마른이가 마른 손이 펴졌다. 12해 혈루증, 즉 하혈하는 부인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만 잡았는데도 나았다.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중풍병자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귀신이 떠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 졌다. 벳세다 광야의 배고프던 무리가 어린 아이가 내어 놓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복기도 하신 예수의 기도 앞에서 배 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펼쳐졌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그로부터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이들에게 각종 은혜의 기적이 계속되었다.
 
다윗은 지금 종일 주께 부르짖어 간구하고 있다.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 279장 찬송 후렴을 다 같이 기도하는 마음을 부르자.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다시 2절 전체를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부르자.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 주소서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우리들의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딸인 우리들이 지금 슬픔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그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슬픔의 베옷을 벗겨 내시고 기쁨의 띠를 띠게 해 주시는 주님이시다. 다윗에게는 그런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Bring joy to your servant, for to you, O Lord, I lift up my soul.)(시86:3)라고 말이다.
 
다윗의 시인 시편 30편에 보면,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You turned my wailing into dancing; you removed my sackcloth and clothed me with joy)(시30:11)라는 고백이 나온다.
 
지금 슬프고 곤고하고 우울하고 억울하고 착잡하고 걱정과 근심과 불안과 초조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답답한 인생이 있는가. 나의 기도,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중에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고 나의 슬픔과 재난의 베옷을 벗겨 주시고 기쁨의 옷을 입혀 주시며 기쁨의 띠를 띠게 해 주실 줄로 믿는 믿음 가운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사야 61장 2절에도 보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3)라고 하셨다.
 
전북 임실의 시골에서 몹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류태영(1936-)이란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하였다. 그런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그 어린 나이 때부터 80이 다 된 오늘 날까지 평생토록 새벽 기도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18살에야 겨우 중학교에 다닐 기회를 가졌다. 서울에 올라 와서 신문팔이와 청소를 하며 여름에는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며 야학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제나 간절하게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셨다. 어렵게 건국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졸업하였다. 연 이어서 성서대학교에서 기독교 교육학도 공부하였다. 그런 그가 남의 나라에 유학을 간다고 말하면 남들이 “너 미쳤느냐”고 할 때였다. 그런 그가 덴마크의 왕실에 편지를 썼다. 우리나라와 덴마크가 수교도 되어 있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이다. 그가 보낸 편지가 덴마크의 왕에게 직접 전달되어져서 왕이 그 청년의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 덴마크 왕실 초청으로 덴마크 국비 장학생으로 초청을 받고 비행기 표까지 받아 들고 덴마크로 날아갔다. 그는 덴마크의 Nordic Agricultural College를 졸업하였다. 덴마크 왕실에서는 당시 그에게 3만불을 마련해 주면서 유럽 구석 구석을 여행할 기회도 주었다. 히브리어 한 자도 모르던 그가 불길 같은 열심히 공부하여 5년 2개월 만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고 이스라엘의 농촌의 눈부신 발전을 연구하고 귀국하였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에 덴마크와 이스라엘의 농촌 부흥 운동을 우리나라에 접목하는 새마을 운동과 농촌 발전 운동에 헌신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 초대 새마을 담당 비서관으로 일했다. 건국대학교 교수와 부총장도 지냈다. 이스라엘 벤그리온 대학교에서 교수로도 섬겼다. 그는 ‘청소년 미래 재단’을 설립하고 청년 같은 열정으로 사역하고 있다. <천재는 없다>,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는 책 외에 이스라엘이나 유태인들에 관련된 여러 권의 연구 서적도 출간하였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오늘 날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일기를 써 오고 있다. 그는 말한다. 그의 일기장에는 굶고 빈혈로 고생하며 잠자리에 들 때에도 늘 감사하는 일기를 날마다 썼다. 그가 말하는 하나님을 향한 3가지 감사는 이렇다.
 
첫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둘째, 하나님은 지금 내 앞에 계신다.
셋째,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사랑하신다.
 
지금의 나의 현실 앞에 스스로 꿈을 접거나 탄식하고 슬퍼하고 우울해 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지 말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는 은총과 응답의 날이 다가 오리라는 확신과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자. 그는 빈혈로 쓰러져서 길거리에서 잠이 들었을 때에도 잠에서 깨어나서는 “지금 하나님은 나를 장차 쓸 만한 호미와 괭이로 만드시려고 녹슬고 쓸모없는 것 같은 나를 갈고 닦아 연단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며 기도하며 배가 고프고 힘겨운 날을 이겨 내며 살았다고 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 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For you are great and do marvelous deeds; you alone are God. )(10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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