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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바울과 두기고(엡6:21-22) 2016.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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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2-07 16:46 조회 21,373 댓글 0
 

 바울과 두기고(6:21-22) 2016. 2. 7

주현 후 마지막 주



지난 목요일인 2월 4일이 입춘이었다. 선조들은 대대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이런 글들을 써서 대문에 붙이고는 하였다. 그런 가정, 그런 삶을 소원한 것이다. 주 안에 복된 일이 많이 생기는 축복의 한해가 되기를 소망하자.

에베소서의 마지막 부분인 본문에는 사도 바울 곁의 빼어 놓을 수 없는 복음 전파의 동역자였던 두기고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바울과 두기고, 두기고와 바울. 저들의 끈끈한 관계를 본문 속에서 대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사랑을 받은 형제.
두기고는 사도 바울에게 사랑을 받던 형제였다. 사랑을 받는 다는 말이 무엇인가. 사람이 서로 대하며 살아가다 보면 매사를 사랑 받도록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자도 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두기고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2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의 사정을 부부처럼 알고 지내던 동역자였다. 바울이 어느 시간에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바울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알고 지낼 정도로 가까운 인물이었다. 사도행전 20장 4절에 보면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이다. 사도 바울이 제 3차 전도 여정 중에 동행할 정도의 신임이 두텁던 관계였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전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빌레몬서를 받아 들고 오네시모와 함께 로마를 떠나서 소아시아의 여러 지방을 순회할 임무를 맡기도 했었다. 골로새서 4장 7절에 보면 두기고에 대하여 본문의 내용과 똑 같은 내용을 다시 만나게 된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의 위대함과 그의 사역의 탁월함은 물론 주 안에서 부름 받은 그 자신의 뛰어난 믿음과 이방 전도의 남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사역이 그와 같이 돋보일 수 있었던 배후에는 두기고와 같은 참신한 동역자들이 수 없이 포진하고 있었다. 바나바, 디모데, 누가, 마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6장 17절에서 거론되는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같은 성도들이 바울 곁에 있었다. 저들은 “사도 바울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고 칭찬 받은 인물들이다.

집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 나가도 샌다. 그러나 집 안에서 규모 있게 쓰임 받는 바가지는 밖에 나가서도 요긴하게 쓰인다. 작은 일에 사랑 받는 사람은 큰 일에도 사랑 받는다. 개인적인 관계에 돋보이는 사랑의 관계인 이들은 대중 앞에서도 사랑 받는다. 두기고는 사도 바울에게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는 신실한 일꾼이었다.
함석헌 선생의 시 중에 “그대 이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있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방의 뛰어난 전도자 사도 바울의 행복은 언제나 주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랑을 듬뿍 주고받을 만한 복음의 동지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중에 빼어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두기고이다. 

모세 곁에는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가 그런 인물들이었다. 여호수아의 곁에는 갈렙이 있었다. 다윗의 곁에는 왕자 요나단과 같은 끈끈하게 장래의 꿈을 나눌 만한 인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충성된 부하들과 대신들이 적지 않았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왕궁을 비워 주고 반역을 당하여 피신 중이었다. 그런 어느 날 나이 80이 된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라는 노인이 피신 중인 임금 다윗을 충성되게 섬겼다.  바르실래는 큰 부자였다. 다윗이 요단 강 저편 마하나임 지역에 머물 때에 바르실래는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 임금과 그 일행들이 먹도록 섬겼다. 사무엘하 17장 29절에 보면,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여 목마르겠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사랑의 마음을 담은 섬김은 아들에게 반역 당한 임금 다윗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시간이 흘러갔고 임금 다윗은 다시 왕궁으로 돌아갈 여건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그 때 다윗이 바르실래에게 한 마디 하였다.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그러나 바르실래는 극구 사양하였다. 바르실래는 젊은 김함을 왕의 곁에 두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부모의 묘가 있는 고향으로 물러가서 노년기를 지내겠다고 하였다. 다윗 왕은 드디어 요단강을 건넌 후에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다시 본문에 보면, 두기고는 사도 바울의 사도로서의 이방 전도자의 면모뿐만 아니라 바울의 사사로운 일상을 그림자를 대하듯이 낱낱이 알고 지내며 속마음을 주고 받던 관계요 사랑 받던 관계였다.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
사도 바울은 두기고의 인격에 대하여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이라고 평하였다. <삼국지>로 하면 “조조, 관우, 유방, 제갈량 등등 등장인물들에 대한 인물평이 각기 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라. 같은 어머니의 태에서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에서와 야곱에 대한 인물평이 다르지 않나. 같은 사사였지만 사사 기드온과 사사 삼손에 대한 평가가 다르지 않나. 같은 제자였지만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가롯 유다를 평가하는 성경 역사의 평가가 다르지 않나. 사도행전이 후대에 전해 주는 바나바에 대한 미담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대한 뒷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차이가 무엇인가. 

“주 안에서 신실한 일꾼”이란 인물평이면 거기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두기고에 대하여 편지한 골로새서 4장 7절의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란 기록을 보라. 다른 기록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그 인물평이니 기독교 역사에 두고 두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지 않나. 국가적인 인명사전, 세계적인 인명사전, “Who's Who"같은 유명인사의 명단에 기록되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두기고에 대하여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이란 이런 인물평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일이 있을 때마다 사도 바울은 두기고를 떠 올렸다.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이 이웃 나라에 특사를 보낼 때에 아무나 보내지 않지 않나. 디모데 후서 4장 12절에 보면, “두기고는 에베소에 보내었노라”고 하였다. 이처럼 두기고는 사도 바울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앞장서서 쓰임 받을 만한 주 안에서 신실하고 진실한 일꾼이었다. 

성도의 믿음 생활은 주 안에서 신실하고 진실하여야 한다. 시간 사용, 재물 사용, 체력 사용, 관심과 취미와 경험과 재주와 은사를 사용하는 그 모든 면에 주님을 믿는 자다운 진실함과 신실함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집에 제자들과 함께 초청 받아 방문한 적이 있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잔치집에 포도주 떨어진 사실을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께 알렸다. 관심 없어 하시던 예수는 잠시 후에 그 집 하인들을 불러서 일을 맡겼다. 현관에 있는 물 두세 통 들어가는 돌 항아리 여섯에데가 물을 길어다가 아구까지 채우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물을 다시 떠다가 연회장에게 건네 주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순종하는 중에 그 물이 맛있는 극상품의 포도주로 변하였다. 연회장은 어리둥절하였다. 유대의 잔치집 풍습이란 처음에는 맛있는 포도주를 주다가 손님들이 취한 후에는 맛이 덜한 포도주를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이 잔치집에는 나중에 더 맛있는 포도주를 공급받게 되었다. 그 과정과 비밀을 연회장은 몰랐다. 그러나 물을 떠 나른 하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그 날 그 현장에 무슨 표적이 생겼는지 잘 알았다. 남들은 몰라도 신실하게 진실하게 묵묵하게 예수께서 분부하신 대로 수고하고 애 쓴 하인들은 가나 혼인집의 그 첫 표적의 비밀과 과정을 잘 아는 자들이 되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요2:9)고 하였다.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라는 성경의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의 말씀인가. 수고한 일꾼들은 안다. 애쓴 일꾼들은 안다. 땀을 흘린 일꾼들은 안다. 묵묵히 진실하게 신실하게 순종한 일꾼들은 역사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는 예수님 당시나 사도 바울의 때에나 오늘 날 우리의 신앙생활 현장에나 다 마찬가지이다. 


6. 25 전쟁 당시에 서울 중학교에 다니던 15살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임종덕(1935-)이다. 그가 다니던 서울 중학교 교실에는 인민군들이 붙잡아다가 군사 기초 훈련을 시켜서 전쟁에 내 보낼 남한의 청년들이 가득하였다. 친하게 지내던 형의 부탁을 받는 의협심 많던 임종덕 학생은 교실 한 귀퉁이에다가 그 형이 건네준 휴발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그렇게 해서 인민군을 끌려갈 남한 청년들을 탈출 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인민군들은 임종덕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북아현동에 있는 그의 집에 쳐들어 왔다. 이미 임종덕은 도망 와서 마당의 큰 나무 위에 올라가 숨어 있었다. 인민군들은 마당에서 붙잡은 여동생을 통해서 지하실에 숨어 있던 임종덕의 부모를 끌어내다가 마당에서 총살하였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장작더미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화형 시켰다. 임종덕의 아버지는 광복 운동을 하던 애국지사였다. 그의 어머니는 서울에 와서 6. 25 전쟁 이전까지 숙명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임종덕은 홀로 살아남아 피난민들 틈에 숨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길에 만난 미국인 대위의 사랑을 입었으나 그가 원산 함흥 지역으로 북진해 가던 전쟁 중에 전사하자 다시 임종덕은 외로운 신세가 되고 말았다. 9. 28 서울 수복 후에 그는 전쟁고아로 불광동의 희망원이라는 고아원에서 잠시 머물렀다. 전쟁 중에도 나쁜 일만 하는 원장의 불의를 알게 된 그는 몽둥이를 들고 원장실에 들어가서 기물을 때려 부수고 서울역 곁 염창동 다리 밑으로 도망쳤다. 그런 그를 따라 나선 고아 동생들이 20명이 넘었다. 그는 자기보다 어리고 불쌍한 동생들을 다리 밑에서 데리고 함께 생활하며 동냥해다고 먹여 살려야 했고 병이 들면 약을 구해다 먹여야 했다. 그 때 거지 왕 김춘삼도 만났다. 임종덕에 대한 소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100명도 훨씬 넘는 전쟁고아 아이들을 그의 곁으로 모여 들게 하였다. 그는 불쌍한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전쟁 중에 소매치기로 생활을 연명했다. 그러던 1952년 어느 날, 그는 서울역 대합실에 들어서는 미군의 차에서 트렁크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가방을 훔쳐 달아난다. 그 가방엔 전쟁 기밀문서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미 공군 총지휘관 스티브 토마스 화이트 장군의 것으로 미군 공군의 일급비밀문서가 들어 있는 가방이었다. 경찰은 임종덕을 찾기 위해 종로 거리를 샅샅이 뒤졌고 마침내 임종덕을 발견했다. 결국 임종덕은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미군은 중요한 문서를 찾게 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9년이 지난 1971년, 임종덕은 한국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고아 출신 소매치기 소년에서 미국 닉슨대통령의 백악관 안보비서관이 되었다. 6. 25 때 소매치기로 잡혀 간 임종덕을 위해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100여명 몰려가서 임종덕을 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임종덕은 전쟁고아들을 돌보던 중 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들이 늘어나자 소매치기까지 해서 약값을 구하려 했던 사랑과 지도력이 출중한 소년이었다. 소매치기하여 마련한 그 돈으로 임종덕은 수많은 전쟁고아 아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이에 스티브 토마스 화이트 장군은 임종덕의 심성을 눈여겨보고 자신의 하우스보이로 데리고 갔다. 화이트 장군은 어린 소년 임종덕의 지도력과 남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에 감동 받았던 것이다. 이후 화이트장군의 총애를 얻은 임종덕은 그의 양자로 입적됐고 1953년 미국으로 건너가 밤 낮 없이 공부하여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미국 군대 입대 후에 월남전 참전하였다가 전쟁 포로로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두 번이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에 성공하였다. 월남전 참전 당시의 임종덕 대위의 참전기는 ‘디어 헌터’(The Deer Hunte)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의 지혜와 투지와 탁월한 전략과 추진력을 인정받은 임종덕은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안보 비서관으로 임명 받았다. 그 후로 포드, 카터 대통령까지 3명의 미국 대통령을 보좌했다. 대령으로 예편한 그는 LA동양 선교 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12월 13일 방송된 MBC TV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그에 대한 일대기를 특집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미국 육군 사관학교인 웨스트 포인트는 임종덕의 일대기를 책으로 내어서 군사학 교재로까지 사용하고 있다. 

바탕이 신실하고 목적이 진실하면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역사가 그의 삶을 평가하게 되어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탐심에 눈이 가리어지지 말고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의 삶을 가꾸어 가야 할 것이다.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던 자. 
두기오의 출입은 사도 바울에게도  힘과 위로가 되었고 그가 가는 곳곳마다의 성도들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두기고의 손에 에베소서를 써서 들려 보낼 당시에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옥중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인 이와 같은 감동적인 편지를 써서 두기고의 손에 들려주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언급하였다.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그렇다. 두기고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특별한 사람이었다. 두기고가 나타나면 그 주변의 사람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두기고는 바울의 근황, 바울의 사정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21절의 내용처럼 두기고는 바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사도 바울과 두기고는 매사에 있어서  주 안에서 하나였다. 바울 주변의 모든 일들을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할 수 있는 그런 관계였다. 

우리 모두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그런 일꾼들이 되자.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어느 사역의 현장이든 이처럼 든든한 동역자들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우리는 어디서나 주 안에서 그 누군가의 위로자가 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쿤타리카라는 깊은 산에는 300여 종류의 원숭이들이 살고 있다. 영국의 리즈버리 탐험대가 그곳에서 이상한 현상 세 가지를 관찰했다. 첫째는, 어느 날 아침에 온 산이 떠나갈 듯이 원숭이들이 고함을 질러댔다. 그들의 지도자격인 원숭이가 세상을 떠났기에 슬퍼하는 표시였다. 둘째는, 부부 원숭이가 서로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이었다. 작은 새끼가 죽었는데 서로의 슬픔을 위로해주었다. 셋째는, 원숭이 한 마리가 커다란 구렁이에 칭칭 감겨 죽어가고 있는데 수십 마리의 원숭이가 돌을 던지면서 그 구렁이와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다. 큰 구렁이가 잡은 원숭이를 한 입에 삼키자 모든 원숭이들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슬프게 울고 있었다. 그 후 영국의 리즈벨리 탐험대는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어려움에 참여할 줄 모르고 자기만을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 아프리카의 쿤타리카 산 속으로 보내자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증거는 무엇인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어야 하나. 그 누군가를 위로 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 병약한 자, 외로운 자, 고독한 자, 나약한 자, 실의에 빠져 있는 자, 믿음으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믿음이 쉽게 자라나지 못하는 그 누군가에게 꾸준히 위로자의 역할을 다하여 한 사람, 한 사람 그의 믿음을 세워 가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에서 강조하였다. 남다른 고난의 사도였던 사도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 라고 편지하였다. 

하나님은 인생의 닫혀 진 불행의 문 곁에 또 다른 행복을 향하여 나설 수 있는 새로운 문을 준비하시는 사랑의 아버지, 위로의 아버지, 격려의 아버지이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 1452-1519)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인 다재다능한 천재이며 노력가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인상 깊게 사물을 관찰하고 착상을 스케치하는데 명수였다. 그의 그림 ‘모나리자’는 밀레의 ‘만종’과 함께 세계 미술사를 빛낸 걸작 품 중의 하나이다. “최후의 만찬”도 그의 작품이다. 그가 스케치한 비행기 모형도는 인류가 하늘을 나는 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는 천동설을 뒤집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인체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인체 해부도 연구에도 몰두한 의학자였다. 그가 스케치했던 자전거 모형도는 현대인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페달과 체인을 갖춘 모양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잠수함 설계도는 후대의 해양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어렸을 때는 부모를 잃은 고아처럼 자라났다. 주변의 아이들을 그런 그를 늘 따돌렸다. 그러다 보니 성격이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는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싫어하게 되었고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힘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를 키웠던 할머니는 손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집을 나설 때마다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여 주었다고 한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할머니는 너를 믿는다.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실 거야.” 

할머니는 단 하루도 똑 같은 말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주 안에서 나누는 격려와 위로는 누군가를  주 안에서 복음의 거인으로 키워 내는 거름과 같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불러낸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은 제자들을 삼년간 훈련하시고 성령 받는 마가 다락방의 무리 가운데 끼어 앉게 하셔서 사도행전 역사의 중심인물이 되게 하셨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고난당하시던 날 가야바의 뜰에서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하고 도망갔었다. 그런 베드로를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으로 다시 찾아 가셨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질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새벽까지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는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없나이다.”고 대답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베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소리치셨다. 주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주님이신 것을 안 베드로는 해변이 물속으로 100미터를 헤엄치고 물길을 헤치며 예수께로 다가갔다.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에 잡은 물고기 153마리를 옮겨 싣고 그물을 끌고 해변에 도착하였다. 예수님은 이미 해변에 숯불을 피워 놓고 생선과 떡을 굽고 계셨다. 예수님은 “지금 잡은 생선도 좀 가져 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구워 먹게 하셨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반복하여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셨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명을 새롭게 주셨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그 베드로가 나중에 승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중심에 서서 쓰임 받는 역사적인 제자요 사도가 되었다. 베드로는 나중에 순교자의 길을 갔다. 비겁하게 배반하고 부인하고 도망 다니고 숨던 베드로를 격려하고 용서하고 위로하신 예수님의 한 마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이 나약하던 베드로를 회복시키는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나중에 충만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을 증거하고 회개와 죄 사함과 성령의 임재를 증거하는 담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위로의 사람 바나바의 영적 혜안이 역사 속에 잃어버릴 것 같던 사도 바울을 초대 교회 당시에 이방 전도의 중심인물로 발굴해 내는데 공헌하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바울의 구령의 열정에 성령의 불을 붙여 주셨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이방의 방문하는 곳곳마다에서 영적 위로자로 쓰임 받게 하셨다. 그런 사도 바울 자신도 곁의 누군가를 통한 위로가 필요하였다. 하나님은 감옥에 갇혀 지내며 병약하고 외롭고 고독한 영적 씨름을 계속하던 이방의 전도자 바울 곁에 두기고와 같은 준비된 위로의 사람을 세워 주셨다. 구정을 지내고 곧 시작된 성회 수요일과 사순절 기간 동안에 기도의 능력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업의 터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영적 풍성함이 있기를 소망한다. 아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이방의 방문하는 곳곳마다에서 영적 위로자로 쓰임 받게 하셨다. 그런 사도 바울 자신도 곁의 누군가를 통한 위로가 필요하였다. 하나님은 감옥에 갇혀 지내며 병약하고 외롭고 고독한 영적 씨름을 계속하던 이방의 전도자 바울 곁에 두기고와 같은 준비된 위로의 사람을 세워 주셨다. 구정을 지내고 곧 시작된 성회 수요일과 사순절 기간 동안에 기도의 능력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업의 터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영적 풍성함이 있기를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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