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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명령과 순종(수3:7-17)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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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7-17 21:20 조회 20,751 댓글 0
 
여호와의 명령과 순종(수3:7-17)        2016. 7. 17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축복을 받게 마련이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탐했던 모세 시대의 12정탐꾼들 중에서도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이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장차 하나님이 하실 일을 마음에 품고 지냈던 이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40살 미만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요단 강물을 끊어 막아 세우신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강의 마른 바닥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이것은 개인, 가정, 나라, 민족의 역사에 다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늘 대하지만 “미국최고의 십일조 왕 존 록펠러의 후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궁금해 할 수 있다. 존 록펠러(1839-1937)의 5대 손인 저스틴 록펠러(37)가 최근에 “아시안리더십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일간 신문의 전지면 두 면을 꽉 채운 특집 기사가 실렸다. 19세기 미국 최대의 석유 재벌로 자리 잡았던 존 록펠러의 당시 재산은 오늘 날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 재산의 3배였다고 한다. 1937년 미국 GDP의 1. 54%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게 놀라운 것이 아니라 존 록펠러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사회의 선한 일에 기부한 재산이 당시에 5억 3000만 달러인데 오늘 날로 하면 1280억불의 가치가 있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145조원을 헌금하거나 기부한 것이다. 지금은 존 록펠러의 5대 손들이 5대 선조 때의 재산을 이어 받아 가며 활발한 기업 활동과 생산적인 재투자를 계속하여 이어가고 있다. 지난 4대 선조들 중에는 부통령, 주지사, 상원의원 등 정치적인 인물도 여럿 배출되었다. 5세 손인 저스틴 록펠러가 맡아서 운영하는 기업의 규모는 지난 2015년 현재로 약 70조 규모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모세 시대 때에 40년 간 그 많은 히브리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이끌어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백성들 간에 얼마나 불평과 원망과 시비가 많았는가. 백성들은 때로는 돌을 들어 모세나 아론을 쳐 죽이려고 까지 하였다. 모세가 죽은 후에 새롭게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앞 장 서서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을 점령해 들어가는 일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가나안에는 이미 정착된 철기 문명국가를 건설한 일곱 족속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말은 곧 전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 중의 대 부분은 여호수아서의 내용을 잘 안다. 그러나 다시 묵상해 보아도 언제나 새로운 도전과 교훈을 받게 되는 것은 이 모든 내용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애굽의 노예 생활 430년, 그리고 홍해를 건넌 광야 생활 40년을 거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고생을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역사 속에 사라지고 말았을 민족이 아닌가.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지금 요단 강 동편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요단강 도하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가 죽은 후에 어수선하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규합하고 그 중심에 서서 요단 강 도하 작전과 여리고 성 함락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백성들 앞에서는 뛰어난 장수였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인 ‘예수아’(ישוע)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죠수아‘(Joshua)라고 발음한다. 당시에는 모든 일에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앞 장을 섰다. 그러므로 에브라임 지파 출신의 여호수아가 민족 지도자의 제 1인자로 세움 받았다는 말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택함 받은 인물인가를 알 수 있다. 

<시간의 풍상>이란 책에 보면 저자인 데이비드 엠은 “기원전 1683년에 요셉이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갔고 기원전 1447년, 파라오 두디모세 때에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했다”고 다양한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서 주장한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를 앞장세워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사건은 주전 1407년의 일이다. 오늘날로부터 3423년 전의 일이다. 

모세가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이듯이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는 그 즉시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도록 하였다. 12지파에서 각기 한 사람씩 열두 명을 뽑아 역사의 증인이 되게 하였다. 주저하지 말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에 물줄기가 둘로 나뉘어 서고 갈라져 육지가 들어난 강바닥으로 건너 갈 수 있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셨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 명령하였다. 제사장들은 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고 기적이 일어났다. 모든 백성들이 물이 말라 버린 요단 강 바닥을 건너서 요단 강 맞은편의 가나안에 도착하기 까지 어깨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강 한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서 있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인가. 여호수아나 갈렙은 40년 전에 홍해를 건너던 당시의 기적을 회상하며 더욱 감격스러워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때가 되면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새로운 기적을 행하시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 각 사람에게 있어서 갈라지길 원하는 요단강은 무엇인가. 요단 강 저편인 광야에는 질병, 가난, 탐심, 불만족, 불화, 불안, 초조, 탐식, 욕망, 두려움, 절망, 낙담, 무기력, 무관심, 시기, 질투, 불평, 불만, 원망, 탄식, 이간질, 우상 숭배 등이 가득하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건너 가야할 요단 강 저편은 그 반대로 하면 감사, 사랑, 평화, 은혜, 축복, 능력, 격려, 희망, 믿음, 풍요, 치유, 용서, 기쁨, 절제의 열매가 넘쳐 나는 약속의 땅이다. 무한한 기회와 축복의 땅이 가나안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지적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고 거듭 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육체의 강을 건너가야 영혼이 육체를 다스리고 주장하는 매 순간 순간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섰다하는 자는 넘어 지고 만다.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아간이 아이성 전투 현장에서 전쟁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 탐심의 노예가 되어 자신도 죽고 가족 모두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처럼 성령의 열매는 지리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저절로 맺히는 열매가 절대로 아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에 각 사람에게 맺히는 열매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246장 찬송 2절의 가사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니 나 가는 길이 형통하겠네
그 요단강을 내가 지금 건넌 후에는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요단강이란 430년 애굽의 종살이와 40년 광야의 고난을 끝내고 새로운 가나안 땅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약속의 땅이 아닌가. 요단강을 건너가서 살게 될 가나안은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신6:10-11)라는 약속의 말씀이 눈앞에 꿈처럼 성취되는 곳이다. 오늘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인생을 크게 하시는 하나님.
물론 사람이 남들보다 높아지고 커지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인생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하시려는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노아 시대 때에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의 삶을 살아가려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던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셨다. 노아 홍수 시대에 방주 밖으로 나와서 생활하기 까지 1년 17일 동안 노아의 여덟 식구와 각종 짐승들은 방주 안에서 머물러야 했다. 노아는 그 시대에 하나님이 들어 쓰신 큰 사람이었다. 

본문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겠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백성들이 알게 하겠다.” 이 얼마나 놀랍고 축복된 말씀인가. 

그렇다. 사람이 커 가는 것이 필요하고 유명해지고 높아지는 것이 필요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커 가고 하나님 안에서 높아져야 한다. 요즘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이 구속되기도 하고, 수감되기도 하고, 검찰에 불리어 가서 밤을 새워 가며 조사를 받기도 하고 언론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공하는 것 좋고 잘 나가는 것 좋지만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높아지고,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커 버린 인생의 끝은 항상 씁쓸하기 마련이다. 

사울 왕은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 임금으로 세우시고 높여서 크게 해 주셨다. 그러나 사울 왕은 나중에 사무엘 선지자도 함부로 대하고 하나님도 우습게 여기면서 교만하게 행동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사울을 임금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 사울은 나중에 작은 자로 전략했고 초라해졌다. 다윗은 점점 큰 자가 되어 갔고 사울은 점점 작은 자, 점점 약한 자가 되어 갔다. 결국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쟁 일선에 나갔다가 큰 부상을 당했다. 자결 하고 말았다. 세 아들들인 왕자들도 모두 다 그 전쟁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교만해지면 불행해진다. 큰 자라도 교만해 지면 약해지고 작아지고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사무엘 상 15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아말렉 간에 전쟁이 있었다.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명령하셨다. 아말렉을 치되 생명 가진 모든 것을 치라고 하셨다.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라고 하셨다. 아멜렉에 속한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 소와 양, 낙타, 나귀를 모조리 다 죽이라고 하셨다. 사울 왕이 전쟁하기 위해 군사를 모아 보니 21만 명이었다. 전쟁하여 이겼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 후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15:11)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은 사무엘 선지자는 마음에 근심하며 온 밤을 새워 가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점점 변질되고 타락되어 갔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긴 사울 왕은 자신을 위하여 ‘갈멜’에다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길갈로 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을 찾아 갔다.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자 먼저 말을 건넸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사무엘 선지자를 무시하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던 자신의 근황을 숨긴 채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하고 거짓말을 하며 선지자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우리에 가두어 두었던 양과 소들이 그 상황을 알기라도 하듯이 “음매에.....”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 사무엘은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하고 물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좋은 것을 남겨서 살려 남겨서 끌어 온 것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사무엘은 지난밤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사울 왕을 책망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책망의 말을 전해 들었음에도 사울 왕은 변명만 늘어놓을 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사무엘 선지자는 연이어 사울 왕을 책망하였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3) 그 때에 사울 왕은 마음에 없는 진실하지 않은 회개를 입으로만 하였다.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되고 가증하게 말하는 사울 왕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사무엘 선지자는 아말렉의 살려 남긴 왕 아각을 길갈로 끌어 오게 하였고 그곳에서 칼로 찍어 쪼개 죽였다. 성경은 그 심판은 “여호와 앞에서” 한 사무엘 선지자의 순종의 행위라고 중요하고 분명하게 다루고 있다.(삼상15:33)

그 사건 이후로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인 막내 다윗에게 찾아가서 왕이 되도록 기름 붓게 하셨다. 인생을 크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인생을 작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인생을 높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인생을 낮추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인생의 흥망성쇠가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인생을 크게 하여 들어 쓰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교만하게 행동하면 사사 삼손의 나중과 같이 불행하게 되고 만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 솔로몬을 얼마나 크고 존귀하게 높여 주셨는가.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컸다.(대하9:22)
천하의 열왕들이 해마다 엄청난 조공을 바쳤다. 금과 은과 보석과 갑옷과 말과 병거나 넘쳐 났다. 병거를 메는 말이 4,000마리였다. 마병만도 12,000명이었다. 솔로몬이 다스리는 나라의 국경은 점점 넓혀져 갔다. 금과 은을 돌같이 썼다. 백향목을 뽕나무같이 많이 다루었다. 애굽과 각국에서는 해마다 수 없이 귀하고 잘 생긴 말들을  갖다가 바쳤다.(대하9:25-28) 솔로몬은 나중에 칠백 명의 후궁과 삼백 명의 첩을 두었다. 첩으로 둔 이방 여인들로 인한 우상 숭배가 극에 달했다. 그런 솔로몬의 교만이 얼마나 오래 갔나. 솔로몬은 60살에 죽고 말았고 나라는 남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두 동강 나고 말았다.  

인생이 커지는 것도 좋고 높아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버리신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신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1-12)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그렇다. 낮아 져야 높아진다. 겸손해야 소원을 이루게 해 주신다. 시편 10편 17절에는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라는 고백이 나온다. 주 안에서 낮아져야 주님의 오래도록 존귀하게 오래도록 쓰신다. 모세도 나중에는 교만해져서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였다. 압살롬은 다윗의 그 어떤 아들들 보다 능력이 출중하고 외모가 뛰어난 왕자였다. 그러나 그의 그런 외모와 교만은 스스로 불행의 늪에 빠져 들어가는 참담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사단의 부림을 받았을 때에 주님을 배반하고 팔아 버리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스스로 커지려 하면 안 된다. 스스로 높아지려 하면 어리석은 것이다. 주께서 높여주셔야 하고 주께서 써 주셔야 한다. 베들레헴에 재산 있고 학식 높고 외모가 출중한 마을 처녀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베들레헴의 나이 많은 노총각 대지주 보아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모압 땅에서 들어가 지내던 나오미의 홀로 된 며느리 룻이었다. 땀 내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남의 집 밀밭과 보리밭에서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양하던 룻을 하나님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게 하셨다. 룻이 오벳을 낳고,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가 다윗을 낳았다. 

하나님이 높이셔야 한다. 하나님이 크게 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이 택해 주셔야 하고 하나님이 들어 써 주셔야 한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쓰셨던 하나님이 그를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함락하는 일에 큰 사람으로 쓰셨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크게 하셔서 가나안을 공략해서 분배하는 일에 선봉에 세우셨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큰 사람, 뛰어난 지도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릇 삼으셨다. 여호수아는 110살이 되도록 오래도록 존귀하게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 하나님은 모세 때에 홍해를 건너듯이 여호수아를 앞장 세우셔서 요단강을 갈라 세우셨고 강바닥을 마른 땅이 되게 하여 건너가게 하셨다. 200만 명에 가까운 거대한 무리가 그 많은 짐승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넉넉히 건너가게 하셨다. 여호수아 4장 14절에 보면 “그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고 말씀하였다. 

이번에 영국의 총리가 된 테레사 메이(Teresa Mary May, 1956- )여성 총리를 보라. 그녀는 영국 성공회 목사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영국의 성공회는 감리교회가 탄생된 배경이 되는 개신교회이다. 그녀의 아버지 휴버트 브래지어 목사는 그녀가 25살 때엔 1981년에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 다음해에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질병으로 돌아가셨다. 젊어서 어려운 일을 겪으면 그녀는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했다. 그녀 자신은 유능한 금융가인 남편과 결혼하였지만 자녀가 없이 오늘 날까지 살아 왔다. 그녀는 들어 내지 않지만 균형을 잃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성경적인 신앙관을 업무와 삶의 바탕에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인생은 하나님이 크게 해 주셔야 진정으로 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아갈 길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신구약 성경의 특징이 무엇인가. 특히 구약 성경에 보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는 말씀이 아닌가. 본문인 여호수아 3장 7절도 마찬가지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라는 말씀으로 말씀이 시작되었다.  9절부터 13절까지의 여호수아를 통하여 전하게 한 긴 말씀도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여호수아가 정리하여 반복적으로 강조한 말씀이다. 결코 여호수아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생각과 가는 길과 앉는 자리에 관심을 가지시는 자상하시고 섬세하신 아버지이시다. 출애굽하게 하실 때의 장면에도 보라. 하나님은 계속하여 호렙 산의 떨기나무에 불은 붙는 환상 가운데서 불러내신 모세와 대화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새롭게 들어가는 생활이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다. 물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때에 내게 유익이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10절에 표현된 여호수아의 첫 표현을 관찰해 보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다.”는 말씀으로 말씀을 시작하였다. 그렇다. 이것은 여호수아 자신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일 뿐만 아니라 이제 곧 멈추어 서게 될 요단의 강바닥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믿음인 것이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 성가 중에 이런 찬양이 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그렇다. 이 찬양은 부활 주일에 한두 번 부르고 잊어버린 채로 또 한 해를 살아가고 다시 부활절 날 한두 번 부르고 한 해를 지낼 그런 찬양이 아니다. 우리의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어제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계실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너희 앞에서 모조리 쫓아내실 것이다.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나서서 온 땅의  주 여호와의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요단강에 발을 들여 놓으라.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한 사람씩의 대표자를 택하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는 순간에 요단 물이 끊어지고 흔 곳에 쌓여 멈추어 서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셨다. 여호수아는 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모두 다 전달하였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을 통해서 이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 33장 2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나온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그렇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하신 말씀대로 행하여 성취하시는 여호와이시다. 
올해도 각 사람이 어른 젊은이 어린이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계획하고 기도하는 일들을 이룩하고 성취하는 보람과 간증이 넘쳐 나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얻는 기적.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기억하고 암송한다고 하여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는 것이 복이 아니라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 복이다. 요한계시록 1장 2절에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다. 

왜 언약궤를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고 앞장서게 하셨을까. 이왕이면 어깨가 넓고 힘이 많은 젊은 장사들을 뽑아서 언약궤를 메게 하시지 왜 제사장들이 메게 하라고 정하셨을까.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언제나 언약궤 중심, 하나님의 제사장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약궤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모세 시대와 광야 생활 중에 성막을 건설하게 하셨다. 그 성막의 지성소 안에 언약궤를 만들어 보존하게 하셨다. ‘언약궤’는 ‘법궤’라고도하고 ‘증거궤’라고도 한다.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언약궤를 만드는 법을 하나님이 친히 명령하셨다. 재료는 조각목으로 하라고 하셨다. 길이와 폭과 높이도 하나님이 정하셨다. 조각목은 황량한 광야에서 살아 있는 나무들이다. 싯딤 나무라고 한다. 아카시아 나무 과에 속하는 단단한 나무이다. 실제로 영어로 ‘acacia’라고 한다. 견고하고 단단하여 벌레도 먹지 않는다. 광야의 땅 속 20미터까지 뿌리는 내리며 그 척박한 곳에서 자라난다. 크고 굵지 못하여 여러 조각 이어 붙여야 무엇을 만들 수 있어서 조각목이라고 부른다. 영어 성경에는 ‘acacia wood'라고 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나. 다 부족하지만 조각조각 이러 붙이고 그 겉에 금으로 쌀 때에 귀해지지 않나. 언약궤의 안과 밖을 금으로 싸라고 하셨다. 네 고리를 금으로 만들었다. 두 채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쌌다. 그 위에 그룹 즉 천사 형상을 양편에 순금으로 만들어 날개를 편 모양으로 덥게 하였다. 그 안에 증거의 판을 보관하게 하였다. 하나님은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고”라고 약속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실 모든 명령을 그 곳 언약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 언약궤를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고 앞장서서 요단강에 발을 들여 놓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제사장들은 순종하였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요단 강물이 40년 전에 홍해가 갈라서듯이 갈라 선 것이다. 흐르던 요단 강 물이 사르단 가까운 곳, 백성들이 건너기를 원하는 요단강에서 매우 먼 곳인 아담 성읍 변두리에서 그쳐서 한 곳에 일어나 쌓였다. 그 곳은 요단강의 하구에서 상류 쪽으로 25km지점이다. 하나님은 흐르는 물줄기라도 필요하시면 막아 세우시는 하나님이시다. 곡식 거두던 때인 3-4월이었다. 범람하던 요단 강물이 끊어져서 저 멀리 양편에 벽을 이루었고 200만 여명의 백성들이 말라 버린 강바닥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다.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제사장들을 앞장서게 하였을 때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오늘 날도 기적은 일어난다. 다 같이 믿음을 갖고 선포해 보자. 

 “오늘 날 나에게도 주 안에서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교에서 출발한 종합대학교 중의 하나가 “오랄 로버츠 대학교”이다.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1918-2009) 목사의 이름을 딴 오클라호마(Oklahoma)의 털사(Tulsa)에 있는 대학교이다. 그는 늘 주변 사람들과 성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게 하고는 했다. 

“당신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Something Good is going to happen to you!)

어느 날 기도하던 중에 오랄 로버츠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대학교를 세우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 내용을 학교에 돌판에 새겨 놓았다. 

“나에게 대학교를 지어 다오. 내 권위와 성령으로 대학교를 지어라. 학생들을 가르쳐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라. 내 빛이 닿지 않는 않는 곳으로 보내라.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보내라. 내 치유의 힘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보내라. 그 학생들의 업적이 네 것을 뛰어 넘을 것이니, 나는 흡족해 하리라.”(Build Me a University. Build it on My Authority, and on the Holy Spirit. Raise up your students to hear my voice, to go where my light is seen dim, where my voice is heard small, and my healing power is not known, even to the uttermost bounds of the earth. Their work will exceed yours, and in that I am well pleased.)

그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에 그는 순종하였고 오늘 날 세계적인 명문대학교가 탄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로버츠 목사는 열정적인 복음전도자였다. 그는 오클라호마 침례대학과 필립스대학을 다니는 동안 전국을 돌며 천막부흥전도집회를 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방송과 저술, 직접 설교 등을 통해 수백 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로버츠 목사는 또한 치유사역자였다. 그가 말하는 치유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전인치유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믿음 치유자’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그러나 그는 늘 “치유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씨앗의 믿음’(Seed-Faith)이라는 강조는 그의 치유사역을 압축시킨 용어다. 그는 믿음으로 심은 씨앗은 반드시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고 증거 하였다. 

필요하시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시고, 요단강을 마른 땅 되어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날도 우리 각 사람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많은 백성들이 요단 강 바닥을 마른 땅으로 딛고 맞은 편 가나안 언덕에 오르기 까지 어깨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굳게 그 자리를 지켰다. 본문 12절에 보면 하나님은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12명을 택하게 하셨다. 나중에 하나님은 백성들이 요단강을 다 건넌 후에 그 12명으로 하여금 다시 강바닥에 되  돌아가서 강바닥에 열두 돌을 세워 기념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12개의 돌을 어깨에 메어다가 강 건너 편 가나안 지역의 주둔지에 두게 하셨다. 세월이 흐른 후에 자손들이 “이 돌들 무슨 뜻이냐”고 물을 때에 요단강물을 막아 세우시고 마른 땅 되게 하여 건너게 해 주신 하나님의 기적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깨달아 가며 그 말씀을 나의 삶에 적용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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