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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14) 201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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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3-30 23:07 조회 21,265 댓글 0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14) 2014. 3. 30
 
 
 
유한양행의 설립자인 유일한柳一韓(1895-1971)은 평양에서 재봉틀 장사를 해서 자수성가한 유기현, 김확실 부부의 구 남매 중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예수 믿고 김기복으로 개명하였다. 부모님이 개화기인 당시에 기독교 복음을 받아 들였고 미국 감리교에서 조선인 유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9살된 장남 유일한을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하였다. 동생들 일곱도 모두 중국, 일본 등에 모두 유학하도록 독려한 학구열이 강한 부모였다.
 
유일한은 태평양을 건너던 배 안에서 부모님이 유학비로 마련해 준 미국 돈인 달라를 몽땅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유일한 한국인 인솔자였던 독립 운동가인 박용만의 배려로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독신으로 혼자 살며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태프트 자매에게 입양되었다. 태프트 자매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성경 읽기와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다. 낮에는 밭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성실하고 검소한 삶을 통해 기독교의 노동윤리를 실천하는 자매였다. 양모가 된 그녀는 어린 유일한에게 영어를 가르쳐서 미국 사회에 적응하도록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유일한은 인종차별로 서러움을 겪기도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강인한 성격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본래 유일형인데 미국 친구들이 일형이라 못 부르고 일한이라고 계속 부르자 나라 ‘韓’자를 쓰기로 하고 한국에 아버지에게도 편지로 동의를 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3. 1 독립 운동이 일어나던 같은 해인 1919년에 미시간주립대학교를 졸업했다. 1922년 미시간대학교 대학원과 1953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 서재필을 만나면서 독립 운동에 열심히 참여 하기도 하였다. 1938년 이후에 미국에 머물면서 ‘맹호군’이란 이름의 항일 무장 독립군을 창설하여 운영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3.1 운동 소식을 접한 서재필은 만세운동에 호응하기 위해 4월 초에 공지하여 4월 13일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연합회의(The First Korean Congress)를 소집하였다. 유일한도 4월 13일부터 4월 15일까지 3일간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제1차 한인연합회의에 참석하였다. 3일간의 제1차 한인연합회의가 끝난 뒤, 바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세계에 선언하고자 4월 16일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서재필의 주도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였다. 유한양행의 로고인 둥근 버드나무 그림도 서재필이 다자인해서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얼마동안 미국의 발전기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서 제너럴 일렉트릭사에 취직한다. 그러나 1922년 사표를 낸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았던 돈으로 숙주나물 통조림을 제조하는 라초이 식품회사를 설립하였다. 녹두를 납품하는 중국 사람의 탈세하는 행동을 못 마땅하게 여긴 그는 평생 미국과 한국에 정직한 납세 운동을 벌여서 1968년에는 정부로부터 모범 납세 기업 상도 받고 동탑산업훈장도 받았다. 미국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에 새내기 사업가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일한은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는데 이 사고로 숙주나물 통조림 제품을 기자들이 언론에 소개해 주면서 미국인 특히 숙주나물을 조리하여 먹는 중국계 미국인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고 덕분에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중국계 미국인 여성이자 소아과 의사인 호미리 여사와 결혼했다. 귀국한 그는 1926년 일본 식민지시대인 당시, 경성부에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유한양행이 1933년 처음 개발하여 판매하기 시작한 제품인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은 지금도 유명한 제품이다. 그의 부인 호미리 여사는 소아과 병원을 개업하여 가난한 가정의 아기들을 무수하게 돌보아 주었다. 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수익금으로 ‘유한 학원’이란 이름의 재단을 구성하고 사재를 털어가며 1952년에는 고려공과기술학교르 세우고 1964년에는 경기도 부천에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부천에는 나중에 그를 기념하는 ‘유일한 로’라는 길 이름도 생겨났다. 1969년 경영에서 은퇴하며 전문경영인에게 유한양행의 경영권을 인계하였다. 당시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는데 이 전문경영인 제도가 실시된 건 한국에선 유한양행이 사실상 최초라고 한다. 이후 1971년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그 해 사망하였다. 중고등학교 일부 교과서에도 나오는 유명한 일화이다. 유일한 회장이 손자의 등록금만 제외하고 자신의 재산을 전액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 기금’이란 재단을 만들어
기부하였다. 당시에 그 액수는 모두 407억 원이다. 1971년 당시에는 쌀 20킬로그램에 1,440원이었다고 하니 당시의 407억 원은 오늘날로 하면 약 7,000억 원이 넘는다.
 
유일한 박사는 구한말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부모님 슬하에서 9살에 헤어졌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빛의 자녀다운 삶을 평생토록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우리나라 개화기와 식민지와 6. 25을 거친 우리나라 발전기에 모범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에베소서 5장 8절은 말씀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구주로 영접하고 살아가는 성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전에 어둠 속에서 생활하던 모습과 지금 주 안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모습이 확연이 달라야 한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명령은 성도된 하나님의 아들딸인 우리들이 어떤 삶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며 살아야 할까를 말씀한다.
 
 
빛의 자녀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다.
빛의 열매를 구하는 자들은 매 순간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는 말씀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자기 자신을 시험하며 살아야만 한다. 아파트 단지에 태양광 가로등이 있다. 낮에 온 종일 태양의 빛을 받아 들였기 때문에 그 에너지로 어두운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이처럼 매 순간 기도와 말씀과 예배와 찬송과 복음 전파와 간증과 선한 일와 봉사와 섬김을 통하여 빛의 자녀다운 하나님의 기운, 성령의 에너지를 계속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 속에 충만하게 채워 나가야 한다. 그래야 빛의 자녀다운 생활을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맺히는 삶의 열매란 ‘모든 것이 착하고 매사가 의롭고 모든 것이 진실한 삶’이 아닌가.
 
그러나 11절에 보면 어둠의 일은 열매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런 어두운 일에 참여 하지 말고, 그런 어둠에 속한 행위를 계속하는 이들이 있으면 오히려 책망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책망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1981년에 군대 생활 할 때에 휴가 사병들이 사들고 와서 읽던 책이 내무반에 굴러 다녔다. 이철용의 <어둠의 자식들>, <꼬방 동네 사람들> 그런 책이었다. 당시에 그런 책의 내용을 보고 세상이 정말 이런가 하고 23살,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순진하던 당시의 나로서는 사회의 어두운 한 면을 책에서 보고 나서 너무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요즘 영화의 제목 때문에 사회적으로 거론되는 성경의 인물인 <노아>의 때나 모세의 때나 이천년 전인 예수 그리스도의 때나 오늘 날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악이며 죄이다.
 
11절이 말씀하는 어둠의 일이란 12절에 보면,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로 말하기 조차 부끄러운 것들이라”고 하였다. 그 은밀한 것 혹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란 사도 바울 당시에 에베소란 도시가 얼마나 윤리적으로 타락하고 죄와 악이 독 버섯처럼 가득한 사회였나를 고발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28절에서 ‘도둑질’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에베소란 도시가 도둑질, 사기, 횡령 등 경제적인 범죄가 많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고 강조한 것이다.
에베소서 5장 3절에서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리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는 말씀도 당시 에베소란 도시에 살면서 예수 믿는답시고 교회에 드나들던 교인들 중에서 도둑질하고, 경제적으로 떳떳하지 못하게 살고 음행하고 온갖 더러운 행동을 하며 살고 경제적으로 탐욕에 살아가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고발하는 것이다. 십계명에 비추어도 말씀에서 벗어나서 엉망으로 사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말도 악하고 부끄럽고 민망한 말을 즐겨하고 재물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부부 생활이나 이성관이 성결하지 못한 타락한 생활이 보편적이던 에베소 도시의 시민들과 예수 믿어 보려는 이름뿐인 교인들에게 ‘빛의 자녀다운 삶’의 변화를 촉구하며 강력하게 편지한 사도 바울의 편지가 에베소서가 아닌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3)
서로 친절하게 대하라(엡4:32)
서로 불쌍히 여기라(엡4:32)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신 것과 같이 하라.(엡4:32)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라(엡5:1)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5:2)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고 계속하여 강조하고 또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엡5:14)고 분부하였다. 잠자는 자란 어둠의 상태의 생활에 머무르는 자를 말한다. 그 구체적인 예는 에베소서 5장 3절부터 7절까지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지적하였다. 5절 말씀에서는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까지 준엄하게 꾸짖었다.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탐하는 자
우상 숭배자
 
여기서 언급되는 이 네 가지의 죄와 악을 따로 따로 생각할 이유가 없다. 이는 예수 밖에서 살고, 하나님 밖에서 살며,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인 성도의 생활과 반대되는 세상의 악하고 더럽고 추한 이들의 죄악 된 일상을 묶어서 지적하고 고발하는 내용이니 말이다.
 
이 같은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 입의 말도 문제다. 4절과 6절의 “누추한 말,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 헛된 말, 속이는 말”은 성도들에게 마땅한 말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심판 받을 말이라고 경고하였다.
 
자, 그러면 잠자는 자의 죄와 악의 어두운 자리에서 깨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빛의 자녀로 살려면 어떤 열매를 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였나.
 
 
그 첫째 열매는, 모든 착함(all goodness)이다.
지난 번 <성경 보감>의 저자이며 한자 교육의 대가인 박재성(박필립) 선생의 특강을 들었다. 그는 우리말의 ‘착하다’는 그 ‘착’자는 순 한글이 아니라 한자의 ‘착’자에서 온 말이라고 설명하여 주었다. 한자의 ‘着’자는 ‘붙다, 옷 입다. 모자 쓰다, 신을 신다, 드러내다, 시작하다, 다다르다, 이루다, 좋다, 마땅하다’ 등의 다양한 뜻이 있다. 그러나 그 글자 모양은 “짐승인 양(羊)이 자기를 돌보는 목자의 지팡이(∕)와 눈길(목, 目)에서 벗어나지 않고 목자의 지팡이와 시선에 바짝 붙어 있을 때에 목자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수 있듯이 ‘착하다’는 것은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 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이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 늘 가까이 붙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하였다.
 
수긍이 가는 말이 아닌가. 여기서 말씀하는 착함이란 도덕적인 선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 이상이다. 가족 구성이고 직장 구성원이고 회사와 학교와 장사하고 사업하는 모든 사회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모든 일을 악하게 하지 말고 착하게 하란 말이다.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라면 예수 안에서 착하게 살아가란 말이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악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물론 자연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하나님은 안 믿지만 착하게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답게 매사에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착하게 하며 모든 사람을 착하게 대하며 살아가란 말이다.
 
세월이 빠르고 세상이 선하지만은 않다. 세상이 악하다. 그러므로 시간과 세월을 아껴서 모든 착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성도다운 일상이 되어야 한다.
 
옛날에 희랍의 어느 도시에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뤼지프스Lysipus(B.C. 360-316)라는 조각가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동상의 이마에는 머리카락이 많고 뒤통수에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두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동상 아래 좌대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지” 하나님
“그대의 이름은 뭐지” 기회
“왜 날개가 발에 달려 있지” 땅 위에서 빠르게 날아가라고
“그런데 왜 머리의 앞에 이마에만 머리카락이 있지” 내가 올 때 앞에서만 잡으라고
“왜 뒤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지” 지나고 나면 다시는 잡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다. 시간과 세월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을 일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올해도 봄, 여름, 가을이 깊어 가고 겨울이 다시 오기 전에 모든 착한 일에 열심을 갖는 성도가 되자.
 
 
그 둘째 열매는, 의로움(righteousness)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의로움이란 도덕적으로 악을 떠난 정직하고 성실한 상태 그 이상을 말한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시대의 인간상을 고발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6:5-6)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당시에 노아의 삶을 달랐다. 창세기 6정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라고 말씀하였다. 오늘 날 예수를 믿는 성도라면 그래야 한다. 세상이 악하고, 죄와 악이 강물처럼, 홍수의 흙탕물처럼 흘러 넘쳐도 주를 믿는 성도라면 그 신앙 양심의 깊은 곳에서 맑은 의의 샘물이 콸콸 솟아 흘러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져 가도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의로움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예수 향기 날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 안에서 소금처럼 녹아지고 예수 안에서 예수님이 비추어 주시는 사랑이 빛, 소망의 빛, 평화의 빛, 믿음의 빛, 기쁨의 빛, 화평의 빛, 인내의 빛, 자비의 빛, 착한 양선의 빛, 충성의 빛, 온유의 빛과 절제의 빛을 항상 비추이는 예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실 세상에는 의인은 없다. 단지 의롭다고 인정받는 칭의稱義만 있을 뿐이다. 앞에서 모든 착함을 말씀하였지만 사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가 이 땅에 단 한 사람도 없다. 단지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의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의義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차별 없이 구원을 선물해 주시는 의義이다. 이 의義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없다고 인정받는 것으로서 놀라운 신비이며 은총이며 축복이다. 이것이 로마서 3장 24절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속량의 은총”이다. 속량贖良이란 죄의 값을 갚아 주시는 것이다. 노예를 값을 주고 사서 풀어 놓아 자유인이 되게 해 주는 것이다.
 
최근에 자기 죄 값을 하루에 5억씩 속량 받으려다가 사회의 지탄을 받은 기업가의 사건을 보라. 죄는 그렇게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죄는 하루에 5억씩 5억년을 갚아도 해결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단번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어지는 선물이 구원(救援)이며 구속(救贖)이며 대속(代贖)이며 속량(贖良)이며 의롭다 하시는 칭의(稱義)이며 영생(永生)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랑하면 안 된다. 우리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고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기에 자랑하면 안 된다. 예수 안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았으니 에수 안에서 의롭게 살아가고자 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남녀노유, 빈부귀천, 유대인과 헬라인,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신분과 조건을 훌쩍 뛰어 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세상의 의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정치가들의 의란 여당이 보는 의와 야당이 보는 의가 다르다. 이번에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지 4년이 되었다. 2010년 3월 26일 아침 9시경에 해군 초계함이 북한의 소행에 이하여 폭격을 받고 가라앉았다. 40명이 죽고 6명이 실종되었다. 46명의 사망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5개 나라의 24명의 전문 조사단이 2개월 정도의 긴 기간 동안 종합 조사단 활동을 벌였고 U. N의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으로 회부되었다. 유엔의 안보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천안 함을 공격했다는 조사결과에 비추어 우려를 표명한다"는 공식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도 국회의원, 심지어는 서울 시장 후보 들 가운데서도 천안함 피격 사건을 애매모호하게 발언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의 의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의로움’이란 말씀은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 받고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다운 고백으로서의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하나님 안에서의 ‘의로움’이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빛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행동으로 일상화 되어야만 한다. 전에 어둠 가운데 행하던 어둠의 일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한다. 14절에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라’(Christ will shine on you.)고 하였다. 방탕자 어거스틴이 로마서 13장 12절을 노래로 부르는 어린이들의 노래 가사를 듣고 회개하고 4세기의 성 어거스틴이 되었다 하지 않나.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2-14)고 하였다.
 
성도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빛의 근원이시며 빛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야만 그 빛을 반사하는 성도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본래 빛 보다 어둠을 더 좋아한다. 이것이 죄이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앉아서 구걸하며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맹인이 나온다. 제자들이 “저렇게 된 것이 자기 죄냐 부모의 죄냐”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대답해 주셨다. 그 때 예수께서 유명한 말씀을 해 주셨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9:5)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발라 주셨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실로암’이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순종하며 가서 씻었는데 눈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두 눈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 만나면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의로움이란 그런 것이다. 예수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해야 의로운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 셋째 열매는, 진실함(truth)이다.
세상의 허위와 가식과 위선을 벗어난 성도의 빛의 또 하나의 열매는 진실함이다. 어둠의 열매란 에베소서 4장 31절의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과 모든 악의적인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7절에 보면,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교훈하였다. 예수 죽일 때에는 서로 원수였던 헤롯과 빌라도가 하나가 되었다. 결국 어둠은 어둠과 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가정과 직장과 세상의 그 어디에서나 빛의 자녀다운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한다. 13절에 책망 받는 모든 것들은 빛이 임하면 다 그 허위와 거짓과 진실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둠의 상태와 죽은 자의 상태에서 깨어나고 살아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한다. 요즘 새벽에 자주 부르는 복음 성가 가사처럼 ‘신실하게 진실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답게 살아야 한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4월호(2014년)에 ‘쫓아오신 은혜’라는 제목의 특집 간증 기사가 실렸다. 숀 호프우드는 미국 네브라스카 주의 변두리에서 개척교회를 섬기는 목사의 아들로 자라났다. 농구 선수의 꿈과 대학 입학이 좌절되자 각종 중독과 우울증으로 고생하며 지냈다. 자기처럼 방황하던 친구들과 복면을 하고 은행털이 강도짓을 5 군데나 하였다. 권총을 손에 들고 은행 직원들과 고객들을 위협하였다. 그렇게 은행을 털어다가 친구들과 술 퍼 마시고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돈을 흥청망청 썼다. 밤마다 파티를 벌였다. 죄는 오래 가지 못했고 결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23살 때 붙들려서 12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다. 그런 그가 감옥 안에서 철이 들었고 빛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교도소 안에 있는 법률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지냈다. 틈틈이 법률 공부도 하였다. 동료 재소자들의 상고 신청서도 작성해 주었다. 연방 대법원에서 재소자가 작성한 사법 심사 요청서를 읽어 볼 확률은 1/10000이었다. 0.01%이었다. 그런 상소문에 대법원에서 읽혀졌고 2 건이 승소 판결을 받았다. 비록 감옥 안에서 한 일이지만 보람이 생겼다. 그 뒤로 감옥 안에서 그에게 ‘재소자의 변호사’란 별명이 붙었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 짝 사랑하던 여 학생에게서 수 백 통도 넘는 편지가 날아 왔고 전화 통화도 가능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면회도 가능해졌고 연인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기도도 쉼이 없이 계속 되었다. 목사의 부인인 그의 어머니도 아들에게 계속하여 편지와 좋은 책들을 보내 주었다. 그러던 중에 옆 방에 20년 째 있는 마약 사범이었던 로버트가 예수를 영접한 간증을 들었다. 그는 20년 전에 자기를 배신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법정 증언을 한 친구를 죽여 버리고 싶다고 늘 이를 갈던 상태에서 변화되었다. 그리고 그 세상 친구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20년 만에 변화가 찾아 온 것이다. 하루아침에는 옆방에를 갔더니 그 로버트란 친구가 노래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방 청소를 하고 있었다. 지금 그 로버트는 형기를 다 채우고 세상에 나가서 가족과 농장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이 한 번씩 교도소에 찾아 들어가서 재소자들에게 성경 공부를 인도한다. 5년 전인 2009년에 출소한 숀 호프우드는 몇 달 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오마하 대법원에서 문서를 복사하는 직원으로 취직이 되었다. 애니라는 수백 통의 편지를 감옥에 보내 주던 그 고등학교 여자 친구와 약혼도 했고 결혼도 했다. 세례도 받았고 그 동안 신앙의 회복을 통하여 은혜도 많이 받았다. 아들 딸 남매도 낳았다.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목사의 이름을 따서 태어난 아들에게 할아버지 이름에 마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지금은 시애틀에 살면서 워싱턴 대학교 로스쿨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공 서비스 법'Public Service Law 전공의 공부도 마쳤다. <로 맨>Law Man이란 제목의 회고록도 출판하였다. 틈틈이 교도소에 드나들며 봉사 활동도 한다. 그는 “인간은 스스로 구원 받지 못한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 7절과 8절을 간증의 글에서 인용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사순절 기간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의 자녀답게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을 매 순간 감사하면서 모든 일에 지혜와 총명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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