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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행한 모든 큰일(왕하8:1-6) 20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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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10-03 23:06 조회 17,681 댓글 0
 
그가 행한 모든 큰일(왕하8:1-6)        2016. 10. 2



살아오면서 경험하는 이러 저러한 일들 중에서 큰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말 중에는 별 것 아닌 일도 “아휴 큰일 났네” 이런 말을 별 생각 없이 습관처럼 쓰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일상생활 중에 겪는 일들 중에서 무엇이 과연 큰일이라고 여기는가. 죽어 가는 이에게 있어서는 살고 죽는 것이 큰일이다. 굶어 죽어 가는 이에게 있어서는 한 끼의 먹을거리를 구하는 일이 큰일이다. 살아갈 땅이 없는 난민들은 내 목숨 받아 줄 나라를 향하여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고 도버 해협이라고 건너가려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누울 집과 한 평의 땅을 마련하는 것이 큰일이다. 그러나 영원한 신앙의 눈으로 보면 타락한 인간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큰일 중의 큰일이다. 

엘리사 선지자는 왕을 상대하는 선지자요 아람과 같은 이웃 나라의 벤하닷 왕이나 군대장관 나아만과 같은 이에게까지도 소문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엘리사는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저명한 선지자이다 보니 엘리사 곁에서 그를 섬기던 사환 게하시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는 한다. 엘리사가 왕을 상대하는 선지자였듯이 왕은 때때로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를 상대하여 이러 저러한 대화를 하고는 했다. 하루는 왕이 게하시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왕이 게하시에게 물었다.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일을 내게 설명하라.”(왕하8:4) 왕은 엘리사를 통하여 일어난 이러 저러한 기사와 이적들을 잘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환 게하시가 늘 엘리사의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존재이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보여주신 여러 가지 기적들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고 실감나게 들어 보고픈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큰일을 행하던 기적의 선지자였다. 엘리야 선지자가 승천할 당시에 갑절의 영감을 소원하던 엘리사의 사역들은 엘리야 시대 못지않았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하여 여리고 성의 나쁜 물을 좋은 물로 바꾸셨다. 엘리사가 소금을 가져 오게 해서 그 물에 던져 넣었더니 나쁜 물의 근원이 고쳐졌다. 엘리사 때에 모압 군대가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다. 엘리사 때에 하나님은 아침 해가 흐르는 물에 붉은 핏빛으로 비추어지게 하셔서 모압 군대를 물리치셨다. 선지자 학교 학생이던 남편이 많은 빚을 남기고 죽었다. 그 부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살길이 막막하였다. 엘리사는 그 여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이웃에게서 많은 빈 그릇을 빌려 오게 하였다. 집 안에 남아 있던 한 그릇의 기름을 그 빈 그릇 마다 부어 가득차고 넘쳐나게 하는 기적을 베풀었다. 그 많은 기름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 남은 기름을 팔아서 어린 아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엘리사는 자신을 선대하던 수넴 여인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나는 기적을 베풀었다. 연세 많은 남편으로 하여금 그 동안 아들이 없이 살아오던 그 가정에 아들이 태어나게 해 주었다. 그 태어난 아들이 추수 때에 아버지를 따라 들에 갔다가 두통을 호소하였다. 급하게 집에 돌아 왔으나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있던 아들이 죽고 말았다. 죽은 아들의 어머니는 갈멜에 거하던 엘리사에게 달려가서 그 사실을 알렸다. 엘리사는 그의 가정에 찾아 가서 그 죽은 아들을 살려 주었다. 엘리사는 죽은 그 집 아들의 입에 입을, 눈에 눈을, 손에 손을 맞대고 그의 몸에 엎드려서 기도하자 그 죽은 아들의 몸에 온기가 돌아 왔다. 다시 한 번 그렇게 하자 죽은 아들이 재채기를 일곱 번하고 살아났다. 길갈에 흉년이 심하였다. 먹을 것이 귀하게 되자 엘리사는 들 호박을 따다가 국을 끓이도록 했다. 선지자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슨 독이 들어 있던지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때에 엘리사는 가루를 가져 오라고 해서 들호박국 솥에 던져 넣었다. 그 때 국의 독이 없어졌고 맛있게 먹었다. 흉년과 기근이 계속되었다.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햇 곡식으로 만든  보리 떡 이십개와 한 자루의 채소를 엘리사에게 가져 왔다. 엘리사는 그것을  백명의 선지자 제자들에게 나누어 먹도록 했다. 사환 게하시는 그 적은 것으로 어떻게 백명이 먹고 배부르겠느냐고 당황하며 말했다. 엘리사는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해 주었다. 백명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여호와의 말씀대로 배 불리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나병에 걸렸으나 엘리사를 통하여 고침 받았다. 이 모든 일들은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통하여 행하신 큰일들이다. 열왕기 하 2-5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흉년, 기근, 가난, 전쟁, 죽음 등을 겪으며 지내던 북 왕국 이스라엘에 다시 또 기근이 찾아 왔다. 선지자 엘리사는 앞으로 계속될 칠년 대 기근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과거에 죽었던 아들을 다시 살려 준 그 수넴 여인에게 아들과 함께 가족 모두 블레셋으로 이주해서 칠년간 계속될 기근을 피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그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의 안내를 따라 가족과 함께 블레셋에 이주해서 지내면서 이스라엘에 칠 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기근을 피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칠년 후에 돌아 와 보니 예전에 살던 집과 예전에 가꾸던 밭과 땅의 소유가 불명확해 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여인은 이러한 답답한 사실을 왕에게 알려서 도움을 청하려 하였다. 마침 왕의 곁에 왕과 함께 있던 엘리사 선지자의 종 게하시는 그 여인이 누군지를 자세하게 왕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 여인의 딱한 사정을 설명들은 왕은 관리 한 사람을 임명해서 이 여인의 딱한 사정을 해결해 주도록 했다. 결국은 칠년 전에 이스라엘을 떠날 때에 두고 갔던 집과 밭과 땅을 모두 다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본문 가운데 보면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반복하여 표현하고 있다. 맞다. 엘리사는 그냥 평범한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백성들 중의 그 어떤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 시대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일인 기사와 표적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는 통해서 온갖 다양한 큰일을 행해 오셨다.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를 늘 정성스럽게 공궤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수넴 여인에게 여러 가지 축복을 베풀어 주셨다. 없던 아들을 낳았다. 죽었던 아들을 살려 주셨다. 칠년 흉년을 피해서 살길을 열어 주었다. 칠년 후에 돌아온 수넴 여인의 잃어버릴 뻔한 집과 밭과 땅을 왕을 통하여 되찾아 주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선대하는 이들을 주목하신다. 예수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10:41)라고 가르쳐 주셨다.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고 주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마10:42) 본문을 좀 더 자세하게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생명을 다루시는 큰일.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이 신비의 시작이다. 한 아기가 어머니의 태에 수태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섭리와 신비가 시작된다. 아기가 엄마의 복 중에서 건강한 성장기를 보내고 태어나는 것이 생명의 신비이다. 태어난 아기가 무럭  무럭 자라나서 청년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질병과 재난과 전쟁과 테러와 사고와 사건이 끊임이 없는 세상에서 칠팔십년 동안 살아가는 것이 신비요 주님의 은총이다. 엘리야의 시대와 엘리사의 시대에는 전쟁, 질병, 기근, 흉년, 굶주림이 다반사였다. 오래 살기는커녕 위기 많은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신비한 일이며 주 안에서 누리는 큰일이었다. 

생로병사와 길흉화복의 문제는 나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프리카, 브라질, 동남아, 뉴기니아 등지의 피그미 족은 남자 평균 키가 155cm이다. 여성은 평균 145cm이다. 평균 수명도 16-24살이다. 여성들 중에 1/3은 평균 37살을 사는데 이는 피그미 족들에게 있어서 장수하는 것에 속한다. 어린이가 태어나면 둘 중의 하나 혹은 셋 중의 한 어린이만이 15살까지 살아남는다. 둘 중의 하나 혹은 세 어린이 중의 한명은 15살 미만의 어린 나이에 죽는다. 제러드 다이어몬드의 <총, 균, 쇠>라는 책의 내용을 빌리면 피그미 족은 키가 작고 체구가 작은 것은 열대 지방에서 더위에 견디기 쉬운 신체 조건으로 적응해 온 결과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열악한 생활환경 가운데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못하고 대대로 살아 온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람이 누구나 다 장수 하고 누구나 다 칠팔십년을 사는 것이 아니지 않나. 본문에 소개되는 한 여인은 그녀의 죽었던 아들을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다시 살려내 주었다. 아들 없던 수넴 여인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기적이요 그 아들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다시 살려 낸 것도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기적이요 하나님께서 하신 큰일이었다. 지난날의 그 일을 본문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다.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이란 말이 무엇인가. 제대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하여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이라고 해야 맞다. 그 아들의 태생이 주님의 축복이요, 죽었으나 다시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런데 그 시대에 이스라엘에 칠 년 간의 대 기근이 시작되었고 그 여인과 그 아들과 그의 가족들은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다시 또 덧입게 되었다. 열왕기 하 4장 38절 이하의 흉년을 언급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날 살아가는 나의 생명이 어떻게 유지되는 것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맥박이 뛰고 있고 지금 호흡하며 살아 있는 이 생명이 주님이 나에게 주신 날마다의 신비이며 날마다의 큰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던 때에 베들레헴 주변의 두 살 미만의 남자 아이들은 모두가 다 죽임을 당하였다.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헤롯왕이 그 주변의 남자아기들을 모조리 다 색출해서 죽였기 때문이다.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가 탄생하셨는데 예수의 탄생과 함께 베들레헴 주변의 사내아이들은 모조리 다 죽임을 당하였다. 우린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대답을 찾아야 하나. 역사에는 삶과 죽음, 화와 복이 뒤 엉켜있다. 

모세가 태어나던 당시에 애굽에서 살던 히브리인의 가정에 태어나는 아기들 중에서 남자 아이들은 모조리 다 죽임을 당하였다. 애굽의 바로 왕은 히브리 남자 아이 살해 명령을 내렸다. 노예였지만 왕성하게 번성해 가던 히브리인의 번성을 제한하려는 바로 왕의 악한 정책이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수 믿는 이들은 엄청난 핍박 앞에 직면해야 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고난의 시작이며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는 두려운 일이었다. 예수 믿는 이들을 맹수의 먹잇감으로 던져서 죽이기도 했다. 불에 태워 죽이기도 했다. 히브리서 11장 36절 이하의 말씀처럼 핍박과 고난이 심각하였다. 조롱, 채찍질, 결박, 투옥뿐만 아니라 돌로 쳐서 죽이고 톱으로 켜서 죽이고 칼로 죽였다.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입고 들판과 광야로 유리방황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감수해야 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잘 산다든지, 편안하게 산다든지 하는 것과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지던 엄청난 핍박기가 있었다. 

세례 요한은 분봉 왕 헤롯의 불의를 지적하고 헤롯왕의 미움을 받아 33살 즈음에 목이 잘려 죽임을 당하였다. 헤롯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기 부인으로 빼앗아 살던 자였다. 헤롯은 자기의 생일날 고관대작들 앞에서 춤을 추던 헤로디아의 딸에게 소원을 물었다. 딸은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물었고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목을 쳐서 쟁반에 담아내어 오도록 요청하였다. 그 당시 헤롯은 모든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존경하던 때라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날, 헤롯의 생일 잔치 날 세례 요한의 목은 잘려 나갔고 쟁반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세례 요한의 머리가 잔치 자리의 한 가운데로 담겨 나왔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하나님을 믿으면 잘된다. 주여! 주여! 하고 살면 형통해진다. 신앙생활을 이렇게 한 두 마디로 함부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일찍이 복음을 받아 들였던 안중근(1879-1910)열사는 31살에 죽었다. 윤봉길(1908-1932)열사는 24살에 죽었다. 유관순(1902-1920)열사는 18살에 죽었다. 저들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양심을 갖고 역사의 불의 앞에 항거하다가 일찍이 죽어 갔다.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었던 이준(1859-1907)열사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당시에 이준은 상동감리교회의 교인이었다. 고종 임금의 재가를 받고 헤이그 밀사로 파견되었던 이준과 함께 보냄 받은 이상설(1870-1917), 이위종(1884-1924?) 모두 다 복음을 받아 들인 이들이어었다. 이준은 48살, 이상설은 47살, 이위종은 38살에 이 세상을 떠났다. 고종 당시 의정부 참찬이었던 이상설은 구한말의 대학자였다. 오늘 날로 하면 3가지 국가고시를 모두 다 패스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는 헐버트 선교사 곁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익혔다. 수학, 물리학, 화학, 경제학, 국제법 등에도 능통하였다. 그는 이위종, 이준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자 고종 임금의 위임장을 받아 들고 밀사로 파견되었다. 만국평화회의 석상에 가서 을사조약과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폭로하려는 목적이었다. 한국의 국권 회복을 기대한 것이다. 주 러시아 공사관의 참서관이었던 이위종은 3명의 밀사 중 한 사람으로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할 장서를 번역했다. 장서와 그 부속문서인 일본의 불법행위를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일본을 제외한 40여 개국의 참가국 위원들에게 보낸 인물이다. 국제협회의 회합에 귀빈으로 초대된 그는 을사조약의 억울함과 일본의 침략상을 낱낱이 지적하여 국제사회에 폭로하고 규탄하였다. 이 밀사사건으로 세 밀사는 일본통감부의 궐석재판에서 종신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위종은 그 뒤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항일민족운동을 계속하였다. 저들 세 사람 모두 삼사십 대에 복음과 정의와 나라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지금 나에게 생명이 있음이 큰일이고 지금 내가 살아 있음이 큰일이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와 은총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각 사람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의 기대하심을 따라서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역사 앞에 사명을 깨닫고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예수도 이 땅에 오래도록 머물지 않으셨다. 그는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탄생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는 33년의 삶을 살면서 십자가의 구원을 완성하셨다. 오래 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수넴 여인의 아들은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이 땅에 태어났으며 죽었다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새 생명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절절이 깨달으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강조하여 말한다.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에게 이르되” 이는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하여 다시 살려준 아들이란 말씀이 아닌가. 수넴 여인의 이 아들은 스스로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 자신의 생명이 어떻게 주어진 목숨인지를 말이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생명을 주님을 향하여 가치 있게 쓰며 살아가는 주님의 종들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필요를 채우시는 큰일.
먹고 마시고 입고 살아가는 모든 필요의 공급자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평소에 남편과 함께 더불어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 엘리사를 정성스럽게 공궤하며 섬겼던 그녀의 가정에 끝없이 은혜와 축복과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그 수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와 사환 게하시가 수넴 마을을 지날 때마다 모셔 들여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방을 마련해서 침대와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마련하고 엘리사 선지자와 사환 게하시의 출입을 섬기며 정성을 쏟았다. 그런 그 가정에 없던 아들도 태었고 죽었던 그 아들을 다시 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칠년 대기근의 소식을 미리 전하여 수넴 여인으로 하여금 아들과 가족과 함께 블레셋 땅에 피신하여 기근의 날을 이기며 살아가도록 배려해 주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인생들에게 끊임없이 인도하시고 공급하시고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이시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나.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요즘은 마시는 물도 문제지만 공기가 점점 탁해져 가고 있다. 미세 먼지의 폐해가 심각하다. 최근에 맑은 공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새로운 사업이 시작되었다. 과거에 물을 돈 주고 사 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웃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 값이 기름 값 이상으로 비싼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맑은 공기를 돈 주고 사서 호흡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지난 9월 19일(2016년) 중국 서안시의 한 쇼핑 몰에서는 맑은 공기 한 봉지에 165원을 받고 파는 시종 사업이 세계에 알려졌다.  워낙 공기가 나쁘고 미세먼지가 심각한 중국에서 발 빠른 상인이 맑은 공기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물도 공기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다. 온갖 씨를 맺는 채소와 각종 과일과 물고기들과 들짐승들을 비롯한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내신 것들이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공급이다. 

세계에는 굶주려 굶어 죽어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다 우리 집 아이들처럼 넉넉하게 먹고 입고 사는 것 아니다. 지난 8월 하순부터  “어느 여기자의 눈물”이란 제목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져서 불평하며 살면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야하겠다. 할 수만 있으면 우리의 소득과 삶을 어려운 이웃, 가난한 이웃, 병든 이웃, 필요로 하는 이웃, 배고프고 굶주리고 소외된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께서 각 색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빈들의 배고픈 무리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를 축사하셔서 배불리 먹게 하신 장면이 나온다. 그 내용을 읽다 보면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마14:14) 그리고 그들 중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고 배고픈 많은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해결해 주셨다. 예수는 배고픈 자에게 빵을, 병든 자에게 치유를, 눌린 자에게 자유를, 보지 못하는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듣지 못하는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걷지 못하던 이에게 다시 걷게 함을 선물하신 주님이시다. 마태복음 4장 23-24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펴졌다.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와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를 데려 왔다. 예수는 그들을 일일이 거쳐 주셨다. 

우리 교회 안에도 어려운 가정도 있고 오래도록 기도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질병으로 씨름하는 이들이 있다. 사랑하는 아들딸의 연약함과 질병으로 인해서 늘 울고 한숨지으며 탄식하며 기도하는 어머니 아버지들의 기도가 있다. “하나님 저 아들을 두고 어떻게 이 세상을 먼저 떠날 수가 있겠어요. 하나님 우리 저 딸을 두고 어떻게 제가 눈을 감을 수가 있겠어요.”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가정들이 있다. 먹느냐 못 먹느냐 배가 부르냐 배가 고프냐의 문제가 아니다. 풍년이나 흉년이냐 풍성하냐 기근이냐의 문제도 아니다. 기도해도 답답하고 부르짖어도 답답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 본문의 수넴 여인은 당시로 하면 한숨을 많이 지으며 살던 여인이다.

남들은 누구나 낳아 키우는 것 같은 아들딸인데 단 한명도 없었다. 그 가정에 늙어 가던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 것은 엘리사 선지자를 섬기고 공궤하는 중에 하나님이 그 가정에 주신 선물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한나에게 사무엘이 태어나듯이 수넴 여인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큰일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느 날 죽었다. 그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 내신 것도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서 보여 주신 큰일이었다. 그 아들과 함께 살만하다 싶은데 이스라엘 나라에 칠년 기근의 날이 다가 오고 있었다. 살길이 막막한 기근의 때 칠년간을 블레셋에 이주하여 사랑하는 아들과 가족과 함께 가서 먹고 살게 해 주신 것도 뒤돌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먹여 주시고 온갖 필요를 공급해 주신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 중의 하나였다. 하나님의 공급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소유를 회복하시는 큰일.
칠년 만에 돌아 와 보니 예전에 살던 집과 소유하고 있던 밭과 땅의 소유가 애매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의 억울함을 임금 앞으로 가지고 나갔다. 마침 그 때에 선지자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왕과 함께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들에 대하여 대화하고 있었다. 일이 되려니 마침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왕을 만나 대화하고 있는 시간에 왕을 찾아 간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평범한 여인의 호소이지만 왕은 여인의 사정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 일을 해결할 만한 관리를 따로 임명하였다. 왕으 이 여인의 집과 밭과 땅을 되찾도록 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되게 해 주신 축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나님은 일을 순적하게도 하시고 복잡하게도 하실 수 있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매시기도 하시고 푸시기도 하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평소에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를 잘 섬기고 공궤하던 수넴 여인에게 계속하여 큰일을 보여 주셨다. 그 동안 이러 저러한 크고 작은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오게 하신 이 여인으로 하여금 왕의 총애 또한 입게 해 주셨다. 이런 은혜가 이 결실의 계절에 개인, 가정, 일터, 생업, 교회, 나라, 역사 가운데 임하기를 기도하자. 

인간에게 소유로 주신 하나님의 공급은 풍성하고도 넉넉한 것이었다. 아담과 하와에게 마련해 주신 에덴동산을 보라. 창세기 2장을 읽어 보면 아담과 하와에게 제공해 주신 에덴동산은 참으로 아름답고 완벽한 동산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창2:8-9)라고 했다. 그 아름다운 동산, 에덴에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말씀에만 순종하며 살았다면 이 땅에서의 인간의 삶은 언제나 항상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완전한 동산이 에덴의 삶이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의 그 모든 것은 아담과 하와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 완전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하여 타락하고 내어 쫓긴 것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죄 사함이란 무엇인가. 영생이란 무엇인가.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회개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녀 됨이란 무엇인가. 그 동산 에덴의 삶으로의 회복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그런 회복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사44:3-4)고 약속해 주셨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면 날마다 새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게 하신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 이것은 집 한 채, 밭과 땅 얼마를 소유하는 그런 차원의 소유가 아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진 새로운 세계의 약속이다. 그 곳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곳이다. 성도가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런 권세를 누리며 살게 된다. 이것이 양자의 축복이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의 축복이다. 기업가들이 배임 혹은 횡령 혐의로 검찰에 들락거려야 하는 몇 백억, 몇 천억, 몇 조 그런 차원의 소유가 아니다. 수넴 여인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권세는 잠시 잠간의 권세가 아니라 영원한 권세요 영원히 누리는 은총이다. 

칠년 동안 기근을 피해 살던 여인이 이스라엘에 돌아 와서 자기가 과거에 살던 집과 가지고 있던 밭과 땅을 요구할 때에 왕이 나서서 한 관리를 세워서 해결해 주었다. 과거에 엘리야 때에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던 아합 임금이나 이세벨 왕비 때의 일과는 정 반대의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하시면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온갖 필요를 풍성하게 공급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분깃을 되찾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런 것들을 누리게 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여 누리게 해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그 곳은 잃어 버렸던 에덴의 축복을 회복하는 생활이다.
요한 계시록 22장에서 말씀하는 그런 삶이다. 하나님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 강가로 성도들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그 맑은 생명수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이다. 그 생명수가 흐르는 길가로 강물이 흐른다. 그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다. 열두 가지에 열매를 맺는다. 매달마다 그 열매를 먹는다. 생명나무의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는 약재이다. 그 곳에는 다시는 저주가 없다. 영원히 종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긴다. 그 곳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를 마주 대하여 보는 곳이다. 그 곳에는 밤도 없다.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다. 오직 주 하나님만이 성도들에게 비추이시는 빛이시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와 더불어 세세토록 영원히 왕 노릇할 것이다. 이것은 신실하고 참되신 약속이다. 주 예수의 은혜가 그를 믿는 각 사람에게 영원히 임하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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