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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삿9:16-25)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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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09-28 16:44 조회 22,209 댓글 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A. D. 1828-1910)의 단편 소설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이 있다. 톨스토이는 24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러시아를 배경으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과 종교적인 고민과 고뇌를 갖고 문학 활동을 한 흔적이 그의 작품 속에 역력하다. 그는 서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농민들의 삶 등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잠잠히 그려 나간다. 그 책의 몇몇 단편 중의 하나가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는 제목의 단편이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반 지하 방에서 구두를 닦으며 살아가는 마르틴 아브제이치는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말고 잠이 들었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일 네게 방문하겠다”는 음성을 듣는다. 다음 날 하루 종일 하나님을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다. 단지 그가 다음 날 보고 경험한 일들이란 눈을 치우기 위해 밖으로 나온 옆집 가게의 정원지기와 창 밖에서 아기를 안고 추위에 떨고 서 있는 가난한 여인과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곤혹을 당하고 있는 아이 등의 장면을 보았을 뿐이다. 처음에는 남의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지만 조금씩 손을 내밀어 남의 일에 참견도 하고 사랑도 베풀고 할 수 있는 한 도움도 주어 보려고 했다. 그런 어느 날 꿈에 나타난 하나님은 “네가 사랑을 베풀어 준 그 사람들 중에 하나님도 계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의 단편 중에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작품도 있다.  그는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개혁가이며 사상가이다. 그는 토스토에프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소설 작품 <부활>을 통해서  주인공인 젊은 귀족 네플류도프가 자기 때문에 타락하여 죄를 지은 카츄사와 함께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톨스토이가 소설 작품 <부활>을 발표했을 때에 러시아 정교회의 교리감독기관인 종무원은 그를 파문하였다. 감옥에서 성찬예배(Eucharist)를 드리는 장면을 트집 잡고 문제 삼은 것이다. 톨스토이는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을 사는가>에서 당시 러시아 교회의 위선을 비판하였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다. 결국은 소설 <부활>의 한 장면을 트집 잡아서 톨스토이를 파문한 것이다. 이 사건은 톨스토이를 존경하는 러시아 민중들이 항의시위를 벌일 정도로 러시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단순한데 오늘 날의 교회는 그렇지 않다."며 유감을 말하기도 하였다.

교회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그 시대의 희망의 등대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때도 많았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드온은 사사로서 뛰어난 공적을 가진 인물이 아닌가. 칠년간 계속되던 미디안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 내고 40년간이나 이스라엘 지경에 평화가 오게 하리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하게 쓰임받던 사사였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자 나라의 지도력은 흔들렸고 70명의 아들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아버지 기도온의 탁월한 지도력을 계승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사기 8장 23절에 보면 기드온이 앞장선 300명의 용사들과 함께 한 미디안과 아말렉을 중심으로 한 동방 사람들을 무찌르는 전쟁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당시에 기드온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하였다. 백성들은 기드온에게 축복하고 충성을 맹세하였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였으니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삿8:22) 사실 기드온이 듣기에 이 얼마나 귀가 솔깃하고 기분 좋은 말인가. 그러나 기드온의 대답은 달랐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8:23) 이 얼마나 신앙적인 말이요 하나님 중심의 신앙관과 통치관을 피력한 말인가. 그 후에 기드온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백성들에게 전리품 중에서 금귀고리를 가져 오라고 하였다. 그렇게 모은 것이 1,700세겔이었다. 오늘날로 하면 19. 38킬로그램이고 5,170돈 정도의 무게이다. 그 외에도 전리품으로 얻은 것들 중에서 적군들이 즐겨 몸에 걸치던 초승달 장식품과 각종 패물들과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까지 모조로 모아다가 기드온의 발 앞에 놓았다. 기드온은 그 금귀고리를 모아서 금 에봇을 만들어서 자기의 성읍인 오브라에 보관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온 백성들이 그 금 에봇을 지나치리만큼 귀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영적으로 음란하리 만치 위하는 바람에 하나님 앞에서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세월 동안 대적자였던 미디안의 세력은 다시는 이스라엘을 쳐들어  오지 못했고 기드온이 살아 있는 40년 동안 온 이스라엘 땅이 평안하였다. 꿈처럼 좋고 평온하던 세월도 다 지나가고 말았다. 기드온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후손들과 나라는 뒤숭숭해져가고 있었다.

세상에는 낮이 있고 밤이 있듯이 인생에도 어두운 밤과 밝은 대낮이 교차된다. 평생을 화창한 정오의 빛과 같은 인생을 살아간 사람은 거의 없다. 살아가다가 보면 이런 일도 겪고 저런 일도 생긴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게 되고 행 한대로 보응을 받는 날이 다가 온다는 점이다.
 

행위의 진실과 의로움.
기드온은 사사시대의 위대한 사사였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미디안이나 아말렉이 감히 이스라엘을 다시는 쳐들어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뛰어난 전략가요 장군이요 백성들로부터 추앙을 받던 기드온이 죽고 난 후에 여기저기서 문제가 봇물 터지듯이 터지고 있었다. 국가적으로 대단했던 기드온이지만 그의 가정사는 복잡하였다.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여러 부인을 두었다. 사사기 8장 30절에 보면 그런 기드온의 부인들에 대하여 그 어느 부인의 이름 하나 거론하지 않으면서 기드온이 아내가 많았다고만 기록해 놓았다. 기드온은 그 여러 부인들을 통하여 자그마치 70명의 아들들을 낳았다. 기드온은 심지어 세겜에다가 첩을 두고 살았다. 세겜은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인 경계점에 있던 도시이다. 기드온이 자기 집이 있는 이스라엘 골짜기인 오브라에서 그 먼 곳 세겜에까지 가서 그 곳에 첩을 두고 지냈다는 말은 사사로서 활동하던 그의 사생활이 얼마나 문란하였는지를 말하는 단적인 예이다. 이는 마치도 사사 기드온이 주변의 이방 나라 왕들처럼 왕은 비록 아니었지만 국가적인 막강한 권력과 권세를 누리며 얼마나 허세가 심한 방탕하게 군림하는 생활을 살았는지를 증거하는 성경적인 내용이다.

우린 이 즈음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 자신이 아무리 출세하고 성공하고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다 누리며 산다고 할지라도 나의 다음 세대를 바르게 세워 놓지 못하면 그 아들딸들이 결국에는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사 시대의 위기는 그런 것이었다. 사사시대의 말기에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이 등장하던 시대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다. 사사시대 말기의 때에 대 제사장은 엘리였다. 그러나 그는 대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를 제대로 훈육하여 길러내지 못하였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들은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번제를 경홀히 여겼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제물을 함부로 취급하는 악당들이었다. 성경은 저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을 언급하면서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고 고발하였다. 성경은 기드온의 아들들이 70명이었다는 점 이외에 사사였던 기드온이 그 여러명의 부인들을 통하여 낳은 아들들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가르치고 훈계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전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아버지로서의 기드온이 국가적인 전쟁의 일선에 나서서 역사적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 지휘관으로서의 명예나 권세가 다 좋지만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요 아버지로서 여러 부인을 맞아들여 그렇게 많은 아들들을 낳아 놓기만 하였지 어느 아들 하나 품 안에 안고, 무릎 위에 앉히고 도닥여 가면서 인생의 참다운 가치와 신앙의 길을 교훈한 것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는 그 어디에도 없다. 뿐만 아니라 기드온이 먼 곳 세겜 까지 드나들며 첩을 통하여 낳아 놓은 아들 아비멜렉으로 인하여 기드온의 가정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기드온이 죽고 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상 바알을 섬기며 음란한 생활을 일삼았다. 바알을 자기들의 신이라고 섬기며 지난 날 원수들의 손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고 살았다. 기드온의 낳아 놓은 그 많은 아들들 중에서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은 세겜의 외척을 등에 업고 정치적인 야욕을 갖고 등장하였다. 아비멜렉의 외갓집이 있는 세겜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비멜렉의 정치적인 행보를 도왔고 순식간에 은 70개를 모아 줄 정도였다. 그 량은 800그램 정도라니까 결코 적은 량이 아니었다. 아비멜렉은 그것으로 자기를 따를 자들을 사들였다. 성경은 그들에 대하여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들였다고 하였다.(삿9:4) 그 얼마 후에 아비멜렉은 아버지 기드온의 고향인 오브라로 가서 그곳에 모여 있던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한 바위 위에서 다 쳐 죽였다. 막내아들인 요담만이 겨우 도망쳐서 살아남았다. 아비멜렉은 70명의 형제들 중에서 69명을 살해한 후에 세겜 사람들과 밀로 사람들의 추대를 받으며 세겜의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왕이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기드온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아들인 요담이 그리심산 꼭대기로 피신하여 세겜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며 했던 우화(寓話)의 내용이 사사기 9장 8절부터 15절까지에 나온다.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가시나무와 백향목 나무를 들어서 우화로 언급한 요담의 우화는 사사기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유명한 본문 중의 한 곳이다.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그 기름과 열매와 포도주로 인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아닌가. 그러나 가시나무란 무엇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가 가시나무가 아닌가. 기드온이 첩을 통하여 낳은 아들 아비멜렉은 기드온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그런 아들이 되고 말았다. 우린 여기서 정실의 아들이냐 적자이냐의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 인간사에는 그런 일은 언제라도 있었고 어디라도 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심각한 문제는 태어난 아들딸 즉 후손들이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과 신앙관을 갖고 성장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내 인생이 어떠하냐의 문제 이상으로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들딸을 낳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키워 내느냐는 것이 아닌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변하지 않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최소한 이것쯤은 아들딸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성경, 잠언 3장은 이렇게 교훈한다.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1-10)

아들딸을 향한 잠언의 교훈의 그 가치는 그 다음 구절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더욱 깊이와 진가를 더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나라나 민족이나 가정이나 개인은 희망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의 앞날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69명의 배다른 형들이 한 자리에서 다 죽고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세겜과 밀로의 족속들에게 왕으로 추대를 받아 왕이랍시고 행세하던 때에 도망쳐서 겨우 목숨을 건진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의 우화를 통한 교훈이 이 사람의 입에서 저 사람의 입으로 이스라엘 진영 안에 번져 가고 있었다. 그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우화에 이어서 가시나무 우화를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된 요담은 아비멜렉의 외가가 있는 세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질문하였다.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너희의 행위가 나의 아버지 기드온 즉 여룹바알과 여룹바알의 집에 대하여 선대하는 행위이냐 이것이 여룹바알이 평생 쌓아온 공적에 대하여 보답하는 일이냐며 비통한 심정으로 말하였다. 여기서 요담이 말한 ‘진실과 의로움’의 문제는 ‘옳고 떳떳하고 마땅한 행위’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날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가정과 사회와 교회 생활 중에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며 옳고 떳떳하고 마땅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런 의식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며 올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여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인류 역사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있다. 이는 성경 곳곳에서 반복하여 강조하는 내용이다. 17절과 18절에 보면, 요담은 반복적으로 아버지 기드온을 회상하면서 ‘우리 아버지’라고 하였다. 영어 성경에 오면, ‘my father'라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사람들만이 '나’ 대신에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만의 특별한 공동체 의식이요 민족성을 대변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기드온은 사사기 8장 22절에서 온 이스라엘 민족이 시인했듯이 시대적으로 미디안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민족적인 지도자요 영웅적인 사사였다. 그런 기드온에 대한 세겜 사람들과 첩의 아들 아비멜렉이 나서서 형제들을 몰살한 악행은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극악한 사건이 아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하는 악행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른다. 이사야 65장 6절과 7절에 보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가증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죄의 값을 물으시며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경고하였다. 에스라 8장 22절에도 보면,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고 하였다. 호세아 13장 16절에도 하나님을 배반하면 형벌을 받고 칼에 엎드러진다고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안에서 진실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잠언 8장 13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그 유명한 청지기 비유를 보라.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았던 종들은 성실하게 일하고 벌어서 주인이 결산하자 할 때에 갑절을 남겨서 열 달란트와 네 달란트를 주인 앞에 내어 놓았다. 주인은 이 두 종에게 한결같은 똑 같은 칭찬의 말과 상급을 약속해 주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23)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아서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 앞에 캐서 갖고 나온 종에게는 무서운 책망의 말과 심판이 선포되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25:26-30)

수학에는 공식이 있고 물리에는 법칙이 있고 사회생활에는 제도와 법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는 살아가는 원리가 있다. 그러므로 좋은 나무 인생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때가 되면 좋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이 이 유명한 교훈을 하셨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15-21) 이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이보다 더 명확한 인생의 원리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6장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7-9)


하나님의 역사 개입.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아버지 기드온의 영광스럽던 지나간 시대에 먹칠을 하며 아버지가 낳은 69명을 한 날 한 시에 한 바위 위에서 모조리 다 쳐 죽인 첩의 아들 아비멜렉은 결국 3년 정도의 통치 기간을 끝으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고 말았다. 이 세상의 악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하나님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셔서 저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게 하셨다. 사사기 9장 23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천사와 성령도 다스리시지만 악한 영의 세계도 주관하신다. 하나님의 악한 신을 부려서 세겜 사람들을 어지럽히자 금방 아비멜렉을 배반하고 반역하는 일이 벌어졌다. 24절에 보면 하나님은 지난 날 삼년 전에 아비멜렉의 자기의 형제들을 몰살하며 행하였던 악행에 대하여 저지른 ‘포악한 일을 갚되’ 그 모든 악행에 대하여 그 죄의 값을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셨다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역사의 모든 사건에 대하여 침묵하시는 것 같으나 때가 되면 선과 악을 판단하시고 참과 거짓과 의와 불의를 심판하시고 보응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세겜 사람들로 하여금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하고 반역하게 하자 세겜 사람들은 산꼭대기마다 사람들을 매복시키고 아비멜렉의 출입을 엿보게 하며 세겜 사람들의 소유를 강탈하는 불안정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순식간에 치안은 마비되고 여기저기서 행인들과 상인들의 소유를 약탈하고 금품을 강탈하는 행위가 빈번해졌다. 세겜의 주변은 치안 공백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는 중에 어떤 사람은 그러한 세겜 사람들의 음모와 약탈 사건의 전모를 아비멜렉에게 전해주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세겜과 그 주변은 불안해서 사람이 마음을 놓고 살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아비멜렉이 자칭 왕으로 군림하던 세겜 성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그 어떤 사회이든 한 국가의 운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우하시고 하나님이 지키고 축복하시지 않으면 인간 스스로 일어 설수는 없는 법이다.
이번에 강화도 시골에 갔더니 넓은 들판에 벼가 누렇게 황금 들판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널따란 어느 집의 벼는 이러 저리 소가 혀로 핥은 것처럼 형편없이 뒤 엉켜서 바람에 모두 다 쓰러지고 말았다. 동네 사람에게 그 원인을 물어 보았더니 키가 너무 웃자라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다 쓰러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교훈적이지 않는가. 남들보다 크게 되는 것도 좋고 웃자라나는 것도 좋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난 월요일에 신학교 동기 목사 네 가정이 축하금을 담아 가지고 다녀갔다. 한 친구 목사 왈 “ 예배당 앞에 저렇게 아름다운 동산과 인공 폭포와 호수를 만들고 연꽃을 심어 가꾸고 금붕어를 넣어 자라게 하도록 주변 환경과 토목 공사를 미리 하느라 건축 기간이 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면서 덕담을 나누고 돌아갔다. 하룻길을 먼 아침 일찍 출발해서 밤늦게 돌아가도록 종일 수고 하고 다녀간 것이 고마워서 밤  늦게 잘 도착했는가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이러한 답신들이 문자로 왔다.

“너무 고생이 많았는데 그래도 오늘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봄의 소쩍새 울음소리, 무서리로 삼고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오”
“아름다운 성전이 눈에 선하오, 눈물의 성전이니 부흥을 이루시기를”
“예배당이 아름답고 차분하고 포근한 느낌을 줘서 좋고 새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더욱 크신 영광이 나타나길 비오”

새 성전 시대에 걸맞게 우리 모두 선을 심어 선한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는 은총과 축복의 주인공들이 모두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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