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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 엡16:1-4) 2014.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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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5-11 07:11 조회 18,970 댓글 0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 엡16:1-4) 2014. 5. 11
어버이주일
 
 
기독교는 효도와 부모 공경을 매우 강조하는 종교이다. 십계명의 제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고 하였다. 모세의 두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 중에서 이 제 5계명은 하나님께 관련된 1-4계명에 이어서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만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잘 섬기는 그런 신앙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이들의 부모도 귀하게 여겨야 하지만 제 부모를 잘 공경하여 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낳으시고 길러 주신 나의 부모님이 아니신가. 어려서 시골의 논에 보면 우렁이의 빈 껍질이 물 위에 둥둥 떠다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안 사실은 우렁이가 알을 까고 나면 그 어린 새끼들이 어미의 살을 다 파먹고 자라난다고 한다. 나중에는 새끼 우렁이는 토실토실 살이 찌고 크게 자라나는데 어미 우렁이는 제 살을 새끼 우렁이에게 다 나누어 주고 빈 껍질만 남아서 물 위에 둥둥 떠다니게 되는 것이다. 하찮은 미물의 세계에도 이와 같은 자기희생이 따르거늘 우리 인간이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얼마나 크고 귀한가.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공경해도 좋고 공경하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여기서 공경한다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윤리적인 차원이나 도덕적인 의무로서의 부모 공경 정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강조처럼 ‘주 안에서’ 부모님께 공경하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육신적으로 잘 모시는 정도의 공경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잘 모시는 공경을 하야야 한다는 강조이다.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는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강조는 육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영적인 보호와 축복과 양육의 책임을 지고 사역하는 사역자들까지를 포함하여 공경하라는 강조라고 해석하였다. 이와 같은 견해는 신앙을 지도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를 아버지로 호칭한데 근거한다. 열왕기 하 2장 12절에 보면 선지자 엘리사는 엘리야 선지자에 대하여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하면서 엘리야를 흠모하며 간절히 부르는 장면에서 돋보이게 나타난다. 이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던 엘리야의 승천 직전의 장면이다. 열왕기 하 13장 14절에는 그 유명하던 선지자 엘리사가 병으로 생을 마감할 즈음에 요아스 왕이 그에게 문병을 간 장면이 나온다. 북이스라엘의 제 12대 임금인 요아스 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선지자 엘리사에게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하며 우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곁을 떠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다. 그 후로 거의 고향 방문 기회도 별로 여러 차례 주어지지 않았다. 아들 예수가 보고 싶은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의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예수를 만나러 온 적이 있지만 금방 만나질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나의 부모여 나의 형제니라”고 교훈만 먼저 말씀해 주셨다. 그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골고다 언덕에서 가슴을 치며 슬퍼하시던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고 부탁하였다. 요한은 나중에 자기 나이 60살 이후로 터어키 에베소지역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정성스럽게 모셨다. 오늘 날도 터어키에는 ‘성모 마리아의 집’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곁에는 ‘사도 요한 기념 교회’의 흔적도 남아 있다. 그 요한이 요한 복음서를 쓰고 요한 1, 2, 3서를 쓰고, 나중에 밧모섬에 유배되어 요한 계시록을 쓴 것은 이모이면서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친 어머니 모시듯이 정성스럽게 모시고 공경하고 효도한 그에게 부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가.
 
가정은 저절로 세워지지 않는다. 아들딸을 양육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녀들에게 공경 받을만한 가정을 세워가는 그 모든 날들이 결코 간단한 대답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1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이다. 어느 가정의 젊은 아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에 어렸던 아들이 커서 몇 해 후에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홀로된 아빠가 어린 아들을 키우며 사회생활을 하였다. 어려움이 이루 말이 아니었다. 지방에 출장을 가야 할 때는 아침도 못 챙겨 주고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달걀찜을 해서 밥상에 올려놓고 어제 밤에 먹던 밥 한 공기를 뚜껑 씌워 올려놓고 어린 아들에게 편지를 써 놓았다. 지방 출장길에 전화를 몇 차례씩 해서 어린 아들을 깨웠다. 늦은 밤에 퇴근해서 보니 어린 아들은 이미 잠이 들어 있었다. 씻지도 못하고 고단한 몸을 침대에 던져 누었다. 그런데 이불 밑에서 무언가가 퍽 하고 터지는 느낌이었다. 일어나 이불을 들어 보니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아빠 퇴근하면 잡수시라고 화장실 물을 받아다가 컵 라면에 부어 놓고 식지 말라고 이불로 씌어 놓은 것이다. 컵 라면 국물이 요 위에 범벅이 되고 라면 발이 이리저리 이부자리에 엉망이 되었다. 가스레인지 위험하니까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였더니 아빠께 효도한답시고 어린 생각에 컵라면에 화장실 물을 받아다가 이불 속에 따뜻하게 해 놓고 아빠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아빠는 어린 아들이 깰까봐 화장실에 들어가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실컷 울고 나서 옆방에서 잠이 들어 있는 어린 아들 방에 들어 가 보니 아들은 엄마 사진을 가슴에 안고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잠든 아들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아빠도 그 곁에서 그냥 잠이 들어 버렸다.
 
그 후 어느 날 아들이 유치원에 결석하였다는 연락이 와서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집에 와서 동네방네 찾아 다녔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 전자 오락기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집에 데리고 와서 마구 때려 주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날이 엄마 모시고 유치원 재롱잔치 하는 날인데 자기는 엄마가 없으니까 아빠가 속상해 할까봐 그 전날 말도 안하고 그냥 유치원에 안 간체 동네 골목을 한나절 서성거리고 돌아다닌 것이다.
 
그렇게 한 해가 기울어 가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이 곳 저곳에서 울려 퍼지는 성탄 절기가 되었다. 흰 눈이 내려서 초겨울의 경치가 참으로 아름다운 어느 날 우체부가 찾아 왔다. 아들이 수신자도 없는 편지를 그 동안 100여 통이나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는 것이다. 어린 아들은 엄마에게 편지 쓰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 날 밤 아들이 곤하게 잠 든 시간에 아들이 쓴 편지를 몇 통 뜯어 읽었다. 겨우 한글 배워서 맞춤법도 맞지 않는 아들의 편지가 절절이 아빠의 마음을 울렸다.
 
<엄마에게. 난 엄마가 너무 보고파. 난 유치원에서 엄마 모시고 재롱잔치 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 유치원에 가지 않았어. 아빠가 마음 아파할까봐 얘기도 안하고 몰래 동네에 돌아 다녔는데 뒤 늦게 날 찾은 아빠가 날 마구 때렸어. 내가 일부러 숨어 있었거든. 그래도 난 왜 유치원에 안 갔는지 아빠한테 말 안했어. 아빠가 속상해 할까봐. 난 요즘도 아빠가 엄마 보고파서 우는 거 여러 번 보았어. 아빠도 나처럼 엄마가 보고 싶은가봐. 근데 엄마 난 엄마 얼굴이 잘 생각이 안나. 난 요즘도 엄마 사진 안고 잠을 자는데 근데 엄마는 왜 꿈에라도 한 번도 안 찾아 오는거야....>
 
가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자녀는 내게 누구이며 부모는 내게 있어서 누구인가.
 
 
주 안에서 살아가는 가정.
이 세상에는 잘 사는 집도 많고, 유산 많이 물려받은 가정도 많고, 성공한 가정, 출세한 가정, 잘 난 것 자랑하는 가정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주 안에서 살아가는 가정이냐’는 것이다. 주 안에서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주 안에서 결혼도 하고, 주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주 안에서 사회생활도 하고, 주 안에서 친구도 만나고, 주 안에서 매사를 대하며 살아가느냐는 말이다.
 
이삭은 하나님 안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효자였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를 결박하여 모리아 산 정상에서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려 할 때에도 아버지께 순종하였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의 순종과 아들 이삭의 순종을 보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시고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던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신 후에 뒤를 돌아보게 하셨다. 예비하신 수풀에 뿔이 걸려 있던 숫양을 취하여 아들 대신 제물로 받으셨다. 그 때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지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효자요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효자였다. 그 효자 가문의 후손이 오늘날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룬 것이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들 가운데서 인생의 온갖 고난을 다 극복하고 나중에 꿈처럼 만나게 된 아버지 야곱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효자였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자기를 팔아 버렸던 형들과 형수들과 그 아들딸인 조카들까지 무려 70여명의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만한 도량 있는 인물이었다. 요셉은 항상 동생 베냐민을 베들레헴 길가에서 낳아 놓고 동생에게 젖 한 모금 물리지 못한 채 그 길가에서 눈을 감고 아버지 야곱의 손에 장례되어야 했던 어머니 라헬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지냈다. 그 어머니께 못한 효도를 나중에 만나게 된 아버지께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고 섬기지 않았나.
 
요셉은 가나안의 흉년으로 먹고 살아 보겠다고 찾아 간 온 형제들을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 시키고 애굽 사람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인 목축업을 전담하게 하므로 고센 땅에서 엄청난 축복을 받는 가문으로 일으켜 세워 나갔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130세일 때에 만난 후로 돌아가시기 까지 17년간 지극 정성을 다하여 효도하였다.
 
지난 월요일 점심시간에 아내와 함께 올해 처음으로 막국수를 먹었다. 그런데 곁에 붙은 테이블에 앉아서 우리와 같은 메뉴인 막국수를 주문하여 먹는 연세 든 어른과 내 또래의 남자가 대화하는 이야기가 들리니까 듣다 말고 장인 목사께서 하늘나라 가신 후에 처음으로 눈물이 왈칵 나는 바람에 막 국수를 먹다 말고 난처한 상황을 맞았었다. 이젠 막국수를 한 그릇 앞에 놓아도 막국수나 냉면을 좋아하시던 장인 어른도 안 계시고 선친도 아니 계시니 맛있는 음식 한 그릇 대접하고 싶어도 대접할 길이 없다.
 
모세는 태어난 지 삼 개 월 만에 역청을 바른 갈대 상자에 담겨져서 나일 강에 버려 졌으나 하나님을 잘 섬기고 부모의 기도대로 잘 준비된 민족 지도자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 자리매김하는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부모의 품에 안길 수 없었으나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도하고 기대하던 삶을 가꾸어서 나중에 점점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갔던 효자 모세가 아닌가.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아 적을 뿐만 아니라 십계명의 두 돌 판을 받아 들 정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던 시대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순종이요 공경이다.
 
사무엘이나 다윗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가. 사무엘이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세계 유람선 타고 여행을 한 적이 있는가. 다윗이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다윗 성의 왕궁에서 날마다 산해진미를 대접하며 살았는가. 다윗이 어머니께 다이아몬드 반지 해 드렸나. 아들 딸 성공하고 출세하도록 부모가 기다려 주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시는 가정도 적지 않다.
 
그러나 왜 성경은 여호수아나 갈렙이나 기드온과 룻, 사무엘, 다윗, 드보라, 에스더, 모르드개, 이사야, 예레미야, 엘리야, 엘리사, 에스겔을 말하는가. 저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님 안에서 산 사람들이 아닌가. 왜 배와 가족을 버리고 떠났던 베드로나 안드레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사도 바울을 위대한 성경의 인물로 여기는가. 저들은 한 결 같이 주 안에서 살아간 하나님의 사람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아니었나.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효자효녀다.
 
그렇게도 어머니 속을 썩이던 어거스틴인데 왜 역사는 그를 성 어거스틴이라고 하는가. 한 때 그가 방황하고 어머니 곁을 떠나고 아버지 곁을 떠나서 형편없이 방탕한 삶을 살던 것이 사실이지만 주 안에서 사는 인생으로 회개하고 돌아와서 변화된 나중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어거스틴의 배후에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가 있었다. 모니카는 친정에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모르던 남편을 성숙한 신앙 성품으로 대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시켜 나갔다. 남편조차도 아내에 대하여 존경과 사랑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시어머니께도 인정받는 며느리였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보면 그런 일화들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시어머니도 처음에는 어거스틴의 어머니인 며느리를 못 마땅하게 여겼으나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진심으로 칭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고는 하였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녀는 주변의 시집살이하는 여성들과 남편에게 학대 받거나 핍박 받는 아내들에 대하여도 지혜로운 충고를 통해서 인격적으로 존경 받는 이웃이었다. 어거스틴의 아버지 파트리크우스는 정이 많은 반면에 불같이 급한 성격을 가진 남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는 그런 남편의 성격을 소화하면서 가정을 평화롭고 지혜롭게 신앙의 가정으로 잘 세워 나갔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런 성품을 친정 부모님으로부터도 교육 받았지만 친정집에서 자기가 어렸을 적부터 자기를 업어서 키워준 친정집 하녀 아주머니께서 배웠다. 그녀는 비록 신분은 하녀였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심성이 곱고 지혜가 많고 성품이 뛰어난 나이 많은 하녀였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 하녀 아주머니에게 물조차도 아무 때나 마셔서는 안 되도록 교육 받았다. 이유는 나중에 어른이 되고 출가해서 물처럼 술을 곁에서 쉽게 대할 수 있을 때에 술을 함부로 입에 대서는 안 되는 습관을 어려서부터 물 마시는 절제 훈련으로부터 몸에 배게 터득해 나갔다. 그런 성장기를 보낸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부모에게 반항하고 세상길로 나갔던 어거스틴을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람이요 교회 중심, 성경 중심의 인물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회개하고 돌아온 어거스틴은 자신이 방탕하여 낳은 아들 이데오다투스가 15살 때에 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이는 어머니 모니케에게 큰 기쁨의 순간이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56살 때에, 아들 어거스틴이 33살 때에 돌아 가셨다. 열병으로 고생한지 9일 만에 돌아 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을 불안해하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나의 죽음과 장례를 두려워하지 말고 너희들이 어디에서 살든지 주님의 제단에 드려진 삶을 살거라.”하고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
 
그의 책에서 어거스틴은 어머니를 회상하기를 “성숙하고 올바른 교육을 받은 어머니는 친정 부모님으로 인해서 주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말미암아 부모님을 섬기셨다.”고 하였다.
 
주 안에서 살아가는 가정의 나중은 결코 헛되지 않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이 아니신가.
 
 
순종과 공경의 중요성.
순종은 옳은 일이고 공경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서 말씀하는 약속이란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 속에 담겨 있다. 공경이란 단어는 ‘카베드’인데 이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말씀할 때 사용하는 같은 단어이다. 그러므로 부모께 공경한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처럼 공손하게 삼가고 겸손하게 영광스럽게 대하여야 한다는 강조이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것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잘 경배하고 믿고 섬기는 것은 곧 생활 중에 육신의 부모께도 공경하고 순종하며 살아가게 되는 출발이란 말씀이다.
 
말라기 1장 6절에 보면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이 주인에게 공경하듯이 하나님을 섬기고 공경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이들이 육신의 부모님께도 공경하고 순종하고 효도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께 순종하고 공경하면 이 땅에서부터 잘되고 장수하게 된다고 하셨다. 순종한다는 말은 귀 기울여 듣고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자녀가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듯이 순종하는 것이어야 한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할 때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셨다. 이 땅이란 가나안을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장차 영원히 살아갈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기도 하는 것이다. 성도의 장수란 이 땅에서 칠십년 팔십년 백년의 장수가 다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영생복락의 주인공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 신명기 27장 16절에 보면,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니라”고 하셨다. 무슨 말인가. 반드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고 효도하란 강조가 아닌가. 잠언 1장 8절에도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하였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은 하나님 공경의 첫 걸음이다. 이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란 뜻은 이것이 으뜸가는 계명이란 강조이기도 하다.
 
 
누가 과연 효자효녀인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 효자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효자다.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효자다. 육신의 욕망대로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지 않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며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이 효자다. 자신도 예수 제대로 잘 믿고 부모님도 예수 영접하고 살아가시도록 모시는 것이 효자다. 그러나 낳은 자녀의 신앙도 내 맘대로 쉽게 못하는 것처럼 부모님의 구원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고 부모님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 받도록 기도하는 것이 효자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영국의 요한 웨슬레(1703-1991)의 어머니 수산나는 영국 국교회의 목사의 딸이요 목사의 부인이었다. 무려 19명의 자녀들을 낳았다. 17-18세기의 가난하고 어려운 여건에서 9명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죽고 아들 셋, 딸 일곱이 자라나서 10남매가 장성하였다. 17번 동안에 19명이 태어났다. 눈물과 고난과 아픔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고 키워낸 자녀들이다. 아들 셋은 모두 다 목사가 되었다. 그런데도 각기 골고루 하나님의 사랑과 성경의 말씀에 바탕을 두고 골고루 신앙 교육을 시켜서 훌륭한 자녀들을 키워냈다. 특히 요한 웨슬리와 그 동생 찰스 웨슬리는 너무나도 뛰어나고 훌륭한 인물들이다. 요한 웨슬리는 15번째로, 찰스 웨슬리는 18번째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되는 대로 살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막 사는 어머니라면 그 아래서 그런 경건하고 뛰어난 자녀들이 자라나겠는가. 찰스 웨슬리의 찬송 23장 1절을 보라. “만입이 내게 있으니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어떻게 자라나야 효자효녀인가. 부모에게 어떻게 하여야 효자효녀인가.
 
무슨 책에 보니까 <효도 십계명>이란 것을 보았다.
 
첫째, 부모님이 예수 믿으시도록 해 드리자
둘째, 대답을 잘 해드리고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 드리자.
셋째, 표정 밝게 하고 기분 좋게 해 드리자.
넷째, 사소한 일이라도 궁금증을 풀어 드리자.
다섯째, 용돈 드리셔 경제적으로 너무 궁핍하지 않게 해 드리자.
여섯째, 맛있는 향토 음식을 잡수시게 해 드리자.
일곱째,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어 드리자.
여덟째, 취미생활 등 소일거리를 찾아 드리자.
아홉째,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 드리자.
열 번째, 건강을 챙겨 드리고 등 긁어 드리고 손발톱 다듬어 드리자.
 
부모님께 걱정과 슬픔과 충격 드리지 않도록 매사에 삼가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분야마다에서 자기 건강을 잘 지키며 역량과 실력과 재주와 은사를 갈고 닦아서 사회적으로도 공헌하고 가정에 자랑스러운 아들딸 며느리 사위로 살아가며 어머니 아버지를 즐겁고 기쁘게 해 드리는 하나님의 축복 받는 자녀의 삶을 모두 다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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