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1-5) 2016. 10. 16
고구마나 감자 혹은 고추나 옥수수와 같은 먹을거리들이 원래 한반도에서 자생되던 것들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이 땅에 전래되어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감자는 언제부터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일까.
조선시대 순조 32년인 1832년에 조성묵이 쓴 <원서방 圓薯方>이라는 책에 조선 땅에 감자가 전래된 내력이 나온다고 한다. 그 역사가 아직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는 “우리나라에 감자가 처음 들어온 것은 북개시(北開市)의 영고탑(寧古塔)에서 온 것으로 이를 북감저(北甘藷)라고 한다. 감자는 중국의 서남쪽이 원산지이다. 거기서 주변 국가들로 전해졌다.”고 했다. 그 당시에 중국인들이 한국의 인삼을 몰래 캐가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고 대동강을 건너서 조선 땅에 자주 들락거렸다. 이들이 장기간 몰래 조선 땅에 머물며 인삼을 캐기 위해서는 먹을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산 속에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버린 후 이를 발견한 조선의 농부가 보니 잎은 순무와 같고 뿌리는 토란과 같아 이를 심어보니 매우 번식이 잘됐다.
이처럼 기독교 복음이 전파된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갑자가 오백만 명, 천 만 명이 된 것이 아니다. 매우 작게 시작되었으나 점점 커가고 점점 많아지고 허다한 무리들을 구원해 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톨릭을 천주교(天主敎)라고 한다. 중국에서 하나님을 천주(天主)라고 쓰기 시작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 정조 8년인 1784년에 이승훈(李承薰)은 북경에 가서 영세를 받았다. 그는 한국인 최초의 세례교인이 되어 조선에 돌아왔다. 그는 귀국할 때 한글로 번역된 서양의 책들과 많은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와서 이벽(李檗) 등과 함께 교리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주변 친지들에게 전도하면서 신앙 공동체인 조선천주교회가 구성되었다. 그 후로 천주교는 심한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를 내었다.
조선인 최초로 순교자가 된 신부는 김대건(11821-1846)이다. 그는 1821년에 지금의 당진인 충남 면천군 솔뫼마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신학교에 유학하고 신부 서품을 받고 돌아 왔다. 그는 25살에 새남터에서 칼에 목이 잘려 순교 당하였다. 그의 증조부도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옥사하였다. 그의 작은 아버지도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김대건의 가족들은 핍박을 피하여 경기도 용인으로 이주하여 신자들과 옹기를 만들어 팔면서 신앙을 지켰다. 한양에서 라틴어와 신학을 배우기 시작한 김대건은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다. 마카오에 있던 파리 외방전교회동양경리부의 불란서 가톨릭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온 신학생들에게 직접 신학, 철학, 지리, 역사, 라틴어, 프랑스어 등을 가르쳤다. 조선 신학생들의 스승이었던 르그레즈와 신부는 "조선 소년들은 훌륭한 사제에게 바람직스러운 것, 신심, 겸손, 면학심, 스승에 대한 존경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대견해했다.
계몽사에서 펴낸 <김대건 위인전>에 보면, 김대건은 신학생일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상당히 성숙하였다. 김대건은 신학생일 때 이런 글을 남겼다. “네로 황제가 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시기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박해받았다. 집에서 사자를 키우던 어느 그리스도인도 잡혀갔고, 경기장에서 사자와 마주쳤다. 사람을 보고 달려들던 사자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가만히 보니 그 사자는 그리스도인이 키우던 사자였다. 자신을 키우던 주인을 보고 달려들던 사자가 조용해진 것이다. 사자도 제 주인을 알건만 왜 사람들은 하나님을 못 알아보는 것일까.”
개신교 복음 전파의 시작은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이다. 고종 3년 때의 일이다. 1866년 6월 18일 미국상인 프레스턴이 조선과의 교역을 위해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중국 톈진(天津)에서 출발했다. 제너럴셔먼호에는 대포 2문이 장착되어 있었고 완전무장한 승무원 19명과 통역자인 영국인 선교사 토머스가 타고 있었다. 7월 7일 대동강 하류에 도착하여 서서히 강을 거슬러 올라가 황해도 황주목 삼전면 송산리 앞에 정박했다. 당시 조선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인해서 외국과의 교역 및 기독교 포교는 국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한국 개신교 역사의 최초 순교자는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이다. 그는 중국에서 활동하던 영국출신 선교사로 목사의 아들이었다. 갓 결혼한 그의 아내는 선교지에서 임신한 채로 죽고 말았다. 그 당시 조선에 기독교인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로버트 토마스(Rev. 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선교사는 1865년 9월에 조선어를 배우기 위해 3개월간 조선 땅에 몰래 머물면서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1866년 정월부터 몇달만에 8천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학살을 당했다. 그 당시 조선에 머무르고 있던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의 9명이 처형되었다. 이때 탈출에 성공한 리델 신부가 톈진(天津)에 있는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병인양요’(丙寅洋擾)가 발생하였다
1866년 8월에 홍수로 인해서 불어난 대동강에서 제너럴셔먼호는 평양 가까운 양각 도에서 좌초당했다. 이것을 본 조선의 군관들은 제너럴셔먼호를 공격하였다. 불길에 휩싸인 제너럴셔먼호를 탈출한 사람들은 익사하거나 헤엄쳐 강가로 나왔다. 그러나 기다리던 조선의 군관들에 의해 하나씩 처형을 당했다. 바로 그곳에 토마스 선교사가 있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군관이 자신의 목을 칼로 내려치려는 순간에 손에 쥐고 있던 한문 성경을 건네주었다. 26살 때에 토마스선교사는 칼에 목이 잘려 순교 당하였다. 토마스 선교사에게 한문성경을 받은 사람 중에 최치량이라는 11살 소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넘겨받은 3권의 성경이 금서라는 것을 알고는 겁이 나 평양의 박영식이라는 사람에게 주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 도배지가 필요했던 박영식은 방 전체와 천장과 바닥까지 성경책을 뜯어 도배를 해버렸다. 평양에 세계 최초로 성경으로 도배한 집이 생겨났다. 세월이 흐르고 박영식이 도배한 그 집은 그에게 성경을 주었던 소년 최치량에게 팔렸다. 주인이 바뀐 것이다. 최치량은 그집에서 주막을 운영하였다. 바로 그 집에 평양 복음화의 꿈과 열정을 지니고 도착한 마포삼열 선교사와 한석진 조사가 머물게 되었다. 1893년 토마스 선교사가 죽은 지 27년째 되던 해이다. 마포삼열 선교사는 그 많고 많은 평양 시내의 주막 중에 성경으로 도배된 그 집에 머물게 된 것이다. 주막 주인 최치량은 결국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집을 예배처로 드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4년 1월 8일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예배처는 근처 널다리골에 있는 집 한 채를 사들여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교회가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교회’다. 1907년 1월에 시작한 평양 대부흥의 발원지가 바로 ‘장대현 교회’인데 그 교회가 바로 ‘널다리골 교회’이다. 놀랍고 신비하지 않나. 토마스 선교사가 죽어 가며 남긴 한문성경으로 도배하며 살던 그 집 주인에 의하여 예배처가 탄생되고 장대현교회로 발전하였다니 말이다.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칼로 쳐서 죽인 병졸 박춘권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도대체 그 책이 무슨 책이기에 죽어 가면서까지 건네주려 했는지 궁금하였다. 그래서는 동료 몰래 그 현장으로 다시 가서 흩어진 성경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고 훗날 영주교회의 영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조카 이영태가 성경을 읽고 예수를 영접하고 나서 숭실대를 졸업하였다. 그 후로 성경 번역의 대가인 레이놀즈 선교사의 조사가 되어 우리가 가진 한글 성경 3분의 2를 번역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여러 차례 외국 선교사들이 선교를 시도했지만 직접적인 선교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만주 지역에 있는 한국인을 중심으로 전도가 이루어졌다. 조선의 개신교는 1879년 이응찬(李應贊), 서상륜(徐相崙, 1848-1926) 등이 중국 만주에서 세례를 받은 다음 신앙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조선의 개신교는 신앙 공동체 형성 직후부터 성경 번역에 착수하여 1882년 함경도 방언으로 된 <예수성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했다.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 전래는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1883년 이수정이 일본에서 야스가와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한글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해 1885년에는 마가의 전복음셔언해을 출판해 냈다. 성경을 한글로 옮긴 일은 일본에서 체류하고 있던 서구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서의 선교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수정은 미국에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1885년 부활주일인 4월 5일에 장로교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와 미국 북감리교의 헨리 아펜젤러 목사 부부가 같은 배를 타고 제물포 항에 도착하였다. 배재학교, 연세학교, 연세 세브란스 병원, 경신 학교 등이 모두 저들의 헌신으로 세워진 학교와 병원들이다. 그 외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밀물처럼 이 땅에 왔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한 내용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다. 이와 같은 분부는 몇몇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부탁하는 말씀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시다. 본문을 자세히 묵상하도록 하자.
말씀 전파의 명령.
말씀 전파란 ‘복음 전파’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다. 말씀 전파의 사명을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시다. 1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심판주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나시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시고 복음을 전파하신 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 까지의 모습은 구속자 예수,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는 또한 심판주도 되신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구별하여 언급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인 재림 신앙이며 종말신앙이며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이시기도 하다.
그리스도 예수는 장차 다시 나타나실 것이다. 이는 재림에 대한 사도 바울의 신앙관이다. ‘그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자로 이 땅에 다녀가셨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때가 되면 이 세상에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가 사도 신경에서 고백하는 그대로이다.
지난 이천년, 그리고 오늘 날도 계속하여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시며 성도들을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시다.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에 보면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는 심판주이시다. 영벌과 영생을 구별하시는 심판주이시다. 예수님은 주리는 자에게 먹을 것,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며 나그네를 영접하고 병든 자와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고 말씀하시는 심판주이시다.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그렇게 전하였다.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날을 작정하시고”(행17:31)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은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시다. 뿐만 아니라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는 심판주이시기도 하다.
가을은 심판의 계절이다. 심은 대로 거두는 계절이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는 계절이다. 가을이 지나고 나면 추운 겨울이 다가 온다. 성경에서 겨울은 심판의 끝이 다가 오는 계절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썼다. 디모데 후서 4장 13절에 보면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두꺼운 겉옷을 가져 오고 가죽종이에 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져 오라고 부탁하였다. 누구에게나 가을이 찾아오고 누구에게나 겨울이 찾아온다.
주를 믿는 우리가 가정생활하고, 공부하고, 직장 생활, 사업, 상업, 무역 등 사회생활을 하며 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말씀 전파에 대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향한 명령을 분명한 부담으로 안고 살아가야 한다. 복음의 말씀을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주변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어야만 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말씀은 제안이나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성도라면 어른, 아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복음 전파, 말씀 전파의 명령에 응답하며 살아야 한다.
말씀 전파자의 사명.
말씀 전파자의 자세는 어떠하여야 할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친 대로 묵상하자.
항상 힘써야 한다.
범사에 오래 참아야 한다.
가르침으로 경책하여야 한다.
경계하고 권하여야 한다.
모든 일에 신중하여야 한다.
고난을 받아야 한다.
전도자의 일을 계속하여야 한다.
주어진 신앙의 직무를 다하여야 한다.
디모데후서에는 복음 전파자인 “전도자의 일곱 가지 전도 사명”에 대한 말씀이 있다. 복음 전파자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딤후1:8)라고 하였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25)라고도 하였다.
전도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전해야 한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전도자는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전해야 한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25)
어제 연신내 지하도 전도현장에서 내 또래 남자를 만났다. 등산을 다녀 오는 중이었다. 한 잔 하였다. 전도지를 받아 들고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워치 타워”냐고 물어 왔다. 내가 누구라고 대답하자. “안식교의 차이”에 대하여 질문해 왔다. 그리고 이어서 천지 창조, 아담과 하와, 예수의 십자가 사건, 초대 교회 콘스탄티누스 때의 기독교 공인, 안식일과 주일의 차이, 우리나라 천주교의 전래, 개신교의 전래 등등 성경과 기독교 역사를 내게 줄줄이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한 번 찾아 갈께요.” 그리고 네게 거수경례를 세 번이나 하고 비틀 거리며 사라져 갔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아는 것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에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도 예수가 누군지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장인과 사위가 전직과 현직 대 제사장으로 앞 장 서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몰아갔다. 본디로 빌라도로 하여금 예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도록 유도하였다. 빌라도는 결국 강도 바라바를 풀어 주고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였다. 빌라도도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예수가 누군지 아는 것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생의 주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성경 시험을 만점 맞아도 믿지 않으면 소용없다. 기독교 역사와 기독교 세계관으로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하지 않았나. 대 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 알렉산더 등 대 제사장의 문중이 다 모여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가두고 다음 날 끌어내어 종교 재판을 시작했다. 예수 이름 전파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위협하였다. 성전 미문 앞에 있던 나면서부터 사십년 동안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걸인을 고쳐 낸 기적 사건으로 긴장한 대제사장들과 그 문중이 벌려 놓은 재판장이었다. 그 때 베드로 사도는 성령이 충만하여 백성의 관리와 장로들에게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전도자는 인내함으로 전해야 한다.
디모데 후서 2장 6절의 말씀처럼 수고하는 농부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범사에 오래 참으며”(딤후4:2)라고 했다.
전도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4:2) 전해야 한다. “때를 얻든지”라는 말씀은 복음 전파가 용이한 환경을 말한다. “때를 못 얻든지”는 복음 전파에 박해와 핍박이 심해져 가는 환경을 말한다. 또한 복음을 듣는 상대방이 “듣거나 듣지 않거나”로 해석하기도 한다. 복음 전파자는 좋은 땅 심령을 만날 기대와 소망을 갖고 계속하여 복음을 전파하여야 한다.
전도자는 고난을 두려워 말고 전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고 했다.
“고난을 받으며”(딤후4:5)라고 했다. 사도 바울 자신이 고난을 엄청나게 이겨낸 고난극복의 사도였다. 고린도 후서 11장에 그런 간증을 담고 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1:20-30)
전도자는 죽는 날까지 힘써 전해야 한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5-8) 12사도와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의 신앙 선조들이 모두 다 그런 전도자의 길을 걸어갔다.
말씀 전파자의 시대 분별력.
성도는 시대를 분별하여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를 어떻게 분별하였는가. 본문 3절의 “때가 이르리니”라는 말씀은 디모데 후서 3장 1절에서 언급한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라는 말씀을 반복하여 말씀한 것이다. 디모데 후서 3장에서는 말세의 징조를 무엇이라 말씀하였는가.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한다. 진리를 버리고 진리를 떠난다. 제 멋대로 살아간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킨다.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스데반 집사를 쳐 죽이지 않았나. 이는 저들이 진리에서 귀를 막고 진리에서 돌이킨 대표적인 사건 중의 하나이다. 저들은 진리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이를 갈며 돌을 들어 스데반을 쳐 죽였다. 마음에 찔렸으면 회개 하여야 할 텐데 반대로 회개하지 않고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여 버렸다. 요즘도 보라. 이단과 사이비에 빠져 들것 같지 않은데 수많은 인생들이 그런 어리석은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빠져서 인생과 가정을 망친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이단과 사이비가 출현해서 허탄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러면 이와 같은 말세에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5절에서 명쾌하게 분부하였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But you, keep your head in all situations, endure hardship, do the work of an evangelist, discharge all the duties of your ministry.)
공동번역은 이렇다.
“그러나 그대는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내며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그대의 사명을 완수하시오.”
우리 각사람 모두가 다 이런 복음 전파, 말씀 전파의 사명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