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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서원 기도하는 믿음(삿11:29-4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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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09-29 08:06 조회 23,740 댓글 0
 
사람과 사람의 약속도 잘 지켜질 때에 서로의 신뢰관계가 좋게 유지 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는 장래의 약속이 있는 기도가 서원 기도라면 그 서원 기도도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지켜져야만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서원기도(誓願 祈禱)란 인간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내용에 대하여 응답되길 간절히 간구하며 그 대가(代價)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단하고 자기의 소중한 것들을 바쳐서 감사를 표하겠다는 장래의 맹세와 약속을 말한다. 그러므로 서원 기도는 신중하여야만 한다. 서원 기도를 드린 후에 그 기도를 드린 내용을 삼가서 지키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면 하나님을 속이는 또 하나의 죄를 범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23:21-23)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함부로 서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그 서원한 내용을 생활 중에 지키며 살아가지 아니하면 신앙적으로 하나님께 또 하나의 새로운 죄를 범하는 것이다. 잠언 20장 25절에 보면, “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고 하였다. 그렇다. 함부로 말로, 기도로 서원 해 놓고 자신을 몰라라 하며 경거망동하며 살아가면 그 서원한 기도가 자신의 삶에 덫이 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서원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하나님께 서원하는 내용을 담아 드리는 특별한 경우의 기도이다. 성경에는 창세기 28장의 야곱의 서원기도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사사기의 본문에 등장하는 사사 입다의 서원 기도를 대하게 된다. 사무엘상 1장에는 사무엘을 낳은 기도의 여인 한나의 기도 내용 중에 서원하는 기도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한나의 남편 엘가나도 하나님께 서원하는 기도를 드리던 기도의 사람이었다. 시편 132편 2절에 보면 다윗도 사울 왕 때에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법궤를 되찾기 위하여 서원하는 기도를 간절하게 드리던 서원 기도의 사람이었다. 요나서 2장 9절에 보면 요나도 서원 기도를 드리던 선지자였다. 이처럼 서원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종종 대할 수 있는 기도의 방법이었다. 사도행전 18장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전의 서원한 기도 내용을 지키기 위하여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아 삭발한 적도 있었다. 계속되는 사사기 묵상 중에 이스라엘의 제 9대 사사였던 입다의 면모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여호와의 영의 임재와 서원기도. 길르앗 사람 길르앗의 첩의 소생이었던 입다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큰 용사가 되었다. 사사 입다가 전쟁에 나가서 이긴 힘의 근원은 입다의 용기나 전략이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여호와께서 대적 암몬 자손들은 사사 입다의 손에 넘겨주셔서 이긴 것이다. 29절과 32절에 분명히 그렇게 전쟁 승리의 비결을 소개하였다. 하나님의 영이란 성령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남녀노유 그 누구든지 성령 충만을 받아야만 한다. 입다는 출생 신분으로는 본 부인의 아들들에게 배척을 받고 미움을 받는 천덕꾸러기요 집안에서 쫓겨나서 멀리 돕 지방에 가서 살아가야 했던 마음 아픈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나약하고 불쌍한 입다 에게 함께 하셔서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믿음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을 부어 주셨다. 사사시대는 하나님을 제대로 잘 섬기지 못하고 영적 질서가 불안정하던 어지러운 때였다. 그러나 시대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하나님의 사람을 사사로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하고 영적으로 다스려 나가도록 권위를 부어 주셨다. 가령 3장 10절에 보면 여호와의 영이 사사 옷니엘에게 임하였다. 성경은 사사 옷니엘이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영이 사사 옷니엘에게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선포하였다. 하나님이 대적자인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세력을 사사 옷니엘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했다. 사사기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사 옷니엘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동안에 40년 동안 온 나라가 평온하였다고 했다. 사사기 6장 34절에는 사사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을 때에 그가 양각 나팔을 불어서 군대를 모병하며 하나님께 붙들려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사사기 13장 25절에 보면 사사 삼손도 여호와의 영이 임하므로 쓰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사기 15장 14절에는 사사 삼손에게 갑자기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그를 결박하였던 새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손에서 훌훌 떨어져 나갔다. 이처럼 인간은 그 누구나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이 임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일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간절히 구해야만 한다. 새로운 성전에서 예배드리기 때문에 저절로 새로운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간절히 간구하고 의지하여야만 할 것이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어머니 엘리사벳, 세례 요한 자신이 모두 다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나 장차 그의 남편이 된 나사렛의 요셉이나 예수님 자신조차도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해 가신 거룩한 가족이요 거룩한 성가정(聖家庭)이 된 것이다. 예수님을 태중에 잉태한 마리아에게 여호와의 영이 충만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예수께서 태어나고 성장하시기 까지 아기 예수와 소년 예수를 보호할 수 있었겠는가. 마라아가 남편 될 요셉의 마음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불안한 위기를 어찌 그렇게 침착하게 장차 아내 될 마리아를 보호하며 예수께서 탄생할 날을 숨죽이며 기다릴 수 있었겠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평생토록 계속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기도와 간구의 생활을 계속하시지 않았나. 무슨 말인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와의 영이 임해야 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도 여호와의 영이 임해야 한다. 법조계의 수장도 여호와의 영이 임해야 한다. 세계적인 대 기업의 총수도 여호와의 영이 임해야 한다. 군대의 장관도 여호와의 영이 임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행복하고 가정이 평안하고 개인이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어른 아이 청년 노인 할 것 없이 그 누구나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 주의 주시며 만백성의 구원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모셔 드리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이 되어야만 한다. 여호와의 영이 임한 성도라면 당연히 서원하는 기도의 삶을 살아가게 마련이다. 여호와께 드린 서원 기도. 사사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하는 기도를 드린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의 서원 기도 내용은 분명하였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세요.” “암몬과의 전쟁터에서 싸움을 마치고 평안히 가족 곁으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전쟁에 나가는 병사라면 그가 군대의 장군이든 혹은 일개 병사이든 그 누구나 이런 기도를 드릴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대 전쟁의 경우에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가 말을 타고 출정하기 전에 왼 손 잔등에 동전을 얹어 놓고 던져서 오른 손으로 움켜 잡고 전쟁의 승리를 점치고는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동전의 점치기는 항상 일정하였는데 그 비결은 동전의 양면이 똑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나. 그 어느 장수가 전쟁에 나갈 때에 부하들 곁에서 전쟁에 질지도 모르는 불안한 징조의 동전 던지기를 하겠는가. 하물며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이라고하면 그 누구나 전쟁에서 이길 뿐만 아니라 온갖 인생의 싸움에서 이기는 승리를 위한 서원 기도를 드리지 않겠는가. 또한 사고와 사건과 험한 일이 파도처럼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된 우리들이 평화롭게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지 않는 이가 그 어디에 있겠는가. 본문에 소개된 사사 입다의 서원 기도 내용은 지극히 상식적인 기도요 전쟁에 나가는 병사라면 장수이든 그 어느 병사이든 누구나 다 기도함직한 기도의 내용이 아닌가. 어찌 보면 신앙생활은 끝이 없는 서원 기도의 연속이라고 할 것이다. 가령 창세기의 야곱을 보라. 그는 이삭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손자이다. 아버지 이삭이 연세가 꾀 많이 드시고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날이 가까워 오던 때에 큰 아들 에서에게 명령해서 들짐승을 사냥 해다가 별미로 요리를 잡수시길 원했다.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는 무슨 생각이 들었든지 큰 아들 에서가 들사냥을 나간 사이에 둘째 아들 야곱을 시켜서 염소 새끼 두 마리를 염소 떼에 가서 붙잡아 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두 마리의 염소 고기 중에서 가장 맛있고 연한 살만을 요리한 맛 좋은 별미를 준비하여 아버지 이삭에게 드리고 축복 기도를 미리 받도록 도왔다. 뒤 늦게 들사냥에서 돌아온 큰 아들 에서는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전개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분하게 여긴 큰 아들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는 급하게 야곱을 설득해서 리브가의 친정 마을인 밧단아람으로 피신하도록 도왔다. 형 에서의 분노가 가라앉기까지 며칠 만 외가 집 마을에 가서 머물다가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출발한 야곱의 인생길이 밧단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장가들고 20년을 살아가는 긴긴 세월을 지내야만 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브엘세바를 떠난 야곱이 하란의 밧단아람을 향하여 하룻길을 헐레벌떡 도망 길을 가다가 밤이 깊었다. 그 때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어두운 루스 들판에서 야간 노숙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단하게 광야에서 잠을 청하던 야곱은 돌멩이 한 개를 끌어다가 베개 삼고 깜빡 잠이 들었다. 그 꿈에 보니 하늘이 환하게 열렸다. 하늘 꼭대기에 천사가 등장하여 오르락내리락하는 신비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꿈 결에 또 보니 여호와께서 그 사닥다리 위에서 말씀하셨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3-15) 그 때에 하나님의 선명한 말씀을 듣고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하고 야곱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았던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그 곳 루스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야곱이 기도한 기도가 서원 기도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여기 야곱의 서원 기도 내용을 좀 자세하게 살펴보자. “하나님! 나와 함께 계셔 주세요.” 임마누엘을 위한 기도이다. “하나님!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켜 주세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비는 기도이다. “하나님! 나에게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세요.” 의식주를 위한 기도이다. “하나님! 장차 내가 평안하게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가게 해 주세요.” 안전하고 평안한 금의환향(錦衣還鄕)을 위한 기도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서원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첫째,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평생토록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믿으며 살아가겠다는 의지적인 신앙의 표현이요 신앙의 고백인 것이다. 지난주에 태백지방 연합집회 인도 차 머물렀던 황지라는 곳은 태백시를 이루고 있는 도계와 장성과 함께 그 곳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곳 중의 한 곳이다. 산이 높고 깊어서인지 무속인이 많고 무슨 산당도 많은 곳이기도 하였다. 태백산 입구를 당골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지명이 붙여진 이유가 우상에서 빌고 단을 쌓는 무당들이 많아서 당골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태백시 문화원이 2천만 원 이상의 예산을 무속인들게 주고 10월 3일에 황지의 황지(潢池)란 샘 곁에 무속인들이 모여서 대대적인 굿판을 벌이는 등의 무속이 강한 곳이다. 그곳의 기독교계가 반기를 들고 문화원의 예산이 특정 무속인들의 저급한 종교행사비로 지원되는 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항의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둘째,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장래에 하나님의 집 즉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서원 기도이기도 하지만 이는 항상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자로 살아가겠다는 서원이다. 나중에 밧단아람의 외삼촌 집에서 가나안으로 되돌아오던 야곱은 바로 이곳에다 돌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였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엘벧엘’이라고 하였다. 창세기 37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창세기 12장 8절에 보면 이곳은 과거에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가장 처음으로 돌단을 쌓았던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연유로 해서 훗날에 이곳 벧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길갈과 미스바와 함께 성지로 여김을 받게 되었다.(삼상7:16) 셋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온갖 물질과 필요의 근본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신앙의 고백인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 신앙을 약속하는 서원기도이다. 새로운 성전 시대를 맞은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서원 기도 신앙이 있기를 소망한다. “오직 하나님 중심, 오직 성전 중심, 예배 중심, 오직 십일조 중심 신앙”을 서원 기도한 야곱의 서원 기도의 바탕은 무엇인가. 범사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야하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예배하며 돌단을 쌓는 제사 중심, 예배 중심의 신앙을 고백하고 결단하는 서원 기도이다. 또한 모든 필요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십일조 신앙으로 살아가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는 서원기도의 신앙인 것이다. 또 다른 그 어떤 성경적인 인물의 서원 기도 말고 여기 야곱의 서원 기도와 사사 입다의 서원 기도의 특징이 무엇인가. 의식주와 안전과 평화를 비는 기도가 아닌가. 이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소원이요 서원하는 기도가 아닌가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과 구원을 선물로 받은 성도된 우리들에게 주께서 먹고 마시고 입으며 평안하고 행복하게 하루의 삶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그런 은총을 풍성하게 덧입혀 주시기를 소원한다. 신중하지 못한 서원 기도의 위기. 야곱의 서원 기도와 사사 입다의 서원 기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를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전쟁에서 돌아오는 사사 입다를 맞이할 그 사람이란 분명히 그의 아내이든지 아니면 무남독녀 외동딸이든지 혹은 그의 가정의 어느 몸종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사사 입다가 짐승 제사가 아닌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 앞에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기도하며 서원하였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가. 사사기 11장의 앞부분에 나오는 암몬의 왕에게 특사를 보내서 탁월한 역사의식과 지혜와 혜안을 갖고 뛰어난 외교능력을 발휘하던 사사 입다인데 어찌하여 전쟁에 임하는 그의 서원 기도 중에 이런 충격적인 기도를 드렸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 32절에 보면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사무엘’ 이처럼 여러 사사들 중에서 사사 입다를 믿음의 조상으로 구별하는 것을 보면 입다의 신앙은 이런 부분만을 보고 단순하게 해석할 만한 인물이 아닌 믿음의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입다가 레위기 20장 2절에서 5절까지에 나오는 인신제사를 금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을 리가 없다.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사사 입다는 자신의 서원했던 대로 외동딸을 하나님 알에 번제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입다의 그런 서원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왜 입다에게 잘못된 서원 기도 내용을 책망하시거나 그의 잘못된 서원 기도를 정정하지 않으셨나하고 궁금해 할 수 있다. 32절 이하에는 서원 기도를 드린 후에 전쟁터에 나아간 입다의 공적이 소개되어 있다. 하나님은 암몬 자손을 사사 입다의 손에 넘겨주셨다. 입다는 암몬 사람들의 20개의 성읍을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쳐들어갔다. 그 주변 암몬 사람들의 땅을 매우 크게 무찌르고 결국은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싸우는 전쟁마다 연전연승(連戰連勝)한 사사 입다는 흥분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성을 잃을 정도의 상태였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오고 그의 집이 있는 미스바에 도착하였을 때에 그의 집 대문 앞에서는 외동딸이 손에 작은 북을 들고 춤을 추며 아버지 입다의 전쟁 승리를 축하하며 환영하며 문을 나섰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어찌하여 사사 입다가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 기도하였다는 말인가. 전쟁에서 이긴 승리의 기쁨도 잠깐이었다. 사사 입다는 당황해 하였고 무남독녀 외동딸은 착잡한 마음으로 친구 소녀들과 함께 두 달 간을 산 속에 들어가서 지내며 젊은 날의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였다. 때는 다가 왔고 아버지 사사 입다는 사랑하는 외동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다. 여기서 오해하거나 잘못 이해해서는 절대로 안 될 내용이 있다. 하나님이 왜 사사 입다의 어리석은 서원 기도를 막지 않으셨느냐는 질문을 하는 대신에 사사 입다가 참담하고 슬프고 충격적인 서원이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서원을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지 않고 행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나 요즘이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자기 편리한 대로 하고 있는가. 이와 같은 신앙 변질의 시대에 우리는 내게 해로울지라도 서원한 기도를 지켜 나가는 서원 기도자의 자세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도서 5장 4절과 5절에 보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지체하지 말고 반드시 갚으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서원하여 기도하는 신중한 기도와 실천의 생활을 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쉽게 불의와 타협하고 죄악을 무서워하지 아니하며 타락한 세상 문화에 쉽게 빠져 버리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회복하여야만 할 것이다. 사사 입다처럼 경솔한 서원 기도의 위기와 도전 앞에서 옷을 찢는 대신에 마음을 찢고 진심을 회개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일시적인 감정이나 인간적으로 어리석은 판단으로 경솔하게 서원 기도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신에 신중하고 사려 깊은 서원 기도 생활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를 섬세하게 체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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