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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한 부부(행18:1-4) 2015. 5. 24 성령강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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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5-05-24 16:18 조회 19,418 댓글 0
 
 성령 충만한 부부(행18:1-4)            2015. 5. 24 성령강림주일
 
기독교 이천 년의 변천사를 이룬 힘은 성령의 흐름과 성령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그 시대 그 현장에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오셨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예배당도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이룩할 수 있도록 성령이 역사하신 증거물 중의 하나이다.
 
성령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영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전에 선재하시던 하나님 안에 가득하고 충만하였던 그 영이 바로 성령이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창조 이전 단계에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고 있었다. 성령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로부터 인간의 창조와 더불어 인류 역사에 대대로 인간 속에 은총으로 찾아 오셔서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요한복음 16장 13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다녀가신 후에 있을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언급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교훈하였다. 사도행전 시대에 임한 성령은 증거의 영이며 은사의 영이시다. 성령은 살리는 영이며 회복하게 하시는 회복의 영이다. 성령 받고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늘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며 지내던 베드로는 요한 사도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기도하려고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던 거지이면 한 사람을 고쳐 일으켜 세웠다. 그는 태어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고 그에게 명하며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사십년 동안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중증 장애인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 충만한 베드로를 통하여 그를 고쳐 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 곳곳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강조하였다. 최근에 수요일 저녁 기도회 시간에 묵상해 가고 있는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성령은 자유하게 하는 영이며, 해방의 영이며, 회복의 영이며, 치유하는 영이며, 가르치는 영이며, 인도하시는 영이며, 지도하는 영이고, 교통하시는 영이며, 성도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영이시며, 성령은 중보의 영이시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는 영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임재 하여 떠나지 않고 동행하신다. 성령은 살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각양의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도록 도우신다. 하나님의 일은 힘이나 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면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말씀이시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열 한 사도들에게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도 성령 안에 잉태되시고 성령 안에 성장하시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세례 요한 앞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여 이기셨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들은 오직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평소에 성령 받을 것에 대하여 여러 번 말씀하셨다. 부활 하신 후에도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성령의 임재를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성령 충만함으로 출발하는 생활이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의지하지 않고 제 힘으로, 제 의지로, 제 생각으로, 제 마음으로, 제 결심으로, 제 판단으로, 제 각오로, 제 느낌으로 신앙생활을 해 보려고 하는 것은 인본주의에 붙잡혀 있는 불신앙의 상태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든지 혹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철저하게 내 안에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고 의지하는 상태여야 하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매사를 성령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추진하고 헤아려 성령 중심의 삶을 살아 갈 줄 알아야 한다.
 
이는 구약 시대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신약 시대, 사도행전 시대 이후의 모든 교회 현상과 선교의 현장을 가능하게 한 힘은 철저히 성령의 힘이었다. 성령 충만은 지속적인 기도 생활과 말씀 묵상과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 생활을 통하여 내 안에 점점 더 활성화 되고 점점 더 넘쳐 나는 충만함으로 유지되게 된다.
 
가정은 새의 둥지와 같은 곳이다. 가정에는 자녀들도 있어야 하지만 부부가 중요하다. 남편과 아내, 아내와 남편을 통해서 부부를 중심으로 가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의 중심은 사랑이어야 하며 성령이 충만한 곳이어야 한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지만 그만큼 비중이 큰 것이 성령 충만한 부부로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지배와 다스리심을 받는 날마다의 생활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시간 사용, 재물 사용, 취미 생활, 여가 활용, 인간관계 등 먹고 마시고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그 모든 면에서 다 마찬가지이다. 직장과 일터와 사업장에서 생활하는 그 모든 생활이 성령의 다스림과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요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가정의 별의별 가슴 아픈 사연들, 험악한 사건들, 윤리가 떠난 타락한 가정들, 사랑이 식어 버린 비정한 부부의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성경은 곳곳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특별히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를 이룬 수 많은 가정들 특히 부부의 이야기 중에서 본문에 소개된 아굴라와 부리스길라 부부의 삶은 대표적이고 모범적이다. 남편 혼자 예수 잘 믿거나 아내 혼자 예수 믿어 보려고 씨름하는 가정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 아내와 남편이 함께 더불어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예수 잘 믿고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얼마가 아름다운가. 아굴라 부리스길라 부부는 향기로운 부부요, 부러운 부부요, 모범적인 부부요, 이상적인 부부요, 본받을 만한 부부의 대표이다.
 
남편인 ‘아굴라’(Aquila)의 이름 뜻은 라틴 말로 ‘독수리’이다. '브리스길라'(Priscilla)는 ‘브리스가’(Prisca)라는 그의 이름의 애칭이다. ‘브리스가’는 로마의 귀족 가문으로 그녀는 귀족 가문의 딸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남편 아굴라는 유태인이었고 브리스가는 로마인이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저들 부부는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 기간 동안에 만난 최고의 부부였다. 사도 바울의 사역이 위대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는 아굴라 부리스길라와 같은 믿음이 좋고 언제나 성령 충만한 귀한 부부를 만난 만남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직접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동원하셔서 하신다. 저들 부부는 로마의 글라우디오(Claudius, 재위 AD 41-54) 황제가 로마 지역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을 때에 아내와 함께 로마로부터 고린도에 갔다가 거기서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었다. 성령 강림 주일이며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 회심 277주년 기념 주일인 오늘 아굴라 부리스길르 부부의 모습을 통해서 은혜를 받자.
 
 

고난의 시대를 믿음으로 이겨내며 살던 부부.
사람은 누구나 평안한 시대에 평안한 나라에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나라나 민족이나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서 별의 별 일들을 다 겪으며 지내게 마련이다. 요즘도 세계 처처에서는 전쟁, 내분, 테러, 지진, 홍수, 가뭄 등으로 고난을 겪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로 가서 살아 보려는 전쟁 난민들도 적지 않고 배에 몸을 싣고 이 나라 저 나라의 해안가에서 자기들을 받아 달라고 애걸하며 살아가는 난민들도 있다.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기도 하고, 마실 물을 해결 하지 못하여 이리 저리 헤매며 목이 타들어 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잘 사는 선진 국가의 사람들은 하루 평균 개인의 물 사용량이 600리터인 반면에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의 물 사용량은 그 백분의 일인 6리터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 자료가 최근에 언론에 발표 되었다.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는 저들이 살던 로마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정치적 격변기를 맞아서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리고 새로운 삶의 처소를 찾아 강제 이주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6. 25 전쟁을 맞아서 3. 8선 이북의 문전옥답을 다 버려두고 남쪽으로 내려온 이들이 일 천 만 명에 육박하고 그들은 세계 처처로 흩어져 살고 이민 가서 살면서 65년이 지나도록 고향에 한 번도 못가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살아남은 이들보다 더 많을 정도로 긴긴 세월이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유대인은 로마를 모두 떠나라”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 명령을 받고 쫓겨나서 찾아 간 도시가 고린도였다. 굴라우디오는 로마 제국의 네 번째 황제이다. 그가 주후 49년과 50년경에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몰아낸 이유는 유대인 지역에서 계속하여 폭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강제이주를 당해야만 했던 유대인들 중의 한 가정의 저들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였다.
 
아덴 즉 아테네도 그러하였지만 당시의 고린도는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영적으로도 우상숭배의 본산지와 같은 도시였다. 고린도는 주전  44년에 로마 황제 시이져에 의해서 재건되기 까지 100여 년 동안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곳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이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BC 44)를 말한다. 고린도의 시민들은 모두 다 로마의 노예로 끌려가고 폐허 상태에 버려져 있던 곳인데 시이저가 새 도시로 단장하고 발전시킨 곳이었다. 고린도는 항구 도시로서 이미 주전 800여 년 동안 군사적인 요충지이고 경제적으로 번영해 오던 도시 국가였다. 그와 같은 고린도가 새 도시로 변모하고 발전하면서 다시 경제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경제적인 번영은 당시나 오늘 날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호화로운 생활과 더불어 온갖 부도덕하고 타락된 일들이 도시의 처처에 가득하였다. 고린도의  우상 숭배의 본산인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일천 명이 넘는 여 사제들이 있었는데 저들은 종교적인 목적을 앞세워서 매춘을 부채질 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고린도 사람이 된다.’는 뜻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대명사처럼 통용되던 곳이 고린도였다. 심지어는 ‘고린도의 아가씨’라는 말은 ‘몸을 파는 매춘부’를 의미할 정도였다. 이처럼 당시의 아덴 즉 아테네나 고린도는 우상 숭배가 극심하고 성적 타락이 심각하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정든 곳을 떠나서 낯 설은 도시로 이주해  살아야 했던 아굴라 부리스길라 부부였지만 저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령 충만한 삶을 지켜 가던 모범적인 부부였다.

고난이 없던 시대란 없다. 또 고난이 없는 나라 나 도시, 그런 곳이란 없다. 사람은 어딜 가나 고난을 만나게 되어있다. 고난은 피하려고 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느냐의 날마다의 태도에 달려 있다.
 
지난 2015년 5월 16일에 210일간 ‘무동력, 무기항, 무원조’의 조건을 지키며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 4만 1900킬로미터 항해에 성공한 한국인이 있다.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돛을 올려서 바람의 힘만으로 세계를 일주한 것이다. 배의 크기가 길이 13미터, 폭 4미터 정도이다. 남미 최남단의 빙하가 떠다니는 케이프 혼을 거쳐서 적도를 왕복하며 두 번 통과하여야 했던 세계 일주 항해를 마치고 충남 당진 왜목항으로 귀항한 해양탐험가 김승진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적도 지역을 통과할 때의 무풍지대라고 하였다. 그의 무동력 요트 세계 일주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이고 세계에서 6번째 기록이라고 한다. 그가 경험담을 말하는 것을 보면 파도가 7미터 씩 쳐 오르고, 요트가 80도씩 기울어서 뒤집히기 직전까지 가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순간도 겪고, 해적들이 추격해 오거나, 상어 떼의 공격을 받던 순간도 있었다. 떠다니는 얼음덩이인 유빙 들 중에서 레이더로 감지되는 않는 유빙을 만나는 것도 위험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17시간 동안이나 적도 한 가운데 망망대해서 무풍지대를 지날 때에 바람이 한 점도 없어서 전혀 배가 움직이지 않던 때의 고난도 항해 중에 극복해야 하는 고난 중의 고난이었다고 회상하였다.  그 길은 해양 탐험가인 김승진 씨가 자천하여 고난의 바다 위에 자신의 몸을 맡겼던 항해의 경험이지만 동서고금이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았나. 김승진 씨는 자신이 탓던 요트의 이름을 ‘아라파니’(ARAPANI)라고 했다. ‘아라’는 우리말로 ‘바다’이고 ‘파니’는 한글로 ‘달팽이’인데 달팽이는 느리게 가지만 멀리 갈수 있기에 그렇게 정하였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선교 현장에서 틈틈이 장막을 만들고 깁는 일을 하며 수입을 갖고 선교에 매진하였듯이 저들 부부는 장막 즉 천만 만드는 기술을 갖고 그것을 생업으로 하고 지냈다. 길리기아 다소 출신인 사도 바울도 그런 기술이 있었다. 길리가아 지역은 '길리기움'(cilicium)이라고 해서 산양(山羊)의 털로 직조한 피륙을 갖고 장막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한 지역이었다. 유대인 부모들은 포로기 이후에 특히 자녀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이상의 기술을 가르쳤다. 그 기술을 갖고 어디 가서든지 경제적인 소득을 마련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처럼 천막 만드는 기술이 있어서 서로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의 선교사로서의 모든 생애도 고난의 연속이었고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의 나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저들의 그런 고난 많은 날들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성령의 충만함이었다. 이는 사도 바울이나 저들 부부나 모두 다 마찬가지였다. 물론 고난을 겪는 일로 하면 사도 바울을 대신할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말이다. 고난 극복의 힘은 성령 충만함이다. 성령의 충만은 백번 천 번의 고난을 오뚝이처럼 극복하고 이겨 내게 하는 힘이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3-28)
 

사도 바울의 평생 동역자로 살아간 부부.
로마서, 고린도 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 전서, 디모데 후서 등에서 사도 바울은 계속하여 저들 아굴라와 부리스길라 부부의 이름을 언급한 것 보면 저들 부부는 얼마동안 혹은 잠시 동안 사도 바울 곁에 있다가 마음을 바꾸어서 바울의 곁을 떠나가 버린 부부가 아니었다. 저들 부부는 평생 동안 사도 바울의 곁에 머물고 동행하면서 사도 바울의 사역이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돕고 성실하게 동역해 준 성령 충만한 부부였다.
 
로마서 16장 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저들 부부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부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고 저들이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음을 강조한다. 동역자란 누구를 말하나. 시대적으로 주어진 역사의 한 현장에서 주어진 짐을 서로 더불어 같이 함께 지고 감당해나가는 이들을 동역자라고 하지 않나. 사도 바울은 이것을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면서 자세하게 언급하였다. 동역자의 모습이란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6:2, 4, 5)고 강조하였다.
 
대전에 결혼식에 가기 위해서 일행들과 버스를 함께 타느라 아현교회에 오랜 만에 갔었다. 아현교회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파송된 스크랜튼 선교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서대문 밖 마포로 내려가는 사거리 애오개에 시약소를 개설하고, 1888년 12월 12일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된 교회이다. 올해로 127년이 되었다. 그 긴긴 역사 동안 얼마나 많은 기독교 신앙의 인재들이 자라나고 열방을 향하여 나아갔겠는가.
 
교회도 마찬가지, 가정도 마찬가지, 기업이나 국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 마음 한 뜻 되어 시대적으로 주어진 한 가지 일에 힘을 모아 매진하는 사람이 동역자이다. 몰라라하는 것은 구경꾼이다. 방관자이다.
 
동역자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1-3)고 하였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아굴라 부리스길라 부부는 사도 바울과 천막 만드는 일이 같았을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위하여 언제나 매사에 동역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성실하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도왔던 대표적이고 자랑스러운 믿음의 부부였다.
 
‘동역자’(同役者, fellow worker)라는 표현은 사도 바울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헬라어의 ‘쉬네르코스’라는 말은 ‘함께 일하는 자’란 뜻이다. 저들 부부는 고린도와 에베소를 중심으로 사도 바울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그림자처럼 따라 붙어서 사도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가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도왔던 동역자 부부였다. 사도 바울이 대개는 부인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을 더 앞에 썼던 이유는 남편 아굴라의 믿음도 좋았지만 부인 브리스길라의 믿음이 뛰어 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령은 시대적으로 그 삶의 현장에 주어진 하나님의 일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도록 힘과 지혜와 능력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여야 한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그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고 힘이 나고 지칠 줄을 모르고 날마다 새롭고 순간마다 활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저들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전하고 가르치는 데도 뛰어났다. 저들 부부는 에베소에서 아볼로를 만났다. 아볼로는 언변에 좋고 성경을 많이 잘 아는 자였다. 성경에 능통한 자였다. 열심도 있었다. 그러나 아볼로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 뿐 성령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는 성령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잘 가르치기도 하였다.
 
하나님은 그 시대 현장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을 이루어 갈 동역자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기도의 동역자, 예배의 동역자, 찬송의 동역자, 주변 사람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제대로 가르칠 만한 말씀의 동역자, 땅과 밭을 팔아 헌신하던 바나바와 같은 물질 헌신의 동역자, 복음 전파의 동역자를 찾으신다.
 
사울이 복음을 모르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모를 때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대적인 성령 사역에 대한 방해꾼이며 핍박자였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다메석 도상에서 부르셨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하고 부르시며 강한 빛을 비추었을 때에 사울은 삼일 동안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었다. 비늘 같은 것이 그의 눈을 덥고 있었다. 다메섹 성 안에 있던 아나니아라는 선지자에게 주님은 사울에게 안수하여 그의 눈이 보이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 때 그 현장에서 하나님이 사울을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을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부르신 “택한 그릇”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셔서 이방을 향한 복음 전파의 최 일선에서 사역할 만한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도 바울 곁에 수많은 동역자들을 세워 주셨다.
사도 바울의 곁에는 뵈뵈, 브리스길리 아굴라 부부, 디모데, 바나바, 의사 누가, 마가, 아리스다고, 디도 등의 뛰어나고 성실하고 성령 충만하였던 수많은 동역자들이 넘쳐 났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절에서 3절까지에서 그와 같은 동역자들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
 
나의 기쁨이며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은 자들이라고-
참으로 멍에를 같이 멘 자들이라고-
복음에 함께 힘쓰던 자들이라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복음 전파를 위하여 희생적(犧牲的)이었던 부부.
사도 바울이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잊지 못하고 성경의 곳곳에서 저들 부부의 이름을 언급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저들이 사도 바울의 선교 현장에서 그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일들을 감당하였던 부부였기 때문이다.
 
로마서 16장 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대하여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내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에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자신에게 어떻게 목이라도 내어 놓으려 할 정도로 희생적으로 헌신하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울이 그 어디에서 그 어떤 다른 누구에 대해서도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특별한 인연을 가진 관계였고 끈끈한 생명을 함께 나누는 관계였음이 분명하다.

성경 주석가들은 사도행전 19장 29절 이하에 나오는 사건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19장에는 데메드리오와 은장색의 폭력 시위가 있었던 에베소에서의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데메드리오는 은으로 우상 아데미의 신상을 만들어 팔아서 큰돈을 벌던 에베소의 우상 제조 판매 사업가였다. 그런데 바울이 그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행19:26)하고 외치며 우상 숭배와 우상인 아데미 형상을 만들어 파는 행위를 문제 삼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저들은 바울의 일행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서 연극장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바울이 이 소식을 듣고 자신도 그 연극장 안으로 찾아 들어 가려고 하자 바울 주변의 제자들이 바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말렸다. 많은 무리의 큰 소동은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되었고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다. 오늘날로 하면 경찰국장이나 시장과 같은 직책을 가진 서기장이 현장에 나서고 소요를 진정시켜 보려고 하였으나 그 어느 누구도 말을 듣지 않았다. 서기장은 나서서 바울과 선교 일행을 변호하기 시작했고 사태를 진정시켜 보려고 애를 썼다. “저들이 신전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아데미 여신을 비방한 것도 아닌데 왜 저들 일행을 붙잡아 가지고 있느냐 만일 고발할 내용이 있다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고소할 절차를 거쳐서 고소하고 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하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은 불법 집회이니 어서 해산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설득해서 에베소의 시민들을 해산 시킨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현장에서 사도 바울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죽음의 위기를 겪을 때에 그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도록 목숨이라도 바쳐서 충성을 다했던 부부가 저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아니었겠는가 하고 성경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그런 저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사도 바울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에 대하여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크게 갖고 지냈음이 분명하다. 저들 부부의 그런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은 이방 교회의 여러 현장에 소문이 났고 저들 부부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도 바울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어 놓으려 했던 저들에게 대하여 사도 바울 자신 뿐 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 성도들도 저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에 대하여 감사하고는 하였다.
 
또한 저들 부부는 자기의 집이 곧 교회였다.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롬16:5)고 하였다. 주후 3세기 이전에는 교회당이 따로 건축된 적이 없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으로부터 성도들은 처처의 가정에서 모여서 기도하고 친교하고 찬송하고 성찬을 행하고 예배하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하였다. 골로새서 4장 15절에는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 빌레몬서 1장 2절에는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에 대하여 언급한 것등이 그러한 내용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브리스길리 아굴라 부부의 집도 교회로 사용되었다. 고린도전서 16장 19절에도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간절히 너희에게 문안하고”라는 말씀 중에 저들 부부의 집이 곧 교회였음을 확인하게 하는 말씀이 또 다시 나온다.
 
성령 충만이란 이런 것이다. 그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독수리가 날아오르듯이 헤쳐 나가면서 복음으로 만난 형제자매들 간에 동역자의 끈끈한 사랑과 화목의 관계를 가지고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사랑하며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처럼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성도의 삶을 가꾸어 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주목하여 보실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130년 동안 초기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 곡곡에서 처처에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믿음의 사람들에 의한 성령 충만한 사역이 오늘 날의 한국 교회를 이루어 온 것이 아닌가.
 
사도 바울이 생각할 때에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목이라도 내어 놓을 정도의 희색적이고 헌신적인 부부였다면 사도 바울 자신도 그런 삶을 살다가 주님 앞으로 돌아간 순교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영국의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은 아프리카 선교의 등불이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헌신하고 있었을 때 영국에 있던 동료들이 도울 것을 숙의하고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자네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을 현지에 보내려고 한다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떤 길이 좋은가?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주게" 리빙스턴은 이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이곳까지 오는데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의미 없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희생적인 사람을 원한다네" 1873년 5월 1일, 그는 현재 아프리카 잠비아에 해당하는 일랄라 지역 치탐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아프리카 하인이 그를 찾아냈을 때 그는 침대 곁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무릎을 꿇은 채 죽어 있었다. 그의 시체를 썩지 않게 보존하기 위해 심장과 내장을 제거한 뒤 아프리카 땅에 묻었다. 그 뒤 사람들은 9개월의 힘든 과정을 거쳐서 그의 시체를 해안까지 운반해 영국으로 옮겨가서 성대한 빅토리아 풍의 장례식을 치렀다. 1874년 4월 18일 영국 교회는 그의 시체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었다. 영국 교회는 그 해에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마지막 일지>( The Last Journals of David Livingstone)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부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런 부부였다. 당신은 어떤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가길 원하는가. 지금은 당신이 희생할 차례가 아닌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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