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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면(잠4:1-9) 2015.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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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5-08-27 08:22 조회 20,147 댓글 0
 
그리하면(잠4:1-9)                2015. 8. 23



어느 분야의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그를 낳고 키워 주신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는 아들이요 딸일 뿐이다. 잠언을 쓴 솔로몬도 그런 면을 시인하고 있다. 본문 3절에 보면,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고 하였다. 솔로몬의 아버지는 다윗이고, 그의 어머니는 밧세바가 아닌가. 그렇다. 그 어떤 뛰어난 지도자나 그 어떤 용맹한 장수라도 태어날 때에는 어머니 보기에 한 줌의 핏덩어리와 같은 연약한 생명이요 그 아버지가 보기에도 유약하고 어린 생명일 뿐이다. 그런 어린 생명을 낳아서 젖을 먹이고 사랑을 입혀서 키워낸 것이 아닌가. 

뽀빠이 이상용 씨를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난 주 중에 누가 카톡으로 그에 관한 글을 보내 왔기에 읽어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뱃속에 넣고 임신 한 채로 충청도에서 열 달간 걸려서 백두산까지 걸어갔다가 아버지를 못 만나고 친정인 부여에 되돌아 간 후에 그를 낳았다. 병 덩어리 그 자체였고 못 먹어서 거품에 싸인 채 죽은 아이처럼 태어났다. 식구들이 그 애기를 소망이 없다고 땅에 묻었다. 평생 걱정거리이고 엄마 시집 못 간다고 묻은 걸 본 이모가 그 아기를 땅에서 캐서 솜이불에 싸 가지고 뒷산으로 도망갔다. 온 동네가 난리가 났다. ㅇ이모는 이틀 만에 아기를 찾아서 죽은 것처럼 목숨만 겨우 붙어 있는 아기를 데리고 내려와 6년을 숨겨 키우듯이 키웠다. 여섯 살에야 걸음마를 시작해서 열두 살까지 여덟 가지 성인병을 달고 살았다. 열세 살에 우연히 아령을 시작해서 18살 때에 다니던 대전고등학교에서 미스터 대전고로 뽑혔다. 미스터 충남도 되고 1966년에는 미스터 고려대와 고려대학교 응원단장도 지냈다. 군대 생활은 ROTC 탱크 장교로 근무하고 나와서 22가지 외판원을 하였다. 28살에 T. V에 나와 뽀빠이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에 대하여 “지금 저는 덤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나 무엇이나 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냅니다. 세상에 가장 약하게 태어나 가장 건강한 뽀빠이가 되다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여러분! 철물점에 가 보면 못이 열 가지 상의 사이즈가 있죠? 다 쓸 데가 있습니다. 사람 사이즈도 다 쓸 데가 있죠. 엉뚱한 데 가서 꼴값들 하니까, 적성에 안 맞으니 불평만 늘고 파업하고 포기하는 거지요! 세상에 불확실한 게 하나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나 확실한 게 하나 있습니다. 꼭 죽는다는 겁니다. 케네디, 오나시스, 마릴린 먼로, 찰리 채플린 다 죽었습니다.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다 죽을 건가 결정해야 합니다.”
최근에 새벽마다 다시 묵상하는 잠언에 보면 주옥같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석류 알처럼 가득하다. 그 중의 일부 인 본문에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훈계하고 교훈하는 형식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문 4절과 8절에서 말씀하는 ‘그리하면’이란 축복의 약속과 조건이며 분부이며 의무이고 사명이며 본분의 강조이고 명령이다. ‘그렇게 살면 그런 결과가 주어진다.’는 인생살이의 등식과 같은 교훈을 구절마다 담고 있다. 

이 험한 세상, 죄와 악이 가득하고 인간의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며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재물에만 관심을 갖고 불의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니, 불의하게 살아가려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만 같다. 가치관의 혼란을 갖게 하는 세상이다. 오직 성공, 오직 출세, 오직 지위, 오직 재물, 오직 힘, 오직 돈, 이런 식으로 계속되다가는 인류가 공멸할 것만 같은 불안 요소가 처처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잠언은 그리하면 “살리라, 보호하리라, 지키리라, 높이리라, 영화롭게 하리라,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리라,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풍성하게 언약하고 있다. ‘그리하면’이란 어떤 삶을 하나님이 요구하고 기대하신 다는 말씀인가. 다윗은 평소에 아들 솔로몬에게 무엇을 강조하여 가르쳐 왔다는 말씀인가. 본문은 아브라함과 모세에게로, 모세에게서 다윗에게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녀 교육과 신앙 교육의 근본을 들여다보게 하는 내용들 중의 일부이기도 하다.

1절에 ‘들으라, 주의하라’, 2절에 ‘떠나지 말라’, 4절에 ‘마음에 두라, 명령을 지키라’, 5절에 ‘ 지혜와 명철을 얻으라,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6절에 ‘버리지 말라, 사랑하라’, 7절에 ‘지혜를 얻으라’, 8절에 ‘지혜를 높이라, 지혜를 품으라’는 반복적인 강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대하는 바른 태도와 자세를 강도 높게 강조하고 있다. 

잠언 1장부터 9장까지에는 15 가지의 솔로몬의 잠언이 기록되는데 그 중에서 본문은 일곱 번째 등장하는  지혜에 대한 충고의 말씀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명령을 지키라.
본문을 잘 관찰해 보면 잠언의 다른 곳에서는 ‘내 아들아’라는 단수로 말씀하였는데 본문 제 1절에서는 ‘아들들아’라는 복수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주는 훈계와 선한 도리와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 대하여 주의하고 떠나지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의 훈계에 귀를 기울이면 명철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한 도리’라고도 하였다. 여기서 ‘선한 도리’란 잠언 1장 5절에서 말씀한대로 들어서 학식을 더하고 지략을 더하게 되는 하나님의 모든 교훈과 지혜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극찬을 받은 주인공이다.(행13:22)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리라고까지 말씀하셨다. 그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향한 가르침은 깊고 심오하였다. 

솔로몬이 아들에게 가르치는 형식의 ‘아들들아’라는 가르침은 그 자신도 아버지 다윗에게서 배웠던 하나님의 말씀이요 교훈이었다. 이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신본주의 가치관과 지혜를 강조한 것이다. 당시나 오늘 날이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본주의 중심으로 살아가는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제 각기 제 잘난 맛에 살고 으스대고 떵떵거리며 교만하게 자랑하며 살아가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때에 성경은 분명하게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는 강조는 무엇인가.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는 올해 92세이다. 그런 연세에도 요즘도 암으로 병약해진 몸으로 여전히 주일마다 교회학교를 섬긴다고 하지 않나. 그의 마음에 꽉 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마음을 넉넉하게 느낄 수 있다. 성경 교육, 기독교 교육, 하나님 중심 신앙의 바탕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는 4절의 강조는 솔로몬이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 다윗의 무릎에 앉아서 듣고 팔베개를 베고 듣고 품에 안겨 성장하던 매우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께 듣던 하나님 말씀이 아닌가.

이제라도 늦지 않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마음에 두어야 한다. 이는 남녀 노유 그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다. 육신의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넉넉하게 접하지 못하고 성장해 온 그 누구일지라도 상관없다. 지금 오늘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는 결단과 각오가 필요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이 필요한 것이다. 

그 지미 카터 대통령이 1977년에 민주당 출신으로 미국 제 39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취임사에서 인용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성경 말씀이 있다. 구약 미가서 6잘 8절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라는 명령이 아닌가. 

다윗은 십 수 년 동안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며 죽을 고비도 수 없이 넘긴 후에 30살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사십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70살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러 왕자들 중에서 특히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한 마지막 말이 있다. 열왕기 상 2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2-3)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선조가 되어야 한다. 후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도록 하여야 한다. 모세도 120살에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 같은 내용을 강조한 바 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32:7)고 하였다. 그러면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물어 듣고 배우고 믿고 마음에 두라는 하나님 중심 신앙이란 무엇인가.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32:3-4)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라는 강조가 아닌가. 이와 같은 신앙생활의 강조는 모세의 대를 이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에게서도 나타난다. 가나안 정복과 분배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존귀하게 쓰임 받은 여호수아가 110살에 하나님 앞으로 가기 전에 남긴 유언이 무엇인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이 얼마나 분명한 하나님 중심 신앙생활의 선언인가. 

우리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는 우리의 자손들에게 명령하고 가르쳐야만 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아들 솔로몬에게 이것을 분부하였다.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잠4:4) 이 얼마나 준엄하고 확신에 찬 가르침인가.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 신앙에 있어서 자녀들에게 끌려가지 말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들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들에게 “하나님 안에서 내가 말하는 명령을 지켜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가르침을 담대하게 할 만 한 가장의 권위를 지켜 나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명령하는 부모의 명령을 지키면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였다. 그리하면 살리라는 말씀이 무엇일까. 잠언 4장 10절에 보면,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고 말씀했다. 이는 설명이 필요 없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명령 따라 살아가면 그 인생이 이 땅에서부터 복되고 잘 되고 그 생명의 해가 길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선언이 아닌가. 


지혜를 사랑하고 버리지 말라.
5절과 6절의 자세한 강조는 무엇인가. 

“지혜를 얻으라,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아라, 내 입의 말을 어기지 말아라, 지혜를 버리지 말아라, 지혜를 사랑하라” 이 보다 더 자세하게 가르칠 수 있는 아버지의 훈계와 교훈이 그 어디에 있겠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이런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가야만 하는가. “그리하면 하나님이 너를 보호하시리라, 하나님이 너를 지키시리라”고 하였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비타민을 비롯하여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균형 있게 공급되도록 식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처럼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복되게 가꾸어가는 것 또한 얼마나 소중한가.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은 중국 명나라 때에 양명학을 발전시킨 학자이다. 그가 주창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이론은 양명학의 근본이 되는 생활 강령이었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 알고 있는 것을 생활 속에 실천하여야 한다는 강조가 아닌가. “양지(良知)가 천리(天理)다” 즉 “선악을 구별할 줄 아는 마음이 곧 세상의 바른 이치다”라는 주장을 하며 지낸 관리였다. 그가 다스리던 지역은 100여간 평화를 누렸다. 당시 중국에는 산적이나 마적 떼가 득실거렸다. 왕양명에게 강서지방으로 가서 저들을 토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어느 날 낯설은 사람이 왕양명을 찾아 와서 만나려고 하자 위병이 그의 출입을 막았다. “선생님은 지금 강의 중이시니 진중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 때에 그를 찾아 온 손님이 “아니 요즘처럼 시절이 어수선한 때에 선생께서는 그럴 겨를이 있으십니까” 그 때에 위병이 “강의를 하시는 것은 선생님께서 날마다 하시는 일이십니다.”하고 대답해 주었다. 얼마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가 왕양명을 만날 기회가 왔다. “아니 선생께서는 이 어수선한 때에 유유하게 강의를 하며 지내신다니 놀랍습니다.” 그 때에 왕양명이 “산적의 침입을 막는 일도 어려운 일이로되 내 마음의 적을 막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니 나 스스로가 날마다 강의를 하는 것을 통하여 내 마음을 지키지 아니할 수가 없다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본문에 반복되는 아버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향한 훈계와 교훈이 그러하지 않나. “훈계를 들어라, 주의하라, 내 법을 떠나지 말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어라, 내 명령을 지켜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아라, 지혜를 버리지 말아라, 지혜를 사랑하여라”는 강조는 한 마디로 묶어 말하면 “네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이 아닌가.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 안에서 나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시키고 내 마음과 생각을 잘 지켜 나가는 생활은 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위급하고 소중한 일이 아닌가.  

지혜를 사랑하고 버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잠언 4장 18절과 19절에 보면,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그렇다. 군대의 참모총장을 지냈거나 나라의 국무총리를 지냈거나 대학의 총장이나 종합병원의 원장이나 검찰 총장이나 국회의원이나 기업체의 회장을 지냈더라도 의를 떠나 악을 가까이 하면 그 앞길이 어둠과 같아서 결국은 그 악의 수렁에 빠지고 그 악의 덫에 붙잡히며 그 악의 올무에 걸려서 불행을 당하고 마는 법이다. 

지혜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곧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선과 악을 분별하여 악에서 떠나고 악을 멀리하게 된다.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잠4:14-15)라고 하였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세상의 그 어디에서든 악을 멀리하고 불의한 이들을 멀리하여야만 할 것이다. 사악한 자들의 실상을 잠언 4장은 자세하고 분명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잠4:16-17)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불의로부터 손을 씻고 눈과 귀와 입을 씻는 결단과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7절의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는 말씀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라는 아버지의 명령이고 분부이다. 세상을 살아가면 살아 갈수록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최근에 집사(송대관)인 모 가수가 지난 이년 여간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법원으로부터 사기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있던 저들 부부가 무혐의 판결을 받은 후에 어느 교회에서 간증하는 내용을 보았다. 그는 2년 반 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가 100억짜리 이태원 집이 순식간에 남의 소유로 넘어가 버렸다고 했다. 고급 외제 승용차와 고급 외제 승합차도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 후에 지방 공연 다닐 때에는 동료 선후배 들이 빌려 주는 자동차를 빌려 타고 다녀야 할 정도로 빈털터리가 되고 인생의 맨 밑바닥의 쓴 맛을 다시 경험하여야만 했다고 했다. 그렇지 않나. 재물, 권력, 인기, 명예, 건강 이런 것들은 때가 되면 바람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영원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있나.

그런 간증을 한 후에 부르는 338장 찬송이 절절이 마음에 와서 닿았다.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야곱이 잠 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나 살아 계신 전능자이시다. 하나님 안에서 지혜를 사랑하고 버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그 인생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실 것이다.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보람과 감사와 행복과 은혜와 평강을 샘이 솟구쳐 오르듯이 해 주실 것이다. 


지혜를 높이고 품으라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서 지혜를 의인화 하여 교훈하였다.  8절에 보면, “지혜를 높이라, 지혜를 품으라”고 하였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도 그 인생을 높이 들어 주신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품을 수 있는 작은 존재가 아니시지만 그 분을 내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나를 영화롭게 해 주신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 듯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녀를 품에 안 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품에 안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요즘 교회 안에서 대하는 가정마다의 어린 자녀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어느 가정의 자녀이든 품에 안아 주면 어린 아이들도 그 작은 팔로 나의 목을 꼭 끌어안는 모습을 본다. 어린아이들도 자신을 사랑하고 위해 주는 줄 다 안다. 그래서 그 작은 손, 그 약한 팔이지만 상대방을 꼭 안아 보려 하는 것이다. 8절은 말씀한다. “지혜를 품으라 그리하면 그 지혜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소중하게 여기며 가슴에 품고, 마음에 품고, 생각에 품고, 성령 충만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의 그 지혜의 말씀이 나의 삶을 영화롭게 해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명철을 모두 소유하신 하나님 곧 그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고, 성령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지혜를 높이고, 지혜를 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으면 주님이 그 인생을 존귀하게 해 주신다. 주님이 그 인생을 높여 주신다. 주님이 그 인생을 영화롭게 해 주신다. 주님이 그 인생으로 하여금 그 머리에 아름다운 관을 쓰게 해 주신다. 주님이 그 인생의 머리에 영화로운 면류관을 씌워 주신다. 

지난 번 종교 개혁지 방문 길에 독일에서 마틴 루터가 활동하던 곳곳을 둘러보던 중에 바흐의 고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바흐가 살던 튜링겐의 아이제나흐에 있는 그가 살던 집과 그 앞에 잘 가꾸어진 크지 않은 정원과 그 가운데 우뚝 세워진 그의 청동 동상을 보았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서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중세 기독교 음악의 명문가였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가 아닌가. 무인 우주선 보이져 호에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을 실어 보낼 때에 바흐의 곡들을 담아 보냈다고 하지 않나. 바흐 집안의 음악가들은 대대로 개신교회인 루터교회의 경건한 신자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음악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아이제나흐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성 게오르겐 교회(St. George's Church /Georgenkirche)에서 바흐는 출생 이틀 후인 1685년 3월 23일에 유아세례를 받았다. 바흐의 다른 형제들은 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다.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 Martin Luther도 아이제나흐에 살 때(1498-1501년)이 교회의 성가대원이었다. 종교 개혁 후 20년 후인 1521년에는 보름스의회에 가고 오는 길에 이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다고 한다. 바흐의 가족들은 교회 사역에 강한 은사를 가지고 장인(匠人)적인 긍지를 품고 있었다. 이와 같은 ‘신앙’(信仰)과 ‘장인기질’(匠人氣質)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서 두드러졌다. 그의 일가친척들이 살아가던 중심지이었던 중부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는 바흐의 가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중에서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큰할아버지 하인리히 바흐(1615-1692)와 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42-1703)와 요한 미하엘 바흐(1648-94)는 중세 기독교 음악사(史)에도 이름을 남긴 또 다른 뛰어난 작곡가들이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22살 때에 먼 친척의 딸 마리아 바르바라와 결혼하여 7명의 자녀가 태어났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결혼 생활 14년 만에 사랑하는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에 그는 16살 손아래인 소프라노 가수 안나 막달레나와 재혼하였는데 자그마치 13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20명의 자녀 가운데서 절반의 자녀들이 태어나자마자 혹은 아주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의 출산 환경이 그러하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선천적으로 뛰어난 음악적 재질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1710-1784)와 차남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막내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1735-1782)는 모두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들의 시대 음악사(史)에 이름을 남기는 뛰어난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저들 모두 하나님을 잘 섬기며 신앙생활도 잘 하였다. 그 시대에는 이들의 자녀들이나 또는 바흐 가문의 명성을 흠모하여 모여든 제자들을 위하여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BWV846-869), <인벤션>(BWV772-801)을 비롯한 수많은 클라비어곡도 작곡하였다.

“공부해라, 공부해라”라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혜를 사랑하게 하자. 
먼저 나 자신이 지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혜를 높이고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면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높여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신다. 그 머리에 영화롭고 아름다운 관을 쓰도록 존귀하게 이끌어 주신다. 

음악, 미술을 비롯한 각계 각 분야의 예술 분야와 건축, 설계, 토목, 체육, 의학, 과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철학, 신학, 사회학, 인류학,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지질학, 우주 천문학, 각종 공학 분야와 역사학을 비롯한 각양 학문 분야와 정치, 경제, 사회, 행정, 국방, 외교, 문화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고, 그 지혜를 높이고, 그 지혜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영광스럽고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 

다시 성경 잠언 4장 8절을 보자.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그를 품으라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을 높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자.
성령님을 높이자.

주께서 그 인생의 범사를 이끌어 가시며 지도하시고 분명히 복되게 하실 것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그 길을 돋는 햇살 같게 하시고 그 앞날을 한 낮의 광명한 햇빛과 같게 해 주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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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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